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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마케팅과 디자이너의 역할

제품을 디자인 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기능과 형태이다. 기능과 형태는 사용자에 대한 분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사용자는 아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으로 디자이너는 제품을 디자인 할 때 소비자의 성향, 의식수준,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소비자들의 의식수준과 관심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키워드는 ‘착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라고도 하며, 사전적 의미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소비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 및 공정무역 상품 등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뜻한다. 즉, 물건을 구매할 때 경제적인 측면에 다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의 의지를 파악할 수있다. 착한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매운동, 불매운동, 녹색소비, 로컬소비, 공정무역, 기부 및 나눔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 경험했던 소비형태들이 바로 착한 소비이다. 다양한 착한 소비 형태 중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 기부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을 통해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를 유도하여 제품 판매와 동시에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해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시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코즈마케팅이라고 한다. 코즈마케팅 사례를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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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슈즈는 가장 대표적인 코즈마케팅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설립된 탐스슈즈의 탄생 배경은 탐스슈즈의 CEO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신발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가 난 부위를 통해 병에 감염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돕고자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인 탐스슈즈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탐스슈즈는 아르헨티나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의 편안한 착화감에서 영감을 얻어 플랫한 고무바닥과 가죽안창 그리고 심플한 캔버스 어퍼로된 신발을 만들었으며,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One for One’이라는 기업이념 아래 경영되고 있다.

탐스슈즈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코즈마케팅 활동과 다르게 독특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쉽게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해 온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의 제품 구매로 발생한 기업의 수익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거나 자사의 제품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증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탐스슈즈의 기부활동은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하는, 과감하면서 동시에 전략적이고, 동기를 부여하게 만드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판매하면서 1:1로 다른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하는 방식은 기업의 과감한 투자

이다. 물론 신발 한 켤레의 가격에 소비자 몫의 기부금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품 가격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도록 만든 것은 탐스슈즈의 코즈마케팅 전략이 적절했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신발을 구매할 만큼 사회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의식수준이 높아져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소비자에게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한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통해 제3세계 어린이 1명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기부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탐스슈즈의 신발이 일반 운동화 또는 구두와 같았다면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많이 구매했을까? 탐스슈즈가 처음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신발 디자인에 우선 놀랐다. 어릴 적 신었던 하얀 베이비실내화와 기본 구조는 동일한데 다채로운 컬러, 신선한 바닥 소재 그리고 심플한 디자인이 세련되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스슈즈는 캔버스에 고무바닥, 가죽안창이 전부이다. 어린이도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가볍고, 편하며 빨리 마른다는 장점이 있다. 밭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런 여름 폭우를 맞기 일쑤였던 아르헨티나 농부들의 생활상이 기능에 반영된 것이다.

디자인을 할 때에는 미적인 부분이나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제품이 만들어진 목적과도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탐스슈즈는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되는 제품이다. 그런데 척박한 땅에서 신을 수 없는 신발이거나 너무 장식이 많아 어린이가 신기에 부담스럽거나 신고 벗기 불편한 신발이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판매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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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워터 바코드롭 캠페인
미네워터(MINEWATER)는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생수 브랜드 이름이다. CJ제일제당은 기존 미네워터의 실패로 제품을 새롭게 리뉴얼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출시된 제품이 2012년 3월부터 판매된 새로운 미네워터 제품이다. 새로운 미네워터는 바코드롭(BARCODROP)이라는 캠페인과 함께 시장에 런칭되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제품에 바코드를 두 개 표시하여 생수 1병을 구매하면 아프리카에서 물 부족 문제로 고생하는 300명의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기부금이 사용되는 코즈마케팅 제품이다.

미네워터의 코즈마케팅 전략 또한 독특하고 신선했다. 국내 브랜드 생수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 생수까지 들어와 포화시장이 되어버린 생수시장에서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국내 브랜드 생수는 디자인적 요소에 신경쓰기 보다는 가격 경쟁을 우선으로 해왔기 때문에 귀여운 생수병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을 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미네워터를 구매한 소비자가 기부의사를 밝히면 100원을 기부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제조사인 CJ제일제당과 유통사인 훼미리마트가 각각 100원씩을 함께 기부해 생수 하나당 300원이 기부되는 나눔 캠페인이다. 소비자는 100원이라는 부담없는 금액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복지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지 않아도 인근의 편의점에서 미네워터 생수를 구매하여 쉽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바코드롭은 강요하거나 의무적인 기부활동이 아닌 소비자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이고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다. 기부 의사가 없다면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롭 스티커를 벗기면 된다. 기부된 300원은 아프리카 어린이 300명이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으로, 2012년 미네워터 판매로 발생한 기부금 1억 3200여만원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에 기부되었다. 물 부족 문제는 전세계가 고민해야 할 주목하는 환경 이슈이므로 생수에 물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캠페인을 적용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네워터 바코드롭 또한 디자인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다. 미네워터는 병 디자인을 심플하고 깔끔한 형태로 변경하여 심플함 덕분에 캐릭터 및 바코드가 눈에 쉽게 띄도록 디자인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남녀 어린이를 캐릭터로 사용하여 소비자가 기부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하늘색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를 머리 위에 그려 바코드를 통해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코드가 물방울 모양이라는 것이 흥미를 유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코즈마케팅으로 성공한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소비자의 의식수준을 고려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소비자가 쉽게 착한 소비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든 사례였다. 그러나 두 사례에서 보았듯이 마케팅력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구매욕을 끄는 디자인이 존재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원하고 구매할 때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디자인 트렌드나 사용자에 국한하여 집중하는 것 보다는 이와 더불어 소비자의 성향, 시장경제 흐름, 기업의 경영이념 및 목표, 다양한 사회적 이슈 등 외적인 요소에도 폭넓은 시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형태, 색, 고유기능, 배열, 이미지 등 디자인의 기호적 요소가 소비자와 어떻게 의사소통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관찰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시간에 사랑받고 사라지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디자인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우리나라의 장인과 전통공예기술

우리나라의 ‘장인’
초고속, LTE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한땀, 한땀 바늘을 놓아 1년에 거쳐 활옷[ref]조선왕조 때 공주 ·옹주의 대례복으로 입던 소매가 넓은 옷.[/ref]을 만들거나, 문고리의 금속에서부터 몸체의 나무까지 손수 공수해온 재료를 몇날 며칠 동안 다듬고, 깎아 반닫이[ref]전면(前面) 상반부를 상하로 열고 닫는 문판(門板: 잦혀 열게 된 문짝의 널)을 가진 장방형의 단층의류 궤[/ref]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은 조금은 낯선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장인’ 이라고 부른다.

