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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 : 2015 국제디자인총회

During October 17 ~ 21, 2015, IDC(International Design Congress) was held in Gwangju. Big theme signifies ‘connect’, to connect through design. In 2015 Gwangju Design Biennale planned the theme ‘Sinmyeong(fun)’ by dissolving into sharing and participation. If scientific various forums are based on international exchange under the theme ‘connect’, the researcher considers that Gwangju, foreign designers wish to actually experience, was connected in some degree through visiting pureungil park, National Asia Hall, and 2015 Gwangju Design Biennale exhibition hall.

지난 2015년 10월 17일-21일까지 광주광역시에서 국제디자인총회 IDC(International Design Congress)가 개최되었다. 큰 주제가 connect순 우리말로 하면 이음이었는데 디자인을 통해 연결시켜준다는 의미로 대회를 유치한 광주시 입장에서 보면 국제적으로 광주시를 디자인을 통해 연결시켜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한 디자인지향적인 방향의 정책을 국제적으로 더욱 붐-업시키고자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대회를 오랜 기간 준비해온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는 정도의 의미는 미약하고 만족스럽지 않을 듯 했고 외국의 디자인관련 전문가들이 광주시를 방문함으로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가지며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광주시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분야에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 여러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했었고 그 중에 특히 cultural tour 문화탐방에서 도시 건축 실내공간과 관련해서 광주시의 새롭게 들어서는 아시아문화전당 Asian Cultural Center와 푸른 길 공원답사 및 20115광주디자인비엔날레방문을 기획하였다.
우선 두 사이트를 선정하면서 의미가 있었던 것은 두 곳 모두 광주시내 중심에 있다는 점이고 기존에 있었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건축이나 공원이 들어선 것이 아니고 기존의 환경을 존중하여 디자인계획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투어를 진행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고 이러한 문화이벤트에 참여한 외국디자이너들도 흥미롭게 관심을 가지고 투어를 하였다.

푸른 길 공원

푸른 길 공원은 원래 경전선 기찻길이 있었던 곳으로 광주시내 한 복판에서 2000년, 외곽으로 이설되었다가 폐지되기에 이르게 된 폐선된 경전선 부지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기 보다는 대부분 옛 기찻길이 있던 곳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하였고 다양한 문화시설로 활용하도록 계획되었다.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가시설도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어린이들만의 문화공간도 많이 있고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은 폐객차를 이용하여 푸른 길 기차도서관과 재능 나눔 기차 카페 등의 공간이 조성되어있다.
비록 오래되어 낡았지만, 아직도 과거, 보성이나 벌교 등지에서 농수산물을 광주로 싣고 와 큰 장터를 만들어주었던 모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고 주변에 남광주 시장등의 지역문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과거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면서 현재의 주변환경과도 연결시켜준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connect 을 체험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푸른 길공원에 있는 여러 문화시설들과 역사(驛舍)의 역사(歷史)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원으로 4.3km구간의 철로를 산책로로 바꾸어놓은 곳으로 잠시 번잡한 일상에서 빠져나와 걷기에는 짧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할 수 있다.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총 5개의 원으로 이루어졌다. 예술극장(대극장 1,120석ㆍ중극장 520석)을 비롯해 문화창조원(창조공간ㆍ전시관 1만5579㎡), 문화정보원(연구소ㆍ자원센터ㆍ아카데미 1만8035㎡), 어린이문화원(1만4328㎡), 민주평화교류원이 배치돼 각종 공연과 전시 및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콘텐츠 구축을 펼쳐나간다. 5ㆍ18 광주 민주 항쟁 당시 마지막 항쟁 공간이었던 구 도청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도청 별관을 제외하고, 5ㆍ18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가 경찰청 본관부터 상무관까지 도선에 따라 배치될 예정으로 건물들이 실재 역사의 공간이었던 만큼, 개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많았다. 현재 회의실로 남아있는 공간은 과거 식당이면서 소통의 공간이었고, 건물 지하는 다이너마이트가 쌓여 있었다. 그 말대로 5ㆍ18의 현장이다. 구 도청을 비롯한 민주평화교류원의 건물은 1930년대 건물이므로 문화재적인 가치도 있다. 따라서 도청 회의실 등 기념비적인 공간은 문화적으로 최대한 그 원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민주평화교류원의 콘텐츠는 기승전결의 서사로 풀어간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때문에 순서를 지키지 않고, 도중에 들어가면 그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서사의 흐름은 경찰청 위쪽부터 기억하는 벽, 액자 방과 같은 형식으로 공간별로 다양한 주제를 정해 5ㆍ18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이다. 서사의 흐름에 따라,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끝자락에 큰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관람은 과거 5ㆍ18 시신 안치소였던 상무관에서 끝이 난다. 상무관은 다른 건물들과 조금 떨어져 있기에, 이동 과정에서 그 흐름이 끊길 수 있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보고, 느끼며 여운을 담아두고, 그 감동을 추모로서 표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이야기 구성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아직 그 정체성이 확고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부터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차이가 있다. 이름처럼 아시아문화전당이 아시아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활짝 열린 공간으로서, 다가가기 어려운 공간이 아닌, 누구나 아시아에 관해 궁금하다면 찾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1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신명이라는 주제를 나눔과 참여로 풀어서 기획했는데 특히 국제홍보상징관은 2015 밀라노 엑스포와 2015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개최 시기를 활용하여, 하나의 전시 기획을 해외 홍보전시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전시했고 2015 밀라노 엑스포 기간 중 세계적인 뮤지엄인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한 달간(07.23-08.23)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알리는 전시행사를 시행함으로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였다.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프레스 오픈을 통해 201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전세계 언론에 직접 노출하여 홍보하였고 건축가 승효상(이로재 대표)이 한국 정원 건축의 진수인 소쇄원을 모티브로 하여 공간을 디자인하였고, 세계적인 사진작가 배병우가 공간을 연출하였으며 목공예가 양석중이 전시 설치물을 제작하였다. 주목받는 신예 도예가 이가진의 청자를 바탕으로 국내외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들이 협업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된 작품은 밀라노와 광주의 두 전시 이후 경매를 통해 유네스코에 기부하도록 기획되었다.앞서의 두 사이트와 더불어서 2015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국제홍보전시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전시관의 모티브인 소쇄원 때문이다. 앞서의 두 사이트가 광주시 안에 위치하면서 여러가지 열려있는 connect라면 소쇄원은 광주시 주변에 위치한 한국 전통 정원으로 여러가지 여건상 방문하기 힘든 외국인에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쇄원을 알리고 체험하며 connect 시켜준 전시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적인 각종 포럼이 connect라는 주제로 국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외국의 디자이너들이 실재로 체험하고 싶어하는 광주시는 푸른길 공원, 국립아시아전당, 그리고 2015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전시관 방문을 통해 어느 정도는 connect 되었다고 생각된다.

사진잡기

Some years ago, I was greatly impressed to hear the photograph lecture of a staff lecturer, who had worked at our school for a long time. I’ve always been interested in taking photos, however I could have an opportunity to take photos concentratedly in this research year. During the several months in Boston, I could take photos of downtown, suburb, and neighboring villages. There might be several factors to make happiness, one among them is to concentrate on good things that one has and utilize them well. If we take photos of beautiful and pleasant things around us and appreciate during other period when we cannot be always happy, that would be helpful to make our life more abundant.

아름다움은 머리에서 느끼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 누구나가 갖고 있는 원형적 속성의 원초적 감각이다. 수컷 동물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움은 인간의 감각 이전에 동물적인 원초적 감각이다.
원초적이라는 것은 다른 감각에 비해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위의 감각은 없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것이지만 원초적인 감각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가난한 서민들도 마당에 꽃을 가득 키우는 것을 보고 조선사람들은 꽃을,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한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할지언정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성에 충실했던 것 같다.

