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사람들, 물건들, 이슈 둘

Nov 29, 2021 | Design Message

채승진_Chae, Sungzin

채승진_Chae, Sungzin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전공교수

Concepts, People, Objects, 2 Issues

This is the first time I have been in and out of the school library to borrow books as often as in 2021. There were quite a lot of students who came to school to take classes, but the majority took non-face-to-face classes. So, reading a book on campus, which was quieter than ever, was my second-favorite pastime after walking. I have collected short articles that I copied down from time to time while living this way and reading.


2021년처럼 학교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리며 많은 책을 빌려본 때는 처음이다. 수업 들으러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지만,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때 보다 조용한 캠퍼스에서 책 읽는 일은 산책 다음으로 좋은 일이었다. 이런 생활과 독서 중 가끔 옮겨 적은 짧은 글들을 모아봤다.

개념

현명함
현명함은 지능과 무관하다. 현명함은 경청하는 능력으로, 복잡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해석
해석은 맞고 틀리고가 없다. 오로지 풍부한 해석이냐 빈곤한 해석이냐, 감추어있던 것을 드러낸 해석이냐 불모의 해석이냐, 새로운 지각적 자극을 주는 해석이냐 지루한 해석이냐 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Tzvetan Todorov, 1939-2017)

불안
사회적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욱 커진다.
일어나세요. 수면제 먹을 시간입니다.

불확실성
네 가지 불확실성이 있다:
1) 내가 어느 정도 제거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것.
2) 구체적 예측은 안 되나 감내할 수 있는 것.
3) 예측은 되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4) 내 인식의 범위에 벗어난 것.

안전
건강한 마을에서 길거리의 안전은 경찰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지켜낸다. 안전을 지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들이 스스로 강제한 자발적 통제와 표준의 무의식적인 관계망이다. (Jane Jacobs)

핫(hot)하다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유행하는 말. 여기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음은 조만간 식을 것이라는 시공간적 사실

교양
교양을 말할 때, 흔히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먼저 온다. 근데 여기엔 이미 지식을 기능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더하기 세계에 대한 정신적 통찰, 이 정도로 충분하다.

지적 미덕
학자들의 전통 속으로 들어가 보기, 역사 속 도덕 생태계들의 전모 알아보기, 냉철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눈으로 대상을 살펴보기. 정서적 지식으로 공감 능력 키우기. 사랑할만한 새로운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미적 감수성에 도달하기. 그리고 용기.

의무 이행에 대한 판단 근거
충분히 큰 문제인가.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는가. 나는 진정으로 열정이 있는가.

전공 교육
우리 대학 산업디자인학 전공 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공부한 학생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성찰적 태도로 인해 직장과 직업 세계라는 소속집단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과장하고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하며 그 때문에 얼마나 바쁜지 떠벌이는 데 기쁨을 느끼는 게 현대 조직인들의 인간상이다. 산업디자인학 졸업생들은 대개 이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자본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든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다. 자본 이동에 따라 공장과 일터가 순식간에 이전하고 사라질 수 있다. 인간공동체가 생활 여건이 자리 잡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망가진 공동체는 새로운 산업의 진입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직장
언제부터인지 직장이 신분이 되었다.


사람들

시민
일면 겉으로 멀쩡한 인간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혹은 세계적으로)엔 무시무시한 사이코들이 많다. 양부모들의 사회적 위치와 집안 배경을 볼 때 그 누구도 이들이 잔혹한 살인자일 가능성을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정인이 사태를 보며)

유튜브 세대
상호부조는 듣기 싫은 말이고, 욕심은 미덕이고, 쾌락은 의무가 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표자들. 유튜브 좀 해봤더니 금방 월 50만원 벌었단 유튜브를 만들고, 이 유튜브로 천 명 구독을 모아 300만원을 벌고, 어떻게 그렇게 300만원을 벌었단 걸 소재로 만 명 구독을 올려 1000만원을 벌고, 또 어떻게 그렇게 유튜브로 월 1000만원 벌었나 다음 편 유튜브 만들어 또 벌고, 벌고, 벌고 한다(혹은 한다더라). 유튜버기도 하고 구독자기도 하고, 구독자기도 하고 유튜버기도 한 그들은 그들끼리 잘 먹고 잘사는 영구기관들.

예술가
남자 예술가에겐 여성이 필요 없고, 여성 예술가에게도 남성은 필요 없다. 예술가는 내면에 이미 여성성, 남성성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예술가는 누굴 먹여 살릴 경제력이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정치인
대체 무엇이 정치적으로 ‘건설’적인가?

