관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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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년 전의 일이군요. 2003년 2월 어느 날, 날이 잔뜩 흐려 회색 빛 기운이 감돌던 교정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생각하며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공고 받은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향해 자신 없는 발걸음을 떼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그 날을 떠올리다 보니 참으로 묘합니다. 시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의 나 또한 미국 동남부 어느 소도시 방구석에 앉아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College of Design에서 3년째 박사과정 공부 중에 있는 산업디자인학과 03학번 임빈 입니다. 학과 10주년 기념책자에 이렇게 한 자리 차지하고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의미깊은 공간을 어떤 글로 채워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으나, 역시 ‘내 애기’ 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쓰는 문체에서 벗어나 최대한 내 목소리, 내 말투를 담아 말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나란 사람이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관계
나는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단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지요. 가장 불확실하고,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 한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듯합니다. 그렇기에 여러 형태의 관계가 존재하고, 머리와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관계가 기이하리만치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만 그럴까요? 디자인학도로서 내게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사람과 물건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폐기합니다. 맥박과 호흡이 없다 뿐이지, 태어나고 죽는다는 맥락에서 보면 모든 인공물도 생명이 있는 객체입니다. 사람-사람 관계와 비교하여 사람-물건 관계에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과는 달리 물건은 주체성이 없다는 것 입니다. 즉, 어떤 경우라도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끝내는 주체는 사람이지, 물건은 결코 그 역할을 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잘 사용하던 물건이 고장 나서 버렸을 경우에는 물건이 관계 변화의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나는 이제 고장이 났으니 쓸모가 없겠구나’ 하고 스스로 쓰레기통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장 난 물건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여 폐기를 한 주체는 결국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애정을 쏟아 물건을 관리하고 사용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물건의 생명이 다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동 기제(機制)가 버튼하나 없는 말끔한 casing 속 전기회로로 숨어 버린 요즘 물건의 경우에는 허다한 일이지요. 하지만 물건의 생명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과 그 물건의 관계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고장이 났다 하더라도 그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굳이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얼마 쓰지도 않은 멀쩡한 물건을 쉬이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 아무나 사귀지 않듯, 사람들은 복잡한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합니다. 쉴새 없이 생산되는 수많은 물건 중, 사람들이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특정한 물건과 관계를 맺고 끊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입니다. 특히 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사람-물건 관계를 종결 짓는 마지막 폐기단계에서의 행동양식 및 가치판단이 구매단계나 사용단계에서의 행동양식 및 가치판단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연구하는 것 입니다.

이득 창출이라는 목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디자인의 영역에서 사람-물건 관계에 대한 이해와 조사는 주로 구매와 사용단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득 창출에 별로 도움될 것 없어 보이는 폐기 단계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맺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끊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산한 모든 인공물은 종국에 쓰레기가 됩니다. 사람이 만들고 쓰고 버리는 것이니 쓰레기에 대한 책임 또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잘 만들고 잘 쓰는 것 까지는 해냈으니 이제는 잘 버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 입니다. 이별이 추악하다면 아무리 사랑했어도 그 관계는 아름답게 기억될 수 없습니다.

졸업
관계적 맥락에서 보자면, 졸업은 학교와의 관계의 끝을 의미합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매우 상투적인 말이지만,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기대와 설렘’ 이라는 긍정적 기운과 ‘두려움과 불안’ 이라는 부정적 기운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졸업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가요? 졸업 후 사회에 나가게 된 것이 설레고 기대되나요? 아직 길이 정해지지 않아 두렵고 불안한가요?

사람마다, 성격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두렵고 불안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도 취업이나 대학원 진로가 결정되어 ‘내가 회사에서,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두렵고 불안하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업난’, ‘88만원 세대’, ‘3포 세대’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우리에게 더 이상 ‘보장된 앞길’ 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세대를 막론하고 보장된 앞길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사회적 여건상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할 만큼 젊은이들의 세상살이가 전에 비해 그리 수월하지 않은 것 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혹자는 ‘청춘이라면 조금 아파도 돼! 나도 네 나이 때는 힘들었는데, 봐! 나 지금 이만큼 잘 됐잖아’ 라고 말하지만 정작 청춘인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청춘을 되돌아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똑같이 고생했어도 결국은 잘 풀려 넉넉한 삶을 누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인지. 아직은 아프고, 힘들고, 두렵고, 불안한 청춘을 사는 내게 ‘살다 보면 해도 안 되는 것도 있어’ 라고 덤덤히 말하는 노희경 작가의 너무도 현실적인 글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는 요즘 청춘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한다.
“나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섣불리 젊은 날의 나처럼 많은 청춘들이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취급하는 것을 아는 이유다. 그리고 당부하건대, 해보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게 인생임도 알았음 한다. 근데 또 그 어떤 것이 안 된다고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도 알았음 싶다.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p.38>

노희경이 글 쓰는 수칙 몇 가지

1. 성실한 노동자가 되어라. 노동자의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킬 것.
2. 인과 응보를 믿어라. 쓰면 완성할 확률이 높아지고, 고민만 하면 머리만 아프다.

4. 디테일하게 보라. 듬성듬성하게 세상을 보면, 듬성듬성한 드라마가 나오고, 섬세하게 세상을 보면 섬세한 드라마가 나온다.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p.89>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에게 너무 염세적이었나요? 꿈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능력, 상황, 처지를 객관적인 시점에서 판단하여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이뤄가며 영민(英敏)하게 살자는 것이지요. 왜 우리가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나요? 성실하게 노동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추진하고, 섬세하게 작업하면 무엇을 하든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세가지 행동강령 중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내가 선배라는 이유로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 세가지 중 하나만 잘 지키며 사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좌절은 금물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뚝심으로 버티세요. 때로는 영민함보다 똥배짱이 통할 때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도 10년전 불안과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10여년전 입학했던 나를 비롯한 선배와 동기들이 겨우 걸음마를 떼어 아장거리는 시기를 거쳤으니, 여러분은 이제는 발걸음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 걸으면 됩니다. 망설여도 좋고, 넘어져도 좋고, 길을 잘못 들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뚝심 있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소소한 글 하나 제때 쓰지 못하고 게으름 피운 탓에 마감 직전까지 편집부 후배님들 마음 고생시켜 미안한 마음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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