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디자인

Nov 25, 2017 | ID Column, Know-理知

최재공 Choi, Jae gong

최재공 Choi, Jae gong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

Design for Humanity

I now consider more about the purpose of a designer. I came to a conclusion that the design subject should move from a designer to the public. This is because through such method the designer and the user’s role can reach an agreement. Without the need for the designers trying to precisely understand the users’ need, design could be established from the user side. As Ezio Manzini said in his「Design, When Everybody Designs (An Introduction to Design for Social Innovation)」,a professional designer’s role will remain to be the catalyst for a wider discussion about design by providing a platform. A professional designer will not give detailed instructions and directions.


저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디자인제품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이었습니다. 적어도 디자인을 전문디자이너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행위를 무언가 만들어내는 정도로만 여기고 계속 생각 속에 그냥 부유하도록 뒀습니다. 디자인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자인 개념을 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문디자이너를 대학교육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한정 짓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전문디자이너라고 생각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업의 디자인 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전문디자이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고 기업의 디자인팀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관심의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 있습니다. 적어도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은 아니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영역도 아니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영역도 아니고 국가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영역도 아니었습니다.

운행이 끝나서 승객들이 다 내린 후 청소하는 노동자의 청소도구를 보면, 아파트 계단과 복도를 청소하는 도구를 보면, 길거리 포장마차 내부를 보면, 동대문의 옷들이 만들어지는 봉제공장을 보면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사물들이 눈에 띕니다. 그것들은 지하철을 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분식을 먹거나 옷을 살 때는 사실 잘 보이지 않는 삶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보이는 영역들은 전문디자이너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 곳인 것 같습니다. 지하철 공사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한 부분으로 그들의 작업도구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불편사항을 개선해주는 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청소 용역 업체 소속의 노동자들에게 그런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뜻을 모아 아파트 청소 노동자들의 불편사항을 개선해줄 것을 목적으로 전문디자이너를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부르는 걸 기대할 수 있을까요.

디자인의 수혜를 받기 유리한 영역은 여가나 스포츠, 패션, 의료서비스와 같이 시장이 크면서 인기가 있고 디자인 된 제품으로 인해 부가가치가 높아져서 비용이 올라가도 누군가는 소비해주는 그런 영역입니다. 민간영역과 공공영역이 관심을 보이는 영역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배우는 디자인의 영역은 이렇게 한정된 분야 속에서만 말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뇨?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전공에서 배운 것들의 많은 부분은 사람에 대한 이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수혜를 받을 사람에 대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은 배우지 못했던 것 같네요. 디자인의 속성상 고부가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디자인 수혜의 대상자로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면 어떤 인간을 위할 것인지, 그 우선순위를 고민해보아야 진정한 의미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분명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인간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죠. 디자인을 통해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된다면 그건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지만 내가 한 디자인이 사람사이의 차별을 강화시킨다면 아무리 그 과정이 인간을 위했더라도 우리네 인간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근시안적인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것입니다.

작업대를 대하는 MDF의 자세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과분한 요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운운하면서 회피하기도 합니다. 하던 대로 해도 괜찮아지는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연구주제를 탐색하면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뭘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연구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디자인 대상을 분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분명 트렌디한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디자인 된 것들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구조가 갖춰진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복지에 기대어 실현시킬 수밖에 없는 영역일 것입니다. 한물 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어야겠습니다.

연구주제를 탐색하면서 느낀 건 청소하는 사람들이 정말 눈에 안 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학교 학생회관 음식물쓰레기 수거 차량은 새벽 2시 반 정도에 볼 수 있습니다. 청송관 청소도 매일 오전 7시에 해서 수업시작 전에 끝냅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맞춰서 오는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을 보지 못합니다. 중앙차선 버스정류장 지붕 청소도 새벽에 하고 지하철도 운행이 끝나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투입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 모두가 집에 가려고 내릴 때 깨어있어야 하고 투입되어야 하는 게 이상하게 보여야 정상입니다.

이렇게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은 마트에 없습니다. 내가 일하면서 필요한 걸 살 수 없습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직접 만든 도구들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제가 2년 반 동안 집중했던 봉제공장도 그랬습니다. 과거에는 봉제업이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었습니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이야기 되는 지금 봉제업은 ‘안 보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산업의 흐름은 이미 봉제업을 떠났지만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었습니다.

