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지금, 가장 아련한 순간을 살고 있다.

2003년 11월 셋째 주쯤 됐을까. 적당히 날씨가 시큰시큰해져갈 무렵 나는 우리학교 교정을 처음 밟았다. 수시모집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면접시험 예정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도착한 새벽녘이라 공기는 푸르스름했고 미래동산을 잽싸게 넘어 다니던 청솔모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조심성 없이 바스르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지금 내가 밟고 섰는 이 학교가 나의 학교가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그저 표현해 낼 수 없는 여러 가지 기분들이 한데모여 연신 내 심장을 쿵쾅쿵쾅 두드리고 있었는데 설렘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이는 대학을 졸업한 지금,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온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추억을 팔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내 대학생활 성장 이야기의 프롤로그이다.

열아홉 평생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며 나를 못살게 굴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자마자 맹목적으로 갈구하던 해방감에 도달했을 때, 시험결과는 이미 관심 밖. 나는 이미 대학생이라며 유세를 떨고 있었다. 나의 머리는 봄날의 개나리보다 한참은 더 일찍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수험표로 수험생 할인을 받아서 구매한 최고급 옷가지들을 걸치고서는 거울 앞에 서서 두서없이 길러놓은 머리를 이렇게 만져 보았다가 저렇게 만져보았다가 하는 것이 하루일과 중 가장 진지하고 골똘한 일과였다. 지금도 이렇게 써내려가면서 그때를 다시금 되짚어보니 정말 고민할 것도 없었고, 두려울 것도 없었고 또, 못 할 것이 없었다. 물론, 그때에는 고민하다 놓쳤고 두려움에 도망쳤었고 지레짐작으로 못하겠다 싶어 시도조차 못 해본 것들이 많지만.

누구나 지나온 과거를 놓고 나 잘했다 박수치며 흐뭇해하진 않을 것이다. 뭐 치킨이 먹고 싶었지만 참았는데 때마침 TV에서 알려주는 조류독감 뉴스를 보며 나 잘했네 손뼉을 짝 마주친다던지 하는 소소한 선택의 결과를 제외하고서는 살아온 전반적인 맥락이나 굴곡을 되짚어보면 후회나 아쉬움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아 이렇게나마 글로 풀어 공유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아, 글을 쭈욱 읽다보니 ‘후회’가 나오고 ‘아쉬움’이 나오는 걸 보고 ‘에이, 역시나 후회하기 전에 공부나 열심히 해라’ 라는 시시콜콜하고 뻔한 잔소리겠거니 미리 추측해버리면 곤란하다. 왜냐. 난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니까. 사실 무지하게 드센 내 자존심이 후회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이겠지만. 어찌됐든.

나는 대학생활이란 인생에서 가장 격하게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몸 말고 가슴과 머리가. 경우에 따라선 몸이 성장하는 경우가 있을 순 있겠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든 의학의 힘이든 간에. 적어도 나는 가슴과 머리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던 것 같다. 특별한 어떤 크나큰 사건이 있어서도 아니고, 현대사회의 심리학수업을 주의 깊게 들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성장하려 발버둥 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나를 성장하게 했겠는가 생각해보니 이전 십대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매순간 맞닥뜨리는 새로운 이슈가 순간순간 나를 사고하게 하였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나를 보다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이런 이슈들과 어설픈 해결과정이 나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풋내가 풀풀 풍기는 대학 생활인데, 부족함이 자연스레 인정되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틈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무모함을 당당함과 패기로 봐주는 지금이야 말로 그대들이 무엇이든 힘을 내서 할만한 날들이 아닌가. 자, 가장 격하게 성장하며 그 성장통이 추억이 되어 아련한 날들로 남는 대학생활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슈들 속으로 나 자신을 과감히 던지며 커나갈 것인가에 대해선 기분 좋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해보고 싶은 것들만 추려서라도 말이다. 물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려고 나를 그 속에 내던져도 도대체 안되는 게 있긴 했지만 대게 시작을 했던 것들은 나에게 많은 추억거리들을 줬다. 단순하게 나만 놓고 간단한 예를 들면,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 좋아서 듣다가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었고, 만든 음악에 가사를 입혀 직접 녹음을 해보기도 했었고, 그러다 질리면 계절을 대표하는 레져스포츠에 미쳐서 방학동안 내내 매진하기도 했었고, 사랑을 해보려고 여기저기에 마음을 활짝 열어보기도 했었다. 세세하게 따지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고민해보고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또는 그것을 반대로 떨쳐내기 위해 사고하다보니 지금의 성장된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다만, 조금 더 겁 없이 더 무모하게 학생신분을 무기삼아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해보고 누려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조금은 남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내가 아쉽고 또 부족해서 더 아련하고 그래서 곱씹을수록 더욱 감칠맛이 나는 것 같다.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어느 누구도 그 당시 나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그대들에게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걸 일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무모하게나마 해보려할 때 우려해준 분들은 있었으나 더 무모하게 해보라고 내질러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너무많이 조심스러웠고, 두려워했고, 패기 있게 들이댔으면 지금의 나의 위치를 바꾸어 놓을만한 기회들도 더러 놓쳤었다. 이제 와보니 그때는 정말 고민할 이유도 없었고, 두려워할 것도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는데!

Tips
– 과제와 수업에 치이지 말고 즐기며 사는 법을 체득하자.
– 내가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가 무엇인지 진중하게 찾아보자.
– 사랑은 꼭 용감무쌍하게 쟁취하자.
– 술, 당구, 게임같은 비생산적인 여가보다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여가를 찾아보자 기왕이면.
– 뭐든지 혼자하지 말자 함께 나누며하자. 그래야 용기도 더 생기는 법이다.
– 건강은 필수다.
– 선배에게서 얻을게 생각 외로 많다. 후배들이 비비는 것을 싫어하는 선배는 어지간해선 없다. 두려워하지 말자.
– 아, 선배에게 비비기전에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멋져지고 예뻐지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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