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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즈(Triz)와 디자인

트리즈는 문제 해결을 위해 체계적,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론이다. 처음 트리즈를 접한 것은 1999년 경으로, 당시 일하던 회사에서 트리즈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모전자의 디자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디자이너가 휴대용 카세트에서 상용화 되고 있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VCR에 적용하고자 제안하니 VCR쪽 엔지니어가 그런 방식은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들었던 때라, 한 회사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노하우가 공유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교육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어떤 기술적 문제를 갖고 있을 때 그 해결 방법을 내가 일하는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 끌어 올 수 있도록 체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위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트리즈는 이후 삼성전자, 포스코 등 여러 기업에서 활성화 되어, 사내에 트리즈 대학을 개설하고 전직원에게 40-120시간의 교육을 실시 하는 등 많은 기업들이 트리즈전문가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리즈는 인텔의 칩설계, 삼성전자의 광픽업 개발 등 우리 일생생활에 이용되는 많은 제품에 응용되었으며, 삼성전자가 미국내 특허 2위를 달성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평가받고있다. 트리즈는 기술개발을 위한 방법론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경영이나 서비스, 그 외 분야의 문제해결을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디자인분야로도 활용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트리즈 방법론을 개발한 겐리히 알츠슐러(Genrich Altshuller)는 구소련의 해군에서 특허 심사 업무를 하며 20만건의 특허를 분석하여, 특허 중 약 3% 정도만이 창의성이 뛰어난 발명이었고 이들 발명에는 어떤 공통의 법칙과 패턴이 있음을 발견, 이를 정리하였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전세계 200만건 이상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특허들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분야의 해결 방법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체 특허의 96%는 그가 정리한 40가지의 발명원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는 발명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문제 해결과 그 창의성의 수준, 문제 해결의 유형 및 시스템 진화 패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의 방법론은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이란 뜻의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h Zadach’라 이름 붙여졌고 약어로 TRIZ라 불리게 되었다. 영어로는 TIPS(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라고도 불린다. 알츠슐러는 특허와 기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40가지의 발명원리의 정리, 모순매트릭스, 76가지 표준 해결책, 창조적 문제해결알고리즘 (ARIZ) 등을 개발 하였으며 이런 개념들이 서구로 전파되어 현재의 트리즈 방법론으로 보급되었다. 여기서는 난이도가 높은 기술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 발상에 쉽게 적용 할 수 있는 40가지의 발명 원리 중 많이 쓰여지는 10개의 원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40가지 발명원리

트리즈에서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예,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게가 늘어난다 등),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40가지 발명 원리들을 창의성이 뛰어난 특허의 분석을 통해 도출하였다. 40가지 중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이 쓰이는 순서대로 10가지만 소개하면,

1) 원리 35번 모수변화 (속성변화, Parameterchange): 물질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시스템의 물리적 상태 (기체, 액체, 고체), 농도나 유연성의 정도, 온도나 부피를 바꾼다. 예) 가습기, 에어쿠션을 이용한 유아용 체중계, 욕창매트, 일부분의 유연성을 바꾼 샤워기 핸들-호스 연결부. 납땜, 증기기관차

2) 원리 10번 사전준비조치 (Prior action): 미리 조치한다. 대상물의 변화 요구가 있기 전에 미리 그것을 시행한다. 예) 커피믹스, 라면 스프, 과자, 우표 등의 절취선. 접이선이 있는 종이 접기, 도구, 레스토랑 테이블 세팅, 간편 요리 키트

3) 원리 1번 분할 (Segmentation): 쪼개서 사용한다. 물체를 독립적인 부분으로 나눈다. 물체를 분해가 쉽도록 디자인한다. 물체의 분해 정도를 증가시킨다. 예) 조각 케익, 가루형태 약, 커터칼날, 1인분 포장

4) 원리 28번 기계식 시스템의 대체 (Replace a mechanical system): 기계적 시스템을 광학, 음향 시스템 등 다른 것으로 바꾼다. 기계적인 것을 시각, 청각, 후각 등으로 바꾼다. 전기적, 자기적 장을 이용한다. 예) 수압을 이용한 절단기, 음악 분수

5) 원리 2번 분리 (추출, Extraction): 필요한 것만 뽑아 쓴다. 물체로부터 필요한 것 또는 필요 없는 없는 것만을 추출한다. 대상물에서 방해되는 것을 제거한다. 예) 에어컨실외기, 휴대폰 블루투스 핸즈프리 장치, 녹즙기, 회로기판에서 귀금속의 채취

6) 원리 6번 다용도(Multi-functionality): 대상물이나 시스템의 부분이 여러 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 부품과 작업횟수가 줄고 유용한 특성과 기능은 유지된다. 예) 컵홀더를 포함한 우산, 맥가이버칼, 복합사무기기

7) 원리 19번 주기적 조처 (Periodic action): 연속적으로 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한다. 이미 주기적이면 주기를 바꾼다. 예) 특정시간에만 적용되는 버스 전용차로, 차선 변경제, 싸이렌

8) 원리 18 기계적 진동 (Mechanical vibration): 진동을 이용한다. 물체가 진동운동을 하게한다. 고유 진동수나 공진을 이용한다. 예)초음파 세척기, 전동칫솔, 휴대폰 진동, 콘크리트 드릴

9) 원리 32 색상 변화 (Color change): 색깔 등 광학적 성질을 변화시킨다. 물체 또는 환경의 색, 투명도를 바꾼다. 관측을 용이하게 형광제, 색첨가제를 이용한다. 예) 뜨거운 커피를 넣으면 색이 변하는 컵, 변색렌즈, 위장복, 오토 캔디 특수도장 (엔진온도에 따른 색상변화)

10) 원리 13 반전 (Inversion): 반대로 해본다. 문제해결에 요구되는 작용을 거꾸로 해본다. 고정된 것은 움직이게 움직이는 것은 고정되게 한다. 물체를 뒤집거나 돌린다. 예) 러닝머신, 도깨비방망이 (믹서의 변형)

한국 트리즈협회에서는 트리즈 전문가양성을 위해 5단계의 자격증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1단계 자격은 40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통해서도 학습이 가능하므로 학생들이 도전해 볼만 하다. 협회는 3단계이상의 자격증을 획득하면 트리즈 전문가로서 독자적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하고 있다. 산업디자인은 과학적인 방법론과 예술적인 인사이트가 함께 요구되는 분야이다. 우리 학생들이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아이디어 발상 및 문제 해결 방법을 익혀 제품이나 환경, 서비스의 장을 새롭게 혁신하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통찰과 출산

19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디자인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그 과정을 보다 쉽게 안내할 교과서가 없다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말씀과 지도는 실천적으로 방향을 지시하여 주었지만 가속도를 내기에는 체계화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출간된 디자인 서적은 극소수였고, 1980년 출간된 정시화 선생의 ‘현대디자인연구’가 배경을 얼마간 설명해주었지만 디자이너가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디자인계에 입문한 지 1~2년에 불과한 꼬맹이로 실제 디자인프로젝트라는 것은 구경도 못한 나에게 바로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여서 전체적인 체계에 대한 목마름은 컸다. 결핍은 그것을 채우려는 욕구를 동반하기 마련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후 졸업전을 그나마 쓸만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런 결핍의 순작용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런 목마름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혼란과 갈망을 그나마 적셔주던 것은 해외 서적의 복사본이었다. 여행도 쉽지 않고 외국인을 보기도 어려웠던 시기라 모든 것을 흑백으로 만들어버리는 복사본은 우리를 바다 건너와 연결시켜 주던 거의 유일한 끈이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들어와 우리 손에 들어온 책 중에는 노랗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책이 하나 있었다. 고맙게도 그 책의 제목은 ‘Design Methods’였다. 와우!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방법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들어있다니! 당시에는 메쏘드가 아닌 메쏘즈가 그런 의미로 보였다. 과연 그 책에는 디자인과정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방법이 과정과 사용 의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방법별로 실행하는 순서까지 나와 있었으니, 그때 내 마음은 이랬다. ‘그래. 이제 이것만 따라하면 돼!’