고장난 창문을 대하는 재봉실 심의 자세

디자이너를 떠올릴 때 동대문의 디자인 플라자에 있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각종 전시와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궁금합니다. 분명 우리가 나아가야할 미래상을 고민하겠죠. 그런데 바로 옆 창신동에는 과거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역시 ‘잘 안보이나’ 봅니다. 디자인 플라자의 디자인숍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이 즐비하고 사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작업에 필요한 것들은 살 수 없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지역의 문제에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역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대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해해야 할까요.

진정한 의미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이렇게 디자인 수혜 대상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봉제공장은 서울시의 예산이 투입되어 작업환경실태조사가 진행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인 것이죠. 그래서 저 같은 연구자도 봉제공장의 작업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지인을 맞이하는 그곳의 분위기는 냉담했고 작업을 하다말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예산은 투입되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실제적 지원은 엉터리이고 이미 공공의 영역에 대한 불신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산은 투입되고 전수조사도 하지만 정작 사람과 환경,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실제적 필요를 반영한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할 수 없어보였습니다. 불행히도 사용자가 자기가 쓸 것들을 스스로 만들게 되는 구조적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스스로 만든 것들을 저는 자가 개선 사물이라고 했습니다. 자가 개선된 사물은 사용자가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사용자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사용자와 디자이너가 동일인물입니다. 둘의 역할합일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어떤 왜곡도 없는 상태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작업 습관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분기별로 끝나는 디자인 프로젝트와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이제까지 사용자 조사 열심히 해서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랍시고 뽑아낸 것들은 명함도 못 내밀 것입니다. 자가개선 된 사물들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용자를 위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느껴졌습니다.

먼지를 대하는 티슈의 자세

봉제공장에서 25가지의 자가 개선된 사물을 만났습니다. 전부 주변의 것들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재봉실 심을 뒤집어서 꽂이를 만들기도 하고 천을 이용해서 작업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가 개선 사물들에서 사용자들의 필요가 보였고 적정 수준의 해결책도 보였습니다. 그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들과 마주하니 디자이너가 문제해결을 하는 프로세스와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가 개선의 과정은 주변의 상황을 직면하고 그 안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습니다. 재료를 중심으로 각 사물의 형상과 존재 방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봉제공장의 자가 개선 사물들이 천을 이용한 것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소도구를 대하는 주머니의 자세

이렇게 대량생산 된 제품들의 변형을 통해 자가 개선을 이룹니다. 그래서 자가 개선 사물들은 대개 디자이너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됩니다. 사용자는 디자이너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상황에 유리한 쪽으로 개선해 갑니다. 이것을 디자이너는 긍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시겠지만 디자인 과정에서는 많은 논리가 쌓여 어떤 형상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사용법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물의 고유한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컵과 연필꽂이 모두 물을 마시거나 연필을 꽂을 수 있지만 컵에 연필은 꽂는 행위는 그리고 연필꽂이로 물을 마시는 행위는 생산자의 의도에 맞게 쓰는 건 아닐 것입니다. 생산자인 디자이너는 이렇게 사용자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쓰이는 물건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면서 쌓인 논리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무릎을 대하는 kneelifter의 자세

여기에 틀린 사용이라는 가치판단을 한다면 더 이상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틀린 사용이라는 판단은 결정된 사용법에 사용자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용자 중심은 어떤 물건의 사용법을 고정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물의 완성을 최종적으로 사용자가 사용할 때의 그 모습으로 유보시키는 것을 요청합니다. 적절한 사용법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관점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모습을 왜곡 없이 온전히 살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때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건 주변을 살피는 예민한 눈과 겸손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전문가주의와 계몽적 태도는 사용자를 이해하는 데에 큰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생산의 주체를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사람들로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와 디자이너의 역할 합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가 사용자를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직접 만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치오 만치니가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에서 말한 것처럼 전문 디자이너는 디자인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고 촉매역할 정도로 끝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부 졸업연구부터 대학원 논문까지 길게 한 주제를 놓고 고민해본 이야기입니다. 예비 디자이너로 졸업하면서 내가 사회에서 적어도 해는 되지 않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져야 할 시선과 태도는 알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디자인 영역에서 여전히 인간을 위한 디자인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중요한 이슈라면 위에서 말한 것들을 견지할 생각입니다. 저와 생각이 비슷한 분들과 이런 논의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에 번호를 남깁니다. 010-2488-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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