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 who designed the Seoul Branch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Korea thought of two principles. The first principle was that “The building we build cannot be superior to the Gyeongbokgung Palace” and that the buildings around the cultural properties should comply with numerous regulations. The architect integrated the brick of the Defense Security Command building, terracotta tile, and the roof tile of office of the Royal Genealogy under the theme of “soil”, and installed huge windows in places of the inner part in order to bring the cultural heritage into the building. The inner wall of the Education Building was colored in simple white so that it would not be noticed much. The intention was to direct people’s attention to the outside of the Museum, not the inside. “Let the artists complete the Art Museum” was the other main thought of the architect. “Except for the Leeum Museum of Art”, says the architect, “there are not many spaces in Korea where artists can amply hold their exhibitions”. The architect continues to mention, “There was a sense of ‘morality’ reflected on the Seoul Branch as we aimed to place the importance of Art in the center even if we had to give up the architectural aspect.”
레고사의 디자인 솔루션
전통의 완구회사 레고(LEGO)는 1990년대 들어서 사양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는데 레고회사 자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때 어린이 고객들이 레고보다 비디오게임기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동들이 전원만 켜면 바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려서 비디오 게임시장에 뛰어들었고 조립하지 않고도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실패해서 2004년 레고는 사상최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러한 레고의 문제점을 ‘레드 어소시에이츠(Red Associates)’라는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가 해결해주었다. 레고가 원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였는데 컨설팅회사는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바꾸어봤고 이의 조사를 위해 LA, 뉴욕, 시카고, 뮌헨, 함부르크 등지에 사는 가정에 조사팀을 파견하여 수개월에 걸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촬영하고 심층인터뷰를 했다. 조사팀이 발견한 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즉각적인 쾌락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 외에도 큰 즐거움을 느꼈다. 결국 레고는 오히려 더 어려운 제품을 만들었고 조립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더 근사한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레고 블록 개수가 1000개가 넘는 제품을 더 많이 개발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레고제품을 유기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어린이 고객과의 Interaction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제품디자인에 적용하여 적절한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도쿄 외곽의 무사시노 미술대학교(Musashino Art University)의 대학 도서관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서관 정면에는 책장이 가장 앞에 나서고 있다. 책장이 기둥이고 보(beam)이고, 창문이고, 길이며, 담도 이루고 있다. 책장으로 지은 집 아니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이야말로 건축의 도움없이 책만으로도 그 깊이와 공간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건축이라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의 도서관은 그것을 증명하듯 서 있다.
내부 역시 보이는 전부가 책장과 책이다. 거대하게 솟아난 책장이 8.5m의 기둥이 되어 지붕을 받치고 있고, 떠있는 다리가 책장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내고 있으며, 책장으로 된 계단이 사람을 2층으로 올리고 있다.
천정마저 반투명 재질로 살짝 가린 식이어서, 마치 지붕 아래 책장이 자라고 있는 책의 숲과 같은 기분이 든다. 지하 수장고를 제외하고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상 1층 연구 층(Research Floor)과 지상 2층 공부 층(Study Floor)의 모든 내부 경관은 오로지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책장이 다 책꽂이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6단 위로의 책장은 책을 꽂는 용도 보다는 건축의 마감용으로 쓰였다. 외부에 쓰이는 책꽂이 역시 책의 집을 상징하는 마감 재료다. 보통 도서관의 서가는 ‘총류(0)->철학(1)->역사(2)->사회과학(3)->자연과학(4)->기술(5)->산업(6)->예술(7)->언어(8)->문학(9)’ 이렇게 0에서 9까지 분류에 따라 차례대로 나란히 배치된다.
하지만 이곳의 서가는 0번 총류에서 9번 문학까지 회오리처럼 둘려져 있다. 그 사이를 방사상으로 뚫고 지나가는 길을 두어 이 겹겹이 쌓인 미로의 서가 사이를 이용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 책장이 벽이 되고 그 아래로 난 게이트를 통해서 그 뒤의 책의 벽으로 연결되고 또 이 아래 게이트를 통해서 이 뒤의 서가로 연결되는, 책장으로 연속되는 방사상의 터널이 눈에 띈다. 4.8m의 천장 끝까지 닿는 높은 서가와 3-5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서가, 저마다 다른 위치와 크기로 난 책장 터널 때문에, 돌아가는 서가들은 차곡차곡 중첩되어 보인다. 낮고 높고 저마다 모양을 가진 서가와 다양한 표지판의 조합이 서가 사이로 난 길 모두를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방향성이 없는 서가다. 매번의 선택으로 마주하는 책의 우연들이 점차로 예술을 하는 방향을 정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무덤처럼 잠이 들어 있기 쉽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쉽게 잠들고 말아버리는 책들을 깨우기 위해서 이런 장치를 했다. 바닥과 벽에 있는 서가의 배치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여정을 고민하게 하는 지도다. 물론 길을 잃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책의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우연이 이 안에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린 붉은 벽돌의 라운지, 은은한 노란빛 테라코타 타일로 장식한 교육동이 전면에 드러날 뿐 전시실은 뒤로 물러나 있다. 건물은 하나같이 나지막하고 곳곳에 마련된 공간은 휑해 보이기까지 한다. 건물의 목적이 무엇인지, 건축가의 개성은 어떠한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완공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시청사에 비하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서울관은 ‘겸손’하다. 미술관 앞뒤로 자리한 경복궁, 종친부 등 전통 건물에 대해, 내부에 들어선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겸손하다. “내가 더 잘났다”고 소리 높이는 대신 미술관 안팎의 전통과 미래를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두 가지 원칙을 먼저 떠올렸다. 우선 “무엇을 세워도 경복궁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고 문화재 인근 건물에는 수많은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건축가는 기무사의 벽돌, 테라코타 타일, 종친부의 기와를 ‘흙’이라는 소재로 묶었고, 건물 내부 곳곳에 큰 유리창을 만들어 앞뒤의 문화유산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교육동 내부 벽은 단순한 흰색으로 칠해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게 했다. 미술관 안이 아니라 바깥을 내다보라는 계산이었다.
또 다른 생각은 “미술관은 미술가들이 완성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건축가는 “한국에는 리움 미술관 정도를 제외하면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할 공간이 많지 않다”며 “서울관만은 건축적인 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미술을 중심으로 해야겠다는 ‘도덕’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무사는 삼청동, 소격동 등 북촌 일대를 가로막고 있어서 건축가는 “군부대가 막은 골목길을 뚫어주고 싶었다. 도시의 동맥경화를 치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관에는 정문, 담장이 없다. 주변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도 미술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곳곳에 진입로를 만들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미술관 한복판을 관통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입장권을 사야 하나, 수위 아저씨에게 혼나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누구나 드나들도록 열린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 의도였다.
관람객은 서울관 내부에서도 길을 잃기 쉽다. 작품을 중요도에 따라 배치하지 않았고, 정해진 동선도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서울관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도시”라며 “건물에서는 건축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서울관에서 자유롭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뒷사람이 다가올까 봐 관람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감상 순서도 마음대로다. 민 교수는 “미술관 속에서 헤매면서 작품을 하나씩 조우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관에 오면 미술은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술관을 날 잡아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마트처럼 쉽게 들르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관이 특화시킨 현대미술은 이러한 아이디어와 더욱 잘 어울린다. 건축가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벨기에 작가 카르슈텐 휠러의 미끄럼틀 모양 작품 ‘테스트 사이트’를 설치하면서 ‘런던의 놀이터’로 진화한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관의 관람은 미술을 몸으로 느끼며 즐거워하고, 그러는 사이 작가를 알고, 경복궁이나 북촌의 맛집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