물론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몇 가지 방법을 따라해 보았으나 당시에 내가 닥친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예컨대 스트리트 퍼니처를 디자인하는 과제로 가로변 의자를 디자인하고자 할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그중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책은 종합적인 형태의 이야기보다 보다 개념적인, 분석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후에 그 책의 저자였던 존스(J. C. Jones)가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디자인방법론운동이나 영국의 디자인 전통이 엔지니어링과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한국의 디자인 교육과 실천은 전적으로 미술 기반이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ref]미술은 여전히 중요한 디자인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도 통합된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지 미술이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각기 역할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 통합되어가는 보다 풍성한 디자인의 개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일까?[/ref]

그렇게 학창 시절 ‘방법의 시기’는 저물었고, 이어 입사한 회사의 시스템은 놀랍게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운영되었다. 회사의 디자인프로세스는 실무적 의사결정 단계 중심이었고 각 단계의 이름은 단계마다 보여주어야 하는 표현방식의 이름을 따랐다. 사전에 뭔가 조사해야 한다는 욕구와 아쉬움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잘 몰랐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였으며, 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핑계로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에게 차츰 중요해지기 시작했던 것은 과거 제도대 위에서 T자등을 사용한 도면 그리기를 대체할 컴퓨터 관련 표현 기술이었다. 1990년대 포토샵을 통한 렌더링이 갖는 가시적 효과와 이미 그린 것을 재활용할 수 있는 효율로 차츰 수작업은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각 디자인 영역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당시 디자이너의 ‘방법’이었다. 몇몇 인간공학 특히 인체공학에 기반한 방법들은 있었지만 몇 번 시도 해보면 금방 더 이상 시도해볼 필요 없이 적용 범위가 드러나 버려, 인간의 다양성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ref]사용범위, 각도 등을 확인하는 인간공학적 절차를 거친 엄밀한 연구 방법은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디자이너들이 직접 사용해서 확인하는 방법에 비해, 드는 노력 대비 효과는 그저 그랬다.[/ref]
유사한 프로젝트를 경험이 있으면 다시 해 볼 필요가 별로 없었고, 디자이너들은 상황을 새로이 점검하기 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진행하였다. 새로운 상황은 2000년을 전후해서 컴퓨터가 본격적인 일상의 일부가 되면서 일어난다. 모든 사람의 생활 전체가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으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모든 일과 놀이를 인터넷을 매개로 삼아 시작하였다. 컴퓨터는 저장의 도구, 계산의 도구, 재현의 도구를 넘어서 ‘매우 빠른 정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소통하는 정보의 형식 또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확장되었으며 그래픽디자이너들은 그 수요에 대처할 수 있도록 GUI라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 현상은 Man-Machine Interface를 넘어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으로 전환되었으며, 인터랙션은 모든 디자이너들의 화두가 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GUI를 생각할 때 산업디자이너들은 사물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공간디자이너들은 환경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상상하고 구현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원로인 에꾸안 겐지의 도구와의 대화(道具考)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일본식 사고방식이나 정령이 깃든 사물이라는 애니미즘처럼 소박한 생각을 넘어서서, 보다 실제적인 상호작용이 모색되었다.[ref]그럴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가 모든 곳에 편재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대한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물건들에 컴퓨터가 내장된다는 것은 아마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컴퓨터가 마치 레진이나 페인트 재료비 수준의 비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값싼 존재가 되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ref]
사물의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포괄한 무형적인 사용의 문제가 디자인의 중심이 되면서, 단번에 포착하기 어려운 사용의 세계, 더 나아가서 서비스의 세계[ref]사용 현장을 대상으로 하는 사용과 달리 서비스는 기반 설비와 배후 구조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ref]가 그동안 수 십 년간 실무에서 외면되었던 디자인방법의 세계를 흔들어 깨웠다.

이름은 디자인리서치로 재포장하였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디자인메쏘드였다. 존스가 이야기했던 확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의 개념은 더블다이아몬드[ref]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영국 디자인카운슬의 모델로 확산-수렴 쌍이 두 번 연결되어서 더블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ref]로 확장되었고 다른 점이라면 1970년 디자인메쏘드가 35개의 방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최근의 방법들은 가뿐히 100개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출판된 책의 숫자로만 보면 2012년은 디자인방법의 세계가 깨어난 정도가 아니라 활짝 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ref]Universal Methods of Design: 100 Ways to Research Complex Problems, Develop Innovative Ideas, and Design Effective Solutions (B. Hanington, 2012), 101 Design Methods (V. Kumar, 2012), Design Methods 1 : 200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 Design Methods 1 : 200 More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ref] 더 나아가 수없는 워크숍의 열풍과 디자이너들이 소비하는 포스트잇의 숫자에 대한 우스갯소리들을 보면 그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바야흐로 방법 과잉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너무 먹을 것이 많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속에서 마구 먹어대던 치히로의 부모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언제부턴가 위장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고 뷔페가 비정상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 나의 식탐은 차츰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또 배불리 먹을지 몰라서, 차려진 잔치 상은 마다하지 않고 입안으로 쓸어 넣는 우리의 사회적 결핍이 디자인 영역에서도 반복되는 듯 해 씁쓸하다.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을 익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일단 배우고 보자, 일단 행하고 보자는 심리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배탈이 나지 않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방법은 왜 필요한 것일까, 나는 디자인 과정을 떠올리면 크게 다른 두 가지 행위가 교차되는 모습을 연상한다. 전반부는 ‘이해’이고 후반부는 ‘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낯선 맥락 속의 타인을 위해 +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맥락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뭔가를 만질 수 있도록[ref]실제 손으로는 만질 수 없어도 우리가 느끼고 조작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ref]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전적으로 다르다. 후자 ‘창출’의 방법은 포괄적 의미의 모형을 통해서 최종 결과가 가져야 할 특징이 적합한지 모의로 시험하여 차츰 개선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오랜 기간 이 방법을 상당 부분 미술적 능력에 기반 해서 발전시켜왔으며 표현 방법의 경제성에 근거를 둔 단계별 이름을 사용해서 과정을 설명한다.[ref]물론 최근에 확장된 디자인의 무형성,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모형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의 시험을 하기 위한 모형화, 이해를 위한 모형화는 대상의 확장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방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자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ref]반면 전자 ‘이해’의 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며 새로이 등장한 방법들은 대부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일부는 1960년대 디자인방법론자들이 제기한 개념적인 디자인과정과 닮았지만[ref]가장 다른 점은 이해해야 할 대상인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거론하지 않고 그 속의 ‘문제’와 ‘해결’만 부각시키는 지나친 개념화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면 전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제라는 용어가 갖는 제한적 의미로 볼 때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 문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옳을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사용자가 문제 덩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ref] 디자인의 문제가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용에 대한 것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맥락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면서, 인류학적, 교육학적, 철학적 특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분석적이지만 총체적이고 동시에 깨달음처럼 그 과정의 종착지는 ‘사람과 사용, 맥락’에 대한 통찰이다.

마치 누군가를 기쁘게 할 선물을 고르려,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쾌재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려면 관심 가득한 마음으로 (호기심),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면접) 주변을 돌아보고(관찰) 총체적인 상황을 통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살피거나 어쩌면 ‘선물에 대한 모든 것’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문헌) 만약 그들이 어떤 집단을 이루고 있다면 의견을 모으는 과정(설문, 집단 면접)도 필요하다. 그런 여러 가지 사항들은 하나로 모이고(범주화) 정리되면서 결국 통찰(분석, 해석과 방향제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다른 많은 방법이 있어도 이 기본 줄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행위는 결국 ‘이해’에 도달하는 것, 결국 요구에 대한 통찰이 목적지다. 모든 방법 시행의 결과는 통찰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러한 ‘이해’는 아마도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일 수 있다. 매일 매일 여러 가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도 없다. 때로 ‘그래 이제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반전은 거듭 된다. 하지만 지금 묘사처럼 디자인의 전반전 ‘이해’ 과정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지(知)의 획득 과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자. 우리는 디자인과정을 통해 현상에 대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즉 피교육자라고나 할까. 아니면 셜록 홈스처럼 탐정이 되거나 태평양의 한 가운데에서 향유고래를 뒤쫓는 생태학자처럼 대상을 알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은 누구이며 향유고래가 즐기는 먹이가 무엇인지 통찰한다. 매우 자연스럽게. 이것이 방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이를 통해 디자인의 미래가 새롭게 열릴 그 날이 기대된다. 마지막 한 마디. 디자이너들은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통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도구 삼아 새로운 인공물을 ‘출산’한다.[ref]앞으로는 창출 대신 출산을 쓸까? 기특하게도 수년 전 우리 산업디자인 4학년 학생들이 졸업연구를 진행하던 방의 이름은 ‘분만실’이었다.[/ref]

2013년의 雜想

亂世
2013년에 접어들면서, 그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던 난세(亂世)의 징조들이 하나 둘씩 그 본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가장 심각한 것들 중 하나가 독선적으로 진행된 국민교육, 대중교육의 성공적 완성이다. 자본의 이윤만을 경주하며 출세 경쟁에 전념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 간에 서구 계몽주의자들의 교육이념과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고 내세우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민교육과 대중교육을 펼쳐왔다. 거기서 국민들은 오로지 동일한 것을 놓고 동일한 조건에서 생존을 건 경쟁에 몰입하도록 교육되었다. 그들은 이제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에서 보여준 공장으로 향하는 지하 노동자들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같은 곳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줄 맞춰 가며 서로가 앞줄에 서고자 서로를 팔꿈치로 밀어 붙이고 있다. 그들은 줄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루저 loser)가 된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죽기살기로 줄에 매달리고, 모두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능한 앞줄에 서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한 삶은 결국 ‘지옥’과 같은 삶일 수 밖에 없고, 앞줄에서면 설수록 ‘지옥’과 같은 삶에 먼저 도달하게 되는데도 말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제 지배권력을 위해 국민들이 사리판단력을 잃고, 경쟁 강박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서로를 팔꿈치로 밀며 생존투쟁만을 벌이도록 하는 과업을 완수해냈다.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 중, 우수한(?) 인재들은 선봉에 서서 모든 매체를 장악하고 지배권력의 안위를 위해 국민 대중을 교육하고 있다. 거기서 1930년대 라디오가 파시즘을 신봉하는 국민을 교육해내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보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TV가 소비대중을 교육하고 이끌어온 것보다,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은 몇 갑절 더 강력한 교육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초·중·고등학교에 인터넷 기반의 전자교과서 도입 계획이 추진된다는 말이 왕왕 들려온다.

