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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 그 기준이 곧 행복

이번 충주에서 열린 직지축제 전시를 마치고 온 유상욱 선배를 만나보았다. 이병종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소위 “밥만 먹고 살아도 재미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파상에서 미디어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으며 산업디자인 출신 디자인 아티스트라고 칭할 수 있겠다. 유상욱 선배님은 02학번으로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전파상의 일원이다. 현재 미디어 아트로 전향하셨지만 산업디자이너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선배님의 말을 들어보았다.


전파상하면 오래된 동네 골목길이 생각납니다.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파상 소개요. 그냥 미디어 아트 쪽 그룹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작가들도 계시고, 대부분 교수님 제자였던 사람들이고, 박얼 형 같은 경우는 지금 우리 학교 강의 나가시고 양선생님도 강의 나가는데 양선생님은 아마 꽤 오래 되었어요. 초창기부터 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 생겼을 때부터 수업했었을 테고, 얼이형은 이번 강의가 시작일 거에요. 그 두 명 다 개인적인 작가활동 같은 것도 하면서 같이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배성훈이라고 디지털 아트 1기 졸업생 있는데, 그 친구도 일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은 관뒀는데 그 전까지 진욱이라고 그 친구도 1회 졸업생이었는데, 그 친구도 같이 있었었고, 그 친구는 다른 쪽으로, 다른 분야를 선택해서 갔고, 그리고 이제 저 있고. 2명? 4명? 교수님까지 5명. 고정적으로 있는 멤버는 5명이고, 이제 프로젝트에 따라서 그 누구를 섭외해서 데리고 온다던가,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평상시에는 자기가 할 프로젝트가 잡히면 다같이 달려들어 가지고 프로젝트 준비를 시작해요. 어떻게 보면 회사 같고 어떻게 보면 그냥 스튜디오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저희는 많은 사람들이 작업하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고정 멤버가 있고 필요에 따라 섭외해서 작업하는 건 처음 알았어요.
왜냐하면 제품디자인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룹을 만든다고 해도 그래픽 하는 사람들이 있고 렌더링이나 툴을 쓰는 사람 등등 다 다르잖아요? 미디어아트 같은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그런 구성하고 비슷해요. 그래픽 다루는 사람, 기획 할 사람, 그리고 설계를 할 사람. 그렇지만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필요한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죠. 여기 전파상 멤버들은 기본적인 개념들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요. 하지만 미디어라는 게 넓게 생각하면 다 다른 구조들로 되어 있는 거니까, 2D, 그래픽, 영상뿐만 아니라, LED도 당연히 미디어의 하나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여수 엑스포에서 한 ‘Hyper-Matrix’는 모터로 고정시켜 한 거에요. 그건 움직이는 벽인데, 벽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디자인 하는 사람들 관점에서는 픽셀인 거잖아요. 픽셀이 움직여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죠. 자동차 이미지도 만들고 패턴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러면 모터가 미디어가 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 프로그래머들을 쓸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전파상 내의 멤버들이 회로나 프로그래밍을 이용해서 소규모로 테스트하고 프로토타이핑 할 수는 있지만 그게 시스템화 되어서 거대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에요. 대규모로 했을 때는 장비가 달라지고, 장비가 달라졌을 때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달라져서 전문가한테 맡겨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면 전문가들을 계약에 의해서 섭외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러면 보통 전파상 내에서 3D작업을 맡아서 하시는 건가요?
전파상 내에서 주 작업은 이제 3D설계에요. 아무래도 라이노 가지고 많이 하게 되는데, 라이노는 스케치를 할 수 있는 툴이잖아요? 그래서 라이노로 스케치를 하고 그 다음에 렌더 입혀서 뷰 같은걸 보게 돼죠. 그리고 설계에 들어가면 라이노는 어떤 형태를 만들기에는 되게 편한데, 어떤 부품들을 만들기에는 되게 불편해요. 솔리드웍스도 사용하고 있구요. 보통 전파상 내에서 포지션은 기본 행정 하고, 회계 다 하고 있고 그리고 3D도 같이요.

어떻게 목 교수님 눈에 드셨는지요?
앞부터 이야기하면 3학기 때 논문 준비할 때 고령자들을 위한 디자인이나 헬스케어 쪽으로 논문을 하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도저히 못하겠는거에요. 중간 발표까지 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4학기 중간고사 때 이병종 교수님 찾아가서 “재미없어서 못하겠는데요. 주제 바꿀게요.” 라고 했어요. 교수님이 그러면 다음주에 밥 못 먹고 살아도 재미있는 게 뭔지 생각해서 오라고, 단어라도 적어오라고 하셨죠. 그러다 보니 제가 재활용이나 제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소규모 생산 그런 키워드를 찾아서 다시 논문 진행을 했어요. 초과학기를 하게 되었을 때 이병종 교수님이 학부장을 맡게 되셔서 학부 조교를 하게 되었는데 조교하면서 논문 준비를 하자 싶었어요. 조교를 하면서 학과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까 당연히 다른 교수님들도 알게 되었고, 그 때 목 교수님을 알게 되었어요. 2012년 2월에 아침에 8시였나 9시였나 목 교수님께 전화가 왔는데, 설계 3D프로그램을 잘 다룰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영악하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한데 그때 내 자신으로서는 떳떳했죠. 마침 그때 나보다 3D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교수님한테 당당하게 “대학원생들 중에선 제가 제일 잘하는데요” 라고 했어요. 그러면 학부 조교가 언제까지냐고 물어보셔서 2월 말이면 끝난다고 했더니 오라고하셔서 ‘아 알겠습니다’ 한거죠. 원래는 ‘Hyper-Matrix’, 몇 프로젝트만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전시 마치고 연말에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소규모 생산을 해서 내가 만들어 보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소수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해도 시장성이 있는 것들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목 교수님께서 그런 것도 좋은데 우선 여기 있으면서 같이 해보는 것도 어떻겠냐고 물으셨어요. 미디어는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접목될 수 있는 분야고 제가 이쪽을 알게 되면 나중에 산업 디자이너들 하고 차별성을 가지게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해서 여기에 남게 된 거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는데 그 시선으로 본 미디어아트는 어떤 다른 느낌을 갖고 있나요?
처음에 되게 낯설었어요. 왜냐하면 산업디자인 같은 경우에는 시장조사, 제품조사, 사용자, 사용환경 등을 조사하게 되니까요. 그런 거에 익숙하다가 여기를 왔는데 뭔가 다른거에요. 미디어 아트에서는 이 환경에 어떻게 맞아 떨어질 것인지, 그게 어두운 환경하고 밝은 환경하고 전혀 작품이 보여지는 게 다르잖아요? 또 사용자는 너무 불특정 다수고… 사용자 조사라는 게 될 수가 없는거죠. 그 사람들의 습성을 다 파악할 수가 없는거에요 너무 취향이 다양하다 보니까. 그래서 여기에서 많이 들은 생소한 단어가 View였죠. “View가 좋다” 여기에서는 진행단계에서부터 View가 좋은지 안 좋은지 항상 고려해야 해요. View는 어떻게 보면 막연하고 자기가 경험이 많아야지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건 산업디자인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산업디자인에서의 경험이란 게 자신이 평상시에 했던 경험이 베이스가 되고 조사하면서 쌓여나가는데 비해, 미디어 아트는 조사의 개념이 아니라서 조금 달라요. 기존의 다른 작가들이 했던 것도 볼 수 있지만 그걸 똑같이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러면 단순히 아류가 가 될 수 밖에 없잖아요. 신기술을 조사 해야 하고, 여기에 적합한, 괜찮다고 하는 기술을 조사해서 이런 매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 갈 수 있을 지 생각해 봐야 해요. 특히 작품으로써 봤을 때 이 기술이 최종적으로 사람들한테 어떤 식으로 다가갈 지 생각해 봐야 하죠. 그런 것들이 처음엔 되게 생소 했어요.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요. 또 예쁘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멋있다고 볼 수 있고 그런 “보기 좋다”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리고 미디어 아트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라고 할 수 있는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이다 보니까 작품이 우선이고 하지만 아무래도 미디어아트는 대량생산의 개념보다는 소량 생산의 개념이라 그런 차이점에서 생기는 것들도. 어떻게 보면은 미디어 아트가 더 폭이 넓다고 할 수 있는거죠.

