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에 개최된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 김재환 감독의 『MB의 추억』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영화에서 보여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선거유세 당시의 모습들과 거기서 목놓아 외친 내용들 …. 지금 그것을 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코믹한 장면들에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그가 거짓말을 했고 국민을 기만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거나, 혹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48.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당시에 국민들 다수는 『MB의 추억』에서 보여준 것들을 믿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선거 유세에서 공약한 말들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했다. 영화 『MB의 추억』에 나오는 괴벨스(J. Goebels)의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며 희망하고 믿었던 미래가 도래하지 않자, 그가 자신들을 속였다고 말한다. 사실은 그가 공약했던 허황된 미래를 갈망했었기에 국민들 스스로가 그의 공약을 믿고자 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국민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어려움에서 탈피하고자 무지개 빛 미래만을 희망한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 과거의 역사는 지나갔으니 다 잊고 앞으로의 미래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2008년도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ref]“뒤만 돌아보고 있기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 세계는 창의와 변화의 시대입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낙오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공신화를 만들어 나갑시다.” (2008년 3월 1일 이명박3.1절 기념사 중에서)[/ref]가 잘 대변해주듯,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지배적 성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는 지나간 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 이기에, 과거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밝히는 길이기도 하다. 과거는 현재를 낳았고, 현재는 미래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를 비판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현재를 제대로 인식하고 바른 미래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길이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는 지나갔으니 다 잊어버리자는 것은 현재를 없애버리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과거의 망각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며, 현재의 부정으로 말미암아 미래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과거를 잊고 미래만을 꿈꾸며 지향한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신조어 “멘붕”이란 말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래지향적 현대 한국의 디자인과 멘붕
『특허청, 상표출원에도 ‘힐링(healing)’ 바람』[ref]연합뉴스 2012.8.22[/ref] 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2012년 대중매체에서 애용한 말로서 신조어 “멘붕[ref]멘탈 붕괴. 즉,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다는 말을 줄인 인터넷 신조어, 경향신문 2012. 1. 28[/ref]”과 함께 “힐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인문학 포럼의 대주제로서 『치유의 인문학(Humanities and Healing) 』이 선정되고, 그에 부합하는 42권의 추천도서가 소개될 정도이니 말이다[ref]연합뉴스 2012.9.19[/ref]. 더구나 대중매체에서 유행하는 “힐링”에는 “힐링(healing)” 뿐만 아니라, “힐링(hilling)”과 “힐링(heeling)”까지 다양하다[ref]“언덕(hill)이 돼 곪아있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healing)해주고픈 … ‘Hilling Camp’”, 파이낸셜뉴스 2012.10.24; “SBS talk show “Healing Camp” … People who watched “Heeling Camp” expressed hope”, english@hani.co.kr, Jul.25.2012; “아이들에겐 실컷 놀게 해주는 게 힐링(heeling, ‘몸과 마음의 치유’ 뜻)입니다.” (불교신문, 2012.7.24); “몸을 디자인(designing)하고 치료(heeling)하는 개념”(Newsis 2011.9.20); “힐링(Heeling), 뒷꿈치에만 있는 바퀴를 사용해 즐기는 레포츠”(조선일보 2002.3.27); “아주 사소한 고백이 곧 힐링(heeling)” (동아일보 2012.8.30)[/ref].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1990년대부터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병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이같은 웰빙을 보다 근본적으로 진전시키고 뛰어넘는 힐링(Heeling)이 각광받은 추세다”라는 보도까지 있었다[ref]뉴스웨이브 2012.8.13[/ref]. 대학생들 역시 이러한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서, 심지어 자신의 디자인의 배경과 목표를 설명함에 있어서 힐링을 중점사항으로 내세워 말하는 현상까지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와 같이 유행을 쫓으며 미래를 갈구하는 현상이 2012년 갑자기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디자인 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이미 오래 전부터 “멘붕”이란 말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왔다.
