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디자인 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기능과 형태이다. 기능과 형태는 사용자에 대한 분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사용자는 아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으로 디자이너는 제품을 디자인 할 때 소비자의 성향, 의식수준,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소비자들의 의식수준과 관심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키워드는 ‘착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라고도 하며, 사전적 의미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소비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 및 공정무역 상품 등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뜻한다. 즉, 물건을 구매할 때 경제적인 측면에 다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의 의지를 파악할 수있다. 착한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매운동, 불매운동, 녹색소비, 로컬소비, 공정무역, 기부 및 나눔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 경험했던 소비형태들이 바로 착한 소비이다. 다양한 착한 소비 형태 중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 기부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을 통해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를 유도하여 제품 판매와 동시에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해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시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코즈마케팅이라고 한다. 코즈마케팅 사례를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Toms
탐스슈즈는 가장 대표적인 코즈마케팅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설립된 탐스슈즈의 탄생 배경은 탐스슈즈의 CEO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신발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가 난 부위를 통해 병에 감염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돕고자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인 탐스슈즈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탐스슈즈는 아르헨티나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의 편안한 착화감에서 영감을 얻어 플랫한 고무바닥과 가죽안창 그리고 심플한 캔버스 어퍼로된 신발을 만들었으며,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One for One’이라는 기업이념 아래 경영되고 있다.
탐스슈즈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코즈마케팅 활동과 다르게 독특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쉽게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해 온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의 제품 구매로 발생한 기업의 수익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거나 자사의 제품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증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탐스슈즈의 기부활동은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하는, 과감하면서 동시에 전략적이고, 동기를 부여하게 만드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판매하면서 1:1로 다른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하는 방식은 기업의 과감한 투자
이다. 물론 신발 한 켤레의 가격에 소비자 몫의 기부금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품 가격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도록 만든 것은 탐스슈즈의 코즈마케팅 전략이 적절했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신발을 구매할 만큼 사회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의식수준이 높아져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소비자에게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한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통해 제3세계 어린이 1명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기부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탐스슈즈의 신발이 일반 운동화 또는 구두와 같았다면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많이 구매했을까? 탐스슈즈가 처음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신발 디자인에 우선 놀랐다. 어릴 적 신었던 하얀 베이비실내화와 기본 구조는 동일한데 다채로운 컬러, 신선한 바닥 소재 그리고 심플한 디자인이 세련되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스슈즈는 캔버스에 고무바닥, 가죽안창이 전부이다. 어린이도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가볍고, 편하며 빨리 마른다는 장점이 있다. 밭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런 여름 폭우를 맞기 일쑤였던 아르헨티나 농부들의 생활상이 기능에 반영된 것이다.
디자인을 할 때에는 미적인 부분이나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제품이 만들어진 목적과도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탐스슈즈는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되는 제품이다. 그런데 척박한 땅에서 신을 수 없는 신발이거나 너무 장식이 많아 어린이가 신기에 부담스럽거나 신고 벗기 불편한 신발이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판매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네워터 바코드롭 캠페인
미네워터(MINEWATER)는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생수 브랜드 이름이다. CJ제일제당은 기존 미네워터의 실패로 제품을 새롭게 리뉴얼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출시된 제품이 2012년 3월부터 판매된 새로운 미네워터 제품이다. 새로운 미네워터는 바코드롭(BARCODROP)이라는 캠페인과 함께 시장에 런칭되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제품에 바코드를 두 개 표시하여 생수 1병을 구매하면 아프리카에서 물 부족 문제로 고생하는 300명의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기부금이 사용되는 코즈마케팅 제품이다.
미네워터의 코즈마케팅 전략 또한 독특하고 신선했다. 국내 브랜드 생수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 생수까지 들어와 포화시장이 되어버린 생수시장에서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국내 브랜드 생수는 디자인적 요소에 신경쓰기 보다는 가격 경쟁을 우선으로 해왔기 때문에 귀여운 생수병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을 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미네워터를 구매한 소비자가 기부의사를 밝히면 100원을 기부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제조사인 CJ제일제당과 유통사인 훼미리마트가 각각 100원씩을 함께 기부해 생수 하나당 300원이 기부되는 나눔 캠페인이다. 소비자는 100원이라는 부담없는 금액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복지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지 않아도 인근의 편의점에서 미네워터 생수를 구매하여 쉽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바코드롭은 강요하거나 의무적인 기부활동이 아닌 소비자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이고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다. 기부 의사가 없다면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롭 스티커를 벗기면 된다. 기부된 300원은 아프리카 어린이 300명이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으로, 2012년 미네워터 판매로 발생한 기부금 1억 3200여만원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에 기부되었다. 물 부족 문제는 전세계가 고민해야 할 주목하는 환경 이슈이므로 생수에 물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캠페인을 적용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네워터 바코드롭 또한 디자인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다. 미네워터는 병 디자인을 심플하고 깔끔한 형태로 변경하여 심플함 덕분에 캐릭터 및 바코드가 눈에 쉽게 띄도록 디자인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남녀 어린이를 캐릭터로 사용하여 소비자가 기부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하늘색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를 머리 위에 그려 바코드를 통해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코드가 물방울 모양이라는 것이 흥미를 유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코즈마케팅으로 성공한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소비자의 의식수준을 고려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소비자가 쉽게 착한 소비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든 사례였다. 그러나 두 사례에서 보았듯이 마케팅력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구매욕을 끄는 디자인이 존재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원하고 구매할 때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디자인 트렌드나 사용자에 국한하여 집중하는 것 보다는 이와 더불어 소비자의 성향, 시장경제 흐름, 기업의 경영이념 및 목표, 다양한 사회적 이슈 등 외적인 요소에도 폭넓은 시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형태, 색, 고유기능, 배열, 이미지 등 디자인의 기호적 요소가 소비자와 어떻게 의사소통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관찰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시간에 사랑받고 사라지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디자인을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