When I saw the first Digital Art Exhibition, my feelings were ‘Hmm, why couldn’t we think about this in Industrial Design?’. To me, the lighting fixture was the most interesting piece of work in the exhibition. As you know, we also design lighting fixtures in Industrial Design field. The fixture that I saw in the exhibition was very simple. The body part was divided into 3 pieces and it moved upward and downward when you touch it. For example, it moves upward if you touch the upper part of the body and the light comes out through the chink. I don’t consider Digital Art and Industrial Design as separate disciplines. When Professor Mok asked me to join the project I thought, “Wow, I can learn a lot from this project. What a fun!”. So I joined the team and did not worry a thing about it. It was not a tough challenge because I learned computer programming in high school and also because I did not feel any difficulties or unfamiliarity with learning the C programming language. Digital Art and Industrial Design did not seem like disparate disciplines to me. I thought I could make a great use of Digital Art in the Industrial Design context.

학생들이 산업디자인을 다니다가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고 싶은 게 이게 맞는지, 성공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그런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는지요?
그냥 제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것 같아요. 제가 우선 가지고 있었던 건 그냥 그 순간 가장 재미있었던 것. 물론 저도 돈에 대한 유혹이 있었죠.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제가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은 ‘이걸 재미있게 계속 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려하면서 선택을 했죠. 돈이 따라 올 수 있는 방향이면 좋지만, 결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중학교 때는 정말 공부만 했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는 이과를 가야지 했었죠. 그런데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크리에이터에 대한 동경이었어요. 존경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그 안에서 선택을 한 거였죠. 무언가 다 만드는 사람들의 작품을 좋아했었고, 재수하면서 디자인 쪽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연세대에 오게 되었죠. 와서 보니까 산업디자인이 시각디자인보다 범위가 넓어 보였고 그래서 산업디자인을 선택했죠. 그리고 산업디자인을 재미있어 하다가 대학원 때 대기업이나 소규모 디자인하다가 그래도 ‘직접 만드는 걸 해보고 싶다’ 해서 직접 만드는 쪽으로 선택하게 된거에요. 목 교수님이 직접 이야기 하셨을 때 미디어 아트의 어떤 접근법을 배우면 참 나에게 많이 도움이 되겠구나. 다른 제품디자이너하고 다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구나 싶었죠. 그 순간순간마다 선택은 제가 크게 가지고 있었던 크리에이터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시작을 한거죠. 또 차별성을 두려고 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에요.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에피소드 1] 산업디자인의 시작
그냥 우선은 02학번은 자기들끼리니까 친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잖아 선배도 없었죠. 그리고 혹시 얘기 들으신 적 있었나? 우리 때는 교수님 없었어요. 홍석일 교수님, 채 교수님 그때 다 강사로 오셨던 거였죠. 그래서 항상 모임 있을 때 그 이야기 할 텐데, 산업디자인만 모여있을 땐 이야기 할 텐데 교수님들 소개할 때 특히 4학년 졸전 할 때 우스갯소리로 많이들 하시는데 채 교수님 02학번 편입생이시고, 2학기 때 교수로 오셔서 그 다음 이병종 교수님이 03학번 편입생이시고, 다 2학기 때 오신거고. 그리고 이주명 교수님이 05학번 편입생이시고, 권오성 교수님이 07학번 편입생인가? 그 땐 교수님이 없었어요. 1학기 땐 강사 선생님들만 있었고 뭐 학부장, 전공 교수님 없었어요. 살판 나게 논 거죠 터치가 없으니까. 우리끼리 미친 듯이 놀았으니까 친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에피소드 2] 휴학 금지령
그때 그러니까 경수, 지호 그때 02학번 남자애들 꽤 많았었는데, 그때가 04학번들이 졸업하는 시즌이었어요. 그때 다같이 남자애들이 휴학을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들께서 눈치를 채셨던 거죠. 02학번 휴학 금지령이 떨어져서, 저는 3학년 때였고 저는 아이들이 휴학하길 바랬었는데, 애들한테 “같이 졸업하자. 너네 2년 군대 갔다 와서 칼 복학해서 바로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기 힘들지 않냐?”라고 저는 꼬드겼죠 쉬고 놀고 그러자고.

오늘 한 이야기를 하나의 키워드로 줄여주신다면요?
키워드요? 그냥 enjoy? 그냥 자기가 재미있게 하는거? 요즘 제 관심사도 그런 데에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 좋아하는 쪽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고 그냥 순서가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제 후배들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걸하고 그 기준이 행복이라는 걸 계속 안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그걸 이야기 해 주고 싶고 제가 이야기 하면서도 저 스스로 다짐하는 거고. 왜냐면 유혹이 너무 많잖아요. 여러분들도 다 똑같아요. 10년이 지나도 똑같아요. 물론 그때는 다르긴 하겠지만 별반 다를 건 없는거죠. 뭔가 다 갖춰진 게 있을 거 같지만 생각보다 갖춰진 게 없고… 제 생각는 여러분들하고 똑같고 단지 그냥 한 달의 수입이 조금 많을 뿐이고. 뭐 먹을 때 즐길 때 돈을 조금 더 편하게 쓸 수 있다 뿐이지 불안한 것도 똑같고 뭔가 결정하는데 힘든 것도 똑같고. 다만 그걸 조금 더 경험으로써 이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 거에요.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른 거니까 안정된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기왕 디자인 쪽으로 길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디자인쪽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좋은 길, 바른 길, 기존의 길이 아니라. 그러면 제가 이야기 하는 게 이상적일지도 모르지만 다들 공감하는 바른 길이잖아요. 다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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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꿈이라. 글쎄요 저는 아직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제가 작가라고 하는 것도 아직 모르겠어서. 제가 오랜 기간을 산업 디자이너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마인드가 더 맞고 미디어 아트를 공부를 하면서 이걸 어떻게 제품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관점도 있구요. 그리고 그냥 그런 욕심은 가지고 있어요. 어떠한 제품을 봤을 때 ‘아 이거는 유상욱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던 거다’ 라고 하는 것. 알 수 있으면 되게 기분 좋을 거 같지 않아요? 일반 대중이 알면 진짜 대단한 거고 한국은 그러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구요. 근데 그거는 진짜 큰 욕심인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제품 디자인 할 때 이러한 선택들을 할 때‘상욱이한테 맡기면 잘 뽑아내잖아’라는 소리 들으면은 되게 기분이 좋을 거 같고, 그게 어떻게 보면 꿈이라 보기에는 좀 그렇긴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직업 적인 바람인거죠. 그 외의 꿈은 행복하게 사는 것. 꿈은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요소가 있으면 더 행복할것 같아요. 그런 인정은 행복할 수 있는 요소중의 하나인 거죠.