몇 해전 우리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퇴직하신 직원 선생님의 사진 강연을 들으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학교의 아름다운 소개 사진들 대부분을 찍으신 그 분은 원래 학교에서 다른 역할을 하셨지만 틈나는 대로 학교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찍어 오셨었다.
놀라운 것은 여기가 우리 캠퍼스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내가 보지 못했던 여러 곳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카메라로 담아 내었는데, 매지리 쪽에서 찍은 호수의 모습은 학교가 외국의 어느 리조트 같았고, 새벽 안개에 덮인 호수와 날아가는 오리 떼의 모습은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생활하면서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그 분의 학교 계절을 담은 사진들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 몇 사람이 본 것보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같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아름다움을 보는 풍요로운 삶을 산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어느 월간지의 부록으로 나온 사진 입문 책을 통해 노출과 노출시간, 필름감도, 사진 심도, 구도 등 사진의 기초적인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귀한 카메라가 있어야 하고 필름, 현상, 인화 등의 과정에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라 어른들이 찍는 사진을 어깨 너머로 구경하고 어쩌다 한번씩 찍어보는 것 외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옆집에서 빌려다 찍어봤던 80년 전후의 니콘 SLR카메라에서 들리는 찰캉하는 쇳소리가 살짝 들어간 셔터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나중에 카메라를 사면 꼭 니콘을 사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큰 아이를 낳고서 좋은 카메라를 장만해 아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드디어 니콘 SLR카메라를 구입하였는데, 모든게 전자식으로 바뀌어버린 니콘 카메라에서는 전에 들었던 경쾌한 셔터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새로 생긴 사진반의 멤버였던 나는 사진 찍는 것에 늘 관심을 가져왔지만, 이번 연구년을 맞아 집중적으로 사진들을 찍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보스톤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만큼 (1620년 보스톤 남쪽 차로 1시간 거리의 Plymouth에 메이플라우어호를 타고 첫 이민지가 들어왔고, 1630년부터 보스톤시가 시작됨.) 다양한 역사적인 건물들과 현대식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도시이다. 뉴욕에 비하면 중소도시 수준의 규모이긴 해도 보스톤 차 사건 등 미국 역사를 통해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간직한 이야기 꺼리가 많은 동네이다. 인근에 하버드, MIT등 유명 대학들이 몰려있는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에 있는 몇 개월 동안 보스톤 시내, 근교 및 주변 동네들 (주변이라고 해도 워낙 넓어 몇 시간씩 차를 몰고 가야하는 곳들)의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이래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다는 지금은 사진을 찍기에 정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한 학생들은 별로 실감을 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카메라만 있으면 유지비는 전기료밖에 안드니 사진을 취미로 하기에는 축복받은 조건이다. 게다가 카메라 가격도 예전에는 집안의 자산으로 여겨질 정도로 고가였지만 요새는 저렴하고 성능 좋은 기기들이 많다.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 할 때 비싸지는 않아도 쓸만한, 주머니에 넣고 다닐만한 크기의 카메라를 하나 구하여 (휴대폰 카메라도 낮에만 찍는다면 워낙 성능이 좋기는 하지만) 학교와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아뒀으면 좋겠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사진 수업을 꼭 듣기를 권하는데, 일과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향후 친구, 연인, 가족 등의 아름다운 모습을 멋지게 남겨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찍은 사진들 중 하나를 골라 졸업작품 옆에 함께 전시하면 더욱 뜻 깊은 졸업전시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행복을 만드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것에 집중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즐거운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 늘 행복 할 수만은 없는 우리 삶의 다른 시기에 감상할 수 있다면 좀 더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esign treats the world of artefact. Stage of love that reveals beauty is not from the loved products but from the loving people, regrettably, design direction is ambiguous. Instead, how about designers love their own work? Just as mother’s heart who grows her children by embracing them warmly and preciously. If designing process is such nurturing period, wouldn’t we have to be cautious just as the heart of dating with the one to be newly born, stroking belly with big expectation? Though it’s a fate to give it in marriage as soon as it’s born, however I should give it by making a condition to be loved by mother-in-law. How could she love my design as she sees her pretty daughter-in-law? To do so, basic is important. Design that does its devour is lovely. Also, love ripens for a long time. To use long, it should be firm. It is important to pursue the basis beyond short-term trend. To do so, something beyond trend is necessary. It would be ideal, if the mother, designer, is wise enough to grow the product to be a pampered child but a pillar daughter-in-law who firmly performs her role. Just as daughter-in-law, product also requires make-up, plastic surgery, and refinement. However, above all, designer’s sincere loving heart creates ultimate beauty. This writing started rambling, however now I’m satisfied, since it seems to have quite reached conclusion…

어린 시절 아름다움에 대한 자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어떤 계기가 있을 경우, 예컨대 옷을 잘 입고 싶은 욕구, 누가 날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을 때 아마도 이것이 아름다움과 관계된 나의 경험인가라고 돌아보는 정도였다. 크면서 길을 지나며 마주친 눈길을 끄는 것, 뭔가 나를 정화시키는 느낌을 주던 것, 아름다움을 언급한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것이 수용자로서 내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이었다. 차츰 감상이나 내 느낌을 넘어 수용자가 아닌 발신자로, 생산자로서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된 것은 소위 아름다움을 공부하는 미대를 진학하는 시기 전후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접하는 아름다움의 성격은 적극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리는 무엇, 만드는 무엇이 아름다운지 고민하였다. 하지만 잘 알 수 없었고 자신이 없었다. 제법 큰 인문대 강의실에서 들었던 미학개론수업이 그런 고민을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수업 한 대목은 지금도 생생하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칠판의 위에서 아래로 미선진이라는 한자를 쓰셨다. 미선진, 생소하지만 새로운 용어는 아니었고 다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선미(眞善美)의 순서를 거꾸로 쓴 것이었다. 미를 따지는 미인대회에서조차도 진을 가장 높은 등급으로 삼고, 그 다음을 선과 미로 순서를 매기는 것과 달리 교수님은 미를 가장 높은 경지로 설명하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ref]‘다음과 같았으리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내 기억에 대한 확신이 없다. 선생님의 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 답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 확인할 필요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ref] 진은 세상의 원리, 선은 윤리적 가치, 미는 정서적 쾌락을 의미하는데 이는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말한다. 진은 인간성의 개입 없이도 존재 가능하니 스스로 가장 고양된 상태인 미를 가장 인정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진은 우리 바깥에 있다. 선은 이성적으로 우리가 만든 인공물인 도덕적 기준에 우리를 맞추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는 바로 우리 자신 그대로다. 바로 자기 가슴이 울리는 것에 기초하고 있으니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아름다움은 사람의 정신과 몸이 깨어나는 순간의 쾌감과 관계된다. 그동안 퇴폐적이며, 쓸모없고, 표피적이라는 이유로 미를 천대하는 장면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미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말씀은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하였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이해했다고 하여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벽까지 물고 늘어져야 생각과 표현이 정화되는 느낌은 확실히 더 건강에 해로운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것만큼 확실한 보장은 별로 없는 것도 같다.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일상으로부터 배운다. 우리의 전문 직업이 아름다움을 다룬다고 하여도 그 기원은 매일 반복되는 우리 삶이다. 누구든 매일 여기저기서 감각으로 느끼며 아름다움을 접하고 또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아름다움이 다음 4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고한 체계인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이든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와이아이디의 장점을 살려 풀어내 보고자 한다. 아직 어설프지만 화장과 성형, 교양과 사랑이 그것이다.

먼저 화장이다. 여인은 아침마다 거울을 마주하고 하루를 준비한다. 길게는 1시간 이상, 짧게는 10여분(?) 동안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얼굴에 그리는것이다. 화가 뺨치는 다양한 도구와 물감, 기법이 동원되어 개인이 진행하기에는 상당한 난이도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연습하므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현한다. 헤어샵, 뷰티샵의 전문적인 서비스도 있고, 머리를 만진다든지, 옷을 입는 것, 장신구 같은 장식물들이 화장과 비슷한 정도의 노력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 들고, 누적되면 많지만 1회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많지 않다. 또한 간편히 지우거나 벗어버릴 수 있어 언제나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 다음날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거나 피부 관리를 하는 이유를 누군가는 자기만족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도 하지만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화장한 이를 보는 사람은 그야말로 표피의 정보를 본다. 그 반응은 먼 거리에서도 찰나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우리는 거리를 걸으며 아름다운 이를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근접할수록 자세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올수록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변장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장으로 대표되는 표피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은 기만적일 수도 있다. 화장은 투입 대비 효율이 뛰어난 매우 강력한 아름다움 구현법이다. 하지만 그 효과의 지속 시간은 짧고 표현이 내면을 반영하는 가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로 인해 디자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면서 또한 그 때문에 디자인이 평가절하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물을 화장시킬 수 있는 수많은 후처리공법들이 지금도 개발되고 있으며 수천 개의 신제품이 옷을 갈아입고 런웨이로 나간다.