공무원
19세기 중반 발자크는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로 등장한 공무원을 왕과 귀족이 누리던 지위를 인계받은 집단으로 묘사했다. 비록 세습은 안 되지만 임기와 지위와 임금이 보장되며 이의 토대는 국민(과거 평민)의 세금이다. 이게 바로 변호사, 의사, 교수같이 일면 화려해 보이는 전문가 집단이라도 결코 공무원을 극복하기 어려운 근본적 요인이 아닐까?

관료
-관료주의 원칙 1: 알고 있어도 말해줄 수 없다. 그건 내 업무와 책임이 아니기 때문
-관료주의 원칙 2: 서류를 정확히 적어내는데 편집광적이지만 그 서류 내용의 유용성엔 아무 관심이 없다.
-관료주의 원칙 3: 교실이 물에 잠기거나 불길에 싸여도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학생들을 대피시켜서는 안 된다. 매뉴얼에 따르면 비상벨이 울릴 때만 학생과 교직원이 대피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언론인
조중동삼경은 상습적 거짓말쟁이, 성차별주의자, 종교 근본주의자, 아스팔트 극우파, 교활한 지식인들의 원고를 끊임없이 실어주고 있다. 그렇게 하여 대중이 이들의 존재와 이들 아래 결집하는 집단의 실체를 인지하게 함으로써 그 병리적 징후를 경계하고 그 반대나 혹은 중립적 입장을 어떻게 취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 이것이 조중동삼경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 공군
한국전쟁 시 미군 폭격은 북한지역의 경우 B-29 같은 오키나와 발진 중폭격기가 수행했는데, 공업시설은 물론 민가, 학교, 병원, 결핵 진료소 등 가리지 않고 파괴했다. 남한지역은 경폭 기기와 전폭기를 중심으로 인민군과 그 보급체계를 목표로 했으나 이들이 야간 이동으로 바꾸자 주간 출격한 비행기들은 지상에 세워진 모든 건물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사람을 목표로 했다. 흰옷 입은 피난민들이 기총소사와 로켓, 고폭탄, 소이탄에 맞아 몰살당하고 민가를 비롯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행동반경이 작은 이런 비행기들은 남한 지역에서 15분 전후 체공하는 동안 싣고 온 모든 탄약과 폭탄을 소진하는 게 중요했다. 목표를 세밀하게 가릴 경황이 없었고 대개 그럴 생각도 없었다. 낮 동안 산속에 은폐한 인민군들은 들판의 피난민과 멀쩡한 초가집에 폭탄을 퍼붓고 기총소사를 가하는 미 공군기를 머저리들이라 불렀다. (<폭격>, 김태우, 창비, 2013)

대선 후보
한 때 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통령 인기 순위 1위였다. 그가 임기 내내 한 일이라곤 하부조직(검찰 공무원들)을 총동원해 일가족 하나를 풍비박산 낸 게 전부다. 적어도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다. 게슈타포 숭배.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린 코로나 19보다 무서운 정신병 아닐까? 국민 누구도 검찰당 총수와 조선일보의 표적이 돼서 무사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이주노동자
살기 어려워도 가까스로 살수만 있다면 고향을 떠나진 않는다. 고향이 주는 장점은 친밀함과 안락함만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매우 취약하고 위태롭다. 벌어도 들쑥날쑥하고 건강도 아슬아슬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변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말 큰맘 먹고 온 사람들이다. 국내 이주도 마찬가지. 미국의 경우 1990년 이후 어느 시점부터 고숙련 노동자들은 부유한 주로 이동했지만, 저숙련 노동자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시애틀로 이사비용을 마련할 수 없다. 그리고 이사 가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친구, 가족, 추억, 소속감 등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리가 소득, 삶의 방식, 투표 패턴의 분리로 이어졌고 사람들 사이에 국가가 분절되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디자인 이론가
대학에도 국어학 이론, 철학 이론, 물리학 이론(이론 물리학은 있음), 화학 이론, 혹은 공학 이론이란 전공은 따로 없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이론’이란 전공도 없다. 아마도 (재수 없게 말 잘하는)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디자인 이론가’란 딱지를 붙임으로써 ‘손재주 좋은 진정한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구분하고자 하는 태도 같다. 물론 이들 ‘레귤러’ 디자이너들도 알고 보면 열에 아홉은 눈썰미나 손재주 수준이 일반인과 같거니 혹은 약간 더 좋은 정도. 이는 디자인 이론을 해봐서 알 수 있다. (디자인 이론가 호칭에 대해)


물건들

제품
오늘날 제품은 그 구조나 제작과정을 읽어내기 어렵게 함으로써 이해를 거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찰자나 사용자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소유자가 애착을 덜 갖게 한다. 수십만원을 넘는 휴대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교체하는 심리 저변이 이것일 수 있다. 멀리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기계 생산품을 추악하다고 한 관점 또한 이것일 수도 있다.