유상욱_ Yoo, Sangwook
산업디자인 02학번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전파상/미디어 디자이너

고집이 곧 재미다.

‘모노컴플렉스 ’는 조장원, 박현우, 황은상, 김태민 4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 그룹이다. 현재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단단히 갖춰나가면서 각종 공모전 수상과 전시횟수도 늘고 있다. 이들은 생활 속의 가구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들이 새로운 오브제로서 느껴지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모노컴플렉스의 작품들은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매개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예술과 실용의 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쾌한 그들을 만났다.


Q: 어떻게 졸업하시고 바로 창업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A: 지금 우리가 3년 차다. 우리 팀은 산업디자인 출신 3명에 금속공학과 1명이다. 우리가 학생일 때 수업시간에 환경디자인도 배우고 인테리어도 배우고, 4명이 따로 실내디자인과 가구 수업도 들었었다. 첫 해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나니까 나갈 수 있는 루트가 좀 보이더라.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회사를 가면 디자이너로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인가.’ 등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하고 싶은걸 딱 1년만 해보자. 1년을 해보다가 안되면 그때 가서 취업을 다시 생각하든 해보자.’였다.

Q: 모노컴플랙스의 시작은 어땠나?
A: 처음 1년은 진짜 별게 없었다. 배너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전단지를 만들기도 하고, 홈페이지나 쇼핑몰 같은 데 들어가는걸 만들기도 하고. 우리가 어떤 포트폴리오도 없는데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할 수는 없어서 조금씩 시작을 했다. 예를 들어, 명함디자인을 했으면 명함디자인 좀 잘하네? 인테리어도 봐줄 수 있겠어? 이렇게 점점 인정을 받아나갔다. 산업디자인과다 보니까 3D 모델링을 할 줄 알고, 모델링도 좀 잘하는 편이고 일러스트나 포토샵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쓰이는 만큼은 문제없이 할 수 있으니까 범위가 넓어졌다. 포트폴리오에 넣을게 조금씩 생겨 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엔 전단지, 배너부터 시작했다가 명함, 카페테이블부터 시작해서 인테리어 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Q: 처음엔 어떤 일을 했었나?
A: 초창기에는 아트퍼니쳐로 시작을 했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보면 동시에 하게 된 거 같다. 작가가 만들 때는 그런 생각 안하고 만들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저거 우리 집에 사다 놓을까?’ 하는 건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한계를 좀 느꼈다. 작가생활만으로는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을 해서 인테리어쪽도 하게 되고. 그렇다고 작가 활동을 놓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를 하면서 이력 같은걸 올려 나갔다. 인테리어 만으로는 회사의 이력을 쌓기가 좀 어려운데 작품 전시활동은 ‘우리는 이런 것을 녹일 수 있는 작가다.’ 라는 네임벨류를 동반 상승시키는 작업이다.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하면 초기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근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힘들지만 두 가지를 동반 상승 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두 작업을 같이 하고있다.

Q: 그런 점은 모노컴플렉스만의 장점이다. 근데 그러기가 사실 어렵지 않은가?
A: 물론 그렇다. 왜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게 힘든가 생각을 해 봤는데, 사실 디자인 회사들은 사무실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제일 많이 하는데 우리는 산업디자인과 출신이다 보니 조금 더 외향적으로 뭔가를 만들거나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다른 회사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인테리어 컨설팅 같은 것도 한다고 하더라. 실제로 시공을 맡아서 하는 건 아니고, 컨셉을 잡는 정도 까지만 한다고 하는데 왜 그정도 까지만 하냐고 물었더니 밖에 나와서 실제 시공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땀을 흘리면서 짐을 나르고 먼지 묻혀가며 작업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더라.

Q: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시고 지금 인테리어까지 하고 계시는데 디자인적으로 공부는 계속 하고 있는건가?
A: 그렇다. 사실 모르는 게 더 많다. 우리는 원래 이걸 하려고 했었으니까 다같이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래도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작업하면서 서로 배우는 경우도 있고, 공방에 가서 배우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스케치 한 것들을 들고 가면 그분들께서는 우리보다 오래하신 분들이니까 ‘이 부분은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지식을 하나씩 받고 시작 한다. 가끔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많이 왔다갔다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학생 때는 그게 어렵다. 과제해야 되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고. 근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어보고 습득을 하는 게 좋은 거 같다. 우리도 계속 그런 식으로 지식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지만 물론 아직도 한 90%는 잘 모른다고 봐야한다. (웃음)

Q: 그럼 일하면서도 계속 재미있게 할 것 같다.
A: 처음 한 1년 동안은 순수 100% 재미였다. 일하러 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었던 것 같다(웃음). 사무실 앞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서 남자 네 명이 6시간씩 이야기하고 그랬다. 서로 스케치하면서 ‘이거 예쁘지 않냐.’ 이런 이야기 하면서(웃음).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상상 속에 있는 것들을 스케치로 펼쳐내면서 그 희열 때문에 계속 신나게 했다. 지금은 클라이언트랑 일하다 보니 100% 재미로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재미를 많이 찾으려고 노력은 한다.

Q: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가장 큰 재미요소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A: 고집이 곧 재미인 것 같다. 하나에 꽂혀서 남의 말은 안 들으려고 하는. 근데 그런걸 많이 꺾으려고 하는 편이다. 인테리어 뿐 아니라 모든 것 들은 돈이 개입이 돼있으니까. 고객이 천 만원을 주는데 아무리 좋아 보인다고 천 오백짜리를 권해도 안한다. 천 만 원짜리 프로젝트면 오백만원을 써서 천 이백처럼 보여야 되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니까.

Q: 그래도 일을 하면서 무조건 재미만 추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은 어떻게 조율하는가?
A: 포트폴리오 좋은 회사가 디자인을 제안하면 굳이 보지 않아도 ‘이게 좋은 거구나.’ 한다. 고가 브랜드도 직접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건 브랜드의 가치 때문이다. 우리도 브랜드 파워가 크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런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힘에 왔다 갔다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러면 재미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봤을 때 좋은 아이템인데 교수님이 안 좋아하고 팀원들이 바꾸자고 하면 하기 싫어진다. 근데 그것을 재미로 바꾸려고 많이 노력을 한다. ‘아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지 저 사람은 이런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하고 인정하는 것 부터가 시작이다.