현재 이러한 장인은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에 의해 지정된다. ‘중요무형문화재’ 란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또는 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이른다. 이 중공예기술분야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흔히 말하는 ‘장인’ 이며, 사기장, 자수장, 매듭장, 유기장, 나전장 등 총 50종으로 이루어지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그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이다.[ref]문화재청[/ref] 이 ‘장인’ 이라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국가의 지정이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조선 시대 왕실에 공예품을 납품하던 장인들이 있었고, 양반집 가구를 만들어주던 장인들도 있었다. 이 장인들의 기술은 온전히는 아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형체가 없고, 기계적 매뉴얼을 갖는 것이 아니기에 특정한 기록을 통해서 전해지기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옻칠을 하고 나전을 켜 다음대의 나전칠기 장인이 되기도 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시어머니의 매듭짓는 솜씨를 물려받아 오늘날 매듭 장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유명한 장인의 제자로 들어가 오랜 기간 동안 수련하고 기술을 닦아 후세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

‘전통공예기술’ 다르게 바라보기
‘전통공예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장인정신’, ‘전통문화’와 같은 상징적 의미에 더욱 집중되어있다. 때문에 다가가기 어렵고, 만질 수 없는 마치 예술품을 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곤 한다. 하지만 ‘전통공예품’은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용품이며 용도마다의 쓰임과 사용자의 취향이 밀접히 반영된 친근한 물건이다. 다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생활방식과 기술의 변화로 어느새 사라져 버린 물건들 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쉬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전통공예기술는 당대의 일상생 활용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적화된 기술이었다. 공예품 하나를 만들어 내기위해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물건을 사용할 사람과 환경, 물건 간의 관계, 재료의 채취와 가공,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연구하고, 기술을 숙련해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 상품을 개발해 내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다르게 보아야 할 점은 이 과정 속에 발현된 당대인들의 지혜일 것이다. 몇 가지 사례로 견고성을 자랑하는 목가구의 짜맞춤기법[ref]짜맞춤은 의장성(意匠性)과 목조건축물과 가구 자체의 기본구조인 역학성(力學性), 견고성, 하중성 등을 겸한 결구방법이다. 견고성은 나사못을 사용한 맞춤보다 3배 이상이다.[/ref], 보존성이 뛰어난 단청, 내염성, 내열성, 방수, 방부, 방충, 절연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도료인 옻칠[ref]옻은 옻산(우루시올 Urushiol), 고무질(다당류), 함질소물(당단백), 수분 등으로 구성되는데, 고무질 속의 산화효소(락카아제 Lacase)가 산화하면서 옻산의 결합을 유도하여 도막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때 생성된 도막은 산酸에도 부식되지 않으며 내염성, 내열성, 방수, 방부, 방충, 절연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도료이다.[/ref] 등 과학적 효과가 현대에도 인정된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효과 뿐만 아니라, 좀 더 세세히 들여다본다면 전통공예품이 갖는 쓰임과 제작기술,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공예’의 활용 사례
‘전통공예’의 ‘옛사람들의 지혜’를 활용을 위해 현대의 물건에 장인들의 기술을 빌려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손대현(시도무형문화재 제 1호 칠장)장인은 BMW와의 협업을 통해 플래그십 모델 ‘7시리즈’의 나전과 옻칠을 활용한 실내장식을 만들어 BMW 세계 아트콜렉션으로 등록하였다.

2007년 진행되었던 ‘천년전주온’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이너와 장인들의 협업을 통해 가구,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였다. 장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한 사방탁자, 콘솔, 반상기, 합 등 전통 기술을 활용한 일상용품이 제작, 판매되었다.

경험 경제

가치 경쟁 시대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에 의미를 두는가? 그 의미있는 것들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는가? 기업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어떤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가? 지금 우리는 물 한 병을 마시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그것도 500원에서 10000원까지. 무엇이 이런 차이를 주는가? 최근 기업의 경쟁 패턴은 가격, 품질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우량 기업들은 기업 경영의 필수 조건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적인 마케팅 분야의 대가 필립 코틀러 박사는 그의 저서 마켓 3.0에서 시장 주도를 위한 핵심 컨셉을 정의하였다. 산업 혁명 이후 마켓 1.0 시대에는 사람들의 수요보다 물질의 공급이 부족하였던 시대로 제품의 생산성, 효율 그리고 품질이 중요하였던 규모의 경제였다. 마켓 2.0 시대에는 물질의 풍요가 시작된 시점으로 제품의 생산보다 고객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을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타켓 시장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맞춘 다품종 소량 생산의 경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마켓 3.0시대에는 소셜네트워크의 확산 등 고객들의 참여가 더 활발해 졌고 물질의 양과 질을 넘어 사람들의 감성과 영혼에 까지 설득할 수 있는 ‘가치’가 핵심 컨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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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가치

500배의 경제적 가치
전 세계적으로 커피 산업은 불황을 모르고 계속 성장하고 있고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커피 농장에서 원두를 수확하고 카페에서 우리가 커피 한잔을 마시기 까지 수 많은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경제적 가치는 향상된다. 커피 원두를 볶아 원자재(commodity) 상태로 팔면 한 컵당 평균 1~2센트를 받는다. 이를 분쇄하고 포장하여 상품(good)으로 팔면 한 컵당 5~25센트를 받을 수 있으며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서비스(service)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한 컵당 75~100센트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2~5달러를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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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1센트짜리 가치를 5불로 만들었는가? 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단순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만의 경험을 마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 가치를 사는데 500배의 돈을 지불하고 있다.