학생들은 이미 인터넷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컴퓨터 부품처럼 ‘정보’의 파편들에 대응하는 정해진 패턴에 맞춰 반응하도록 교육되었다. 그 속에서, 자신이 뭘 공부하고 싶고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를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서열화된 대학 중에서 가능한 앞 줄의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집착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대학 서열경쟁에 내몰릴 뿐이다. 대학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명품교육”과 “취업”을 내세우며 광고를 하고 (소비)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대학 본연의 전문성과 전공교육은 상실되었다. 이제 “고객”들은 보다 앞 줄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 같은 졸업장과 자격증을 구매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렇게 해서 직장에 들어간 “고객”들에게는 ‘잘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되고, 가능한 보다 ‘높은 연봉’의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돈만 잘 받을 수 있으면 자신이 기계부품 취급을 받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며 열심히 일한다.

이미 한국인들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돈이 이제 삶의 목적이 되어, 돈벌이를 잘하는데 목숨을 바쳐가며 매달리고 정진한다. 급기야 “부자 되세요”라는 말의 광고가 나오고, 그 말이 유행하고 교회와 절에서의 축도가 되고, 그 말을 제목으로하는 각종 책들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허나 모두가 부자가 되는 그런 세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는 부자가 되는게 삶의 목표가 되었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생존을 건 강박은 한국인들을 낙오에 대한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하고, 결국 그 공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강한 지배권력과 영웅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이탈리아인들이 무솔리니(B. A. A. Mussolini)에 열광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어 권 사람들이 히틀러(A. Hitler)를 보고 열광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국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배할 강한 국가권력에 열광할 뿐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이 없는 한국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몇 년 전에 죽은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까지도 한국 국민들의 영웅이 되어 회자되고 있다.

선한 디자이너와 악한 디자이너
오늘날 나타나는 난세의 모습은 한국의 디자인, 디자이너와도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온갖 현란한 양식들이 유행하고 추종되어 극도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내게는 무엇보다도 그 간에 디자인의 혼란스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며 바른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동료로 여겼던 몇몇 이들이 작년의 대규모 전시에 공개한 것들을 접하고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그보다 더 한 것을 만들어 공공연하게 설치해놨다. 또한 디자인비판 담론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노력했던 이가 바라던 직장에 들어가고 나자, 이제는 그가 추악한 경쟁의 선봉에서 활약(?)한다는 소식만이 전해 들린다. 결국, 모두가 앞서 말한 난세 속의 한국 국민 그 자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한국에서 디자인이란 애초부터 “굴뚝 없는 공장”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내세웠듯이, 기업의 이윤을 높이고 돈을 잘 벌게 하는 도구로 여겼다. 그리고 “0.6초의 디자인”이 말해주듯이, 소비자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현혹시켜 소비를 실현해 내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였다. 그래서 디자인은 이제 모든 한국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여, 돈 벌고 부자 되게 해주는 부적과도 같은 의미로 자리잡고, 모든 말에 접미사로 붙여져 사용되고 있다. 2009년 서울시의 “디자인올림픽”에서 “우리 모두 디자이너”라고 천명하면서부터 돈벌이에 연관된 활동은 이제 모두 “디자인”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 함은 디자인이라는 전문분야와 그 전문활동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디자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서로 앞다퉈 모든 것이 “디자인”이고 모두가 “디자이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는 “융합”이 부각되는 오늘날의 시대 조류에 맞춰 엔지니어링 디자인(engineering design, 工學設計)을 새로이(?) 추구해야 할 “융합형” 디자인으로서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오가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엔지니어링 디자인을 관심 갖고 해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돈 벌고 부자 되게 해준다는 “디자인”이란 말의 마법(?)의 힘이 지속되려면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야만 하기에,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자인”이 새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 기존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첨단”으로서 유행을 선도해나간다. 그리고 최근 디자인에 관한 설명에서 페르소나(persona)란 말이 크게 유행하는 현상처럼, 새로운 “디자인”을 말할 때 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무엇인가가 있을 법한 분위기와 환상을 자아내기 위해, 광고 마케팅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외래어를 차용해서 사용한다. 처음에는 영어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요즘에는 힐데스하임(Hildesheim)과 카페베네(caffebene) 등과 같이 불어와 독일어에서부터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까지 확장되고 있다. 여기서 한국 국민들이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 말 뜻도 모르며 따라 하기에 열중하는 것처럼, 디자인 분야에서 벌어지는 현상들 역시 그러하다. 자칭 디자인 전문가와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시시각각 새로이 옷을 갈아입고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의 대세를 따라가고 뒤쳐지지 않고자 필사의 노력을 부단히 경주한다. 그런 와중에, 그 “디자인”의 실체를 알려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세상의 반은 신이 창조하고 그 나머지 반은 디자이너가 만든다는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퐁티(Gio Ponti)의 말처럼,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해 왔다. 특히, 선한 (건축) 디자이너는 천당을 만들고 악한 (건축) 디자이너는 지옥을 만든다는 18세기 풍자화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특징적으로 잘 그려냈다. 그것에 따르자면, 한국의 디자인이 결국 지금의 난세를 만드는데 매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디자이너가 비판의식을 갖고 올바른 사리판단을 통해 디자인 활동을 행한다면, 그것으로 난세를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그가 속한 사회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에 지배를 받지만, 인간의 비판의식은 그 사회적 한계를 일정부분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비판의식을 통한 디자인 활동의 결과물들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사회적 관계와 문화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다시금 사회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난세를 극복할 비판의식 함양이 중요한데,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를 헤쳐나간 제자백가(諸子百家) 현자(賢者)들의 가르침만큼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공작인(工作人)의 입장을 대변하는 묵가(墨家)의 – 애(愛)와 이(利)에 관한 상호 쌍무(雙務) 원칙에 입각한 – 겸애(兼愛)의 도(道)가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나, 거기서 노자가 말한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가르침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013년 겨울이 찾아오는 날
대안리 금산에서

2013년에 읽은 모습들

지구 : 시간당 10만7000km로 공전한다. 지난 5월 제일 깨끗하다는 하와이 상공에서 채집된 공기에 이산화탄소는 농도 400ppm(1ppm 은 1/100만), 1959년 처음 기록한 측정치 315ppm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다. 2011년 한국은 396ppm 을 기록했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합쳐져 우리나라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 기상이변은 이변이 아닌 정상이 될 것이고 유래 없는 추위와 더위가 매년 갱신되고 강풍과 홍수와 가뭄은 일상의 날씨로 반복될 것이다.

세계 : 2012년 11월 15일 기준세계인구는 전년도보다 7810만이 증가한 70억 5210만 그중 중국이 13억, 인도가 12억, 미국이 3억. 이 3억의 미국인에게 3억 1000만정의 총기가 들려있고 49% 가정이 한 자루 이상의 총을 보유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쏘고 맞는 가운데 연간 11,101명이 총에 살해되고 19,766명이 총으로 자살한 이 나라는 12년째 테러와 전쟁 중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 Democratic 라 정의한다.

우리나라 1 : 한국 불평등지수는 OECD 9위로 상위 10%의 평균 벌이가 하위 10%의 10.5배가 된다. 1등 신랑감이 공무원인 가운데 1등 신부감은 교사, 최초 도입 후 시험관 아기로 태어나 살고 죽고한 사람은 약 5만명. 그런 가운데 2012년 신생아 50 중 1명이 47,000명의 베트남 새댁에게서 얻어졌다. 핀란드에 이어 교육강국 2위 한국에 100만 휴학생이 있다. 인구 이동률은 2002년 20%에서 2012년 15% 부동산불황과 고령화는 오가기 힘든 사회를 만들었다. 항공여행객 7000만시대. 2012년 6930만명이 비행기를 탔고 5000만이 해외로 나갔다. 주 5일 근무와 1인 가족은 이주율은 낮추고 이동률은 높였다.

우리나라 2 : 2005년에서 2019년 기업소득이 19% 증가한 가운데 가계소득은 1.6% 증가. 삼성이 201조 매출에 29억의 영업이익을, 현대기아는 125조에 13조의 실적을 올렸다. 2012년 국제물가에서 대략 밀은 kg에 2000원, 옥수수는 1500원, 대두는 1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33%오르고 우리나라 쌀생산은 2011년 422만톤에 비해 407만톤의 흉작을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의 밥공기는 1940년대 680ml에서 2013년 190ml, 1인당 쌀소비는 2003년 83.2kg를 소비한데 반해 2012년에는 69.8kg으로 줄었다. 1인당 80%가 폭탄주로 소비되는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량은 698,000 상자(1상자는 500ml, 8병 기준)로, 478,000상자가 소비되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여덟 중 1명이 술, 도박, 인터넷, 마약 중독 중 하나는 달고 사는데 그 수는 총 618만명.