Q: 다른 회사 경험 없이 바로 창업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점이 있었다면 이야기 좀 부탁드린다.
A: 좋았던 점은 0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길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고. 우리는 처음에 ‘가구랑 조명을 디자인 해서 전시를 하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 나머지 길은 생각을 못했었다. 그래서 여러 분야의 일을 하다 보니 잘 해놓고 나면 연락이 따로 오기도 하고, 아니면 도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포트폴리오가 쌓이니까 그걸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고, 잡지에서 보고 연락하는 사람도 있고. 대개 그런 식으로 파생이 되더라.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연락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견디는 걸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는 못 하는 것 같다. 그걸 못견디면 스튜디오는 사라진다. 근데 그 기간을 어느 정도 견뎌낸다면 그때부터 쉽게 말해서 자생할 수 잇는 힘이 생긴거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연락을 할 때터 스튜디오의 면모를 갖춘 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

Q: 실무 경험 없이 바로 창업하고 깨달은 점이 있을 것 같다.
A: 14개의 잡지사에다가 우리 작품을 보냈는데 답이 딱 한 군데서 왔다. 그 때 현실을 받아들였다. 우릴 바라보는 사람이 이 정도다. 사무실이 클 필요도 없고 최대한 버티면서 늘려 나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디자인하는 분들도 우리를 잘 모르는데 디자인 안 하는 95%이상의 사람들이 우릴 알 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적당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Q: 디자인 회사를 창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A: 실력은 다 동등하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줄 수 있는 인맥이 가장 중요한 거 같다. 남들과 다른 뛰어난 장기도 있어야 하고, 또 디자이너가 가장 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홍보이다. 먼저 연락 못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물론 우리도 잘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걸 알지만 창업을 하는 입장에서 먼저 와서 일을 맡겨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모노컴플렉스란 이름을 사람들에게 회사를 알리는 시기에 누가 찾아오겠는가. 우리가 찾아가야지. 우리도 3년 됐는데 아직도 찾아간다. 처음 사무실이 아파트 상가 안에 되게 조그만 방이었는데 책상만 겨우 들어가고 손님이 오면 문밖에 나가서 앉아야 하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초심이 오래 유지되는 것 같다. 처음 시작을 거창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했다. 처음 시작이 크면 나중에 스트레스를 못 견디겠지만, 예를들어 내가 처음 내 집이 10평밖에 없어도 15평, 20평 이 되면 만족감이 대단하지 않을까.

Q: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해 준다면?
A: 사실 디자인쪽이 일하기 힘힘든게 사실이다. 근데 재미가 있으면 그런걸 잘 모르게 된다. 창작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성과물이 딱 나왔을 때 그 동안의 짜증과 분노가 한 순간에 다 날아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재미가 뭔지 생각을 해 보고 진로 선택을 한다면 훨씬 좋을 것 같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디자이너_송승용

보통 사람들은 아트와 디자인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이 디자이너일까?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관람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개성을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개성을 제품에 표현하지 않는 것이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아트와 디자인은 어떠한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경계를 정확히 잡아낼 수 는 없다. 이런 모호한 경계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송승용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송승용 디자이너는 랭스고등미술디자인학교 디자인 석사과정을 이수 하였고, 한국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지난 6월 11일 개최된 ‘2013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이 선정한 ‘W 호텔 미래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Q : 아티스트는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고자 하고,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송승용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자했는가.
A : 새로운 작품을 만들때 나의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적에 테이블 밑에 숨거나, 방석이나 이불을 높게 쌓아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이런 나의 추억을 오브제에 담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면 어떨까? “ 라는 생각을 하며 작업 했던 것 같다. 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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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송승용 디자이너의 작품은 사용자의 사용성 뿐만 아니라 그들과 이야기 하려는 시도 때문인지, 오브제가 작품인지 제품인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것 같다. 송승용 디자이너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는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그 경계는 분명히 존재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경계를 자신이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트 관련 비평가들이 생각하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을 테고, 그와 똑같이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을 것이다. 그 경계를 나 자신이 어떻게 정의 짓느냐에 따라 그 디자이너의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Q : 디자인 전공을 하기전 조각을 전공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디자인 전공을 하게 되었는가.
A : 조각을 전공 하던 시절에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불상 조각으로써 중생들에게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불교 미술을 공부 했다. 조각 공부를 다 끝낸 뒤, 유럽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때의 유럽은 제품 생산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컨셉을 갖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은 컨셉 제품이 새롭지 않겠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컨셉 제품을 디자인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내게 있어 매우 신선했다. 컨셉 제품이 등장하기 전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까?’라는 생산중심의 생각이 주를 이뤘었지만, 내가 유학을 간 1990년대 말에는 컨셉 제품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 흐름에 맞춰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컨셉을 도출해 내기위해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까지 고민했다. 자신의 컨셉 표현하기 위해 벽화를 그리거나, 바닥에 천을 깔아 그림을 그리거나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컨셉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아트냐, 디자인이냐 하는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컨셉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들에게서 디자인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Q : 그들의 작업 모습이 디자인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게된 자극제가 가되었는데 그런 학생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가.
A : 나는 제일 처음 수강 했던 데생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은 석고상을 한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석고상 그리는데, 입시 미술을 준비할때 처럼 그리면 덩어리 감을 멋지게 표현 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펼쳐 놓았는데 구도, 투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재료를 가지고 스피드 크로키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모델의 자세가 3초마다 변하고, 학생들은 그 모델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스케치를 진행하니까 그림 그리는 것을 어색해 하던 친구들이 점점 그럴 듯하게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여러 가지 재료를 갖고 최대한 종이를 더럽히는 거였는데, 학생들은 종이를 던지고, 밟고 손으로 찍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그 더럽힌 종이 속에서 모델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칼로 긁어내고 지우개로 그림을 지워내면서 그림을 완성 시켰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연필뿐만 아니라 다른 도구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모델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니까 그 어지러운 종이 속에서 모델의 모습이 점점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방법 말고도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Q : 수업이 어떤 것을 학습 하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게끔 하는것 같은데, 그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궁극적으로 어떤것을 얻을 수 있었는가.
A : 이런 방식으로 1년 동안 데생 훈련을 하니까 학생들이 각자의 컨셉을 잡을 수 있었다. 점프하면서 스케치를 하거나, 더러워진 종이 속에서 특징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여러 방법에서 힌트를 얻는 방식 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은 모델을 거꾸로 매달고 그림을 그리는 수업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떨까?’ 라는 컨셉을 도출해 냈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컨셉으로 발전시킨다. 그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Q : 조각을 오랜시간동안 전공 하다가 다른 영역인 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는데, 디자인 전공할 때 괴리감이 들지 않았는가.
A : 내가 조각을 공부 할 때 조각은 나에게 전부였다. 내가 조각을 전공하면서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정말 장인처럼 조각을 했다. 나의 작품에 교수님들도 대단하다며 칭찬 해주었고, 성적도 만족할 만큼 받았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조각 활동은 완벽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변에서 인정 받다 보니까 예술이라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면 되고, 내가 영혼을 바쳐 작업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술이라고 생각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학을 간 첫 일 년 동안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학을 갔을 때, 선생님들이 내게 해준 말은 ‘네가 하는 조각 행위는 아트가 아니다. 너는 지금 아티스트로서의 행위가 아닌 장인으로서의 행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여태 것 해왔던 활동은 예술가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이었다. 그곳의 선생님들은 배움을 강조 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표현 하고 있고, 우수한 작품들은 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지, 그걸 통해서 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단순히 남들보다 더 열정 있게 작업 한다고 해서 내작품이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Q : 디자이너 송승용 씨가 학생 때 정말 열심히 생활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디자인전공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는가.
A : 나는 학생들에게 일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지금의 현실이 어떻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자 한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조각외의 세상을 몰랐던 내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것을 알려 주는 좋은 선배가 있었더라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 앞길이 지금보다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지금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최대한 빨리 사회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디자인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자 하면 책을 읽거나 인터넷에서 찾으면 된다. 그 방법이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진실에 대한 것은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앞으로 겪을 일의 예고편이거나 자극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깨달을 만큼의 무게는 지니고 있지 않다. 학생들이 직접 뛰어들어 사회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 중 가장 좋은 것이 인턴 이다. 인턴을 빨리 나가면 나갈수록 좋다. 내가 생각하기 에는 1학년 때부터 인턴을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디자인에 발 담근 친구들한테 돈을 주며 일을 시킬까 싶지 만, 그때는 돈을 바라고 일을 해선 안된다. 돈 보다 중요한건 경력과 경험 그리고 성실함이다. 이러 방법으로 부딪히는 친구들은 나중에 취업하고자 할 때 눈에 띈다. 학교 성적이 좋지 못할지라도, 이정도의 경력이 있고 노력을 하는 친구라면 어느 회사라도 이 친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성실한 사람인 것이 입증 된 거니까. 나는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며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들 보다는 늦었었다. 여러분들은 내가 그때 처해 있던 환경 보다 더 좋은 환경속에 있다. 좋은 학교와 선배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가 많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잡아 잘 이용한다면 여러분들도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0년 굶어도 안 죽어!”_목진요 교수