겉에 분을 발라 피부의 톤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형상을 바꿀 수도 있다. 바로 성형이다. 성형은 보통 수술을 연상하게 하지만 여기서 의미는 섭생이나 운동 같은 형태를 바꾸는 방법 모두를 포함한다. 성형 후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잘 만들어진 형태는 굳이 화장을 안 해도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목구비가 이미 제 자리에 있으면 밝은 색으로 도드라지게 할 필요도 없고 광대뼈를 짙은 색으로 덮을 필요도 없다. 성형은 화장 따위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키를 늘릴 수도 있고 실루엣을 S자로 만들 수도 있다. 비례는 매우 중요한 미의 변수다. 8등신과 작은 얼굴은 그래서 중요하다. 키가 크고 작은 것은 그렇게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대개 가장 유혹적인 젊음을 모방하거나 권력의 냄새를 풍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성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술을 한다면 그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갑자기 몸에 찾아온 불균형을 자신 만의 균형으로 자리 잡아가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식사량을 조절하거나 종류를 바꾸고 운동하는 것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결국 그것은 생활 습관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뱃살을 빼는 것은 만성질환과 합병증을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잘 진행된다면 나는 나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자부심도 얻게 된다. 지금 말하는 성형은 삶의 육체적 형식을 바꾸는 지난한 작업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으로 이런 작업은 지속된다. 인간을 수술하는 것과 달리 인공물의 성형 즉, 형을 바꾸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롭다. 디자인은 사물의 조물주처럼 아예 새로운 구조로 형태를 확 바꾸어 버린다. 하지만 건강성이 사람 몸의 기초인 것처럼 디자인의 대상도 건강한 특징을 가져야 오래 갈 수 있다. 그러려면 구조와 형태는 꼭 필요한 부분에 필요한 요소가 자리 잡아야 하고 그것이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사람 중에는 때로 분도 바르지 않고, 몸을 만드는 데도 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예의바르지만 거만하지 않고, 동작이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음성은 나지막한데도 필요한 단어는 명료하게 표현하고, 왠지 향기가 나는 듯이 느껴져 가까이 있으면 아늑하고 기분 좋은 그런 사람, 바로 교양있는 아름다움이다. 교양은 대개 배움으로 이루어진다. 꼭 제도권 교육이 아니더라도 배운 집 자식은 다르다. 교육은 지식을 쌓고 때로 능숙한 직업인을 길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근본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제대로 배운 사람은 삶 전반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반성을 통해 성찰에 이를 확률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교양이 분절된 지식으로 들뜬 화장처럼 표피에서 겉돌면 역겨움이 스며 나온다. 그런 사람들을 속물이라 하는데, 무릇 배운 자라면 누구든 한 순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한없는 겸손함으로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을 공부하고 자기를 갈고 닦는 수양으로 자신을 연마하면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화장을 안 해도, 성형을 안 해도 그 미소가 당신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교양 있는 아름다운제품은 무엇일까? 성찰하는 제품[ref]성찰하는 제품이란? 인공지능은 마치 사람처럼 스마트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때로 스크린 뒤의 존재가 마치 사람인양 착각하였다는 사례는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컴퓨터가 스스로 지식을 축적하고 행위를 통해 반성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인정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제품은 성찰의 길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기계의 성찰이다. 인간과 기계는 전혀 다른 존재이고, 아름다움의 한계는 우리 종의 범위에 속한다. 아름다움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ref]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의바른 제품, 품위 있는 제품은 지금도 디자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제품이 자기의 역할을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성실한 제품이라 부를 수 있겠다. 또한 그 처리 방식이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고(즉, 안전하고) 사용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소통을 한다면 예의바르거나 품위 있다는 수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사물에는 두뇌가 달려야 하는데, 그 두뇌는 점점 더 발전해서 자기들끼리 통신한다. 오래전부터 큰 관심을 갖고 인간과 사물의 소통방식을 구성해 온 디자인은 이제 바람직한 경험이라는 단어로 무형적인 아름다움에 도전하고 있다.

2015년의 雜想

Korean daily life is a series of survival competition to stand in front “quickly quickly” ahead of others to survive. In the ordinary survival competition that is spread just like a horrible battlefield, everybody becomes kelpi which intends to pull down and trample people next to me in order to raise oneself a little targeting the same point. Children are not interested in any major, without a hope for being an expert, only concentrating on “employment war”. Have you ever tried to find your own way that your heart goes ahead and body heads for, not the way others direct and go? Those who have a will in design could stop today’s evil design that creates the world just like the hell, only by preparing one’s own way and polish their technique.

地獄 (HELL)

최근 접하고서 뇌리에서 떨쳐 버릴 수 없었던 말, 헬조선. 헬(Hell)과 조선(한국)의 합성어로, 현재 한국의 여러 상황이 지옥과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올해 초여름부터 확산된 이 신조어는 그간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에서 사람들이 파국(破局)의 길을 선택했을 때 당혹감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2012년 김재환 감독이 발표한 『MB의 추억』에서,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J. Goebels)의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라는 말을 인용하여 허황된 선거공약을 믿고 따르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이때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고통 받는 파국으로의 긴 여정보다는 차라리 빨리 파국을 맞아 새 출발의 기회가 앞당겨지는 것이 낫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새 출발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파국의 낭떠러지에서 영영 헤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다시 말해서, 지옥(地獄)의 불구덩이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한국은 OECD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7명 가운데 1명은 최저 임금 이하로, OECD 평균의 약 3배에 달할 정도로 소득의 양극화가 심하다. 국민의 일과 삶의 균형은 36개국 중 33위, 건강은 31위, 환경의 질은 30위로 최하위에 속하며,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 심각한 수준을 보인다. 이 통계들은 지옥과도 같은 헬조선의 상황을 대변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또는 흙수저 빙고게임하며 노올다라는 말들이 유행하는 현상을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져서 흙수저금수저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좌절된 계층상승 욕망에 대한 것으로만 느끼고 해석한다. 이는 금수저를 갈망하는 흙수저들 간의 시기와 질투, 더 나아가 서로에 대한 비방과 폭력의 위험을 드러낸다. 죽창으로 서로 찌르는 상상을 구호화한 온라인 현수막의 죽창 앞에서는 공평하게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라는 섬뜩한 표현처럼 말이다. 이 위험이 현실화되는 곳이 바로 지옥의 불구덩이다.

지옥과 같은 일상의 생존경쟁

한국의 일상은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빨리 빨리앞 줄에 서려는 생존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한국전쟁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이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전후 세대에서 더욱 치열하고 비열하게 확산되었고, 오늘날 휴전상황에서 자식세대에까지 계승된 결과이다. 하루 아침에 생존기반을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갖 멸시와 천대를 견디며 권력자에게 아첨하며 붙어있어야 한다는 자괴감 등은 전후 세대들을 어릴 적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과 출세를 해야 한다는 가혹한 생존경쟁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성장한 전후 세대들은 가까스로 지켜낸 계층에서 자식들이 밀려나지 않고 계층 선발전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노심초사 하고, 그러한 생존의 불안감은 자식들을 둘러싸고 더욱 비열하고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다. 이러한 현상은 엘리아스(N. Elias)가 밝힌 것처럼,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확산된 신분상승욕구가 강한 중산층에서,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추락한 중산층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입시전쟁, 취업전쟁등이 그 지옥과 같은 경쟁의 단적인 예이다.

참혹한 전쟁터와 같이 펼쳐지는 일상의 생존경쟁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곳을 향해 조금이나마 위로 올라서려고 옆 사람을 끌어내리고 짓밟는 물귀신이 된다. 이러한 삶은 입시지옥을 향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을 통해 일상이 되고, 여기서 옆 사람은 경쟁 대상이고 적일 뿐이다. 그 과정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아래 사람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이용해야 함을 학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로써 선배가 후배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고용자가 피고용자에게 행하는 갑질은 점점 더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만연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갑질을 대갚음할 수 있는, 자신보다 아래의 약한 희생양을 찾으려 혈안이 된다는 점이다. 그 반면에, 갑질을 행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으면서도 매우 나약함을 보이며 심지어 복종적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그보다 상위에서 벌어지는 갑질폭력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설사 본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폭력을 찬양하고 맹종한다. 서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끊이질 않고, 서러우면 돈 벌어라,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처럼 모든 것이 돈을 기준으로 더욱 서열화·세분화된다. 그렇게 서열이 세분화될수록 상위계층은 신분상승욕을 불태우는 위협적인 하위계층으로부터 멀어지고 안전해지는 반면, 하위계층은 자신들 내의 세분화된 서열을 놓고서 물귀신처럼 서로 간의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인다.

최근 하위 50%가 가진 자산은 전체의 2%에 불과하고 상위 10%가 전체의 66%를 갖고 있으며 상위 1%가 전체의 26%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또한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 대해 금수저는 자산 2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 은수저는 자산 1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1억 원 이상,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 원 이상, 흙수저는 자산 5000만 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 원 미만이라고 기준을 알리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러한 보도만으로도 하위계층이 전체 2%의 자산을 놓고, 중간계층이 전체 32%의 자산을 놓고 서로 간에 세분화된 서열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상위 1%, 특히 최상위 0.3~0.5% 층은 아래 계층에게 보이지 않는 안전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현실을 자명하게 설명한다. 또한 전쟁과 학살 및 대재앙의 참혹함이 언제나 하위계층에 집중되어왔듯이, 하위계층은 가장 심각한 위험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직접 맞닥뜨리고 있다. 그리고 중간계층은 하위계층으로의 추락이라는 공포 속에서 안전한 상위 10% 계층에 도달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인다.