우리나라 3 : 2012년 서울시 서초구 전세금은 3.3평방미터(1평) 당 1201만원. 원주시에 비교해 대략 네 배 정도다.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원주가 연봉의 4배, 서울은 8배. 그러나 전국 주택보급율은 103.3%, 서울은 97%인 반면 거주민의 실제 자가주택비중은 전국평균 54%, 서울 41%. 2012년말기준 가계부채는 959조, 그 중 주택대출이 450조. 대출금은 은행 빚으로 있거나 전세금으로 주인집에 잡혀있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한 비정부기구는 한국인의 해외은닉 재산을 800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남북한 각각 4860만, 2460만 인구. 2012년 12월 카카오톡 전세계 가입자는 7000만. 2012년 월평균 94만원을 지출하는 나홀로 가구 453만명으로 2013년 500만을 예상하며 이는 전체 인구의 25%. 이들에게는 원칙적으로 2세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4 : 2012년 건강보험은 사상최대 흑자 4조5763억을 내었다. 한해 만에 전 국민이 졸지에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2008년 불황의 짙은 그림자 속에 서민들은 아파도 참고 되도록 입원을 안 한다. 이 여파는 2013년 가시화하여 여러 공공의료원이 문 닫고 수많은 병원이 적자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2011년 흡연, 음주, 비만진료비로 6조 888억원이 지출되어 건강보험 전체의료비 46조 2379억원의 14.5%를 차지했다. 2012년 건보 진료비 47조 8392억 중 65세 이상이 16조 4502억을 써 34.4%를 차지했다. 2013년 노인성 치매인구가 576,000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2050년이면 271만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특정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치매(인지장애)는 암을 제치고 제 1의 질병으로 부상할 것이다. 2004년 173.4cm로 최고치에 도달한 한국남자의 키는 10년째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만, 다이어트, 수면부족 때문이다. 과로와 과식과 살 빼기의 영원한 되먹임 속에 당분간 한국 남자 몸과 마음은 루저를 벗어날 수 없다.

세계와 우리나라 :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근대 설계가들은 모두 인간의 자유를 중시했지만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노동이라는 노예 이론에 기초하고 있고 거기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개발지상주의가 만연한다(장정일). ‘의전격식 안 따지고 입 무거운 원칙주의자 박당선인과 닮은 꼴인 김용준 총리후보’ (조선일보 2012년 1월 26일 A3)가 알아서 총리직을 포기한 새 정부가 이후 1년이 되어간다. 세계정치의 본질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어 남의 눈을 대신하려는 타율성, 세계정치의 중심에 접근 안 하고 지역문화만을 수용할 뿐 주변에 대한 인식부족, 외래사상제도가 실패할 때 그 책임을 수용자가 아닌 외부에 전가해왔다는 우리나라, 서울대는 2014년부터 교양필수에서 영어를 제외키로 했다. 35년간 그렇게 쓰인 일본어 이후 67년만의 일이다.

채승진 2013년 11월

관계의 끝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군요. 2003년 2월 어느 날, 날이 잔뜩 흐려 회색 빛 기운이 감돌던 교정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생각하며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공고 받은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향해 자신 없는 발걸음을 떼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그 날을 떠올리다 보니 참으로 묘합니다. 시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의 나 또한 미국 동남부 어느 소도시 방구석에 앉아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College of Design에서 3년째 박사과정 공부 중에 있는 산업디자인학과 03학번 임빈 입니다. 학과 10주년 기념책자에 이렇게 한 자리 차지하고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의미깊은 공간을 어떤 글로 채워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으나, 역시 ‘내 애기’ 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쓰는 문체에서 벗어나 최대한 내 목소리, 내 말투를 담아 말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나란 사람이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관계
나는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단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지요. 가장 불확실하고,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 한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듯합니다. 그렇기에 여러 형태의 관계가 존재하고, 머리와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관계가 기이하리만치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만 그럴까요? 디자인학도로서 내게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사람과 물건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폐기합니다. 맥박과 호흡이 없다 뿐이지, 태어나고 죽는다는 맥락에서 보면 모든 인공물도 생명이 있는 객체입니다. 사람-사람 관계와 비교하여 사람-물건 관계에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과는 달리 물건은 주체성이 없다는 것 입니다. 즉, 어떤 경우라도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끝내는 주체는 사람이지, 물건은 결코 그 역할을 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잘 사용하던 물건이 고장 나서 버렸을 경우에는 물건이 관계 변화의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나는 이제 고장이 났으니 쓸모가 없겠구나’ 하고 스스로 쓰레기통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장 난 물건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여 폐기를 한 주체는 결국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애정을 쏟아 물건을 관리하고 사용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물건의 생명이 다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동 기제(機制)가 버튼하나 없는 말끔한 casing 속 전기회로로 숨어 버린 요즘 물건의 경우에는 허다한 일이지요. 하지만 물건의 생명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과 그 물건의 관계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고장이 났다 하더라도 그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굳이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얼마 쓰지도 않은 멀쩡한 물건을 쉬이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 아무나 사귀지 않듯, 사람들은 복잡한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합니다. 쉴새 없이 생산되는 수많은 물건 중, 사람들이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특정한 물건과 관계를 맺고 끊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입니다. 특히 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사람-물건 관계를 종결 짓는 마지막 폐기단계에서의 행동양식 및 가치판단이 구매단계나 사용단계에서의 행동양식 및 가치판단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연구하는 것 입니다.

이득 창출이라는 목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디자인의 영역에서 사람-물건 관계에 대한 이해와 조사는 주로 구매와 사용단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득 창출에 별로 도움될 것 없어 보이는 폐기 단계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맺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끊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산한 모든 인공물은 종국에 쓰레기가 됩니다. 사람이 만들고 쓰고 버리는 것이니 쓰레기에 대한 책임 또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잘 만들고 잘 쓰는 것 까지는 해냈으니 이제는 잘 버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 입니다. 이별이 추악하다면 아무리 사랑했어도 그 관계는 아름답게 기억될 수 없습니다.

졸업
관계적 맥락에서 보자면, 졸업은 학교와의 관계의 끝을 의미합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매우 상투적인 말이지만,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기대와 설렘’ 이라는 긍정적 기운과 ‘두려움과 불안’ 이라는 부정적 기운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졸업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가요? 졸업 후 사회에 나가게 된 것이 설레고 기대되나요? 아직 길이 정해지지 않아 두렵고 불안한가요?

사람마다, 성격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두렵고 불안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도 취업이나 대학원 진로가 결정되어 ‘내가 회사에서,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두렵고 불안하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업난’, ‘88만원 세대’, ‘3포 세대’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우리에게 더 이상 ‘보장된 앞길’ 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세대를 막론하고 보장된 앞길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사회적 여건상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할 만큼 젊은이들의 세상살이가 전에 비해 그리 수월하지 않은 것 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혹자는 ‘청춘이라면 조금 아파도 돼! 나도 네 나이 때는 힘들었는데, 봐! 나 지금 이만큼 잘 됐잖아’ 라고 말하지만 정작 청춘인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청춘을 되돌아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똑같이 고생했어도 결국은 잘 풀려 넉넉한 삶을 누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인지. 아직은 아프고, 힘들고, 두렵고, 불안한 청춘을 사는 내게 ‘살다 보면 해도 안 되는 것도 있어’ 라고 덤덤히 말하는 노희경 작가의 너무도 현실적인 글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는 요즘 청춘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한다.
“나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섣불리 젊은 날의 나처럼 많은 청춘들이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취급하는 것을 아는 이유다. 그리고 당부하건대, 해보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게 인생임도 알았음 한다. 근데 또 그 어떤 것이 안 된다고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도 알았음 싶다.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p.38>

노희경이 글 쓰는 수칙 몇 가지

1. 성실한 노동자가 되어라. 노동자의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킬 것.
2. 인과 응보를 믿어라. 쓰면 완성할 확률이 높아지고, 고민만 하면 머리만 아프다.