지금 강남역에 가면 아름다운 불빛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거대한 육면체의 조형물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현대차와 목진요 교수가 함께한 프로젝트인’브릴리언트 큐브’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목진요는 현재 연세대학교 디자인 예술학부 디지털 아트 전공 교수직을 맡고 있다. 작가이자 교수로서,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Q: 미디어 아트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내가 아마 1세대로 영화포스터 디자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만든 포스터가 영화 벽보판에 붙어있는 것을 건너편 정류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잘 안보이더라. 버스를 타고 가면서 포스터를 보는데, 내 포스터는 안보이고 도리어 그 포스터가 붙어있는 프레임이 보였다. 근데 그 프레임이 너무 보기가 싫었다. 버스가 가면서 멀어지니까 이번엔 그 벽보판 뒤에 있는 놀이터 뒷동산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 날로 시각디자인을 안하기로 결심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내가 할 것은 뭔가 다른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컴퓨터의 체계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를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툴로만 사용했다. 동그라미나 직선을 완벽하게 그리는 정도로만 말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내가 그리는 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명령어를 넣어야 수행이 된다는 것, 그 체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구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계속 꿈을 찾아 나가다 보니 미디어 아트를 하게 되었다.

Q: 미디어 아트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같은 것에 익숙하다. 현재 우리에게 스마트폰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고, 그를 통한 문화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익숙해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외형적으로 드러낸다. 즉,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 또한 시대의 흐름이라생각한다.

Q: 디자이너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이다. 국내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마친 후, 유학을 갔다 오는 것에 있어 뒤쳐짐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A:두려움은 당연히 있었다. 근데 이상한 것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두려움’이라는 것을 유독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여기 학생들은 거의 두려움에 가득 찬 겁쟁이들이다. 오히려 여기보다 좋은 학교 학생들을 보면 배짱이 더 좋다. 이것이 어떤 구조일 것 같나? 이게 바로 빈익빈 부익부다.
예를 들어 보면, 내가 어릴 적 우리 집과 앞 집 모두 쫄면 장사를 했었다. 그런데 앞 집은 항상 우리보다 손님이 더 많았다. 한번은 그 집에 가서 쫄면을 먹어보니 단무지도 더 신선하고, 그 위에 얹어지는 오이도 신선하였다. 맛의 차이라기보다는 신선함이 달랐다. 그 후, 어머니께 “엄마, 우리도 신선한 재료를 쓰고, 참기름도 더 넣고 해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선 “이놈아 돈이 없는데 어떻게 그러냐.” 하시더라. 앞집은 그 날 산 게 그 날 다 팔리니까, 다음날 재료를 또 사오고, 때문에 저 집은 계속 신선한 재료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집은 장사가 안되니까 한 번 재료를 사면 1~2주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은 갈수록 맛이 없어지고 앞집은 갈수록 맛있어지게 된다. 이 것이 선순환과 악순환이다.
보통 우리보다 좋은 학교를 다니는 애들이 배짱이 더 좋고 도전 의식이 강하다. 그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학교’라고 하는 연고를 무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배짱까지 좋다. 내가 볼 때에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가장 겁 많은 학생들 같다. 무엇을 하던 간에 그냥 먹고 살기만을 바라보는 것은 어림도 없는 말이다. 나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중요한 개념이다. 게다가, 마흔 살에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겁은 없었다.

Q: 보통 작업을 시작할 때,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고, 또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A: 영감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잘 맞지 않는 단어이다. 영감이 노는 사람에게 얻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영감이라는 것은 내가 온통 무언가에 몰두해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감은 예를 들면, 시인이나 소설가가 글을 쓰다 지쳐서 바람을 쏘이려 잔디밭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뚝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서 오는 것, 그게 영감이다.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때, 특정한 자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빠져 있으면, 그 어느 때던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반드시 오게 돼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과제에 열심히 매달리고 하다 보면, 자다가, 혹은 학교를 오거나 밥을 먹다가 ‘아!’ 하고 생각 날 것이다. 그저 놀다가는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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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 작업을 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A: 나는 예술가지만 미술관에 들어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미술관이라는 이상한 필터 없이 직접적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것, 그것이 일종의 미디어다. 이런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도 시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난다는 것에 가장 신경 썼고,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였다.

Q: 키네틱 아트는 역동적 움직임을 주요소로 하는 예술인걸로 알고 있다.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에서도 상하로 움직이는 LED를 사용하였던데, 그 움직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A: 브릴리언트 큐브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가변형이기 때문에 변형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다른 이미지와 구동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고 난 뒤의 판단은 시민들이 보기 나름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노릇이 아닌 것 같다.

Q: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에 LED를 많이 사용한걸로 알고 있는데, 그 밖의 다른 작업에도 LED를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다. LED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이번 작품에는 약 25만개의 LED가 쓰였다. 조금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LED를 쓰는 이유는 LED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LED를 너무 싸게 쓴다. LED로 무지개 색을 내며 예쁘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고 느낀다. LED에는 고정적인 색이 없다. 그래서 내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가변형의 최대치까지 노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LED는 얼마든지 다른 색을 낼 수 있지만 한 색으로 굳어 있을 때 더 보기 좋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 좋은 LED 작품의 모델을 보여주고 싶고, 이것이 내가 LED를 사용하는 이유다.