통합된 솔루션의 가치
현재 세계의 거대 기업들 중 기업 가치 1등은 단연 애플이다. 인터브랜드, 브랜드디렉토리 등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 평가 회사에서 한 목소리로 애플을 세계 1등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애플의 시가 총액은 5,000억 달러로 2,000억 달러의 삼성전자보다 월등이 높은 수치이다. 두 기업을 견인하고 있는 대표 제품인 스마트폰만 비교하더라도 기술적 스펙은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애플의 아이폰보다 우수하다라고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두 기업 가치의 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거대 기업들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세계 전자제품 제조 회사들의 롤모델이었던 소니는 수익보다 손실이 더 큰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고 아이비엠은 컴퓨터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서비스업으로 기업의 비즈니스를 변경한지 오래다. 모토로라는 기존 사업이 더 이상의 경쟁력이 없어 분할 매각하여 휴대폰 사업부가 구글에 인수된 상태이며 한 때 세계 60% 휴대폰 시장을 잠식하였던 노키아조차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여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리는 등 인수된 회사나 인수한 회사나 기업의 비즈니스를 다각화 하여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사업 변화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플랫폼/서비스/유통에 이르기까지 통합되고 일관된 경험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세계 1등 기업이 된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성/일관성/새로움/차별화라는 경험의 총체로 기업의 진정성을 고객에게 느끼게 해주었던 애플의 비즈니스 전략을 타 경쟁기업들이 모방하여 생존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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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경제
농업경제 시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빵을 굽는데 필요한 밀이나 가족이 입을 옷을 짜기 위한 양모 등 원재료를 주로 이용하여 생활하였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들에서 공장으로 이동했으며, 결국 공장에서는 철강, 기계 외에도 옷과 빵까지 생산하였고 사람들은 이런 상품을 구매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임금인상과 근로시간이 단축되자 사람들은 늘어난 여가생활에 직접 빵을 굽고 옷을 만드는 대신 레스토랑에 가서 서비스 받는 음식을 먹었으며 백화점에서 패션에 대한 서비스를 받으며 옷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는 차별화를 위해 많은 기업이 서비스 경제를 벗어나 경험 경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피자헛은 단순한 식사 서비스만을 제공하지는 않고 자녀를 위해 촛불을 켠 케이크와 풍선, 광대 등 오락거리를 모두 갖춘 생일파티를 열어 주기도 하며 월트디즈니는 디즈니파크를 통해 이미 경험경제의 전문가로 인정 받고 있다. 디즈니파크의 직원은 배우이며 방문객은 관객, 테마공원은 무대로 자리하여 고객들에게 무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앨빈토플러(Alvin Toffler)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경험 경제(The experience economy) 개념은 조셉 파인(Joseph Pine),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re), 롤프 옌센(Rolf Jensen)에 의해 이론으로 정립되었고 이는 고객이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담긴 스토리와 경험을 사는 경제 활동으로 정의된다. 경제 구조는 거래 대상의 고객 맞춤화(customization)를 통해 일상적인 재화로써 역할을 극복하여 새로운 재화가 탄생하며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가 진보하여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발전한다. 반면에 거래 대상이 경제 구조 심화에 따라 일상적인 재화(commoditization)로 느껴지면 경쟁력은 하락된다. 서비스 경제는 ‘경험재’를 제공하는 경험 경제 시대로 진화 중인데 경험재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서비스나 재화를 보조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인가’를 제공할 때 탄생한다. 즉 하드웨어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제품간 성능 차이가 좁혀지고 스펙 경쟁 의미가 쇠퇴되면 고객에게 제공되는 경험의 가치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경험경제는 상품에 녹아 있는 무형의 가치인 스토리나 주관적 경험, 감성, 창의적 아이디어 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다. 좋은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고 사람들은 마음속에 것들을 나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관계는 향상된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런 사회 현상에 주목하고 있고, 그들은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가치 경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경험 경제에 살고 있다.

공간의 재생은 삶의 재생

2013년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대전에서 올해의 대상은 기존의 폐공장을 복합 문화시설로 리노베이션 한 학생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위치는 폐공장들이 모여있는 서울의 성수동지역으로 아직 활발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폐공장들에 관심을 보이며 패션쇼 등의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 지역이다. 근처에 매끈하게 신축된 서울 숲 공원 주변지역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개발이 안 된 곳으로 미래에 서울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흥미롭게 리노베이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잠재적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올해 공간디자인 전공학생 졸업작품 주제 중 하나도 도시주거지역의 재생프로젝트이다. 과거 그리고 사실 지금도 도시 재개발사업 하면 일단 철거를 깨끗하게(?)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마인드로 과거와 상관없는 새로운 계획을 하는 과정을 거쳐 진행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존 할 가치가 있는 도시가 갖고 있었던 역사적 맥락들을 놓치고 속도만 내면서 개발에 박차를 가했었다. 그래서 이번 졸업작품의 도시 재생프로젝트의 관점을 보존 가능한 요소들은 그대로 두고 재해석 해야 하는 부분들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잡고 시작하였다. 거시적으로는 이 지역의 길의 기원부터 분석하고 그 골목길을 살리면서 지역주민의 구성원과 생활패턴 등을 고려하여 이를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디자인을 진행하였다. 사실 현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비용면에서나 집중도면에서 신축을 선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도시도 하나의 유기체로서 건강하게 재생이 잘 이루어졌을 때 결국 궁극적으로 그곳에 살고있는 인간들의 삶도 건강하고 만족하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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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하이라인 파크
뉴욕시에 있는 하이라인 파크는 어쩌면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어떤 길인지를 겸허하게 암시하는 한 건축물의 사례로 볼 수가 있다.
하이라인(Highline)은 뉴욕시 미트패킹에서 맨해튼 허드슨강 철도 화물 하적지에 이르는 1.5마일 길이의 공원이다. 원래 하이라인은 1930년대 완공된 20km에 달하는 고가철도였다. 뉴욕 주위를 순환하며 화물수송을 담당하던 하이라인은 자동차의 출현으로 완공 20년도 안되어 점차 사용가치를 잃어갔다.
그리고 급기야 1980년 이후 완전히 방치되어 녹물로 삭아 들어가는 흉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던 90년대의 뉴욕시는 당시 시장 쥴리아니의 지휘아래 이 폐철로를 완전히 철거하고 당시의 트렌드를 추종하는 포스트 모던적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방치된 그곳에서 야생의 풀이 돋아 오르고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미하지만 근대와 현대의 뉴욕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풍경이 형성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철골과 아스팔트 그리고 콘크리트덩어리로 압사할 것 같은 이 지역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없는 야생의 꽃과 풀이 무성히 자라는 식생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철거계획에 저항한 일단의 시민들은 바로 여기서 숨통이 열린 감동을 받으며 어떤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들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철거계획을 무산시킨 다음 이러한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말해줄 수 있는 건축물을 공모하였다. 여기에 조경가와 건축가인 Diller Scofido & Renfro는 어그리텍처(Agritecture)란 새로운 개념의 건축으로 응답해왔다.

이 공원의 조형적 특징은 기존 철로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길고 좁은 공원의 형태와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의 장소특성 때문에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눈높이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이 특성을 최대한 살린 디자인과 그 공간을 다시 해석하고 만들어 내기위해 공간과 시설물의 통합을 모던하고 세련되게 표현해서 뉴욕을 더 뉴욕다운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하이라인을 다시 건축한 기술은 그 것을 그저 야생으로 방치하지 않고 다시 보듬으며 이러한 사건이 갖는 의미를 가다듬어 내었다. 이는 바로 어그리텍처란 건축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철로 이용 중단 후 그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그 고유의 미적 가치가 높다는 판단으로 씨앗 수확 과정을 거쳐 다시 심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하이라인은 무를 향해 삭아 들어가는 철도의 산화과정을 풍경이 창조되는 기다림의 과정으로 반전시킨다. 그리하여 풍경을 그곳에 사는 인간들에게 안겨주고 동시에 그들을 그곳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거주의 의미를 풍경에 귀환시킨다.
하이라인은 풍경에 그 풍경을 파괴했던 근대의 거대기계를 땅의 한층 더 두터워진 나이테로 새겨 넣으며 풍경의 고유한 요소들이 그 요소로서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이곳에서 뉴욕의 시민들은 그들의 도시를 포기하고 전원으로 귀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수송체계의 부속된 철도에서 풍경 속의 길로서 존재를 회복한 그 길을 거닐며 명상하고 담소하고 이제 문턱을 넘어 집으로 들어 온 사람처럼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향상실의 시대를 지탱하는 기반시설이었던 하이라인은 이제 거주를 선사하는 고향을 향한 길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이라인은 미래를 향한 길을 어슴푸레 열어주는데 그 미래는 근대나 탈근대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근대나 탈근대를 부수고 원시의 숲으로 퇴행할 필요가 없고 또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제작된 변신로봇 같은 건물들이 우글대는 도시도 아니다. 하이라인은 근대의 공간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건축을 통해 어떻게 자연, 폐기되는 근대문명, 시민공동체, 그리고 첨단기술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미래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이라인 파크 계획의 주요 시사점은 수명이 다한 공간의 개발은 새로운 인프라 방식에만 있지는 않다. 그 공간이 쓸모없다고 해서 그 공간 속에서 일하며 같이 살아 왔던 도시민들, 노동자들의 삶까지 지워지고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유지되듯 산업사회의 유산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보여줄 수있는 새로운 형식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 공원계획이 그 점을 잘 보여 주는 산업도시의 역사성을 담은 새로운 경관을 창출해냈다고 볼 수 있다.