모든 지배 질서와 권력에 대한 부정과 불복종

사람들은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져서 흙수저금수저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 하고, 자식들을 남들처럼 성공하여 잘되라고 등을 떠미는 곳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생존경쟁의 지옥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오늘날의 권력지배구조를 당연시하고 SKY로 대변되는 좋은 학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맹신하면서 자식들을 학벌전쟁의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SKY를 숭배하면서 스스로를 학벌서열에 줄 세우고 열등감과 자괴감에 휩싸여 (묻지마) 취업전쟁터로 돌진해 나간다. 대학은 서열화된 학벌 매장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기업은 몰려드는 (단순) 노동력을 입맛대로 골라 소비한 후 내버리는 것을 당연시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과 같이 비전문성이 전문성을 대체하고, 아이들은 취업전쟁에만 골똘하여 더 이상 그 어떤 전공에도 관심이 없으며 그 어떤 전문가도 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학생들 역시 눈을 뜨지 못하고 전문능력 또한 기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디자인 전문가가 될 수 없기에, 지금까지 디자이너라면서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온 사람들과 같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의 세태에 발맞춰 지옥의 불구덩이인줄도 모르고 가만히 떠밀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심초사하게 된다. 지옥으로 향하는 행렬인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으라한다고 모두다 눈감고 가만히만 있을 것인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놋쇠의 성』 이야기처럼 모두다 마법에 눈이 멀어, 한결 같이 죽음을 향해 가만히 떠밀려만 갈 것인가? 부모와 부모세대가 지금까지 결정한 대로, 떠미는 대로, 그 대로 눈 가리고 귀 막고 가만히 앉아 지옥으로 떠밀려만 갈 것인가? 지금껏 배워왔던 모든 정의와 도덕, 윤리 등이 약육강식과 승자독식만을 칭송하며 부추기는데도 옳다고 믿고 따를 것인가? 한 줄 세우기 출세경쟁으로 내몰아 미천한 삼류 인간, 루저라고 낙인찍는 지배권력에 맹종하고 그 권위를 떠받들 것인가? 금수저가 만드는 서열을 무시하고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한 줄서기 경쟁을 따르지 않으면 이류 삼류의 굴레에서 절로 벗어난다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부모와 부모세대가 가리키는 길이,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사탕발림하며 몰아가는 길이 바로 한 줄서기에서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고자 서로 물고 뜯는 생지옥의 길인데도,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단 말인가?

남들이 가리키고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가고 몸이 향하는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고 선택하려 한적이 있는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금수저의 서열에 같이 서고자 하는 허영된 출세욕망을 떨쳐버린다면, 자신을 진정 사랑하며 아끼는 인간다운 삶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몇몇 사회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금수저를 버리고 모두 다 인간답게 저마다 자신의 길을 여는 전문가로 활동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디자인에 뜻이 있는 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준비하고서 디자인에 대한 저마다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만, 지옥과 같은 세상을 만드는 오늘날의 사악한 디자인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非常識이 常識이되고 서로가 서로를 害하는 일상이 번져나가는 해에, 검산에서

세계와 미국

Although there are no textbooks that US students own which say this, but United State is the most affective country in the world. All countries like Europe, Japan, Taiwan, Korea, Hongkong and Singapore are manufacturing products suitable for US citizens, because it earns them US dollars that allow them to live like US citizens. Why, do people who are not even US citizens work hard for USA? It is because they have to sell their products to US in order to earn US dollars to buy oil, produce electricity, run a car, control the temperature, run a factory, build houses and roads, produce building material, medicine and fertilizer, pump up the underground water, farm crops, feed the live stocks, and last but not least, buy flour, maize, beans, stock feed and beef. Including China, all countries which export to USA including countries which exports to USA is a part of USA’s production capacity. Living within USA, run a factory and deigning for and only for USA, earn some US dollars but we suffer by dust all seasons.

몇 년 전부터 단순 방문이나 여행일 경우 우리나라에서 전자여권으로 등록하면 미국 땅에 비자(출입국허가증) 없이도 갈 수 있다. 미국, 한국 사이가 경기도, 강원도 사이나 다를 바 없을 것도 같은데, 일단 미국 내 첫 기착지 (공항)에 내리게 되면 과거 비자있던 시절보다 더 복잡하다. 입국 목적과 체류 일정 등을 설명해야하고 그 다음 홍체 인식 카메라에 찍히고 지문 등록하는 절차도 복잡하고 직원들이 다들 반자동권총을 차고 있어 약간 겁도 나고 분위기도 대체로 고압적이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펀드들이 우리 주식시장에 돈을 넣었다 뺐다하며 달러는 광속으로 자유로이 돌아다니지만 만물의 영장사람은 국적 다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원주 사는 우리나 광동성에 사는 중국인 공장노동자는 미국 시민권자와 전혀 다르다. 금성인, 화성인 정도로 멀다. 이 점은 멕시코도 마찬가지고 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나라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열심히 일해 달러를 벌고는 있는 것 같은데 지갑에 달러가 있다고 미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처럼 미국인이 아니면서 미국에서 살자면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묘한 상황에 처한다.

일정기간 거주해야하니 인터넷이고 유틸리티고 은행이고 집이고 운전면허고 보험이고, 잠시라도 살자면 깔고 계약하고 열고 세내고 따고 가입할 것들이 많은데, 경력 없으니 – 없는 게 아니라 인정 못 받는 것- 일단 비싸다. 그래 비싼 건 알겠는데, 한 수 더 떠 씨큐리티 챠지(안전보증금?)라는 걸 또 얹는다. 그 청구서를 보면 실제 사용료와 별도로 무슨무슨 신용조회를 해보니 당신은 신용이 없어, 즉, 전혀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어, 사용료와 별도로 100달러 얼마를 더 내야겠다는 편지다. 가관인 것은 이의 있으면 이상 의견을 낸 이런이런 신용정보회사에 알아서 연락해보라는 것이다. 밑도끝도 없는 소리. 내가 누군지 몰라 돈 물려야한다고 말한, 내가 모르는 그 회사에, 그 회사가 누군지 모른다는 자가, 무슨 용건으로 전화해 따진단 말인가. 그냥 뜯기는 거다. 그 돈은 뉴욕 어디 신용정보회사와 우리 동네 케이블 회사가 나눠먹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 합작으로 어리버리한 뉴커머 털기. 이 나라는 기회의 땅인가, 기생하는 사회인가?

이 수법은 뉴욕시의 월스트리트에 수백억대 연봉을 받는 아이비리그 천재들이 창안한 21세기형 사기술의 아류다. 자유무역, 금융개방 등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 나라 저 나라, 이 회사 저 회사로 돈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투자기준이란 것을 세웠는데 그 내용은 개인, 기업, 기관, 국가를 막론하고 신용평가, 신용등급이란 것을 매겨 이를 기준으로 아무 때나 이자를 물리고 선수금을 챙기고 벌금을 때릴 수 있는 수법을 창안했다. 자기들끼리 만든 기준을 어찌 기준이랄 수 있을까만, 돈 빌리거나 투자받고 싶으면 할 수 없이 따라야한다. 그래서 다들 이 월스트리트 신종 사기술인 신용평가, 신용등급 잘 받으려 목매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대학평가도 그 동기와 논리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너무 설치다 제 발등을 찍은 경우도 있는데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 등으로 대표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다.

개똥 줍기 :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고상한 일

동네 골목집까지 은행이 앞장서 자산평가를 멋대로 부풀려 놓고 그 걸 담보로 돈을 꿔주고 또 꿔주고 꿔준 돈을 받기 위해 또 돈을 꿔주고 하는 불장난을 했다. 많이 빌려가야 받는 이자도 크니까. 일단 돈을 빌리면 이자도 물어야하고 원금도 갚아야한다. 어느 순간 이게 안 되는 개인과 가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집 팔아 갚으려고 막상 내놓으니 시세가 담보 대출한 돈에 훨씬 못 미친다. 집은 은행이 가져가고 살던 사람은 그냥 거리로 나와 앉는다. 이들을 홈리스(homeless)라 한다. 전국적으로 이러니 동네 은행은 담보로 잡은 집 못 팔아 망하고, 그 은행에 돈 빌려준 조금 더 큰 은행도 망하고, 망하고, 망하고… 이렇게 연쇄로 망해가며 한꺼번에 말아먹은 사건인데 미국경제가 크게 한번 휘청하며 그 여파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당시 각종 파생 금융상품을 만들어 수수료를 챙기던 뉴욕, 런던 소재 수많은 펀드와 금융기관들은 그렇게 홀랑 털어먹었다. 물론 그 시점까지 이들은 최고의 신용등급에 있었다. 놀랍게도 그 위기를 발생시킨 장본인들이 그 즉시 경제회생을 내세워 정부에게 손을 벌렸고 그렇게 받아낸 국민세금으로 세계인의 눈앞에서 보너스 파티를 벌였다. 지금도 그들이 활개치는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자본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걷는 일이다. 이걸 투자라고 부르면 좀 그럴 듯 해보이는데 사실 그게 그거다. 간단한 방법이 뭔가를 담보로 잡은 다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내게 하는데 되도록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내길 바란다. 물론 이자를 더 쳐주겠다는 자가 나타나면 이야긴 달라진다. 더 좋은 것은 가끔 이자가 밀려 이자에 이자를 붙일 수 있는 상황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출광고가 난무하는 이유가 이것이고. 이런 이자는 한 두 사람에게서만 아니라 전국, 전세계적으로 받아낼 수 있으면 큰돈이니 빌려주는 돈도 커야하고 빌려갈 사람도 많아야한다. 머리 빨리 도는 친구들이 주식회사, 펀드 뭐 이런 걸 만들어 규모를 키운다. 주주 모집한다, 펀드 투자해 돈 벌어라…, 이런 광고로 시중에 이런저런 돈을 모으는데 물론 그 안에 자기 돈은 절대 넣지 않는다. 그 돈으로 주식을 채권을 사고 주식을 사고팔고, 리조트, 보험회사에 투자하고 해서 배당금을 챙기는데, 돈 맡긴 사람에게 조금 떼어주고 이런저런 수수료로 자기들이 거의 챙긴다. 물론 투자금을 날리거나 자본금을 까먹으면 그 뿐이다. 이런 걸 아는 큰손들은 자기들끼리 계돈을 만들어 따로 돈을 굴린다.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니 약간 더 신중하고 기회 포착에 빠르다. 이름을 언뜻 들어봤겠지만 와렌 버핏, 조지 소로스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어딜 봐도 존경스런 구석이 없건만 이들의 설치는 월스트리트는 전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고 허풍인지 사기술인지 모를 내용을 영웅담처럼 묶은 책이 세계 곳곳의 서가를 덮고 있다. 심심풀이로 누구 시켜 쓴 자기계발서도 잘나간다. 그들같이 될 수 없고 그들처럼 살 가능성도 제로인 사람들이 그 이유로 자기 돈 써 책사고 자기 시간 써 읽으며 자신을 질책하며 살고 있다.