Q: 교수님의 작품을 보면 Music Box나 Soni Column, Light Bead Curtain, EMAN과 같이 예전엔 개인 작업들이 많던데, 최근엔 Hyper-Matrix나 Brilliant Cube 같이 기업과 함께한 작품들이 많더라. 개인 작업과 기업과 관련된 작업의 장단점을 알고 싶다.
A: 개인작업의 장점은 ‘개인작업 이라는 것’이다. 나 혼자 거의 모든 것을 결정 할 수 있다. 기업하고 함께 작업 할 때에는 보통 내가 90퍼센트 정도 결정하고, 기업이 5~10% 정도 참여한다. 기업은 철저하게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의견을 나에게 요구하고, 기업의 메시지를 작품에 싣기를 바란다. 때로는 그것이 불만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고, 기업의 의견을 받아들였을 때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기업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Q: 작품 활동을 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A: 지금은 시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현재의 나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기업하고 큰 액수의 시장을 만들어가는 이유는,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기업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들이 이 작품에 수십억의 돈을 써도 아깝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얻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디어아트의 시장은 열리게 돼있다. 지금까지는 신세계나 현대와 작품을 같이 했지만, 이제 다른 대기업들도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처음에는 가격 때문에 놀라지만, 그들은 이미 나의 작품들을 보았다. 그렇기에 이 정도 돈에 이 정도 효과라면, 결국 TV CF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TV CF 하나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30억이 투자된다. 실제 CF를 제작하는 비용은 적게는 2~3억이면 만들지만 나머지 비 용은 중요한 시간대에 그 광고가 나가게끔 하는 데 에 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와 상관없는 곳, 즉, 미 디어 비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기업에게 이 런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그 30억을 TV CF 한 편 만들기 위해 날리지 말고, 그 돈 날 줘라. 그러 면 방송에 나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광고 효과를 내게 해주겠다.”

Q: 교수님의 다른 인터뷰를 봤었는데, “관객과 작 품은 그 날,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만난다.”라는 말 씀이 매우 인상적이더라.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중 시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직접적인, 그리고 ‘뻔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말하는’ 뻔함’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A: 난 뻔한 것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보통 디자 이너들은 뻔한 것을 피하려고 하지만 뻔한 것에는 뻔한 이유가 있다. 보통 예술가들은 뻔함을 절대적 으로 피해야하는 요소라고 배운다. 나도 그랬다. 내 가 디자이너였을 때, ‘남들 다 하는 거 하지 마라’라 는 것을 제일 먼저 배웠고, 지금도 내가 남이 하는 것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피하 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함에는 내가 아직 성취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 즉, 메인 스트림이라는 것이다. 예술가고 디자이너 로서, 내가 물을 먹었다면 나는 맑은 물만 먹었다 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정수가 된 맑은 물만 공급 하고, ‘비싸고 맑은 물만 먹을 사람만 먹으세요.’라 는 이런 자세였다. 그런데 뻔함이라고 하는 것은 메인 스트림을 얘기하는 것이다. 강물엔 주류와 지 류가 있는데, 지류는 깨끗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메인 스트림은 다 섞 이게 된다. 이렇게 청탁이 뒤섞여 있는 것이 메인 스트림이다. 이 메인 스트림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이것을 무시한 채로 지류에만 머무를 수 없다. 그 것이 내가 뻔함을 추구하는 이유다. 즉, 내 스스로 뻔해지겠다고 하는 것은 나의 포부인거다. 메인 스 트림으로 들어가서 ‘큰물을 내가 휘어잡겠다. 그 안 에서 충분히 내 메시지를 잘 전달하겠다. 그 안에 서 무엇이든 내가 남기겠다.’라고 하는 포부. 비록 아직까지도 잘 성사되진 않았다. 청탁 중에 ‘청’만 고르려고 하는 그런 오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욕심인 것이다.

Q: 기술과 예술을 모두 잘 아는 공집합형 전문가들 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더라. 하지만 현 재 대학 교육 방식은 기술과 예술을 구분 짓는 경 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현재 대학 방식을 신랄하게 얘기한다면, 융합이라는 타이틀은 맨날 단다. 근데 단 한 번도 융합한 적이 없다.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 인데요.” 라고 스스로를 칭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과거부터 붙여준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융합은 나부터 녹는 거다. 그래야 알갱이가 아닌 원소 단위가 합쳐지게 된다. 큰 용광로에 온갖 것을 다 집어넣고 녹여서 틀에 갖다 부으면, 완전히 새로운 제 3의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그 안에 어떠한 알갱이도 살아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디자인 중심의 융합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는 디자인 할 거니까, 공학아 와서 도우라.” 는 것이지, 융합이 아니다. 이건 협업과 융합을 혼용하는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융합이란 무엇이 예술일까 기술일까를 구분하지 않는, 정확히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그것을 좋다 나쁘다라고는 판단하지 못 하겠다. 왜냐하면 지금 와서 “과거의 이름과 장르는 다 가라.” 는 것 또한 틀린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나에게 디지털아트를 배우는 학생들한테는 기술과 예술을 가려서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할 때마다 많은 디자이너와 학생들이 내게 묻곤 했다. “선생님, 기술 공부를얼마나 해야 선생님처럼 할 수 있나요?”, 혹은, “꼭 그렇게 기술적인 공부를 해야 하나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 질문은 “미국에 갈 건데, 영어를 꼭 해야 하나요?” 혹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사진 찍는 기술을 꼭 익혀야 되나요?” 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카메라가 좋다고 좋은 사진이 찍히는가? 절대 아니다. 카메라가 안 좋아도 사진사가 좋으면 잘 찍을 수 있다. 과연 그 사람은 사진 찍는 기술을 몰랐는데 우연히 잘 찍었을까? 이 또한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영감’처럼, 내가 다루는 기계, 미디어와 정말 잘 소통하고 있을 때 불쑥 나오는 것이다. 좋은 사진, 좋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Q: 연세대학교 디자인과는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디지털 아트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조 과제를 하다보면, 같은 전공의 학생들끼리 과제를 할 때 보다 더 많은 논쟁이 일어난다. 이것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해 줄 말이 있는가.
A: 그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다. 이 것은 무슨 묘안이 있어 물 흐르듯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물을, 물 흐르듯이 간다고 하는데, 그 물밑으로 얼마나 많은 돌이 있는지 알지 않나. 그 물흐르는 과정 속에서도 굉장히 많은 저항과 마찰이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고요하게 흘러가 보일지언정 저항과 마찰은 반드시 어느 과정에나 있다. 너희들 사이의 수많은 마찰들도 이겨내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이 그런 과정을 겪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목표를 한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론에서 얼만한 차 이가 있든 자연적으로 해결 된다. 예를 들면, 무엇 을 만들 것인가 혹은 왜 만드는 것일까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다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분쟁 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이것을 하려고 하는 거 아 니냐. 이렇게 하기 위해 이걸 하는 것 아니냐.” 라 는 목표를 갖다 대면 분쟁의 폭이 좁아진다. 모든 분쟁은 서로 바라보는 곳이 같다면 자연적으로 해 결 될 것이다.