다이소
2020년 6월 기준 전국 1,350개 매장에서 3만여 종류의 상품을 판다. 하루 평균 100만 명이 찾는 연 매출 2조원의 유통망. 2,000원 이하가 품목의 80%를 차지. 잘 보면 가격 설정의 주요인은 물건의 질이나 크기보다는 매장 입장에서 유통과 취급의 편의성?…. 그냥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싸고 디자인에 미련 갖지 않게 생김새도 대충일 것. 디자인 핵심은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를 가장 저렴하게 제품화할 것… 그렇다. 다이소는 우리 젊은이들의 생활양식과 취향을 정복했다. 장식용 가짜 책(안 읽어도 된다!), 가짜 꽃(무서운 벌이 안 온다!!), 데코용 나뭇가지(뭐 그냥), 거울 달린 변기 솔(기발하다!), 없는 게 없으니 국졸, 대퇴 학력 불문, 이과 문과, 법과, 공과, 사과, 의과, 디자인과 전공 구분 없이 편리하다. (2020년 1월)

문서
-학교 문서 1 법칙: 우리 대학 직원의 99%는 문서배달(전자문서 전송)을 주 업무로 하는데, 그러면 원래 문서작성은 나머지 1%가 할 것 같은데, 물어볼 게 있어 전화하면 이들은 휴가 중이거나, 조기 퇴근했거나, 점심시간이거나, 회의 중이다. 간혹 부서나 보직 이동을 했거나, 퇴임한 경우도 있다. 다시 연락이 닿아 자초지종이 확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도 바쁘기 때문이다.
-학교 문서 2 법칙: 우리 대학이 교수에게 보내는 문서의 80%는 나와 상관이 없다. 10%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도 상관이 없다. 8%는 이해 불가다. 1% 이미 시간이 지나 무효화했다. 0.5%는 누구든 답신할 수 있고, 실제 뭉개면 누군가 대신 답신한다. 0.5%는 내가 직접 답신해야 한다.
-학교 문서 3 법칙: 우리 대학이 교수에게 보내는 것 중 1%는 비밀번호가 있어야 열 수 있는 문서인데 또 다른 1%의 문서는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문서다. 이 문서에 나온 비밀번호의 1/2은 맞고 1/2은 틀리다.

인스타그램(Instagram)
컬러풀, 휘황찬란, 스펙터클, 가보지 못한, 꿈에 그리는, 그곳, 해방, 그 자리, 찰나적인 순간, 욜로, 아름다움, 웅장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극적인, 흥미진진한, 맑고, 깨끗, 깔끔하고, 티 없고, 섹시한. 그러나 전혀 위험하지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으며 어떤 악취도 없는,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때로는 기분전환, 난 여기 가봤어.. 우월 의식, 가보고 싶다는 열망과 열망의 대리만족. 앱이 알아서 제공해주는 보들보들한 보정작업, 얼핏 조작된 것인지 가끔 의심 한 조각, 아니지. 진위 분간이 어려운 게 뭐 대수인가? ‘좋아요좋아요좋아요….’초긍정 세계. 인스타그램의 세계엔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불행도 없는데…. 어, 이건 지금 우리들 대부분의 사정과 전혀 다른데… 그래도 좋아. 현실은 어렵고 지금 잘 지내지 못하는데 인스타그램 속에선 다 쉽고 하나같이 잘 지낸다. 내가 그의 인스타그램에 흥분하고 그가 내 인스타그램에 감탄하는 동안 그와 나는 플랫폼 기업의 피가 되고 적혈구가 되어 그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영양분을 공급 중이다. 그게 공짜면 내가 상품이다.


-질문: 책을 읽어야 하나요? 디자인 이론이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답변: 1) 책은 대개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무에 도움을 기대하고 책을 보진 않습니다.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봅니다. 즉, 2) 책을 안 보고도 아이디어, 생각이 잘되면 볼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천재입니다. 천재면 책 안 봐도 됩니다. (학생들 중엔 특히 의대생, 법대생들이 지독하게 책을 보는데 아마 제일 머리가 모자란 학생들 같습니다.) 3) 지극히 운이 좋아 슬기롭고 똑똑하고 기량도 탁월하고 마음까지 더할 나위 없는 선생님 혹은 친구 옆에서 24시간 365일 몇 년을 같이하며 배울 수 있으면 책 읽을 필요 없습니다. 4) 마지막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디자인이 잘 된다면 역시 책을 볼 필요 없죠. 디자인이 끊임없이 잘되고 잘 팔려 사는데 바쁘고 돈도 제법 들어오면 책 사는데 돈, 책 읽는데 시간 쓸 필요 없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 질문에 대한 답변, 2021년 1월)

COVID-19
코로나 사태가 디자인 교육에 미친 또 하나의 해악은 인간과 인간은 물론 사물과 인간과의 물리적 접촉의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단지 시각효과를 통한 판단으로 통일시킨 일이다.