트리즈(Triz)와 디자인

트리즈는 문제 해결을 위해 체계적,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론이다. 처음 트리즈를 접한 것은 1999년 경으로, 당시 일하던 회사에서 트리즈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모전자의 디자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디자이너가 휴대용 카세트에서 상용화 되고 있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VCR에 적용하고자 제안하니 VCR쪽 엔지니어가 그런 방식은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들었던 때라, 한 회사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노하우가 공유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교육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어떤 기술적 문제를 갖고 있을 때 그 해결 방법을 내가 일하는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 끌어 올 수 있도록 체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위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트리즈는 이후 삼성전자, 포스코 등 여러 기업에서 활성화 되어, 사내에 트리즈 대학을 개설하고 전직원에게 40-120시간의 교육을 실시 하는 등 많은 기업들이 트리즈전문가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리즈는 인텔의 칩설계, 삼성전자의 광픽업 개발 등 우리 일생생활에 이용되는 많은 제품에 응용되었으며, 삼성전자가 미국내 특허 2위를 달성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평가받고있다. 트리즈는 기술개발을 위한 방법론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경영이나 서비스, 그 외 분야의 문제해결을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디자인분야로도 활용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트리즈 방법론을 개발한 겐리히 알츠슐러(Genrich Altshuller)는 구소련의 해군에서 특허 심사 업무를 하며 20만건의 특허를 분석하여, 특허 중 약 3% 정도만이 창의성이 뛰어난 발명이었고 이들 발명에는 어떤 공통의 법칙과 패턴이 있음을 발견, 이를 정리하였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전세계 200만건 이상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특허들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분야의 해결 방법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체 특허의 96%는 그가 정리한 40가지의 발명원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는 발명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문제 해결과 그 창의성의 수준, 문제 해결의 유형 및 시스템 진화 패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의 방법론은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이란 뜻의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h Zadach’라 이름 붙여졌고 약어로 TRIZ라 불리게 되었다. 영어로는 TIPS(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라고도 불린다. 알츠슐러는 특허와 기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40가지의 발명원리의 정리, 모순매트릭스, 76가지 표준 해결책, 창조적 문제해결알고리즘 (ARIZ) 등을 개발 하였으며 이런 개념들이 서구로 전파되어 현재의 트리즈 방법론으로 보급되었다. 여기서는 난이도가 높은 기술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 발상에 쉽게 적용 할 수 있는 40가지의 발명 원리 중 많이 쓰여지는 10개의 원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40가지 발명원리

트리즈에서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예,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게가 늘어난다 등),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40가지 발명 원리들을 창의성이 뛰어난 특허의 분석을 통해 도출하였다. 40가지 중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이 쓰이는 순서대로 10가지만 소개하면,

1) 원리 35번 모수변화 (속성변화, Parameterchange): 물질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시스템의 물리적 상태 (기체, 액체, 고체), 농도나 유연성의 정도, 온도나 부피를 바꾼다. 예) 가습기, 에어쿠션을 이용한 유아용 체중계, 욕창매트, 일부분의 유연성을 바꾼 샤워기 핸들-호스 연결부. 납땜, 증기기관차

2) 원리 10번 사전준비조치 (Prior action): 미리 조치한다. 대상물의 변화 요구가 있기 전에 미리 그것을 시행한다. 예) 커피믹스, 라면 스프, 과자, 우표 등의 절취선. 접이선이 있는 종이 접기, 도구, 레스토랑 테이블 세팅, 간편 요리 키트

3) 원리 1번 분할 (Segmentation): 쪼개서 사용한다. 물체를 독립적인 부분으로 나눈다. 물체를 분해가 쉽도록 디자인한다. 물체의 분해 정도를 증가시킨다. 예) 조각 케익, 가루형태 약, 커터칼날, 1인분 포장

4) 원리 28번 기계식 시스템의 대체 (Replace a mechanical system): 기계적 시스템을 광학, 음향 시스템 등 다른 것으로 바꾼다. 기계적인 것을 시각, 청각, 후각 등으로 바꾼다. 전기적, 자기적 장을 이용한다. 예) 수압을 이용한 절단기, 음악 분수

5) 원리 2번 분리 (추출, Extraction): 필요한 것만 뽑아 쓴다. 물체로부터 필요한 것 또는 필요 없는 없는 것만을 추출한다. 대상물에서 방해되는 것을 제거한다. 예) 에어컨실외기, 휴대폰 블루투스 핸즈프리 장치, 녹즙기, 회로기판에서 귀금속의 채취

6) 원리 6번 다용도(Multi-functionality): 대상물이나 시스템의 부분이 여러 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 부품과 작업횟수가 줄고 유용한 특성과 기능은 유지된다. 예) 컵홀더를 포함한 우산, 맥가이버칼, 복합사무기기

7) 원리 19번 주기적 조처 (Periodic action): 연속적으로 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한다. 이미 주기적이면 주기를 바꾼다. 예) 특정시간에만 적용되는 버스 전용차로, 차선 변경제, 싸이렌

8) 원리 18 기계적 진동 (Mechanical vibration): 진동을 이용한다. 물체가 진동운동을 하게한다. 고유 진동수나 공진을 이용한다. 예)초음파 세척기, 전동칫솔, 휴대폰 진동, 콘크리트 드릴

9) 원리 32 색상 변화 (Color change): 색깔 등 광학적 성질을 변화시킨다. 물체 또는 환경의 색, 투명도를 바꾼다. 관측을 용이하게 형광제, 색첨가제를 이용한다. 예) 뜨거운 커피를 넣으면 색이 변하는 컵, 변색렌즈, 위장복, 오토 캔디 특수도장 (엔진온도에 따른 색상변화)