4. 디테일하게 보라. 듬성듬성하게 세상을 보면, 듬성듬성한 드라마가 나오고, 섬세하게 세상을 보면 섬세한 드라마가 나온다.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p.89>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에게 너무 염세적이었나요? 꿈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능력, 상황, 처지를 객관적인 시점에서 판단하여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이뤄가며 영민(英敏)하게 살자는 것이지요. 왜 우리가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나요? 성실하게 노동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추진하고, 섬세하게 작업하면 무엇을 하든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세가지 행동강령 중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내가 선배라는 이유로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 세가지 중 하나만 잘 지키며 사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좌절은 금물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뚝심으로 버티세요. 때로는 영민함보다 똥배짱이 통할 때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도 10년전 불안과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10여년전 입학했던 나를 비롯한 선배와 동기들이 겨우 걸음마를 떼어 아장거리는 시기를 거쳤으니, 여러분은 이제는 발걸음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 걸으면 됩니다. 망설여도 좋고, 넘어져도 좋고, 길을 잘못 들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뚝심 있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소소한 글 하나 제때 쓰지 못하고 게으름 피운 탓에 마감 직전까지 편집부 후배님들 마음 고생시켜 미안한 마음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공감:共感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나의 학창 시절은 그야말로 새로운 것 배울 것이 많아, 이리저리 쫓아 다니다 문득 졸업을 맞이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고 하나를 파고 들기엔 너무 철이 없었고, 일단은 흥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린 나이에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열정 만큼은 대단했습니다. 졸업을 할 때 쯤 교수님의 조언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이 다 되어가는 학생이 취업준비는 안하고 한량처럼 교보문고 영문서적에서 비비적 댈때, Into the Wild / Jon Krakauer 라는 책을 발견하고 부터 내가 생각한 나의 인생이란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책은 당시에 거의 이해는 못했었지만,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보게 되었고, 나중에는 영화로 도 볼 수 있어 순간 순간의 자잘한 감성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책꽂이에 꼽게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인생의 맥락을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나를 돌아 보게 되었을때, 교수님의 조언이 깊은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김준수는 남의 밥그릇을 뺏어 먹는 짓은 하지 않겠죠?” 적지 않은 충격적인 어감과 나는 아닐꺼라는 기대감을 보여준 이 한마디는.. 몇년간 머리 속에서 아침 종처럼 울려대며 잠을 깨우고, 좌절할때는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강력한 영양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세상 속 나라는 상대적 작은 존재에 대해, 내가 어떻게 나라는 존재로 독자적인 존재가치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아마 대학생이 된 이후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나의 인생 프로젝트 입니다. 이런 좋은 프로젝트를 주신 나의 선생님은 구체적인 방향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 보다 더욱 값진 보물을 선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리저리 방황하고 술도 마시고 실수도 많이 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많은 나의 열정으로 인해 많은 경험과 정보를 입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주체로는 물질이 아니라 항상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 정의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만날땐 다른 사람의 정의는 무엇일지 궁금해 하고 하나라도 얻어 들으려 했을 때 그 사람의 낭만과 지식 그리고 내가 배울점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동기들에게도 너무 감사한 것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과 생각 그리고 판단 기준들을 배울 수 있었고 나보다도 훨씬 좋은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인프라는 보잘 것 없었던 그런 겉 모습 보다는 다양한 경험의 선생님과 다양한 방향을 기대하던 동기선후배들이 함께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 솔직한 말을 뱉어낼 수 밖에 없는 내 모교라는 환경이 내 인생에 몇 안되는, 하길 잘한 결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도 친절하게 끌고가서 챙겨 주고 술 먹여서 솔직한 생각을 토하게 만드는 이곳이 아마도 세상에 나가기 전 나를 여물게 하고 단단히 준비할 수 있게 해준 최고의 마지막 관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이라는 것이 내 턱 밑까지 다가 왔을 때 느꼈던 불안감과 좁은 공간에서 나와 하고 싶은 것을 이제 진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묘하게 마음속에 공존했고, 뭐든 닥치는 대로 멋지게 해내겠다는 자신감 또한 실패했을때 ‘돌이킬 수 없겠지?’라는 초조함과 함께 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살면서 뼛속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들 중 몇몇이 죽음을 맞이했었습니다. 함께 하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던 나는 심한 절망감과 자괴감을 가지게 되었고, 순간 앞을 향하기 보다는 내주변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 가족, 내 사람들에게 질척대며 물어보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열어 먹은 초록색 술뚜껑 들이 쌓아놓고 보면, 술잘마시는 사람도 놀랄 만큼 술에 꽝인 내가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분비해내고를 반복한 양이었습니다. 주변의 걱정이 늘었고, 이러다 내가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또한 힘들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세상을 비관하기 보단 결국 나를 바로 세워야겠다는 목표 의식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죽는것 보다 좋은 것이 살아남기 입니다. 그 바닥을 생각해보면 지금 살아 숨쉬는 것 만큼 감사한 것이 없었고, 어떤 일이든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었던 것이 졸업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2006년 졸업 때 간담회를 처음보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했습니다. 당시에는 비록 저의 한마디가 어떤 의미였을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민망하고도 솔직한 한마디 였던 것 같습니다. 한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많이 배웠다고 말하니 아직 배울께 많아 보이는 구나.”
세상은 배울 것이 많고 들어야 할 것이 많은 곳 입니다. 여러분의 판단은 지구라는 큰 환경에 상대적으로 보면 티끌도 안되는 작은 생각입니다. 나를 놓고 내 모든 감각을 열어 받아 들였을 때 세상의 부분들이 이해가 되고, 어디에 놓여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 입니다.

저는 졸업생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있게 세상을 홀로 달려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까?” 많은 일들에 고개를 숙이고 받아 들였을 때 더욱 많은 일들에 고개를 들고 당당해 질 수 있을 것 입니다. 겸손해지고 부딛히고, 결국 얻어내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생각할 만큼 자신있고 힘차게 사회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의 윤리성

라 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 1982)현상 설계에 당선되어 디자인의 전권을 위임받은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의 기본적인 의도는 새로운 도시적 전략, 즉 새로운 ‘유형’의 도시공원을 정의하는 것이자 동시대적인 ‘문화의 구축’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서로 다른 시스템들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라 빌레트의 계획안에서 영화적 산책(cinemic promenade)을 따르는 여러 소정원들의 설계를 건축가, 조경계획가, 예술가, 철학자, 작가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위임함으로써 도시 규모의 문화적인 구축에 이들이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철학 분야의 적임자로써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공식 의뢰를 받아 건축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츄미는 이후에 데리다를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에게 소개하게 되었고 그 만남 이후에 아이젠만의 건축으로 1990년 디자인된 렙스톡 파크 마스터플랜(Rebstockpark Master Plan)에서 그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즉 강직한 기하학적 입체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유연하게 ‘변형된’입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물질(matter)’을 파열적이고 연속적인 것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최소단위를 점이 아닌 주름(fold)으로 보았다는 관점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오브제보다는 이벤트가 중요해진 동시대에 정적인 도시 계획에 반하는 것으로서 계획하였고 정보화 시대의 도래에 걸 맞는 공공건물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기념비성을 벗어나 각각의 부분들이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가져야 하며 복잡성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를 가져야 하며 동일한 위층에 속한 서로 다른 형태들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과 맺고 있는 미학적/상징적관계, 건물이 대지와 맺고 있는 직접적인 관계, 그리고 프로그램상의 경험 등 도시 내에 위치한 주요 건물이 따라야 할 세가지 원칙(즉 무형의 내용을) 과거와 미래의 공생을 가능하게 할 복잡한 공간적 통일체로써의 건축을 제안하였다.
201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전시의 주제는 우리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공통기반(Common Ground)인데 그 방향은 독특한 능력뿐만 아니라(공동의 역사, 공동의 열망, 공동의 문제들과 이상에 대한 관념 속에서 엮어진)다양한 사고들의 풍부한 지속성으로 만들어진 건축역사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에서 모든 것은 땅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참고하는 시스템이며, 그것에 제일 먼저 표시를 하고, 우리의 집을 지탱할 기반을 판다. 땅 위에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설정하는 선을 그린다. 오늘날 땅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이전처럼 직접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장소와 우리가 사는 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땅은 여전히 기본이 된다. 물리적으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단지 인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안과 밖, 공동체속의 개인을 정의한다. 세상은 점점 더 개인들의 욕구대로 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의하기 힘든 공동체에 대한 사고들을(도시적인 삶, 대중, 공동체) 발견한다. 우리는 여전히 도시에서 집단적인 정체성(대규모 공공시설들, 시내, 광장, 공공극장)을 보여주는 것을 원한다.

물론 공통기반은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경계의 안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사고들을 가리킨다. 이 주제는 어떻게 이러한 공유된 인식들, 고민들 그리고 기대들이 좀 더 올바른 방향성을 갖도록 할 수 있는지 고려하도록 이끈다.
건축 비엔날레의 맥락 속에서 공통기반은 공유되는 공간과 생각들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역사, 경험, 이미지, 언어의 풍부한 기반에 대한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명확하고 잠재적인 재료의 켜들이 우리들의 기억을 형성하고 판단들을 결정한다.
공통기반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사회에 대한 집단적인 열망들과 생각들의 물리적인 표현들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드는 주제들과 엮일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우리가 공유된 역사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어 우리가 건축적인 협업의 특징과 그것들의 공통적인 과정에서 보여지는 놀랄만한 잠재성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건축 특히 공공성을 가진 건축은 단순히 건축가 개인의 주관적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방면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윤리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완공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표면적으로는 동대문 프로젝트가 가지는 역사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환유적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 컨셉이었다고 하지만 과연 동대문이 본래 갖고 있었던 문화적 맥락과 맺고 있는 미학적/상징적 관계나 대지와 맺고 있는 직접적인 관계, 그리고 프로그램상의 경험 등이 고려되어서 과거와 미래의 공생을 가능하게 할 복잡한 공간적 통일체로써 설계되고 또 시공되어지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과연 현장에 한번도 온 경험이 없는 건축가가 얼마나 그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디자인했을까 하는 면에서 단지 스타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에만 현혹되어 또 하나의 디자인 정책의 실패작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괜한 기우로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프로젝트와 여러 방면에서 대조되는 건축안이 재미건축가 우규승씨가 설계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당선작이다. 친환경적이고 지하공간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로 랜드마크적 요소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건축가는 뉴욕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센트럴파크를 예로 들었다. 즉 인지도는 높이가 아니라 장소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것이고, 사람들의 기억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의견일 수 있는데 우리는 최고나 최대, 최초 등을 내세우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아시아 최대 규모, 세계 최초 등의 수식어를 앞에 붙이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실제로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몇 개나 있겠는가. 건축에 있어 기념비적인 요소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기념비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면 본래 건물이 가져야하는 요소에 소홀해질 수 있다. 그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고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높이 평가 될 만하다. 그는 지하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에 따라 야기되는 문제점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디자인은 주관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윤리성의 기준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공공성을 띠고 있다면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에서 분명히 윤리적인 책임감은 요구되어지며 우리나라와 같이 공청회를 통한 의견 조율의 과정이 힘든 상황에서 더더욱 요구되어지고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DESIGN 2013 DESIGNER 2013