1990년대 초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디자인”이라는 말이 확산되면서, 디자인 분야에서는 -기존에 국가의 산업발전을 위해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기능주의”, “모더니즘”, “국제양식”을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세맨틱스 디자인”을 새로이 따라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대체할 “감성디자인”이 등장하게 되었고, G7 국책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미래를 위한 중점 분야로 부각되었다. 곧이어 1990년대 말에는 “미니멀리즘”과 “젠 스타일”이 유행했고,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한국의 “디자인방법론” 주창자들이 새롭게 내건 “사용자중심디자인”과 “UI 디자인”이 또 다른 미래의 중심 화두로등장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웰빙디자인”, “웰니스디자인”에서부터 “(문화)컨텐츠디자인”과 “공공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새로운 신조어와 유행어가 미래를 놓고 서로 각축전을 벌였다.
최근에는 “힐링”과 함께 “창의디자인”, “UX 디자인”, “그린디자인”, “서비스디자인” 등이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핵심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간에 새로운 방향의 “디자인”을 주창하며 자신을 전문가로 자처했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새로운 것을 주창하고 새로운 전문가로 거듭나기를 반복해 왔다. “디자인방법론”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던 이가 얼마 후 “감성디자인”이나 “사용자중심디자인” 또는 “UI 디자인”의 전문가를 거쳐 이제는 “UX 디자인”의 전문가가 되어 있거나, “감성디자인”의 전문가가 “유니버설디자인”이나 “공공디자인”의 전문가를 거쳐, 지금은 “그린디자인”이나 “서비스디자인”의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을 시작한 많은 이들은 시시각각 새롭게 주창되는 디자인의 새로운 길들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 믿고 따랐지만, 그 길들은 언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것에 밀려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고 잊혀져 갔다.
그리고 서구화된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듯이, 디자인 분야 또한 미래의 새로운 디자인을 말할 때에는 언제나 서구의 사례를 들어 그 중요성과 당위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서구 사례의 실체에 대한 논의나 그 사례를 낳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고찰은 찾아보기 힘들고, 단지 미래를 위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것이라는 주장에만 힘이 실린다. 반면, 서구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20세기 초 현대디자인의 발단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수 많은 결과물들의 출간함과 동시에 그와 관련된 기획전들을 개최하고 있다. 특히나 서구 현대디자인의 효시로 꼽히는, 그래서인지 앞서 말한 한국의 전문가들이 고릿적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며 무시하는,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 및 그 영향들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서구화된 21세기 한국사회의 모습 또한, 백년 전 서구의 미술가들이 이상사회 건설을 꿈꾸며 노력했던 결과들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건설의 꿈과 서구 현대디자인의 출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업사회로 진입했던 당시의 서구사회에서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전체주의 폭력으로 지배하는 시민(bourgeoisie)계급과 가축처럼 미천한 존재로 취급 받던 노동계급 간의 갈등이 사회존속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 대두되었다. 사회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단일화된 민중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았고, 계몽주의적 대중교육을 통해 주체성을 함양한 민중이 보편적 복지를 누리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사회의 건설을 꿈꿨다. 그 과정에서 구성주의 운동은 서구 중세의 귀족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시민들의 미술[ref]한국사회에서 대중적으로는 아직도 서구 미술의 전형으로 설명되고 있는 “미술을 위한 미술(L’art pour l’art)”[/ref]을 척결하고 미술[ref]미술(art)은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네(techne)”, 그리고 로마시대에는 “테크네”를 직역한 “아르스(ars)”라는,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공물을 생산하고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합리적인 노동의 기술로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합리적 노동기술의 정신적 측면을 “데시그나레(designare)”라고 구분 짓기 시작하면서 현대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디자인(design)” 활동을 낳았다.[/ref] 본연의 사회문화적 역할을 되찾고자, 즉 인간의 삶을 미술적으로 구축하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합리적으로 생산하는 생산미술(Production Art)을 꾀했다. 그래서 구성주의 미술은 인민 모두의 삶을 위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준 높은 엔지니어링으로 거듭나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구성주의 건축의 대표자인 타틀린(V. Tatlin)은 무엇보다도 재료에 적합한 생산방식과 사용자중심의 디자인을 강조했다.