10) 원리 13 반전 (Inversion): 반대로 해본다. 문제해결에 요구되는 작용을 거꾸로 해본다. 고정된 것은 움직이게 움직이는 것은 고정되게 한다. 물체를 뒤집거나 돌린다. 예) 러닝머신, 도깨비방망이 (믹서의 변형)

한국 트리즈협회에서는 트리즈 전문가양성을 위해 5단계의 자격증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1단계 자격은 40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통해서도 학습이 가능하므로 학생들이 도전해 볼만 하다. 협회는 3단계이상의 자격증을 획득하면 트리즈 전문가로서 독자적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하고 있다. 산업디자인은 과학적인 방법론과 예술적인 인사이트가 함께 요구되는 분야이다. 우리 학생들이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아이디어 발상 및 문제 해결 방법을 익혀 제품이나 환경, 서비스의 장을 새롭게 혁신하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통찰과 출산

19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디자인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그 과정을 보다 쉽게 안내할 교과서가 없다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말씀과 지도는 실천적으로 방향을 지시하여 주었지만 가속도를 내기에는 체계화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출간된 디자인 서적은 극소수였고, 1980년 출간된 정시화 선생의 ‘현대디자인연구’가 배경을 얼마간 설명해주었지만 디자이너가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디자인계에 입문한 지 1~2년에 불과한 꼬맹이로 실제 디자인프로젝트라는 것은 구경도 못한 나에게 바로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여서 전체적인 체계에 대한 목마름은 컸다. 결핍은 그것을 채우려는 욕구를 동반하기 마련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후 졸업전을 그나마 쓸만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런 결핍의 순작용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런 목마름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혼란과 갈망을 그나마 적셔주던 것은 해외 서적의 복사본이었다. 여행도 쉽지 않고 외국인을 보기도 어려웠던 시기라 모든 것을 흑백으로 만들어버리는 복사본은 우리를 바다 건너와 연결시켜 주던 거의 유일한 끈이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들어와 우리 손에 들어온 책 중에는 노랗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책이 하나 있었다. 고맙게도 그 책의 제목은 ‘Design Methods’였다. 와우!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방법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들어있다니! 당시에는 메쏘드가 아닌 메쏘즈가 그런 의미로 보였다. 과연 그 책에는 디자인과정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방법이 과정과 사용 의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방법별로 실행하는 순서까지 나와 있었으니, 그때 내 마음은 이랬다. ‘그래. 이제 이것만 따라하면 돼!’

물론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몇 가지 방법을 따라해 보았으나 당시에 내가 닥친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예컨대 스트리트 퍼니처를 디자인하는 과제로 가로변 의자를 디자인하고자 할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그중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책은 종합적인 형태의 이야기보다 보다 개념적인, 분석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후에 그 책의 저자였던 존스(J. C. Jones)가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디자인방법론운동이나 영국의 디자인 전통이 엔지니어링과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한국의 디자인 교육과 실천은 전적으로 미술 기반이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ref]미술은 여전히 중요한 디자인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도 통합된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지 미술이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각기 역할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 통합되어가는 보다 풍성한 디자인의 개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일까?[/ref]

그렇게 학창 시절 ‘방법의 시기’는 저물었고, 이어 입사한 회사의 시스템은 놀랍게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운영되었다. 회사의 디자인프로세스는 실무적 의사결정 단계 중심이었고 각 단계의 이름은 단계마다 보여주어야 하는 표현방식의 이름을 따랐다. 사전에 뭔가 조사해야 한다는 욕구와 아쉬움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잘 몰랐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였으며, 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핑계로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에게 차츰 중요해지기 시작했던 것은 과거 제도대 위에서 T자등을 사용한 도면 그리기를 대체할 컴퓨터 관련 표현 기술이었다. 1990년대 포토샵을 통한 렌더링이 갖는 가시적 효과와 이미 그린 것을 재활용할 수 있는 효율로 차츰 수작업은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각 디자인 영역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당시 디자이너의 ‘방법’이었다. 몇몇 인간공학 특히 인체공학에 기반한 방법들은 있었지만 몇 번 시도 해보면 금방 더 이상 시도해볼 필요 없이 적용 범위가 드러나 버려, 인간의 다양성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ref]사용범위, 각도 등을 확인하는 인간공학적 절차를 거친 엄밀한 연구 방법은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디자이너들이 직접 사용해서 확인하는 방법에 비해, 드는 노력 대비 효과는 그저 그랬다.[/ref]
유사한 프로젝트를 경험이 있으면 다시 해 볼 필요가 별로 없었고, 디자이너들은 상황을 새로이 점검하기 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진행하였다. 새로운 상황은 2000년을 전후해서 컴퓨터가 본격적인 일상의 일부가 되면서 일어난다. 모든 사람의 생활 전체가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으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모든 일과 놀이를 인터넷을 매개로 삼아 시작하였다. 컴퓨터는 저장의 도구, 계산의 도구, 재현의 도구를 넘어서 ‘매우 빠른 정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소통하는 정보의 형식 또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확장되었으며 그래픽디자이너들은 그 수요에 대처할 수 있도록 GUI라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 현상은 Man-Machine Interface를 넘어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으로 전환되었으며, 인터랙션은 모든 디자이너들의 화두가 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GUI를 생각할 때 산업디자이너들은 사물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공간디자이너들은 환경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상상하고 구현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원로인 에꾸안 겐지의 도구와의 대화(道具考)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일본식 사고방식이나 정령이 깃든 사물이라는 애니미즘처럼 소박한 생각을 넘어서서, 보다 실제적인 상호작용이 모색되었다.[ref]그럴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가 모든 곳에 편재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대한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물건들에 컴퓨터가 내장된다는 것은 아마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컴퓨터가 마치 레진이나 페인트 재료비 수준의 비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값싼 존재가 되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ref]
사물의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포괄한 무형적인 사용의 문제가 디자인의 중심이 되면서, 단번에 포착하기 어려운 사용의 세계, 더 나아가서 서비스의 세계[ref]사용 현장을 대상으로 하는 사용과 달리 서비스는 기반 설비와 배후 구조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ref]가 그동안 수 십 년간 실무에서 외면되었던 디자인방법의 세계를 흔들어 깨웠다.