미국 정신을 대표하는 두 가지를 들라면 프론티어 정신기회의 땅이다. 이 중 프론티어 정신은 19세기말 종료된 것으로 본다. 서부개척이 마무리된 시점인데, 그 내용은 토착 인디언을 거의 멸종시키고 이들의 땅(물론 토착민에게 토지소유개념은 없었다.)을 전부 빼앗음,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와 텍사스 등 서남부의 멕시코 영토 강탈, 플로리다와 카리브 해에서 스페인 세력 축출 등 성공이다. 요즘 TV로 보는 미식축구가 이런 밀어내기, 땅따먹기 정신을 스포츠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실제가 불가능하니 오락과 스포츠로 대신하는 셈이다. 그럼 기회의 땅은 여전한가? 유럽서 쫓겨난(혹은 유럽이 지겨워 떠난) 청교도(Puritans)은 신의 뜻을 이루기에 구대륙(유럽)은 너무 타락하고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고 신대륙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코자했다. 이 종교적 사명감에 독립전쟁과정에서 생겨난 민주주의, 시민권, 자유, 기회, 평등으로 일컬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덧붙여졌다. 동부해안지역을 뒤덮은 유럽 발 이민 물결이 태평양에 닿고, 강제로 잡혀왔지만 표면상 동등한 시민권을 얻은 흑인 인구가 늘고, 중남미 라티노들이 광범위하게 스며드는 가운데 중국, 인도 등 아시아계가 인종 다양성을 구성했다.

이 같은 유입과 이동이 기회의 땅 미국의 역동성을 낳았고 특유의 통치체계, 공간구획, 기술체계, 생산유통양식, 대량소비사회, 그리고 대중문화를 형성하며 그간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루며 미국은 최강국으로 우뚝 섰다. 20세기는 분명 미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어떤 교과서나 책에도 이런 말은 없지만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3M[ref]미네소타 채광 및 제조사 (3M: 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ref]은 미국 회사이름이기도 하지만,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소비(mass consumption), 대량전달유통(mass communication & distribution)의 줄임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게 모두 미국에서 제대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엔진과 자동차, 화학공업, 전력 및 전기통신 등이 유럽서 발명되고 일부

산업화하긴 했지만 몇 억, 몇 십억 인구가 쓸 정도로 몇 십억, 몇 백억 개를 찍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된 곳은 미국 땅이다. 한 때 소련이[ref]소련(USSR:1922년~1991년:the Soviet Union: 소비에트 련방공화국,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로 유럽-아시아지역에서 1922년에서 1991년까지 존속했으며, 여러 나라가 합쳐진 연방형태로 구성되었고 모스크바에 수도를 두고 철저한 중앙통제형 계획경제로 운영되었다.[/ref] 일부 산업부문의 생산력, 즉, 대량생산에서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간 적은 있으나 대량소비, 대량전달, 대량유통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 미국사회를 보면 결정적 요인은 질이 아니라 양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약간 더 생각해보면 모든 물리, 화학, 생물학, 지구천문기상학 현상 역시 정량 요인이 결정적임을 알게 된다. 거동이 일어나고, 반응이 시작되고, 특정한 물질이 약이 되거나 독이 되는 정도, 개체수와 종족 유지 가능성, 엘니뇨 라니냐가 갈리고, 구름이 비를 쏟는 일, 돌멩이 행성으로 남거나 초신성이 되거나 하는 것, 이 모두 에너지나 물질이 임계량에 도달해 있느냐 여부로 결정된다. 미국은 양적 측면을 최대화하여 목표 현상을 구현함으로써 질적 결과를 낸다.

석유가 이런 추진력을 가능케 한다. 석유로 전기를 만들고 차를 굴리고 냉난방하고 공장을 돌리고 플라스틱과 건자재와 약품과 비료를 합성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먹인다. 무엇보다도 원유대금 결제 화폐는 미국달러로 정해져 있고 달러 찍는 기계는 다른 나라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다. 유럽, 일본, 대만, 한국, 홍콩, 싱가폴 등이 진작부터 미국인이 쓸 물건을 열심히 만드는 이유가 달러를 버는 것인데, 달러가 있어야 미국인 비슷한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가 있어야 원유대금을 결제하고 사온 원유를 원료로 자동차부터 빗자루까지 미국인이 쓸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다. 요즘은 중국, 멕시코, 중남미, 카리브해 여러 나라들이 가세하니 공급이 넘치고 가격은 떨어지고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물건 구하기도 쉽다. 미국인도 아닌 이들이 미국을 위해 열심히 노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 물건 팔아 달러사와야 그걸로 원유 사다 전기를 만들고 차를 굴리고 냉난방하고 공장 돌리고 집짓고 길내고 플라스틱과 건자재와 약품과 비료를 합성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먹이고 밀가루 사오고 옥수수, 콩, 사료, 소고기 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에 수출해 달러를 버는 모든 나라는 미국의 생산력의 일부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기에 앞서 미국의 공장이다. 이 공장에 중국인 직공이 일하지만 당연히 미국인 노동자는 아니지만 미국인도 아니면서 미국과 미국인의 삶을 위해 봉사하고 미국 영토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미국 입맛 따라 알아서 정치, 사회, 경제를 돌린다. 그런데 한국에서 차 사려면 미국보다 비싸고 휘발유 값도 비싸다. 얼마 전부터 다자간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고, 최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 Pacific Partnership)으로 상호무역에서 미국과 하는 웬만한 수출, 수입품에는 관세가 안 붙는다. 즉, 국가 간 거래나 국내거래의 차이점이 거의 사라진 셈이다. 간단히 같은 경제권의 같은 시장이 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이후 세계가 여전히 미국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근거다. 미국의 세계 속에 살며 미국 위해 열심히 공장 돌리며 디자인하며 달러는 좀 벌지만, 사시사철 미세먼지는 갈수록 죽을 맛이다.

역량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하여

2002년, 본인이 처음 학교에 입학 할 당시에는 사실, 디자인에 대한 배경 지식도 전무하고,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상태로 입학했다.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고 디자인이라는 영역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있다. 본인이 느끼는 디자인의 매력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주관적 그리고 감성적 측면과 객관적 그리고 논리적 측면과의 균형을 가장 잘 이루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비롯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디자인은 과학, 기술, 경제, 문화, 정책 등등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을 서로 소통시켜주는 가장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인 영역이다. 본론을 쓰기에 앞서, 본인도 역량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고 있기에, ‘역량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하여’라는 제목 아래, 앞으로 써내려갈 道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력하게 피력할 수는 없지만,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적어도 학부생 때 필요한 자세와 요소들을 몇 가지 나열해 보고자한다.