가짜뉴스
생산비용이 적게 들고 경제적 보상이 크다. 현실과 팩트에 제약받지 않고 타깃 독자와 시청자에게 그들이 보고 쓰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짜라도 만드는 것이 힘들면 어디선가 복사해오면 된다. 어디서든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2007년 약 5만7천 명에서 2015년 3만3천 명으로 줄었다.

인공지능
생각은 인공지능이 다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팔다리 역할을 한다. 아직은 로봇의 팔다리가 인간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동료 간 친밀감 형성과 유대관계 구축이 불가능하다. 또 누구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개선할 의지를 갖지 않는다.

주택
도시 주택은 노동자의 땅이다. n 잡러에겐 정해진 직장도 주어진 공간도 없다. 그들의 거처가 그들의 경작지(임대료를 내는 소작지)다. 농경시대 농부처럼 현대인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를 떠날 수 없다.


이슈 둘

지방대 위기
지방대 위기라기보다는 ‘서울-수도권 집중화 위기’로, 즉. ‘서울-수도권 집중화가 만든 위기’로 보면 어떨까도 생각한다. 서울-수도권 소재 어떤 기관이나 학교를 지방에 위치시키면 그간 멀쩡했어도 졸지에 위기에 처할 거라는 가정은 그냥 가정이 아니라 곧바로 기정사실이 될 것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울-수도권에 살길 바라고 있음이다. 거기서 직업을 못 구하고 거주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으니 지방서 일하고 사는 거다. 뭐 이렇게 봐도 무방한데, 학생이라고 다를 수 없다. 내신이고 수능이고 점수가 된다면 마찬가지로 in 서울이 당연하고 이를 발판으로 서울서 붙여먹고 살 수 있으면 최고다. 경험적으로 우리 학교 학생 중 서울과 수도권서 온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거의 100% 즉시 원위치한다. 다른 지방서 온 학생들은 여길 징검다리 찍고 서울서 일자리 잡는 걸 기본코스로 하고. 즉, 서울-수도권이 최종 목표인 이상 지방대를 다니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다. 지방대에 계시는 교수님들도 마찬가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갈 수 있다면 냉큼 옮기는 게 상식. 지방대 위기’ 이런 이슈를 들어 우리나라 사회가 돌아가는 근본적이며 상식적 원리와 진실을 변경하거나 어떤 변화 가능하리라 모색할 순 없다. 굳이 파격적 제안을 한다면 서울-수도권 소재 대학이 모두 지방으로 옮기거나, 반대로 지방소재 대학이 모두 서울-수도권으로 가는 건데 이러면 문제의 50%는 해결될 것이다. 이런 일은 구소련의 스탈린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연세춘추 질문에 대한 답변, 2021년 3월)

공공 의대와 코로나
공공 의대 증설 이슈는 무성했지만,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예산은 없었다. 2020년 봄부터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 가을에 닥칠 2차 대유행을 예측했고 이에 따라 사회 거리두기에서 의료수용력 확장으로 정책 전환과 준비를 주장했다. 즉, 감염자 전용 격리, 치료 공간 확충, 인력 동원시스템 구축이다.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4월에서 11월까지 골든타임을 그냥 보낸 것이다. 11월 이후 2, 3차 서지(surge: 대확산)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즉, 3T(test-trace-treatment)만을 반복하고 일일 확진자가 천 명대를 넘자 방역 단계를 상향 조정해 사회와 경제를 질식시켰다. 3T도 흔들렸다. 특히 델타 변이 유행으로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며 불가능한 추적(깜깜이 환자)도 늘었다. 치료인력과 격리치료공간이 부족해졌다(이 상황은 2021년 가을까지 변함없다). 의료계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공공 의대 증설은 사회와 의료계의 갈등과 불신을 일으켜 이후 정부 정책에 의료계의 대응이 미온적이게 만들었고 이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정부-전문가집단 갈등의 몹시 나쁜 선례를 만든 것이다. 이 지점부터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을 것으로 본다. (2020년 12월)

2021년 10월 14일 채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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