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표 및 개요
본 <헬스케어디자인> 수업은 ECD융합디자인연계 전공의 전공 과목으로, 2014년도 여름학기에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총 3주에 걸쳐 ‘의료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본 수업에는 산업디자인학, 시각디자인학, 디지털아트학, 의공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하였으며 총 3팀의 학제적 팀 구성을 통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내원자 서비스 경험 개선을 위한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현장의 실제 문제를 고객의 입장에서 점검하고 ‘최고의 환자 중심 병원’을 위한 대안을 제시, 병원 고위 관계자의 평가 및 실제 적용을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의료 서비스디자인 우수 전문가를 초청하여 병원 내에서 특강을 추진하는 등 병원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하였고, 참여 학생에게는 다양한 전공 간 창의적 사고와 협력을 통한 팀워크 역량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객의 눈으로 고객의 서비스 경험을 개선한다는 목표 아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경영진 및 의료진과의 논의를 통해 서로 다른 세 가지 영역을 개발 대상으로 선정, 방향을 설정하였다. 다학제적 팀원으로 구성된 세 팀은 각각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인트로의 방문자 경험 개선
- 소화기병센터의 환자 경험 개선 방향
- 입원실의 환자, 보호자 경험 개선 방향
‘인트로의 방문자 경험 개선’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을 방문하는 고객, 즉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본인이 필요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이전까지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특히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고객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눈으로 보는 관점이 중요하였는데, 방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CEV(Customer Eyes View)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여 수행하기도 하였다. ‘소화기병센터의 환자 경험 개선’은 현재 원주기독병원의 외래 진료과목 중에서 다수 환자 대비 협소한 공간, 복잡한 시스템 등으로 열악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소화기병센터를 대상으로 환자들이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입원실의 환자, 보호자 경험 개선’에서는 입원 환자들이 장기간 머물러 생활하는 병동을 대상으로 환자와 보호자가 생활함에 있어 경험하는 서비스를 시설, 환경, 사인 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문제 정의를 시도하고, 이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자 하였다.
2. 진행과정 및 방법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은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 프로세스는 ‘Discover(문제 발견) – Define(문제 정의) – Develop(아이디어 개발) – Deliver(전달)’의 총 네 단계의 과정을 통해 서비스디자인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각 단계별 목표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적합한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요구된다. 각 팀의 진행 과정은 이 프로세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세 팀 모두 서로 다른 주제를 바탕으로 리서치 내용과 방법, 그에 따른 발견점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각 팀의 진행 순서와 수행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에 따라 각 팀들은 서로 다른 팀들의 진행 과정에서 어떠한 발견점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며 공유할 수 있었고 각 팀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도전할 수 있었다. 총 15일동안 각기 다른 프로젝트 주제를 부여 받은 세 팀은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의 네 단계 순서를 각 팀의 일정에 맞추어 진행하였다. 문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현장 관찰, 관계자 및 환자 인터뷰, CEV(Customer Eyes View)를 주로 시행하였는데 특히 현장 관찰 시에는 현장에 어색함이 없이 녹아들기 위해 의료진의 인턴 가운 및 명찰을 착용하는 등 복장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변수, 길지 않은 프로젝트 기간 등의 이슈로 인해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상황과 여건에 적합한 방법론을 발견하여 사용하였고 단계의 전후 과정도 함께 병행하며 진행되었다.
To improve patient’s service experience from their point of view, three design projects were initiated after several careful discussions with the top management of Wonju Severance Hospital. Three interdisciplinary teams undertook their projects based on the following topics. A) ‘Improvement on the visitor experience of intro’: The purpose of this project was to improve the former experience of customers of Wonju Severance Hospital, patients in other words, from the entrance to the hospital to the point before they receive the medical service they need. In this project, it was important to adopt the stance of customers (patients) by viewing familiar things in unfamiliar ways in customers’ perspective. A new methodology called CEV (Customer Eyes View) was developed and implemented in this project. B) ‘Improvement on the patient experience of gastroenterology center’: The purpose of this project was to improve the service and environment of the gastroenterology center in the outpatient departments that has been providing poor service to patients due to the limited space and complicated system. C) ‘Improvement on the experience of patients and guardians in the hospital wards’: In this project, problems were discovered and improved for the service, facility, environment, and sign system that hospitalized patients and their guardians experience during their longer stay in wards.
3. 결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내원자 서비스 경험 개선을 위한 본 수업의 세 가지 프로젝트는 각각의 과정이 달랐듯 결과물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먼저 ‘인트로의 방문자 경험 개선’ 과제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병원을 방문한 고객이 서비스에 접근하기까지 병원 내 정돈되지 않은 형태의 시각 사인물들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를 시각적으로 개선하였다. 병원 내부의 사인물 뿐만 아니라 병원 외부에서부터 고객이 의료 서비스를 찾아 가기까지 접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하였고,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 병원의 외관이 개선되기도 하였다.