Q: 교수님이 생각하는 미디어 아트란 무엇이며 앞 으로 미디어 아트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 라 생각하는가.
A: 미디어 아트가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떠한 형 태로 나아갈지는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의 형태는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엔지니어를 불러 한방에 가둬 놓고 “너희 이제부터 이거 만들어”하고 문 잠그고 나가는 식이다. 그럼 둘이 쿵짝 쿵짝 해서 뭘 만들 어 내는 건데,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이런 방식 은 뭔가를 follow up 하는 데는 최고다. 하지만 완 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현 재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나 오는 것이 아니고, 앞서 내가 얘기했던, ‘공집합형, 융합형’ 인재들로부터 나온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 여 얘기하다 보면, 앞으로 어떤 제품, 어떤 작품이 나올지 예상 할 수 없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방 향이 어떻게 틀어지고 변모 해 갈지는 쉽게 예측 하지 못한다. 나는 예술과 기술, 그리고 디자인을 구분 하지 않 는다. 다행인건, 나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늘 어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낼 미래는 지 금 내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다. 굳이 예측을 하자 면, 화학과 생물학이다. 이제는 이 분야까지 융합 될 것이다. 이게 뻔히 보이는 미래다. 또, 앞으로 는 희한한 기계가 아닌, 희한한 유기체가 나올 것 이다. 분명히 그럴 것 같다. 그쪽이 미래라고 확신 할 수 있다..

Q: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A: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금의 나와 똑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교수님께서 싫은 과제를 내 주시면 아예 안했다. 말하자면 빵꾸를 낸 셈이다. 그래서 수강 신청 때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말 이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에 대한 것도 많이 신경 썼다. 특히 나는 주제를 정해주는 과제가 정말 싫 었다.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직 어 리지만 나도 살아있는 사람인데.’하는 생각 때문이 었다. 그래서 교수님이 “이것을 표현해봐.” 라고 얘기하시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기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고, 결국 잘 안 되더라. 억지스러운 일을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맘에 들 때까지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 수업의 과제를 반복해서 스물 몇 번까지 해본 적이 있다. 다른 과제는 안하고 그 한 과제만 맘에 들 때까지.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쟨 정말 저거에만 미쳐있는,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했는데 성적은 그게 아 니었다. 근데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웃음)

Q: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자 학생들을 가 르치는 교수로서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 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혹은 그들이 갖췄으면 하 는 자세가 있는가.
A: “너 하고 싶은 것, 너 좋은 것 해라.” 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남이 좋다고 하는 것에 자신을 끼워 맞 추지 마라. 그래서는 자신의 재능이 나오지 않는다. 재능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많 이 나온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는지는 모 르겠지만 참 열심히 한다.” 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 다. 나는 그 얘기가 좀 낯설다. 열심히 한 적이 없 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다’라는 어감에는 왠지 싫 은 일을 끈기 있게 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시킨 심부름을 하루 종일 했을 때, ‘하기 싫 지만 내가 좋아하는 엄마니까 도와드려야지.’해서 했을 때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런데, 난 내가 하고 싶 어서 하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이걸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건데, 남들이 볼 때, 내가 이걸 좋아서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를 때는, ‘쟤는 정말 열심히 한다. 저것만 한다’고 본 다. 보는 포인트가 약간 다른 것 같다. 열심히 해서 는 잘 되지 않는다. 아주 잘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 주 잘하려면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한다. 언젠가 부 터 디자인이나 예술 쪽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되고, 그냥 대충해도 먹고사는 분야가 됐는데, 원래는 그렇지 않다. 이 분야는 올림픽 금메달처럼 최고가 아니면 써먹을 데가 없는 분야이다. 때문에 이 분야를 잘하기 위해선 정말 좋아해야 한다. 그 런데 우리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 정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학생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특히 오늘날의 입시 과정은 자신의 개성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된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받은 성 적으로 학교다 싶은 곳에 가게 되고 전공도 정해진 다. 자신이 이걸 하는 게 맞는 건지, 자신이 좋아하 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가고 성 실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도록 바꾸는 태도가 제일 필요하다. 붕 떠있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는 마치 연꽃잎이 물위에서 붕붕 떠다니는 것처럼, 어디에서 뭘 해야 될지 모 르는 채로 그저 떠다니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게 가장 낭비가 아닐까 싶다. 뭘 하든지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그거는 잘해 왔다. 그래서 뭐든지 내가 좋으면 참 열심히 했고, 별로 맘에 안 들어도 내가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해야 내 몸이 움직이고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됨을 아니까 무엇보다 이걸 좋아하는 게 우선이었다. 첫눈에 보고 반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되겠나. 좋아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다. 어떤 것을 좋아하면 저절로 다 해결된다. 미디어 아트를 하게된 것도 다 그렇다. ‘이런 걸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니 뭘 해야 하는지 보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15년도 넘어가서 하고 있는데, 15년이 굉장히 길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 길지 않다. 학생들한테 내가 던지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10년 굶어도 안 죽어.”라는 말을 꼭 좀 써줬으면 한다. 10년 굶어도 안 죽는다. 까딱없다. 10년 굶을 각오를 하고 꿈을 쫓아보는 놈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얘기는 대학 졸업 후 10년을 뜻하는 거다. 그때가 가장 중요한데, 다들 젊을 때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고생을 안하려 한다. “너희들의 꿈이 뭐냐?”하면 “일단 취직부터 하고 여유가 생기면 뭐를 하겠다.”고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취직을 하면 회사가 너희들이 그렇게 하게 둘 것 같은가? 천만에. 회사는 너희들의 꿈을 키워주는 곳이 아니다. 회사는 너희들의 꿈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1,2년을 못 참고 그냥 살기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접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잘될 수가 없다. 10년을 굶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 만큼을 배수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 전쟁을 할 때 내 등 뒤에 강이 있어서 여기서 밀리면 강에 빠지는 거다. 젊은 시간 10년을 그렇게 보내는 게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 10년이 지나고 나면, 배수진을 치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죽으면 딸려죽는 식구들이 생긴다. 그래서 배수진을 칠 나이 때는 정말 주저 없이 배수진을 치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향해 가야한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좋은 화려한 이름이 아닌, 너희가 좋아하는 것, 그것이 너희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주저 없이 10년을 투자해야 한다. 10년 투자안하고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 가짜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꿈보다 어떻게 살지를 고민 한다면, 상당히 제한적이게 된다. 왜냐하면 뭔가를 쫓아가는 자한테 10년은 정말 짧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장 곡선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곡선’이다. 사람이 성장할 때 보통 직선으로 성장한 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 초반기가 길다. 하지만 한 번 성장하기 시작하면 급격히 성장한다. 앞의 긴 초반기가 10년인 것이다. 이게 첫, 아주 기본적인 10년이다. 이 때 자신을 앞지르고 치고 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 만나고 앞지르게도 되어있으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UX Designer를 꿈꾸는 학생들에게_신창범 교수

2012년 가을학기,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한 신창범 교수를 만났다. 아직 강원도 원주에 자리 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연세대학교를 사랑하고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연세인이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10년간 UX 디자인 실무를 하다가 연세대학교와 연이 닿아 곧바로 교직에 서게 되었다. 그의 노하우와 경험이 고스란히 수업에 반영되어 학생들에게 많은 배움과 고무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에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을 맡으셨는데, 기존 수업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하셨더라. 어디에서 착안한 것인가?
현재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에 기반을 둔 것이다. 10년 전에 하던 디자인과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결과물이 다른데 그 프로세스가 같을 수 없다. 10년 사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지금 기업에서는 하드웨어적인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적인 부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들의 경험까지 디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수업에서의 최종 결과물도 제품에 대한 디자인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적 가치들도 시각적으로 함께 제안해야 한다. 즉 디바이스를 둘러싼 사용자의 경험과 그것들을 포괄하는 에코시스템까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의 커리큘럼이 현업의 디자인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기업에서 실무를 하고 온 디자이너로서 지금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와 방법론들을 이곳 학생들과 공유 하고 싶었다.