1.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할과 역량에 대해서 알고 경험하기
수많은 전문가에 의하면 (논문 형식의 글이 아닌 본인의 견해를 나타내는 수필 형식의 글이니 정확한 참고문헌은 생략한다), 디자인 영역 내에는 수많은 역할과 그것들에서 비롯된 역량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역할들을 가지고 역량을 발휘하는 주체, 즉 디자이너는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제품의 외관에 미적 아름다움과 감성을 불어넣는 Stylist가 그 첫 번째이고, 둘째는 Functionalist이다. Functionalist는 문자 그대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로써, 새로운 시장에서 기존 제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거나, 반대로 기존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 제품 또는 시스템과 관련된 전반적인 정보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는 일,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거나 기존의 전략을 조정하는일, 각각의 기업의 디자인적 역량을 평가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 등, 이밖에 여러 가지 기능적인 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수행하는 하는 것이다. Specialist로써 한 가지 역할에 특화된 디자이너들도 있고, Generalist로써 위에서 언급한 역할들 중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학부생 기간 4년 동안의 커리큘럼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반적인 디자인의 역할들과 역량들을 배우고 경험하게 된다. 그중에서 개개인이 선호하는 역할들과 역량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적어도 학부생 4년동안은, 본인이 잘하거나 혹은 잘 할 수 있거나, 흥미롭거나 혹은 다루기 쉽거나 하는 한 두어가지 역할과 역량에 취중 하는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기 힘들다. 학부생 동안의 과정은 프로페셔널 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지식들을 배우고 실질적으로 연습하는 과정이기에 주어진 모든 과목과 내용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좋다. 졸업 후, 누군가는 바로 사회에 진출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석사나 박사로써 학자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두서너가지의 역할과 역량에 초점을 맞추어 다른 디자이너와 차별화된 역량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은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직접해본 사람의 디테일을 따라 갈 수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커리큘럼에서 주어진 디자인 역할과 역량을 가급적이면 많이 그리고 직접 경험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목업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여 목업 발주를 내릴 경우나 목업 과정과 그 결과물을 확인 할 때, 목업을 직접해본 사람과 그 디테일에서 분명히 차이가 날 것이다.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흔한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한 디테일 하나 하나에서 제품의 퀄리티가 차이 나게 되는 것이다.

2.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앞서 언급했듯이, 디자인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여러 가지 전반적인 분야를 소통시켜 주는 영역이다. 따라서 역량있는 디자이너로써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필요한 요소는, 적어도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하는 자세이다. 본인이 Imperial College London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기 위하여 면접을 봤을 당시,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질문은 즉, 감성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디자이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 해보라는 것이었다. 본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도시 A와 B사이에는 협곡과 계곡을 끼고 있어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평소 4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최소한의 시간과 거리로 두 도시를 이동하기 위한 다리를 건설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 결과, 단지 4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교량을 건설하게 됩니다. 이는 무려 200분을 단축시켰고, 여기서 두 도시의 거주인이 12,000명이라고 가정하면 2,400,00분, 시간으로 환산하면 4,000시간, 일 단위로 환산하면 1,666일 감축이라는 시간적-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가삼각비 손실 비용과 인력 유지 및 보수비용 없이 교량을 유지하는데 최대 15년이라는 기간동안 가능하다면, 24,990일, 즉, 두 도시에서 발생하는 시간적-경제적 효과는 자그마치 68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엔지니어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려 4시간이 걸리지만 이동하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계곡의 경치를 즐기고 싶었던 사람은 과연 단 한명도 없었을까요?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인간의 감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맥락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었을 정도로 당연시되는 것이 사실이나 위의 사례처럼 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감성 디자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답변에서 지도 교수님은 본인이 디자이너로써 엔지니어링 및 매니지먼트 영역의 전문가들과 업무를 수행할 시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하겠구나 라고 판단 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필요한 요소는, 위에서 언급한 사고를 보다 능숙하게 하기 위해 바탕이 되는 기초적인 지식의 함양이다. 위에서 언급한 답변이 디자이너로써 임하는 자세에 중점을 둔 예시라면, 아래에 언급될 내용은 지식의 함양에 대해서 보다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본인의 박사과정 연구는 기계공학부 내에 디자인 엔지니어링 전공으로써 역할 수행이다. 따라서, 입학시험의 종류 중 하나로 치러 지는 면접 시험에서,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수준의 수학과 공학문제를 풀어야 했으며, 입학 후 박사 1년 ~ 3년차 때에는 비즈니스 스쿨과 엔지니어링 스쿨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수학 및 공학 관련 수업들을 추천 받게 된다. 이를 소화해 내어야만 능숙하게 진행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실로 많으며, 본인의 개인 연구도 보다 한층 높은 수준에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각각의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다양하고, 포지션 또한 다르기 때문에 모든 디자이너가 높은 수준의 수학과 공학적 지식을 반드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과 공학적 지식은 디자이너로써 업무를 수행할 시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품 내부의 구조를 분석하여 내부 설계를 변형 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시킴으로써 제품의 외형을 새로이 디자인 해야 할 경우, 기초적인 공학지식은 생각보다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으며,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진다. 또 다른 예로, 새로운 시스템을 디자인 할 시, 단지 새로이 고안된 최적화 모델을 추상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그 모델의 최적화 과정을 적어도 간단한 함수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증명한다면 더욱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질적인 감성적 데이터를 양적인 수치적 데이터로 변환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보다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용자를 실직적인 디자인 업무에 참여시켜 보다 사용자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일종의 Co-design 시스템이 20년 전 부터 도입되어, 지금은 활성화가 아주 잘 되어있다. 사용자가 디자인 프로세스 상에서 실질적인 디자인 활동을 할때, 사용자로부터 디자이너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Co-design의 순기능), 사용자가 가지지 못한 고차원 적인 지식과 역량을 바탕으로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최종적으로 제품화하는 과정은 결국 디자이너들이 담당하게 된다. 디자이너에게 위의 본문에서 언급한 올바른 자세, 지식, 그리고 경험에서 비롯된 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Co-design 시스템은 운영될 수가 없다. 따라서 디자이너들은 끊임 없이 노력하고 정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필요한 자세와 요소들이 역량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거나,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은 아니다. 본인이 지향하는 적합한 방법과 방향이 각기 있을 것이고, 결국 그것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학부생일 때 만약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을 염두해두고 생활 했었다면, 졸업 후 보다 역량있는 디자이너에 한발 짝 더 다가가 있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썼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It usually takes 4 hours by car to move from city A to city B because of the canyon and the valley located in between the two cities. So the engineers focus on constructing a bridge that minimizes the transporting time and distance. As a result, engineers construct a progressive bridge that allows you to move between the cities in just 40 minutes. Nonetheless, what did the engineers missed in this case? Although it took 4 hours, there could have been people who wanted to enjoy the sceneries of the valley while on their way. It is true that the importance of taking the human sensibility into consideration has been greatly emphasized in almost every discipline, but just as the case mentioned above,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we miss the point. Accordingly, Emotional Design is essential for enriching the human life.” I think my advisor judged from my answer that I had the capability as designer to work and have the basic communication with experts in the fields of engineering and management.

산업디자이너에서 변리사로

For almost half of my twenties, I agonized over how I could become a person with distinguishable capabilities. I tried to find the answer to my own question by working on the design assignments during the semesters, by involving in the industry-university cooperation projects between the semesters, and by doing internships in design firms and companies before and after my graduation. I think it was a typical and honest process as a design professional.

I got my answers in a very casual moment. I had a casual chance to know about the patent attorney profession. The moment was as casual as the cover in Paulo Coelho’s novel ‘The Alchemist’. I decided to challenge myself by taking the patent attorney examination based on my thoughts that what patent attorneys do was at least differentiated from the design professionals, and that I could become a distinguished attorney who can communicate well with clients of design discipline.

변리사법 제2조에 의하면,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하고 그 사항에 관한 감정(鑑定)과 그 밖의 사무를 수행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현재 디자인·상표 분야 변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전공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직업, 적어도 저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었던 변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과정, 변리사로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래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변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과정
어떠한 차별화된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인가는 저의 20대 절반기간의 고민거리였습니다. 학기 중 디자인전공 과제, 방학동안의 산학협동, 졸업 전·후의 디자인전문회사 및 기업 인턴활동 등에서 계속해서 고민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이는 디자인전공자로서 일반적이고 정직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민의 답은 우연한 순간에 얻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표지와 같이 우연한 순간에 의해 변리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리사라는 직업은 적어도 디자인전공자들과 차별화되고, 변리사 업계에서는 디자인 직종의 고객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으로 차별화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20대 중후반은 대학생이 사회인으로 변하는 시기이고, 주변의 친구들이 취업을 해서 직업을 갖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고시생을 직업 대신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서른에 내가 뭐가 되어있을지만 생각하고 딱 서른을 목표로 계획했습니다. 서른을 바로 앞두고 합격하여 돌이켜보면,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고민만으로 멈춰있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다양한 기회를 접하되, 당장에 무엇이 되기 위해 급하게 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생인 여러분들에게는 조금 먼 미래일 수 있겠지만, 졸업을 앞두고 하는 고민이상으로 서른은 선택한 직업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기가 될 수 있는데, 절실한 마음과 확고한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한다면 서른에 올 수 있는 큰 고민 중 하나를 던 셈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상표분야 변리사로서 현재 하고 있는 일
변리사는 주로 법무법인 또는 특허법인에 소속되고, 디자인·상표 분야 변리사로서 저는 디자이너 등이 창작한 물품 및 브랜드 아이텐티티 등을 법적인 영역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디자인 또는 상표의 출원에서부터 등록, 심판, 침해에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고객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한다는 점에서 디자인전문회사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사건을 개인의 이름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큰 직업이고 철저히 외로울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의뢰인과 약속한 기간뿐만 아니라 법 또는 명령에 의하여 변경할 수 없는 기간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마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직업입니다. 법에서 규정한 제도를 이용하기 위하여 특허청에 ‘출원’하여야 하는 시기가 정하여져 있거나, 출원에 등록받을 수 없는 거절이유가 있어 ‘등록’을 위하여 의견서를 내거나 ‘심판’청구를 하여야 하는 등의 시기가 정하여져 있어, 기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번복할 수 있는 기회없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로서는 과정에 참여한 디자인의 시장 출시가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면, 변리사로서는 디자인출원 또는 상표출원이 거절이유를 극복하고 디자인등록 또는 상표등록받거나, 소송에 참여한 사건이 승소하였을 때가 보람된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또 한, 날로 증가하는 지식재산권의 분쟁 속에서, 지식재산권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저에게 큰 설렘이고 최고의 성취감으로 다가옵니다.