그리고 바우하우스는 미술해방을 목표로 1918년에 결성된 11월 그룹(Novembergruppe)의 결실이었다. 11월 그룹은 미술과 민중이 하나됨을 목표로, 미술이 더 이상 시민들의 향락과 사치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중의 행복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민중이 미술을 직접 향유할 수 있도록 모든 미술활동에 공공성과 민중성을 강조했다. 시민들의 미술 교육기관인 기존의 미술아카데미를 해체하고, 모리스(W. Morris)의 이상을 따라 “자유로운 생산노동으로서의 미술” 창조를 주장하며, 생산현장에서 마이스터(Meister)에 의한 도제식 미술교육으로의 전환과 민중교육기관으로서의 미술관(Museum)을 부활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는 볼셰비키 혁명운동으로 전개된 구성주의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매우 흡사한 것이었기에, 바우하우스는 구성주의자들의 국립 미술-기술 공방 브후테마스(Wchutemas, 1920-1927)를 본보기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정치 참여적인 미술 이념들은 1920년대 내내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놀라움과 감동을 주는 “현대 미술”의 창조적 성취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 “현대 미술”은 곧이어 포디즘과 테일러리즘의 늪에 빠져 전체주의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미국에서 “기능주의”를 표방하는 “국제양식”으로 변질되어 전 서구사회를 지배했다. 그 결과, 물질적 풍요 속에 일상 생활환경이 황폐화 되자, 아도르노(T. W. Adorno)는 그 “기능주의”를 “목적을 잃은 합목적성(Zweckmaessigkeitohne Zweck)[ref]Theodor W. Adorno, “오늘날의 기능주의(Funktionalismusheute)”, 독일 공작연맹회의, 1965년 베를린; in: T. W. Adorno, “Ohne Leitbild, Parva Aesthetica”, Suhrkamp Verlag, 1967 Frankfurt a.M.[/ref]” 만을 목적으로 승화시킨 추(醜) 자체라고 비판했고, 미쳐를리히(A. Mitscherlich)[ref]A. Mitscherlich, “Die Unwirtlichkeit unserer Staedte:Anstiftung zum Unfrieden”, Suhrkamp Verlag, 1965 Frankfurt a.M.[/ref]는 “국제양식”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실태를 폭로했으며, 하우크(W. F. Haug)는 “상품미학비판(Kritik der Warenaesthetik)[ref]W. F. Haug, “Kritik der Warenaesthetik”, Suhrkamp Verlag, 1971 Frankfurt a.M.[/ref]”에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 미술”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그리고 68운동을 기점으로 반미술(Anti-Art), 반디자인(Anti-Design)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참여적 미술운동들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세계주의의 확산으로 그간의 성과들은 매몰되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의 일상 생활환경은 더욱 황폐화 되어가고 있다.
그 반면에, 한국사회는 인류역사상 가장 참담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역군”의 기치 아래 전시복구(戰時復仇) 식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일궈냈다. 그리고 1970년대에 국가산업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국제양식”이 주창된 이래, 오로지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새로운 양식적 이슈들이 미래의 시장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주창되어 왔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서구에 못지않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소비가 넘쳐나는 일상은 서구의 일상환경보다 더욱 황폐해지고 피난민 살림처럼 궁핍한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심지어 그 궁핍함을 애써 감추고자 과하게 장식하고 값비싼 “명품”들로 추(醜)하게 치장하는 양식들마저 범람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서구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온 한국의 지난 시간들을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직시하고 이해함으로써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르게 인식하는데 있다. 지금까지처럼 서구의 겉모습만을 따라서 “미래지향적” 슬로건을 외치면 외칠 수록 현재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특히, 당면한 사회복지문제를 낳은 역사적 과정을 덮어두고, 앞으로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미국의 사회복지와 의료복지를 모범으로 삼자는 식으로 서구를 추종하는 성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