이번이 교수로서 맡는 첫 제자들이다. 혹시 다른 학교의 수업 방식이라든가 작품들을 보신 적이 있는가? 그와 비교해서 본 학교 학생의 수준은 어떤가? 
우리 학교 뿐 만이 아니라 타 학교의 디자인 도록도 많이 봤다. 그런데 10년 전 도록이나 지금 도록이나 거의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1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고 2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무에 나가면 최종 결과물이 산업디자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 출신 디자이너들이 섞여 일하면서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을 내기도 하고 디자인 외 전공출신 실무자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도한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학과를 보면 아직까지 각 전공별 구분이 명확한 것 같다. 다행히 본 학교는 3학년까지 학부제로 되어 있어서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시각디자인과 디지털아트의 전공과목들을 다양하게 수강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터랙션디자인 수업에서도 여러 학과의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 수강하기 때문에 결과물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본 수업을 진행해 보면서 다행히 우리 학교 학생들은 스마트해서 주어지는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음에 힘을 얻는다. 내가 100을 요구하면 80을 따라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100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120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 때 학생들에게 특허와 논문까지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세계 경제는 특허(지적재산권) 전쟁이다. 기업이 보유한 특허의 가치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환산되어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권리는 기업 경제를 위해 아주 중요한 가치이며 재산이다. 현업 디자이너들도 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실무에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인터랙션/UI/UX 디자인에 있어서 특허를 빼고는 그 결과물의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본 수업에서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논문 또한 아주 중요하다. 특허처럼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의 권리를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의 종류에도 연구 논문 이외에 작품논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지금 수업에서 하고 있는 프로세스에서 각 단계 마다의 결과물들은 학술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매우 고단한 과정을 겪겠지만 한 학기를 마치고 난 후에는 본인들이 제안한 디자인 결과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이름으로 낸 특허와 논문 그리고 작품 전시까지 하면서 본인들을 외부에 홍보할 수 있고 남들보다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교수님께서 실무에서 일하시다 곧바로 교직에 서셔서 그런 교수님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경험에 빗되어 봤을 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될 조건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연히 디자이너로써 가져 가야할 최우선 조건은 크리에이티브이다. 현업에서 오래 동안 디자인 실무를 해 오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만나왔지만 디자이너라는 칭호를 부르기 창피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크리에이터. 자신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것은 디자이너로써 성장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한 해에도 대학에서 수많은 예비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지만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는 극히 소수이다. UX 디자인의 경우는 특히 디자인 전공자 외 다른 전공자들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는 산업디자인과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UX 디자인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각디자인, 인지심리학, 산업/인간공학, 소비자학 등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이 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컨셉을 만들어 내는데는 디자인 전공자를 능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디자인 전공자는 대학 4년 내내 이런 부분을 트레이닝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때문이다. UX 디자인 업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하는 업무도 다양하지만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창조성)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 하지 않은가? 우리 학교의 디자인 전공 수업에서도 공학적인 디자인 방법론이나 인문학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사회에선 공모전 경력이나 영어 실력이나 그런 스펙을 더 많이 보지 않는가?
본인이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있는 기업에 입사를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1차적으로 스펙만 보고 당락을 결정하는 비디자이너인 인사과 직원의 잣대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수 천, 수 만 명의 지원자들 중에 소수를 선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량적 툴에 의한 것이기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기술 시험과 면접 등 본인을 표현할 정성적 평가의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이 방법도 자신을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디자인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에서 디자인인턴 프로그램 제공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건 입사를 하는 것 자체보다 입사를 한 이후이다. 그 곳에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며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디자인 업무를 하다보면 다른 부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설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CEO를 설득시켜야 할 때도 있다. 오히려 디자인을 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 디자인을 위한 스펙만 쌓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 힘들 수밖에 없다.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화 시키느냐가 현업에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

만약에 교수님께서 회사에 입사시킬 수 있는 면접관의 위치가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을 것인가?
첫 번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성이다. 인간으로써의 됨됨이이다. 이것은 자신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직장인을 넘어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인데,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학생들이 많이 있다. 디자인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역량이나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그 다음이다. 나 또한 삼성전자에서 재직 중에 면접을 많이 봐왔지만 그 사람의 인성을 보고 마음이 쏠릴 때가 더 많고 주변 면접관들도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작품성이 조금 부족하거나 언변술이 부족한 것들은 당락을 결정하는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보이지만 불성실한 것도 바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면접 시간에 지각을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다. 면접 시간에 1분 늦는 사람은 입사 후에 1시간이 늦는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기본적인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개념이 없는 지원자를 항상 봐 왔다. 물론 이것은 인성의 덕목 중 한 가지 예 일 뿐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며 긍정적은 표정을 짓는 것, 같이 일을 할 때 팀원이 아프면 자신이 대신 그 일을 수행하는 것 등 간단한 것이지만 이런 부분이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갖추어야 할 필요 요소 들이다.

인터랙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바라고 계신 점이 있다면? 혹은 이런 것을 꼭 염두해 두고 작업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이전 수업들을 어떻게 진행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과 다른 수업방식이라며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자신 속에 있는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려움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그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싶다. 완성도는 떨어지고 투박하더라도 본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하고 싶다. 그래서 처음에 학생들에게 ‘리서치를 하라, 전략을 세워라, 논문도 쓰고 특허도 내라, 전시도 하자’라고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1년 동안 하는 일을 한 학기에 하라고 요구를 하는 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간일 지라도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분명히 본 수업을 다 마친 다음에는 큰 보람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시다보면 가끔 교수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대학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나 아쉬웠던 것이 있었는가?
아쉬웠던 것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해외에서의 경험이다. 그 당시 나는 해외 한 번 나가보지 못 했었고 세상을 좁게 보았었다. 다행히 입사 후에는 업무 출장이나 전시, 학회를 통해 해외로 나갈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제한적이었다. 내가 10년을 다닌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 중에 큰 것이 몇 년간 외국에서 지낼 맘이었다. 지금 못해보면 평생 못 해볼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계획도 충분히 세웠고 준비도 철저히 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준비해 왔던 플랜도 퇴사와 동시에 바로 변경되었다. 순간 허탈했었다. 그리고 느꼈다. 내 길 이니까 내 맘 데로 걸어갈 것 같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닌가보다. 이렇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도 어떤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조건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취업도 굳이 국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지금은 한국 안이 매우 좁고 기회도 매우 적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온 태풍이 미국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가 나비효과처럼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그 영향이 희미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뚜렷해지고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국내에만 머무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의 디자인 인력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내 자신이 눈만 돌리고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좀 더 학생들이 밖을 내다봤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운 건 우리 학교에는 UX 디자인학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식적으로 희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시장에서는 UX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나 또한 UX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를 해왔기 때문에 많은 인맥이 있어서 주변에서 UX 디자이너에 대한 의뢰가 계속적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신입보다는 경력사원을 많이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은 UX 분야의 어느 곳이라도 실무 경험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내에서는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인턴이나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졌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UX 분야의 경험과 인맥들이 형성되어 향후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큰 재산이 된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경험재산을 모아 놓아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