마치며 – 디자인등록출원시에 알아두면 유용한 제도 ‘신규성 상실의 예외 주장’
대학교를 다시던 시절은 제가 내면적으로 가장 자신감있게 살아왔던 때입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는 확신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내면의 자신감을 형성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끝으로 디자인보호법에 규정된 여러 제도 중 ‘신규성 상실의 예외 주장’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합니다. 디자인보호법은 신규한 디자인에 독점권을 부여하고 있어, 출원 전 공지 등이 된 디자인은 등록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디자인 창작자 자신이 창작한 디자인을 스스로 카탈로그, 인터넷 등에 공지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등록받을 수 없게 됩니다. 다만, 정당한 권리자의 디자인이 일률적으로 등록이 불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바, 디자인이 공개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출원하여야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성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YID 2015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글을 부탁받았을 때 과연 여기에 제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많이 고민해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저의 생각과 경험들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부생 시절, 저는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 었습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전공과목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크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고 다가오는 미래가 부담스럽고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자동차 동아리”OLLATA”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아이디어 스케치에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들과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과 잘하고 못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순수하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동아리 활동 간에 아이디어 스케치에 흥미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글의 기고를 부탁받으며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키워드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키워드가 있어 모두 다 언급하기에 이미 지루해져 버린 저의 글이 더 지루해질 것 같아 딱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Sustainability”

자동차도 제품이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판매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리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관심을 벗어나 제품으로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유지와 조화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하나의 독립된 제품이 아닌 삶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후까지 생각해야 하는 게 디자이너로서 생각해야 하는 필수 요소이며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문제에 가장 근접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제시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완성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 보다, 발전 가능성을 제안하는 제품을 디자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림을 멋지게 그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정직함,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정리하는 정화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끈기가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여러분과 같이 아직도 학생이며, 평생 학생으로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제가 감히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꿈을 좇아가는데 있어 위에서 언급한 정직함, 정화력, 열정, 그리고 끈기만 있다면 디자이너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Sustainability is the most discussed subject around me, which is also a word that would not leave my mind these days. It revolves in my mind because it is an important keyword of the ongoing project; and because it is a subject matter that has constantly been discussed ever since the starting of my master’s study.

I believe cars, just as products, should attract public attention. If a car fails to hold the attention of the public, sales will be affected and its product life will eventually come to an end regardless of the good quality. I claim that cars should aim for more than capturing the basic attention and should consider its role as product in maintaining and balancing the society and the environment. I believe the basic and essential requirement for designers is to think about the start, the end, and even after the end of a product life rather than considering products as independent objects. It is also the most difficult part, of course.

1. Green Runner
2050년, 복잡한 도심 속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소형 운송기기. 늘어나는 인구와 복잡해지는 도심의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공간으로 운송의 효과와 많은 인구를 사용하여 전력의 공급을 도모하는 컨셉. 바쁜 일상에서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신발 사이즈의 가벼운 운송기기로, 압전 기술을 사용하여 걸을수록 생산되는 전기와, 이를 신발의 표면에 저장하여 내부에 장착된 바퀴로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추가로 남은 전력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고 이는 전기세 를 줄여준다는 아이디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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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itachi Deep Tube
2030년, 런던에 새롭게 도입될 지하철의 인테리어 디자인.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런던의 지하철은 그 오랜 역사만큼 구조도 노후되어 있다. 터널의 크기는 변경이 불가하여 정해진 크기 속에서 최대한의 공간과 안전성 확보가 디자인의 중점. 어떤 식으로 최대한의 인원이 정해진 공간에 들어가며 편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지 생각하여 접이식 의자와 높낮이 조정이 가능한 프레임을 사용,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알맞게 자리에 착석할 수 있다. 지하라는 여건상,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천장엔 밖의 환경을 그래픽적으로 표기, 양옆의 스크린엔 외부의 모습을 담아 지하에서도 밖과의 연결을 도모하였다. 출입문에는 역에서 내부를 볼 수 있게 큰 유리로 디자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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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우리의 꿈 : 카페사장…?

올해 여름, 합숙 연수 중에 있었던 강사 분의 말이다.“여보세요, 젊은 사람들 꿈이 카페가 뭐야 카페가. 우리나라에 카페 충분히 많아. 꿈 좀 크게 가지자!”속으로 분개했다. 감히 소중한 내 꿈을 모욕하다니. 모든 사람이 큰 꿈을 가져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폄하하다니. 옆 사람에게 나의 불만을 얘기하려는 순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불만 어린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에 웃기면서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카페 창업이 젊은 사람들의 꿈이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디자인과 출신들의 카페에 대한 열망은 다른 전공보다 강한 듯하다. 카페 + 디자인 스튜디오,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묘한 어울림이 ‘카페를 하면서 스튜디오를 같이 하는 거지.커피값에 디자인 작업 조금만 하면 넉넉하게 살지 않을까?’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 느슨한 상상은 자금, 인력, 장소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바로 깨져버리고 만다.

당신은 무슨 ‘일’을 좋아하는가?
고인이 된 스티븐 잡스가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이 모두의 가슴에 불을 피웠나 보다. 서점에 가면[서른, 아직 늦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 같은 책들이 항상 순위권에 노출되어 있다. 책 제목만 봐도 빨리 어디라도 떠나거나,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할것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있을까? 우리는 이제껏 자라오면서 ‘좋아하는 것’ vs‘일’은 서로 반대개념으로 인식해 왔는데 그게 공존해 있다니, 일단 개념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모두 소비자의 입장이다. 나는 축구/게임을 좋아하는데, 그 둘과 관계된 직업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20대의 졸업생과 취업 준비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번도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자신의 길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선입견에 빠져있거나 부수적인 욕망을 탐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소설 [타나토노트]에서 막 사후세계로 올라온 영혼이 심판 받는 장면이 나온다. 착하게 살았음을 주장하는 영혼에게 ‘너는 역사적인 작곡가가 될 운명이었는데, 평생 동안 쓸데없는 일만 했다’라며 벌을 준다. 성실하게 살아서 벌받는 것도 서러운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니. 그 영혼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막상 눈 앞에 놓이자 싫어지는 상황을 마주친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분야가 알면 알수록 매력 있어지는 현상은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는 뭔가 결정하기엔 충분치 않다. 그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해야 한다. 일과 취미를 통해서 직접 경험하거나, 또는 책과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그 과정을 겪고 나면 우리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착각으로 드러날 확률이 높다.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사람들 중, 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장한 케이스보다 전혀 다른 분야들을 넘나들었던 사람들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이런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이 사람들은 많은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여기에 진부하지만 빠질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바로 열심히 하고, 잘하고, 완성하는 노력이다. 사실 스티븐 잡스가 얘기한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의 앞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를 움직이는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I ‘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려나.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겠어!라고 뛰쳐나가는 이의 발목을 잡을만한 내용 아닌가. 혹시 이직이나 새로운 환경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전에 한번 뒤돌아 보기 바란다.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했는가. 노력은 전환의 타이밍에서 자기 성찰을 위한 용기인가, 무책임한 도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좋아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디자인은 스스로 잘하겠다는 동기부여 없이는 결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호불호를 말하려면 적어도 맛을 봐야지. 많은 디자인과 학생들이 디자이너라는 이름이 쫓아 디자인 전공을 선택한다. 교수님 컨펌을 통과하지 못하고,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며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나 역시 내 심신이 불편한 상황이면 어김없이 이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무슨 일을 좋아하는가?’ 사실 더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분야가 있는데 엄한 데서 정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닌데.. 더 활기차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일 데가 있을듯한데… 내가 카페(겸 스튜디오)의 꿈을 꾸는 건 이때쯤이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 카페 사장의 꿈은 파도처럼 매일 부딪혀야 하는 업무와 치열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상상의 도피처임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 특정한 영역에서 빛날 사람이다-그 영역이 디자인이든 아니든. 아직 너무 쉽게 디자인을 포기하지 말고,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말자. 중요한 것은 해내려는 노력과 자기 성찰이다. 그 노력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노력한 만큼의 디자인 해결능력은 당신의 강점 중 하나가 될테니까. 이러한 성찰과 경험으로 당신이 카페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 때는 나도 박수치며 환영하겠다. 그 카페는 실패하지 않을 카페가 되리라.