디자인 분야의 세분화/다양화 가속
저자가 디자인을 입문했던 20년 전에도 디자인 분야는 성숙되어 있었다. 제품디자인, 시각디자인, 자동차디자인, 패키지, 패션, 금속, 도자, 건축, 인테리어, 가구, 환경 등 여러 디자인 전공 분야가 있었다. 하지만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 디자인 영역은 훨씬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었다. 디자인경영, 브랜드디자인, 에코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 인터랙션디자인, 컨텐츠디자인, 게임디자인, 캐릭터디자인, 사용자경험디자인, 애플리케이션디자인, 융합디자인, 서비스디자인까지, 지금이야 말로 온 세상이 디자인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골 동네 작은 미용실에서부터 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는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안 들어가는 분야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이다. 이런 시대에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업하는 학생들이 디자이너로서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예전보다 그 선택의 범위가 넓다고 고무적으로 봐야 할지 선택할 것이 너무 많아서 더 어렵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디자인 패러다임은 보다 광범위하면서 세분화하고 있고 그 대상은 물질에서 비물질까지 확장되어 간다라는 점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선 디자이너의 역할
십 년 전 저자가 모 기업에서 디자이너로써 근무할 당시에 기업에서는 디자인을 오로지 하드웨어로만 생각했었다. 제품이 가지고 있는 조형이 중요했고 컬러 및 소재들이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라는 분야도 물리적인 사용성(Usability)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개선하는 것이 디자인의 주요 업무라고 정의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중에서 정해진 지극히 적은 영역에서만 일을 담당했었다. 디자이너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상품 명세서라는 문서를 상품기획 부서로부터 전달 받아야지만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디자인한 결과물을 개발 부서에 전달하고 나면 디자인 업무가 종료되는 것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기구 구현이 어려울 경우 디자인 도면을 수정하는 몇몇 업무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디자인 업무는 종료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제품의 스타일만 멋지게 하는 디자인이 기업의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디자인의 역할은 진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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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디자이너 역할 확장
위 그림은 모 기업의 제품 개발 단계와 그 동안 디자이너의 업무 참여 영역이 얼마나 더 확장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가 상품기획 문서를 받고 그 문서에 명시된 스펙 내에서 조형을 아름답게하기 위한 외관 디자인만을 담당 하던 때를 디자인 1st 세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개발 구현에 대한 공학적 이해 부족으로 디자인 외관이 양산되었을 때의 외관과 큰 차이가 있음에 문제를 발견한 이후에는 디자이너들도 개발의 공학적 지식의 이해를 동반한 디자인을 요구 받던 시기가 있었다. 사출물의 수를 줄여 금형의 개수를 줄이는 디자인, 양산 및 조립을 쉽게 하는 디자인, 접이 방식의 제품디자인으로 컨테이너 공간을 줄이고 운송을 용이하게 하는 디자인 등 제조 및 운송에 최적화된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으로 뽑던 시대를 디자인 2nd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그물형 제품 양산 방식이었다. 즉 다양한 플랫폼 그리고 다양한 형태/색상/소재를 가진 제품을 마구 생산하고 시장에 마구 내어 놓아 물건을 팔던 시기였다. 다양한 사용자 층을 타겟으로 다양한 제품을 단기간에 많이 제공하면 그 중에는 팔리는 제품이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곳 수익률 저하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 기업은 다량의 제품디자인이 아닌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형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바로 애플의 제품디자인 전략을 따라 한 것이다. 똑똑한 제품하나를 공들여 잘 만들어 놓고 시장에서 성공 시키면 이후 후속 모델은 비슷한 디자인 랭귀지로 다양화 시켜서 몇 년을 성공적으로 팔 수 있다라는 전략인 것이다. 그 전략은 애플 사례처럼 이 기업에게도 성공적이었고 예전보다 플랫폼과 제품의 수가 많이 줄었다. 많은 모델을 디자인할 필요가 없기에 많은 디자이너 보다는 똑똑한 한 명의 디자이너가 중요한 시기가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회사는 슈퍼디자이너의 중요성을 실감하였고, 회사 내에서 슈퍼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집중 지원하였다. 이들은 시장을 선도하고 마켓을 창출할 수 있는 최고 퀄리티의 디자인으로 상품의 플랫폼까지 제안할 수 있었기에 상품 기획자들 보다 먼저 상품을 제안할 수 있는 역할도 하게 된 이 때를 디자인 3rd 시대 라고 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타 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권한을 디자이너가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역할이 더욱 더 커졌다. 제품이나 상품을 제안하는 수준이 아닌 새로운 사업에 대한 제안도 디자이너가 하는 역할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 기업의 경우에는 항상 5년, 10년을 내다보고 사업을 만들어 가는데 그렇기 때문에 불분명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전망과 제안이 항상 필요하다. 즉 미래 트렌드를 예측하고 사용자의 경험가치를 예상하여 미래 시나리오를 디자인하고 제안하는 것이 중요해 졌다. 디자이너가 제안한 많은 디자인 결과물들은 미래 사용자층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가능성을 검증 받고 난 뒤 CEO의 최종 의사결정 후 새로운 사업 새로운 플랫폼 제품으로 개발되기도 한다.

슈퍼 디자이너 makes 세계 1등 디자인 makes 세계적 기업
슈퍼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이는 곳 국내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다. 최근 발표된 브랜드 리서치 회사 ‘Brandirectory’의 2012년도 글로벌 기업 브랜드 가치 조사 리포트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인 Cocacola, BMW, Toyoda, Sony 등을 제치고 세계 6위로 평가되었다. 이는 한국뿐 만이 아닌 아시아 기업으로써는 이례적인 결과이다. 이는 디자인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좌뇌사고에서 우뇌사고로 바꾼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삼성전자는 제조업 기반의 기업이기 때문에 매우 큰 부분을 하드웨어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천천히 그 포트폴리오를 소프트 중심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제품 제조 부서 이외에 서비스 개발 부서를 두고 있으며, IT 기술 중심 산업에서 의료/바이오/에너지 산업,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지향하는 산업으로 그 사업을 변경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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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패러다임 변화 (有形→無形, 西洋→東洋)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향후에도 디자이너는 우리들의 생활을 더욱 더 향상 시킬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소위 브랜드 가치 10위 이내의 기업들은 기업의 포트폴리오로서 무형의 상품을 가지고 있다(Google/Microsoft). 그리고 이전에 그렇지 않았던 기업들(Apple/IBM)도 유형의 상품에서 무형의 상품으로 그 포트폴리오를 변화하고 있다. 기업의 상품을 변경하지는 않더라도 유형 상품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무형 상품인 서비스와 컨텐츠 상품을 개발하고 이것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용자들이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컨텐츠/서비스로 이루어진 에코시스템을 만들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전략 모델은 사용자 스스로 참여하게 하고 즐겁게 사용하게 하며 사용하고 난 후 최상의 경험을 갖도록 함으로써 이 생태시스템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의 기업 또한 선진 기업들의 포트폴리오 및 비즈니스 전략을 벤치마킹 하면서 그들의 사업을 모방하고 있다.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동일한 사업구조를 가져 가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회사가 가진 역량에 따라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택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이나 미주 지역의 선진 국가에서는 산업사회를 통해 이미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었기 때문에 지금 그들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만져지는 상품 보다 그것들을 둘러싼 서비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는 2012년 이 시점에서도 산업사회를 겪고 있다. 십여 년간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도 몇 개 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 빈곤을 탈피하지 못한 곳이 많으며, 동남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의 사람들은 아직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계 하드웨어의 공장 역할로 수 많은 상품을 생산해 주고 있는 중국으로 인해 세계는 인플레이션 없이 보다 풍요로운 물질적 소비를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는 동남아시아로 확장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서는 물질의 생산자 역할만 하였으나 최근에는 이들 지역의 급격한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미국을 제치고 최대의 소비 지역으로 급 부상 하였다. 이것이 선진 기업들이 이 지역을 공략하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 패러다임의 중심이 이제는 서남아시아를 포함해 가고 있다. 인도와 두바이가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 인구와 맞먹는 인구를 가진 인도는 이런 면에서 기업들의 새로운 먹잇감인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우수 인재들 중에는 인도인들이 참 많으며 국내 모 기업에도 인도 IT 전문가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진 시장을 벤치마킹 하면서 따라가는 것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는 중국과 인도를 견제해 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럼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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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를 알자 그리고 미래를 준비 하자.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자. 세계 패러다임의 흐름을 이해하자. 내가 갈 곳을 타겟팅 하자. 그것에 맞는 맞춤 준비를 하자.’ 인생은 아주 길다. 지금 여러분은 마라톤의 42.195km 중에 이제 겨우 10km를 달렸을 뿐이다. 이제 호흡 조절하는 방법만을 배웠을 뿐이고 앞으로 달려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인생을 즐거움이 없이는 오래 달리지 못 할 것이다. ① 제일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없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는 시장에서 돈을 못 벌 것 같은가?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감사하라. 내가 그것을 시작하면 그 분야에서 나는 선구자가 될 수 있으니까. ② 세계 변화의 패러다임을 이해하자.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세계 패러다임이라는 큰 배에 얹을 수 있다면 이는 보다 쉽게 수익으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③ 내가 갈 곳을 타겟팅 하자.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실천해 보라. 여러분의 성공 확률을 아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는 그에 맞는 준비를 하자. 여러분이 만약 제품디자인을 하고 싶고 큰 시장인 중국에서 기회를 잡고 싶다면, 지금 당장 토익 점수를 위해 매달릴 것이 아니라 중국어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면, 모 기업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보다 중국어를 잘 하는 사람의 인사 가점이 더 높다. 불과 2~3년 전부터였다.

여러분이 뛸 무대는 지방도 서울도 한국도 아닌 글로벌 무대이다.