이름은 디자인리서치로 재포장하였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디자인메쏘드였다. 존스가 이야기했던 확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의 개념은 더블다이아몬드[ref]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영국 디자인카운슬의 모델로 확산-수렴 쌍이 두 번 연결되어서 더블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ref]로 확장되었고 다른 점이라면 1970년 디자인메쏘드가 35개의 방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최근의 방법들은 가뿐히 100개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출판된 책의 숫자로만 보면 2012년은 디자인방법의 세계가 깨어난 정도가 아니라 활짝 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ref]Universal Methods of Design: 100 Ways to Research Complex Problems, Develop Innovative Ideas, and Design Effective Solutions (B. Hanington, 2012), 101 Design Methods (V. Kumar, 2012), Design Methods 1 : 200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 Design Methods 1 : 200 More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ref] 더 나아가 수없는 워크숍의 열풍과 디자이너들이 소비하는 포스트잇의 숫자에 대한 우스갯소리들을 보면 그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바야흐로 방법 과잉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너무 먹을 것이 많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속에서 마구 먹어대던 치히로의 부모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언제부턴가 위장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고 뷔페가 비정상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 나의 식탐은 차츰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또 배불리 먹을지 몰라서, 차려진 잔치 상은 마다하지 않고 입안으로 쓸어 넣는 우리의 사회적 결핍이 디자인 영역에서도 반복되는 듯 해 씁쓸하다.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을 익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일단 배우고 보자, 일단 행하고 보자는 심리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배탈이 나지 않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방법은 왜 필요한 것일까, 나는 디자인 과정을 떠올리면 크게 다른 두 가지 행위가 교차되는 모습을 연상한다. 전반부는 ‘이해’이고 후반부는 ‘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낯선 맥락 속의 타인을 위해 +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맥락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뭔가를 만질 수 있도록[ref]실제 손으로는 만질 수 없어도 우리가 느끼고 조작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ref]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전적으로 다르다. 후자 ‘창출’의 방법은 포괄적 의미의 모형을 통해서 최종 결과가 가져야 할 특징이 적합한지 모의로 시험하여 차츰 개선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오랜 기간 이 방법을 상당 부분 미술적 능력에 기반 해서 발전시켜왔으며 표현 방법의 경제성에 근거를 둔 단계별 이름을 사용해서 과정을 설명한다.[ref]물론 최근에 확장된 디자인의 무형성,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모형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의 시험을 하기 위한 모형화, 이해를 위한 모형화는 대상의 확장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방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자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ref]반면 전자 ‘이해’의 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며 새로이 등장한 방법들은 대부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일부는 1960년대 디자인방법론자들이 제기한 개념적인 디자인과정과 닮았지만[ref]가장 다른 점은 이해해야 할 대상인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거론하지 않고 그 속의 ‘문제’와 ‘해결’만 부각시키는 지나친 개념화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면 전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제라는 용어가 갖는 제한적 의미로 볼 때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 문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옳을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사용자가 문제 덩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ref] 디자인의 문제가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용에 대한 것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맥락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면서, 인류학적, 교육학적, 철학적 특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분석적이지만 총체적이고 동시에 깨달음처럼 그 과정의 종착지는 ‘사람과 사용, 맥락’에 대한 통찰이다.

마치 누군가를 기쁘게 할 선물을 고르려,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쾌재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려면 관심 가득한 마음으로 (호기심),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면접) 주변을 돌아보고(관찰) 총체적인 상황을 통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살피거나 어쩌면 ‘선물에 대한 모든 것’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문헌) 만약 그들이 어떤 집단을 이루고 있다면 의견을 모으는 과정(설문, 집단 면접)도 필요하다. 그런 여러 가지 사항들은 하나로 모이고(범주화) 정리되면서 결국 통찰(분석, 해석과 방향제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다른 많은 방법이 있어도 이 기본 줄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행위는 결국 ‘이해’에 도달하는 것, 결국 요구에 대한 통찰이 목적지다. 모든 방법 시행의 결과는 통찰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러한 ‘이해’는 아마도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일 수 있다. 매일 매일 여러 가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도 없다. 때로 ‘그래 이제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반전은 거듭 된다. 하지만 지금 묘사처럼 디자인의 전반전 ‘이해’ 과정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지(知)의 획득 과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자. 우리는 디자인과정을 통해 현상에 대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즉 피교육자라고나 할까. 아니면 셜록 홈스처럼 탐정이 되거나 태평양의 한 가운데에서 향유고래를 뒤쫓는 생태학자처럼 대상을 알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은 누구이며 향유고래가 즐기는 먹이가 무엇인지 통찰한다. 매우 자연스럽게. 이것이 방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이를 통해 디자인의 미래가 새롭게 열릴 그 날이 기대된다. 마지막 한 마디. 디자이너들은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통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도구 삼아 새로운 인공물을 ‘출산’한다.[ref]앞으로는 창출 대신 출산을 쓸까? 기특하게도 수년 전 우리 산업디자인 4학년 학생들이 졸업연구를 진행하던 방의 이름은 ‘분만실’이었다.[/ref]

2013년의 雜想

亂世
2013년에 접어들면서, 그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던 난세(亂世)의 징조들이 하나 둘씩 그 본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가장 심각한 것들 중 하나가 독선적으로 진행된 국민교육, 대중교육의 성공적 완성이다. 자본의 이윤만을 경주하며 출세 경쟁에 전념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 간에 서구 계몽주의자들의 교육이념과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고 내세우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민교육과 대중교육을 펼쳐왔다. 거기서 국민들은 오로지 동일한 것을 놓고 동일한 조건에서 생존을 건 경쟁에 몰입하도록 교육되었다. 그들은 이제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에서 보여준 공장으로 향하는 지하 노동자들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같은 곳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줄 맞춰 가며 서로가 앞줄에 서고자 서로를 팔꿈치로 밀어 붙이고 있다. 그들은 줄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루저 loser)가 된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죽기살기로 줄에 매달리고, 모두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능한 앞줄에 서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한 삶은 결국 ‘지옥’과 같은 삶일 수 밖에 없고, 앞줄에서면 설수록 ‘지옥’과 같은 삶에 먼저 도달하게 되는데도 말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제 지배권력을 위해 국민들이 사리판단력을 잃고, 경쟁 강박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서로를 팔꿈치로 밀며 생존투쟁만을 벌이도록 하는 과업을 완수해냈다.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 중, 우수한(?) 인재들은 선봉에 서서 모든 매체를 장악하고 지배권력의 안위를 위해 국민 대중을 교육하고 있다. 거기서 1930년대 라디오가 파시즘을 신봉하는 국민을 교육해내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보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TV가 소비대중을 교육하고 이끌어온 것보다,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은 몇 갑절 더 강력한 교육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초·중·고등학교에 인터넷 기반의 전자교과서 도입 계획이 추진된다는 말이 왕왕 들려온다.

학생들은 이미 인터넷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컴퓨터 부품처럼 ‘정보’의 파편들에 대응하는 정해진 패턴에 맞춰 반응하도록 교육되었다. 그 속에서, 자신이 뭘 공부하고 싶고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를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서열화된 대학 중에서 가능한 앞 줄의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집착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대학 서열경쟁에 내몰릴 뿐이다. 대학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명품교육”과 “취업”을 내세우며 광고를 하고 (소비)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대학 본연의 전문성과 전공교육은 상실되었다. 이제 “고객”들은 보다 앞 줄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 같은 졸업장과 자격증을 구매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렇게 해서 직장에 들어간 “고객”들에게는 ‘잘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되고, 가능한 보다 ‘높은 연봉’의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돈만 잘 받을 수 있으면 자신이 기계부품 취급을 받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며 열심히 일한다.