‘소화기병센터의 환자 경험 개선’ 과제의 결과물은 공간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현재 소화기병센터의 복잡하고 협소한 공간 문제와 의료진과 환자의 복잡한 동선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고객이 더욱 편안한 외래 진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당 팀은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사용자 참여 워크숍을 통해 의료 현장 관계자들과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보다 결과물에 대한 타당성과 적합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입원실의 환자, 보호자 경험 개선’ 과제에서는 병동 생활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경험하는 서비스에 대하여 시설, 환경, 시각사인물의 문제를 발견하여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현재 병원에서 환자가 제공받는 입원 서비스의 질이 환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며 시설이 가장 열악한 병동 환경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이에 대한 대안을 사례를 통해 제시하였다.
4. 의료 서비스디자인, 무엇을 알고 가야 할까?
우리는 최근 디자인 분야의 확장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의료산업에서 서비스디자인을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왜 이런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며, 이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분야라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본 수업에 참여하는 15일 간 의료 현장을 밀접하게 경험하면서, 의료 현장에는 디자이너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디자이너가 병원을 대상으로 서비스디자인을 수행할 때에는 의료 산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더불어 병원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및 협력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는 본 수업을 통해 깨달은 의료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사고를 바탕으로 향후 디자이너가 의료 서비스디자인을 수행할 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이슈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의료 서비스디자인분야는 ‘본질’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는 매사 진중한 태도로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여야 하는데, 다시 말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의료산업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습득하고 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의료 현장은 다른 서비스 산업과는 달리 환자의 건강, 존엄,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의료현장에 대해 어느 정도 혜안을 가진 전문가들이 접근하여야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 고객의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창의적인 사고에 익숙한 디자이너의 역량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전에 산업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의료 분야는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사고만으로 접근해서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이다. 접근하여야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의료분야의 특성으로 인해 의료 현장에는 늘 디자이너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전에 병원의 협조를 받았다 할지라도 환자의 존엄과 생명에 다루는 중요한 일들과 직면할 때에는 미리 계획한 모든 일들이 무효가 되기 쉽다. 서비스디자인 도구와 방법을 의료 현장에서 그대로 수행에 옮기는 것은 어려우므로 상황의 변수에 익숙해지고 빠르게 대처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의료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의 경험을 점차적으로 쌓아가면서 상황에 따른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모색, 발견해나간다면 프로젝트를 긍정적인 결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의료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의 중요한 협력자인 ‘의료진’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은 의료행위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기관이므로 그 같은 목적성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를 외부인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외부인이 아니라 병원과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바쁜 의료 업무 속에서도 이들 스스로를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도록 동기부여 시켜야 한다. 의료진과 좋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처한 힘겨운 의료 업무 현실을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이는 서비스디자인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인 ‘Co-Creation’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현장에서는 이들을 각각 의료인과 환자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서비스 수혜자인 환자를 우리가 만족시켜야 할 고객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려 하며, 가끔은 의료인들 조차도 그들이 겪는 문제를 말하기보다 환자의 불편을 우선적으로 호소한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환자가 겪는 문제들만큼이나 의료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혹은 상호연결성을 가지고 발생된다. 리서치를 하다 보면 서비스제공자와 수혜자의 한 편에만 서서 현상을 바라보기 쉬우나, 어느 한 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의 관점과 니즈를 이해하고 인식하여야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로는 리서치 과정에서의 접근 방법에 관한 것인데, 의료 서비스디자이너로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고객은 ‘의료진과 환자’ 둘 모두라는 것이다. 서비스디자인이 다른 디자인분야와 구분되는 주요한 차별점 중 하나는 서비스제공자와 서비스수혜자 모두의 경험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본인만의 신념을 가지고 문제를 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인 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념의 문제이다. 필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병원의 이익과 환자의 만족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비중의 문제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이자 서비스제공자인 조직, 서비스수혜자인 고객 둘 모두의 만족을 고려해야 하는 분야이다. 결국 이 두 이해관계자 중 어느 쪽을 우선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이러한 질문을 보다 골똘히 고민하게 되는 분야가 바로 의료 서비스분야라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가 병원 경영진의 입장이라면 병원의 수익 및 자본에 관한 현실적 여건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나 디자이너의 관점이라면 서비스를 경험하는 고객의 만족을 보다 우선시 생각하게 된다. 하물며 의료 서비스의 고객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나약한 환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만약 본인이 디자이너라는 명목 하에 있다면, 의료 서비스디자인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이 같은 신념을 갖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4년도 여름학기의 본 수업에서는 병원과의 협력하에 의료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시도하였는데, 이 분야에 대한 학부생들의 관심이 눈에 띄었을 뿐만 아니라 낯선 분야이지만 진중한 자세로 프로젝트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자인 전공자로써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이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학부생들이라면 장기적인 관심을 둘 것을 조언하고 싶다. 삶과 죽음이 내제된 꽤나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 만큼 의미가 있기도 한 의료 분야와 그 현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면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