고령화와 유니버설디자인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황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을 정도로 장수 사회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 노인인구 비중이 7%를 웃돌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에는 고령사회(14.3%)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8%)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데 115년 미국은 73년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18년 만에 고령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100년 넘는 기간을 통해 진행되어온 고령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기간에 진행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응 할 수 있는 복지나 사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올해 6월 23일자로 우리나라의 인구가 50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20-50’(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자 인구 측면에서도 강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먼저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1987), 미국(1988), 프랑스·이탈리아(1990), 독일(1991), 영국(1996) 등 주요 6개 선진국뿐이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적 구매력 평가 기준 국민소득에서도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이런 좋은 소식은 향후 30년간 생산 가능인구가 일본, 독일, 한국 순으로 가장 많이 감소할 것이라는 좋지 않은 전망과 함께 전해졌다. 특히, 2045년부터는 인구가 5000만명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고령화 시대의 대비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65세이상에 대한 부양 비율은 2010년 15.2명에서 2030년에 38.6명에서 2060년에는 80.6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층이 38.2%나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평균 수명이 늘었다는 것은 단순히 고령화된 상태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생주기의 진행 자체가 더 긴 시간 축에서 진행되어 노화 역시 늦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 과거 고령자로 분류되던 65세 이상 연령 인구에서 이제는 노화 징후가 미미한 상황이다. 이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고령화 인구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계층을 잠재적 생산 활동 인구로 볼 수 있다면 고령화사회에서 사회적인 부담을 줄이는데 큰 기여가 될 것이다. 다만, 이들이 사회 생활과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환경이 갖춰 질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이 잘 갖춰진 여건이 필요하다. 씨티그룹은 2050년 우리나라 구매력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07,000 달러로 세계 4위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골드만삭스는 205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9만 달러로 세계 2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나, 고령화 시대에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령 인구의 생산 활동 참여 및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않고 스스로 생활 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앞으로는 현재처럼 고령자가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는 사회구조가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될 것이다. 한편,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뿐 아니라 이들을 돌봐야 할 사람도 함께 늙어가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을 노인이 노인을 보살핀다고 해서 ‘노노부양’이라 부른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살피는 사람을 위한 유니버설디자인도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다.

유니버설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은 세가지의 측면에서 그 대상 범위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장애이다. 즉, 일반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나이의 축이다. 어린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인을 지나 고령자까지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상황의 축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부터 특별한 상황 (어둡거나, 시끄럽거나, 위급하거나, 춥거나 등등)에서도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는 성인일지라도 장애적 상황에 접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촉감에 의존해 라디오를 조작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 사용자는 시각 장애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고령화는 장애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을 살펴보는 것은 유니버설디자인의 접근에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고령자는 시,청각 등 감각측면, 기억, 판단 등 인지적인 측면 및 힘, 정밀성 등 신체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인 장애 요소를 갖고 있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 청각, 인지장애 등 복합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유니버설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의 요소를 모두 갖춰야 한다. 론 메이스가 제창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7대 원칙은 좋은 디자인이 갖는 어떤 요소도 깎아 내리지 않고 다만 더 일반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7가지 원칙은 1. 공평한 사용성: 어느 그룹의 사용자에게도 유용하고 판매할 만한 디자인 2. 사용의 유연함: 넓은 범주의 개인적 선호도 및 능력을 충족시키는 디자인. 3. 간단하고 직감적인 사용성: 사용자의 경험, 지식, 언어능력, 집중력 등에 제한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 4. 감각정보 이용의 용이성: 환경의 열악함이나 사용자의 감각능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정보를 사용자와 교환할 수 있는 디자인 5. 에러에 대한 관용: 실수나 의도하지 않은 조작에 대하여 위험을 최소화 하는 디자인 6. 신체적 수고를 줄임:효과적이고 안락하며 최소의 피로를 요구하도록 하는 디자인 7. 크기와 공간의 적정성: 사용자의 신체 크기, 자세, 움직임을 고려해 적정한 크기와 공간을 제공하는 디자인이다. 일본에서 제안된 유니버설디자인의 평가기준 PPP (Product Performance Program)는 위에 언급한 7가지 요소 외에도 내구성과 경제성의 배려, 품질과 심미성의 배려, 보건과 환경의 배려라는 3가지 측면을 더하여, 좋은 디자인이 가지는 고려 요소들을 갖추어야 좋은 유니버설디자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산업 영역으로서의 유니버설디자인
전술한 바와 같이 유니버설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에 덧붙여 장애, 나이, 상황을 고려한 더욱 범용성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좋은 디자인보다 더 구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때문에 유니버설디자인은 좋은 것을 해야한다하는 류의 선언적인 측면이 강하고 산업영역에서 활성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비용에 대한 제약이 적으므로 정부 주도의 공공 시설물이나 건축물과 관련한 법률의 제정 등이 선행되고 있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으려면 이 영역이 상업적인 산업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일상 생활 속의 제품, 서비스, 환경이 유니버설디자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이 그 이전에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위한 개념이었던 Barier free Design, Adaptive Design, Lifespan Design 등 보다 더 발전된 개념으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은 그 것의 범용성에 있다. 범용성이 있다는 것은 장애인이나 고령자등 소외된 계층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서 산업적인 영역에서도 스스로 독립적인 시장을 만들 수 있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제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물의 장애인용 언덕길은 휠체어를 위해 고안되었지만 휠체어 뿐만 아니라 자전거나 바퀴가 달린 트렁크 등 어린이나 일반인의 사용빈도가 100배 이상 된다는 점에서 범용성(universality)이 높게 이용되고 있다.

유럽 전기통신 표준협회의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 (ETSI EG 202 116 Human Factors (HF); Guidelines for ICT products and services; ‘Design for All’) 에서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산업영역에서의 범용성을 고려하여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의미를 기술하고 있다. 이를 소개하면,

1. 시장의 확대 : 고령자 층이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구매력이 높은 계층이다. 이들은 당연히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을 선호한다. 성인의 30-40%는 첨단 제품의 사용상의 어려움 때문에 테크노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때문에 신제품의 구매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고령자 및 정신지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소비자에게 사용하기 쉽고 에러를 유발하지 않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잠재적인 큰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가 들어간 제품은 최소한의 비용만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작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의 구현이 가능하다.

2. 마케팅 범위의 확대 : 기업의 주력 제품에 특별한 계층을 위한 기능을 포함시키는 것은 제품의 마케팅력을 향상 시킨다. 초기 휴대폰의 볼륨 조정 기능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능이었으나 소음이 심한 곳에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기능으로 소구되었다. 핸즈프리 옵션이나 이어폰 기능 또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일반인들에게도 상업적으로 성공함에 따라 휴대폰의 기본적인 기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3. 종합적 비용의 감소 : 장애를 고려한 디자인이 종합적으로 비용을 감소시키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탈 수 있도록 외부에 시각, 청각적인 신호를 제공한 것이 결과적으로 엘리베이터 수를 줄여도 되는 비용의 감소 효과를 가져왔다.

4. 고객 충성도 향상 : 소외계층을 고려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 소비자들에게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높은 고객 충성도를 끌어 낼 수 있으며 버즈 마케팅(입소문 마케팅)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5. 숨은 비용의 감소 : 기업은 제품의 세팅과 사용과 관련해 고객서비스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의 제공은 이런 비용을 현격히 감소시킬 수 있다.

6. 잠재적 기술 확산 :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 된 기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반인들에게 확산될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첨단 인터페이스는 미래의 일반인을 위한 인터페이스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7. 시장 진입의 용이성 : 미국이나 유럽 등은 장애인을 위한 기능들을 법령으로 정해 결과적으로 시장 장벽을 만들고 있다. 미국 체신청은 시각장애인이 이용 할 수 있는 우표 자판기만을 구매하고 있는 등 정부로 조달되는 제품들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을 통해 무역 및 시장 장벽의 극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리
고령화 사회의 도래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하고 있다. 고령자는 더 많은 기간을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상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제품, 서비스, 주거환경, 공공 시설물 등 생활 속의 환경들이 고령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유니버설디자인이 일상 속에서 이뤄져야한다. 누구나 가족 구성원 중에 고령자가 있고 누구나 나이를 들면 고령자가 된다는 점에서 고령화 측면에서의 접근은 학생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더욱 체감적으로 와닿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접근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멋대로 싸이가 외친다. “소리 지르는 네가 참삐온”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고 몇 년이 흐른 2000년대 초반,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예전에 듣던 ‘새됐어’라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려왔다. 어린 시절에도 한 번 써보지 못했던 말이라 마치 딴 세계의 용어처럼 낯설기는 했지만, ‘완전히 새 됐~어’라고 ‘됐’을 끌어올리고 급히 내려가 버리는 특이한 높낮이가 귀를 잡아당겼다. 헌데 전곡을 잘 들어보니, 이건 완전히 날라리의 노래가 아닌가? 대놓고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길 만한 노래는 아니었다. 가수는 당시 신인이라는 ‘싸이’. 그때쯤에는 싸이로 시작하는 다른 말이 별로 없어서였는지 아주 쉽사리 그것이 ‘싸이코’를 줄인 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 왠 싸이코가 유혹적인 저속함을 무기로 단어와 곡조를 한 대목 만들었구나. 텔레비전에서 그 싸이코를 마주쳤을 때에도 단번에 그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곁눈과 좀 비열해 보이는 미소, 기름진 얼굴을 보면서, 그리고 나이트클럽 친구라는 청담동호루라기를 통해서 내 머리 속에 싸이라는 인물은 규정되었다. 최소한 겉으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통속적인 저질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저속한 것은 좀 끌리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가진 그런 측면이 발동한다고 할까. 무관심보다는 여러 시선을 의식한 윤리적 근엄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어서 내 직업과 일치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당시의 한국의 노래들은 단조롭거나 어색하였다. 심지어는 경쾌한 백댄서들을 볼 때에도 그들의 찌푸린 얼굴과 경직된 동작이 거슬리고 있던 참이었다. 간간히 접하던 AFKN 소울트레인의 유연한 몸놀림과 달라서 ‘저게 뭐야’라고 한심한 생각이 들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춤을 출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비슷한 막나가는 ‘자유로움’을 보니 살짝 두렵기도 하였다. 아무일이라도 벌릴 수 있을 듯 엿보이는 자유로운 내면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버려 균형이 깨진 불안감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싸이는 우리 주변의 날라리이면서 제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져 더 두려운 ‘그쪽’이었다.