이미 한국인들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돈이 이제 삶의 목적이 되어, 돈벌이를 잘하는데 목숨을 바쳐가며 매달리고 정진한다. 급기야 “부자 되세요”라는 말의 광고가 나오고, 그 말이 유행하고 교회와 절에서의 축도가 되고, 그 말을 제목으로하는 각종 책들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허나 모두가 부자가 되는 그런 세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는 부자가 되는게 삶의 목표가 되었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생존을 건 강박은 한국인들을 낙오에 대한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하고, 결국 그 공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강한 지배권력과 영웅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이탈리아인들이 무솔리니(B. A. A. Mussolini)에 열광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어 권 사람들이 히틀러(A. Hitler)를 보고 열광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국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배할 강한 국가권력에 열광할 뿐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이 없는 한국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몇 년 전에 죽은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까지도 한국 국민들의 영웅이 되어 회자되고 있다.

선한 디자이너와 악한 디자이너
오늘날 나타나는 난세의 모습은 한국의 디자인, 디자이너와도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온갖 현란한 양식들이 유행하고 추종되어 극도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내게는 무엇보다도 그 간에 디자인의 혼란스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며 바른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동료로 여겼던 몇몇 이들이 작년의 대규모 전시에 공개한 것들을 접하고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그보다 더 한 것을 만들어 공공연하게 설치해놨다. 또한 디자인비판 담론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노력했던 이가 바라던 직장에 들어가고 나자, 이제는 그가 추악한 경쟁의 선봉에서 활약(?)한다는 소식만이 전해 들린다. 결국, 모두가 앞서 말한 난세 속의 한국 국민 그 자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한국에서 디자인이란 애초부터 “굴뚝 없는 공장”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내세웠듯이, 기업의 이윤을 높이고 돈을 잘 벌게 하는 도구로 여겼다. 그리고 “0.6초의 디자인”이 말해주듯이, 소비자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현혹시켜 소비를 실현해 내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였다. 그래서 디자인은 이제 모든 한국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여, 돈 벌고 부자 되게 해주는 부적과도 같은 의미로 자리잡고, 모든 말에 접미사로 붙여져 사용되고 있다. 2009년 서울시의 “디자인올림픽”에서 “우리 모두 디자이너”라고 천명하면서부터 돈벌이에 연관된 활동은 이제 모두 “디자인”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 함은 디자인이라는 전문분야와 그 전문활동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디자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서로 앞다퉈 모든 것이 “디자인”이고 모두가 “디자이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는 “융합”이 부각되는 오늘날의 시대 조류에 맞춰 엔지니어링 디자인(engineering design, 工學設計)을 새로이(?) 추구해야 할 “융합형” 디자인으로서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오가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엔지니어링 디자인을 관심 갖고 해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돈 벌고 부자 되게 해준다는 “디자인”이란 말의 마법(?)의 힘이 지속되려면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야만 하기에,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자인”이 새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 기존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첨단”으로서 유행을 선도해나간다. 그리고 최근 디자인에 관한 설명에서 페르소나(persona)란 말이 크게 유행하는 현상처럼, 새로운 “디자인”을 말할 때 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무엇인가가 있을 법한 분위기와 환상을 자아내기 위해, 광고 마케팅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외래어를 차용해서 사용한다. 처음에는 영어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요즘에는 힐데스하임(Hildesheim)과 카페베네(caffebene) 등과 같이 불어와 독일어에서부터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까지 확장되고 있다. 여기서 한국 국민들이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 말 뜻도 모르며 따라 하기에 열중하는 것처럼, 디자인 분야에서 벌어지는 현상들 역시 그러하다. 자칭 디자인 전문가와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시시각각 새로이 옷을 갈아입고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의 대세를 따라가고 뒤쳐지지 않고자 필사의 노력을 부단히 경주한다. 그런 와중에, 그 “디자인”의 실체를 알려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세상의 반은 신이 창조하고 그 나머지 반은 디자이너가 만든다는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퐁티(Gio Ponti)의 말처럼,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해 왔다. 특히, 선한 (건축) 디자이너는 천당을 만들고 악한 (건축) 디자이너는 지옥을 만든다는 18세기 풍자화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특징적으로 잘 그려냈다. 그것에 따르자면, 한국의 디자인이 결국 지금의 난세를 만드는데 매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디자이너가 비판의식을 갖고 올바른 사리판단을 통해 디자인 활동을 행한다면, 그것으로 난세를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그가 속한 사회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에 지배를 받지만, 인간의 비판의식은 그 사회적 한계를 일정부분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비판의식을 통한 디자인 활동의 결과물들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사회적 관계와 문화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다시금 사회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난세를 극복할 비판의식 함양이 중요한데,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를 헤쳐나간 제자백가(諸子百家) 현자(賢者)들의 가르침만큼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공작인(工作人)의 입장을 대변하는 묵가(墨家)의 – 애(愛)와 이(利)에 관한 상호 쌍무(雙務) 원칙에 입각한 – 겸애(兼愛)의 도(道)가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나, 거기서 노자가 말한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가르침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013년 겨울이 찾아오는 날
대안리 금산에서

2013년에 읽은 모습들

지구 : 시간당 10만7000km로 공전한다. 지난 5월 제일 깨끗하다는 하와이 상공에서 채집된 공기에 이산화탄소는 농도 400ppm(1ppm 은 1/100만), 1959년 처음 기록한 측정치 315ppm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다. 2011년 한국은 396ppm 을 기록했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합쳐져 우리나라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 기상이변은 이변이 아닌 정상이 될 것이고 유래 없는 추위와 더위가 매년 갱신되고 강풍과 홍수와 가뭄은 일상의 날씨로 반복될 것이다.

세계 : 2012년 11월 15일 기준세계인구는 전년도보다 7810만이 증가한 70억 5210만 그중 중국이 13억, 인도가 12억, 미국이 3억. 이 3억의 미국인에게 3억 1000만정의 총기가 들려있고 49% 가정이 한 자루 이상의 총을 보유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쏘고 맞는 가운데 연간 11,101명이 총에 살해되고 19,766명이 총으로 자살한 이 나라는 12년째 테러와 전쟁 중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 Democratic 라 정의한다.