There is an old-fashioned story that cannot be neglected. It is about the effort to work hard, to do great, and to complete. In fact, Steve Jobs first said,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before mentioning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I was struck with his words. His word could put someone to a pause to rethink about the hasty thought of ‘Oh, I’ve got to find what I love!’. If you are thinking about changing jobs or searching for new environments, I insist you to look back upon your past before making any decision. Did you respectfully try your best? In the period of transition, effort is the yardstick for judging your decision. Are you taking the courage to have moments of introspection? Or are you irresponsibly escaping?

 

유기적 디자인관점

The architect who designed the Seoul Branch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Korea thought of two principles. The first principle was that “The building we build cannot be superior to the Gyeongbokgung Palace” and that the buildings around the cultural properties should comply with numerous regulations. The architect integrated the brick of the Defense Security Command building, terracotta tile, and the roof tile of office of the Royal Genealogy under the theme of “soil”, and installed huge windows in places of the inner part in order to bring the cultural heritage into the building. The inner wall of the Education Building was colored in simple white so that it would not be noticed much. The intention was to direct people’s attention to the outside of the Museum, not the inside. “Let the artists complete the Art Museum” was the other main thought of the architect. “Except for the Leeum Museum of Art”, says the architect, “there are not many spaces in Korea where artists can amply hold their exhibitions”. The architect continues to mention, “There was a sense of ‘morality’ reflected on the Seoul Branch as we aimed to place the importance of Art in the center even if we had to give up the architectural aspect.”

레고사의 디자인 솔루션
전통의 완구회사 레고(LEGO)는 1990년대 들어서 사양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는데 레고회사 자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때 어린이 고객들이 레고보다 비디오게임기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동들이 전원만 켜면 바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려서 비디오 게임시장에 뛰어들었고 조립하지 않고도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실패해서 2004년 레고는 사상최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러한 레고의 문제점을 ‘레드 어소시에이츠(Red Associates)’라는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가 해결해주었다. 레고가 원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였는데 컨설팅회사는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바꾸어봤고 이의 조사를 위해 LA, 뉴욕, 시카고, 뮌헨, 함부르크 등지에 사는 가정에 조사팀을 파견하여 수개월에 걸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촬영하고 심층인터뷰를 했다. 조사팀이 발견한 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즉각적인 쾌락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 외에도 큰 즐거움을 느꼈다. 결국 레고는 오히려 더 어려운 제품을 만들었고 조립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더 근사한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레고 블록 개수가 1000개가 넘는 제품을 더 많이 개발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레고제품을 유기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어린이 고객과의 Interaction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제품디자인에 적용하여 적절한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도쿄 외곽의 무사시노 미술대학교(Musashino Art University)의 대학 도서관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서관 정면에는 책장이 가장 앞에 나서고 있다. 책장이 기둥이고 보(beam)이고, 창문이고, 길이며, 담도 이루고 있다. 책장으로 지은 집 아니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이야말로 건축의 도움없이 책만으로도 그 깊이와 공간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건축이라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의 도서관은 그것을 증명하듯 서 있다.
내부 역시 보이는 전부가 책장과 책이다. 거대하게 솟아난 책장이 8.5m의 기둥이 되어 지붕을 받치고 있고, 떠있는 다리가 책장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내고 있으며, 책장으로 된 계단이 사람을 2층으로 올리고 있다.
천정마저 반투명 재질로 살짝 가린 식이어서, 마치 지붕 아래 책장이 자라고 있는 책의 숲과 같은 기분이 든다. 지하 수장고를 제외하고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상 1층 연구 층(Research Floor)과 지상 2층 공부 층(Study Floor)의 모든 내부 경관은 오로지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1)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1)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책장이 다 책꽂이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6단 위로의 책장은 책을 꽂는 용도 보다는 건축의 마감용으로 쓰였다. 외부에 쓰이는 책꽂이 역시 책의 집을 상징하는 마감 재료다. 보통 도서관의 서가는 ‘총류(0)->철학(1)->역사(2)->사회과학(3)->자연과학(4)->기술(5)->산업(6)->예술(7)->언어(8)->문학(9)’ 이렇게 0에서 9까지 분류에 따라 차례대로 나란히 배치된다.
하지만 이곳의 서가는 0번 총류에서 9번 문학까지 회오리처럼 둘려져 있다. 그 사이를 방사상으로 뚫고 지나가는 길을 두어 이 겹겹이 쌓인 미로의 서가 사이를 이용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 책장이 벽이 되고 그 아래로 난 게이트를 통해서 그 뒤의 책의 벽으로 연결되고 또 이 아래 게이트를 통해서 이 뒤의 서가로 연결되는, 책장으로 연속되는 방사상의 터널이 눈에 띈다. 4.8m의 천장 끝까지 닿는 높은 서가와 3-5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서가, 저마다 다른 위치와 크기로 난 책장 터널 때문에, 돌아가는 서가들은 차곡차곡 중첩되어 보인다. 낮고 높고 저마다 모양을 가진 서가와 다양한 표지판의 조합이 서가 사이로 난 길 모두를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방향성이 없는 서가다. 매번의 선택으로 마주하는 책의 우연들이 점차로 예술을 하는 방향을 정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무덤처럼 잠이 들어 있기 쉽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쉽게 잠들고 말아버리는 책들을 깨우기 위해서 이런 장치를 했다. 바닥과 벽에 있는 서가의 배치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여정을 고민하게 하는 지도다. 물론 길을 잃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책의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우연이 이 안에 있는 것이다.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린 붉은 벽돌의 라운지, 은은한 노란빛 테라코타 타일로 장식한 교육동이 전면에 드러날 뿐 전시실은 뒤로 물러나 있다. 건물은 하나같이 나지막하고 곳곳에 마련된 공간은 휑해 보이기까지 한다. 건물의 목적이 무엇인지, 건축가의 개성은 어떠한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완공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시청사에 비하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서울관은 ‘겸손’하다. 미술관 앞뒤로 자리한 경복궁, 종친부 등 전통 건물에 대해, 내부에 들어선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겸손하다. “내가 더 잘났다”고 소리 높이는 대신 미술관 안팎의 전통과 미래를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두 가지 원칙을 먼저 떠올렸다. 우선 “무엇을 세워도 경복궁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고 문화재 인근 건물에는 수많은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건축가는 기무사의 벽돌, 테라코타 타일, 종친부의 기와를 ‘흙’이라는 소재로 묶었고, 건물 내부 곳곳에 큰 유리창을 만들어 앞뒤의 문화유산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교육동 내부 벽은 단순한 흰색으로 칠해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게 했다. 미술관 안이 아니라 바깥을 내다보라는 계산이었다.

또 다른 생각은 “미술관은 미술가들이 완성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건축가는 “한국에는 리움 미술관 정도를 제외하면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할 공간이 많지 않다”며 “서울관만은 건축적인 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미술을 중심으로 해야겠다는 ‘도덕’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무사는 삼청동, 소격동 등 북촌 일대를 가로막고 있어서 건축가는 “군부대가 막은 골목길을 뚫어주고 싶었다. 도시의 동맥경화를 치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관에는 정문, 담장이 없다. 주변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도 미술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곳곳에 진입로를 만들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미술관 한복판을 관통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입장권을 사야 하나, 수위 아저씨에게 혼나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누구나 드나들도록 열린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 의도였다.
관람객은 서울관 내부에서도 길을 잃기 쉽다. 작품을 중요도에 따라 배치하지 않았고, 정해진 동선도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서울관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도시”라며 “건물에서는 건축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서울관에서 자유롭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뒷사람이 다가올까 봐 관람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감상 순서도 마음대로다. 민 교수는 “미술관 속에서 헤매면서 작품을 하나씩 조우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관에 오면 미술은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술관을 날 잡아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마트처럼 쉽게 들르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관이 특화시킨 현대미술은 이러한 아이디어와 더욱 잘 어울린다. 건축가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벨기에 작가 카르슈텐 휠러의 미끄럼틀 모양 작품 ‘테스트 사이트’를 설치하면서 ‘런던의 놀이터’로 진화한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관의 관람은 미술을 몸으로 느끼며 즐거워하고, 그러는 사이 작가를 알고, 경복궁이나 북촌의 맛집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