그 다음 싸이를 기억하는 것은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들은 ‘챔피언’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시간이 좀 흘러서인지 2002년 월드컵의 광장놀이를 거친 후 만들어졌다는 싸이의 노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그 노래는 건전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절 오랜 동안 유행가 카세트테이프의 맨 뒤에 자리잡고 있던 ‘건전 가요’보다 훨씬 더 건전하였다. 언제나 주저 없이 패스트포워드를 눌러 스킵해버리던 맨 뒷곡 ‘건전 가요’와는 달리 내 마음을 아주 건전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도 맨 앞자리에 서보지 못한 우리에게 ‘챔피언’이라니. 얼마나 고마운 단어였던가? 건전한 가사로 나의 도덕적 경계심이 무너지니 훨씬 더 많은 것이 들리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제자리 뛰기 춤은 뛸 줄 모르는 나에게 나도 한 번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싸이가 ‘흔들어’를 소리 지를 때 튀는 땀방울과 거친 목소리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정말 에너지 그 자체였다. 이제 그 자유로움은 내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와 있었다.

그가 내지르는 ‘챔피언’은 ‘챔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참피온’, 아니 실제 싸이의 발음에 가깝게 써본다면 ‘참삐온’이었다. 대선이 있던 2008년 초 당시 당선자 캠프의 고위직에 있던 어느 분의 ‘오우뤠-ㄴ지’ 파동이 있었다. 어느 대학 총장이셨던 그 분은 오랜 교육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영어교육의 폐해를 지적하며 새로운 목표치로서 영어 단어를 몸소 원어 수준으로 발음하셨다.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그 분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나는 지금도 그 분이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분은 원어에 가깝게 고품질로 발음하고자 하였는데 싸이는 영어 단어를 더 우리말처럼, 그리고 그답게 저(품)질로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어린 시절, 원서는 언제나 영문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오랜 고전이 왜 원서라 불리지 않는지 언제나 궁금했다. 그런데 싸이는 당연히 원어가 존재하는 그 영어 단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맘대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 원어에 가까운 발음이 나올라 치면 ‘와’또는 ‘우’비슷한 탄성을 질러 발음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던 그런 시기였다. 싸이의 머릿속 에는 찾아보고 추종해야 하는 (근)원이라는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와 달리 저 멀리 계신 근원에 치여 살던 나에게 그것은 반란이었고 통쾌함이었다. 책이나 자료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 우리는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원서 하나가 그 품질과는 무관하게 영어권에서 쓰였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보물이 되고 그 내용을 신봉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로는 편향된 번역 말 한 마디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려고 글쓴이의 의도에 추정과 상상을 버무리면서 그와 생각을 일치시키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다. 우리 환경에서 우리 음식을 먹고, 우리말을 쓰면서도 우리가 기대는 가치의 기준은 대부분 바깥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싸이는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남의 시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들어진 아이돌은 ‘다른 사람 신경 쓰기의 극치’인 반면, 진정한 아티스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한다. 2012년이 되어 싸이가 세계를 향해 터뜨린 강남스타일은 바로 그런 제멋대로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것이 어떤 절묘한 지점에서 환호 받는 최상위권의 모습을 만들었는지 분석하기보다, 나는 그저 내가 목격한 싸이의 출발점이 ‘제 멋’대로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싸이 성공의 한 축이라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자 한다. 얼마 전 어느 학생이 한국적이라는 것을 고민하면서 일본은 고유의 것이 보이는 반면 우리의 것은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침 방문한 일본인 디자인 선생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 답은 ‘자기의 것을 하라’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의 스승이신 민철홍 선생께서 오래 전 말씀하셨던 ‘지금의 네가 하는 것이 바로 한국적’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별도로 ‘만들려’하지 말고, 그냥 우리 것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 우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우리가 뿌듯함을 느낄 때까지 할 일을 잘하면 그때 우리만의 멋이 천천히 배어나온다. 안상수 선생이 만든 ‘멋 짓’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디자인을 대체할 우리말이 무엇일지 고민한 결과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언젠가 ‘번역된’이라는 수식어까지 떼어버릴 수있기를 바란다.[ref]그것을 번역했다고 하지 말자. 우리가 우리한테 만든 말을 새롭게 만든 것이지. 번역은 여전히 우리와 는 다른 근원을 생각하게 하고 원서를 찾아 헤매게 한다. 남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것은 인류가 지식공동체를 통해 성장해 온 것을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을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막 몸 안에 집어넣는 일이 우리 밥 한 그릇을 침과 섞어 잘 씹어 삼키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집 앞의 마당만 잘 쓸고 닦아도 몇천년 전 멀리 서 온 철학 못지않은 삶의 원칙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론을 정립하고 전파할 철학자가 아닌 이상 그 정도면 충분하다.[/ref] 우리 자신의 행위가 우리말로 그대로 탄생되는 일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디자이너들은 싸이가 했던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을까? 남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저질이라고 욕하고, 때로는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해도 자신의 디자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멋지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ref]창의성은 당대가 평가할 수 없다. 창의적이라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평가자들의 이해가 필요한데, 이미 그러한 이해의 단계로 넘어서는 순간 창의적이었던 그것은 이미 기존의 관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관찰할 때 호오도온 효과로 말미암아 대상이 변하면서 더 이상 그 대상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창의성의 결과물은 그것의 탄생 시점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속한다.[/ref] 아니면 얼마 전 큰 이슈가 되었던 ‘슬래비쉬드 카피’의 사건처럼, 마케팅의 이유가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몰상식한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예술가들이 중요한 이유는 싸이가 자신에게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깨달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싸이는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내면에 기초한 자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한 결코 혼이 들어간 작품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혼이라는 것을 잡아다가 만들어진 것에 넣고 그것에 따라 매번 자신의 기준을 수정하는 역전된 방식으로는 결코 작품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ref]싸이의 3기(현재가 2기?)가 기대되는 것은 대중의 환호라는 괴물에 올라타고 있다는 점이다. 공연장 속에 싸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닌, 전 세계의 잘 드러나지 않고 언젠가 돌변할 수 있는 괴물. 그것을 타는 것에 몰두해서 언젠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않는 싸이가 되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괴물을 타고서 한 판 멋지게 놀아보고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괴물 타기는 예술가만 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인생에 한두번 정도 있지 않을까? 언제나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당연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ref]

최근 뉴스에 따르면 신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영국의 집사들이 중국, 중동, 러시아 등의 신흥국들의 부호들을 겨냥하여 양성되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정 중에 그들은 부츠를 닦는 법, 식사 예절 들을 포함하여 각종 필요한 태도와 기법 들을 배우는데 이는 갑자기 획득한 부를 통해 상류층이 된 사람들의 부족한 예의범절을 주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예의범절이라는 것은 영국 등 서구의 문화가 바탕이 된 전형적인 키치로서 이질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키치도 시간이 흐르면 그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지만 집사 수입(輸入)에서 드러나는 그것들은 상류층 소수의 정립되지 못한 취향에 끼어들은 것일 뿐이므로 그 지역의 대다수가 차지하는 문화와는 매우 오랜 기간 상충하게 될 것이다. 문화는 상호 교류를 통해 이질적인 것이 이식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입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고 오히려 문화에 생동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 문화권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외래에 대한 동경이고 외부의 기준으로 내부를 재단하는 것이라면 그 문화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천박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시선이 혹시 외부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튼실한 문화는 현재의 나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성으로부터 나온다. 외부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깃들은 주체가 말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싸이를 누군가 2급 문화라고 폄하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그의 에너지가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젊은이들은 누구도 싸이를 싸구려라고 생각하지 않고, 싸이를 싸이코로 경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싸이코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런 면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미 스스로를 참삐온이라고 생각할 태도가 되어 있으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기준으로 스스로 완성하면 될 일이다. 나의 세대가 갖지 못했던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려운 시절 이후 몇십년이 걸려 이제는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직 완전히 홀로서기를 할 만큼 자기 사랑이 충만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잡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의 시간은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도그마에 갇히지 마세요. 타인의 주장이 만들어내 소음이 당신 내면의 소리를 잠재우게 두어선 안돼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의 직관을 따라갈 용기를 갖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내면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른 것은 전부 부차적일 뿐이에요.”

이렇게 유명인사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어쩌면 나의 세대가 뭔가 설명할 때마다 갖게 되는 강박관념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런 것들이 여전히 나의 고민이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