우리나라 1 : 한국 불평등지수는 OECD 9위로 상위 10%의 평균 벌이가 하위 10%의 10.5배가 된다. 1등 신랑감이 공무원인 가운데 1등 신부감은 교사, 최초 도입 후 시험관 아기로 태어나 살고 죽고한 사람은 약 5만명. 그런 가운데 2012년 신생아 50 중 1명이 47,000명의 베트남 새댁에게서 얻어졌다. 핀란드에 이어 교육강국 2위 한국에 100만 휴학생이 있다. 인구 이동률은 2002년 20%에서 2012년 15% 부동산불황과 고령화는 오가기 힘든 사회를 만들었다. 항공여행객 7000만시대. 2012년 6930만명이 비행기를 탔고 5000만이 해외로 나갔다. 주 5일 근무와 1인 가족은 이주율은 낮추고 이동률은 높였다.

우리나라 2 : 2005년에서 2019년 기업소득이 19% 증가한 가운데 가계소득은 1.6% 증가. 삼성이 201조 매출에 29억의 영업이익을, 현대기아는 125조에 13조의 실적을 올렸다. 2012년 국제물가에서 대략 밀은 kg에 2000원, 옥수수는 1500원, 대두는 1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33%오르고 우리나라 쌀생산은 2011년 422만톤에 비해 407만톤의 흉작을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의 밥공기는 1940년대 680ml에서 2013년 190ml, 1인당 쌀소비는 2003년 83.2kg를 소비한데 반해 2012년에는 69.8kg으로 줄었다. 1인당 80%가 폭탄주로 소비되는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량은 698,000 상자(1상자는 500ml, 8병 기준)로, 478,000상자가 소비되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여덟 중 1명이 술, 도박, 인터넷, 마약 중독 중 하나는 달고 사는데 그 수는 총 618만명.

우리나라 3 : 2012년 서울시 서초구 전세금은 3.3평방미터(1평) 당 1201만원. 원주시에 비교해 대략 네 배 정도다.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원주가 연봉의 4배, 서울은 8배. 그러나 전국 주택보급율은 103.3%, 서울은 97%인 반면 거주민의 실제 자가주택비중은 전국평균 54%, 서울 41%. 2012년말기준 가계부채는 959조, 그 중 주택대출이 450조. 대출금은 은행 빚으로 있거나 전세금으로 주인집에 잡혀있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한 비정부기구는 한국인의 해외은닉 재산을 800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남북한 각각 4860만, 2460만 인구. 2012년 12월 카카오톡 전세계 가입자는 7000만. 2012년 월평균 94만원을 지출하는 나홀로 가구 453만명으로 2013년 500만을 예상하며 이는 전체 인구의 25%. 이들에게는 원칙적으로 2세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4 : 2012년 건강보험은 사상최대 흑자 4조5763억을 내었다. 한해 만에 전 국민이 졸지에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2008년 불황의 짙은 그림자 속에 서민들은 아파도 참고 되도록 입원을 안 한다. 이 여파는 2013년 가시화하여 여러 공공의료원이 문 닫고 수많은 병원이 적자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2011년 흡연, 음주, 비만진료비로 6조 888억원이 지출되어 건강보험 전체의료비 46조 2379억원의 14.5%를 차지했다. 2012년 건보 진료비 47조 8392억 중 65세 이상이 16조 4502억을 써 34.4%를 차지했다. 2013년 노인성 치매인구가 576,000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2050년이면 271만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특정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치매(인지장애)는 암을 제치고 제 1의 질병으로 부상할 것이다. 2004년 173.4cm로 최고치에 도달한 한국남자의 키는 10년째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만, 다이어트, 수면부족 때문이다. 과로와 과식과 살 빼기의 영원한 되먹임 속에 당분간 한국 남자 몸과 마음은 루저를 벗어날 수 없다.

세계와 우리나라 :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근대 설계가들은 모두 인간의 자유를 중시했지만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노동이라는 노예 이론에 기초하고 있고 거기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개발지상주의가 만연한다(장정일). ‘의전격식 안 따지고 입 무거운 원칙주의자 박당선인과 닮은 꼴인 김용준 총리후보’ (조선일보 2012년 1월 26일 A3)가 알아서 총리직을 포기한 새 정부가 이후 1년이 되어간다. 세계정치의 본질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어 남의 눈을 대신하려는 타율성, 세계정치의 중심에 접근 안 하고 지역문화만을 수용할 뿐 주변에 대한 인식부족, 외래사상제도가 실패할 때 그 책임을 수용자가 아닌 외부에 전가해왔다는 우리나라, 서울대는 2014년부터 교양필수에서 영어를 제외키로 했다. 35년간 그렇게 쓰인 일본어 이후 67년만의 일이다.

채승진 2013년 11월

어떤 길도 쉬운 길이라는 것은 없다.

지금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그리고 달리는 기차가 그러하듯

우리는 이 혼란스러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적지를 알기 위해서도,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길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Y氏春秋

기원전 239년 여불위 (呂不韋, 기원전 292년 ~ 기원전 235년) 는 전국의 식객들을 모아 여씨춘추를 편찬하였다. 그는 완성된 여씨춘추를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성 성벽에 진열하며, 이 글에 한자라도 더하거나 깎는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2012년에 전공지가 개편되면서 새롭게 출간된 YID 2012에 이어 2013년 두번째 권호를 낸다. 새로운 필진과 컨트리뷰터, 인터뷰이들이 참여하고, 기자들은 자신들의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한다. 학교 과제에 치이고, 집안일에 치이고, 업무에 치이고, 마감에 쫓긴다.

2002년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가 생기고 2005년 첫 졸업전시를 시작했다. 2013년 또 새로운 졸업학기 학생들이 모여 자신이 4년간 갈고 닦은 기량으로 9회 졸업전시 맞이하여 매지캠퍼스와 신촌 캠퍼스에서 졸업작품을 전시 한다.

열심히 고민해서 쓴 글이든, 몇달 몇일간 밤을 새워 진행한 디자인 프로젝트이던 따지고 따지면, 어디에나 흠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보면 일자천금 (一字千金)을 내세우며, 여씨춘추를 낸 여불위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그 대단하다는 여씨춘추 또한 어디엔가 흠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일자천금의 고사는 여불위가 진의 거상이었고 진시황의 아비가 될만큼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이든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든 이러한 자신감을 가질정도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존재가치를 스스로가 인정하고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완벽함과 전혀 손볼데가 없는 글 혹은 디자인 프로젝트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고 고된 일이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주변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스스로가 더 잘 아는 법이다. 준비를 잘한 프로젝트에선 큰 소리를 내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수 있지만, 이 핑계 저 핑계에 준비가 허술한 결과물을 내보일 때에는 소리가 작아지고, 식은 땀이 난다.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 자신의 꽤나 괜찮은 결과물에 빛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자신에게 인색해 질 필요는 없지만 앞서 말했듯, 자신감은 그냥 생기는게 아니다. 어려운 일이다.

건방지려면, 실력부터 쌓아야한다.

2013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에, 조심스럽게 또 책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