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를 넘어가면 디자인은 무엇이 될까?

Nov 25, 2017 | Design Message, 미분류

이주명 Rhi, Joomyung

이주명 Rhi, Joomyung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전공교수

What Will Become of Design that Goes Beyond?

Design needs the independently standing ‘individuals’ who are capable of thinking. This is why I hope that individual decisions and lives be respected even in the near future where a unification of machinery and humanity is inevitable. Each individual is the world and the universe itself. Conserving the individual will lead the design that appreciates beauty to survive. In addition, individuals will need to cut off the networks and reduce communication to prevent themselves falling to be a substructure of the superstructure.


와이에스아이디 편집장이 이번 호 주제를 ‘너머 뭔가’로 정했다고 알려왔다. 그동안 주제는 특집 섹션을 따로 마련하기보다 학생 작품 배치의 틀처럼 사용되는 용도 정도였다. 이번 호의 그 ‘너머 뭔가’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필진들에게 그런 주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라는 주문이었다. 그 ‘너머’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면의 ‘어쩌면 본질’같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열린 해석을 허용한 편집진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해보기로 하였다. 디자인은 언제나 계획이니 그게 실현될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디자인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메타디자인 측면에서 약간 다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계획’1하는 디자인은 앞으로도 그런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고양된 가치인 아름다움을 계획하는 일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세상이 변하는 만큼 그 아름다움과 계획의 세부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약간 걱정이 앞선다.

이미 와이에스아이디 11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름다움이란 종합적이고 궁극적이다.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경로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움은 마음속에 남는 긍정적 느낌의 극치를 뜻한다. 그 느낌은 순간적이기도 하지만 오래 남기도 하면서 인간의 뜻과 행동을 이끈다. 어떤 포구의 멋진 석양에 시선이 끌리고, 거기 담긴 훈훈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마치 고향인양 그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식이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한, 인간에게는 디자인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인간은 위협받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의 열성인자가 갖는 비효율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우열의 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겠지만 논쟁에서 이겼다고 열성을 없애는 이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느림이 빠름보다 항상 열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는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다. 어느 때부턴가 지하드의 자살 폭탄이 다반사가 되고 인터넷 세상의 마녀 사냥은 중세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벌어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간단한 조작만으로 대중에게 위해를 끼칠 수단을 갖고 있다. 반문명의 잔인한 살육의 역사는 이제 오랜 평화에 지친 듯하다. 하지만 우열을 따지고 폭력적 상황에 처하는 것이 인류에게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그 역경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은 무엇이어야 할지 자문하면서 생존해왔다. 폐허 안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그때부터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무엇인가 계획한다. 그 안에서도 디자인이 작동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닐 미래가 차츰 예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가 제한된 지능을 갖는 시점은 이미 도래하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은 그리 멀지 않은 2045년쯤이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과 기계가 합쳐진다는 예측도 있다.2 가장 뛰어난 지능체인 인간을 연구해서 기계의 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의 학습을 본 딴 기계 학습의 경지에 다다랐다. 이제는 오히려 인공지능의 딥러닝의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것을 연구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3 이런 합체가 계속된다면 인간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확장성과 기계의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슈퍼사이언인으로서 영생을 얻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인간은 이전의 나약한, 실수를 저지르는, 고독한 인간이 아니다. ‘강력하고 실수와 고독을 모르는 인간’이다. ‘기술이 진보할 때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올 것으로 예측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4고 하지만 과거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계와 앞으로 지력을 대체할 인공지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먼저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금도 권위를 뒤집어쓰고 다수를 가장한 고정관념이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적 판단을 지배하곤 한다. 아름다움은 오로지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모여서 ‘우리는’이라는 언술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 안에는 엄연히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연결’은 우리를 확장시키면서도 개인을 훼손할 가능성 또한 크다. 즉, ‘개인’과 ‘우리’가 동시에 추구되기는 어렵다. ‘네트워크 우리’가 아름다움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결정하고 개인은 하나의 ‘단말’로서 자기의 것으로 수용한다면 그것은 개미의 세계이지 인간의 세계는 아니다. 디자인은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개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간과 기계의 합체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도 나는 개인의 의사와 개인의 삶이 존중되길 바란다. 개인은 세계이고 우주이기 때문이다. 개인을 보전해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인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상부의 부속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소통을 줄이고 네트워크를 끊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계획하는 행위는 어떨까? 앞으로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해줄 것, 즉 니즈를 발견하고 그것을 충족시킬 대안을 찾는 것이 디자인의 계획 활동이다. 대안 찾기는 모형 제작이라는 고전적 디자인방법을 기초로 한다. 미리 만들어보고 테스트한다는 과거와 동일한 골격으로 ‘이러면 어떨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차츰 실체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이다. 디자인과 ‘모형(모델)’이 동의어인 것은 그래서 너무 당연하다. 모형을 통한 시뮬레이션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점차 현실에 가까운 모형을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5 반면 니즈를 발견하는 행위는 비교적 최근에 심화되고 있다. 디자인상의 복합성, 연계성이 증가하고 이해관계자도 늘어나는 등 이해할 것이 복잡해지면서 통찰6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통찰의 방법으로써 그동안 인류가 발전시켜온 다양한 현상 이해의 방법을 여기저기서 도입하다보니, 그 혼란 또한 디자인이 니즈를 발견하는데 어려움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상 이해와 니즈 발굴로 이어지는 계획의 전 단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정량과 정성의 관계일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근본적으로 수치를 싫어한다. 과거 개발현장에서 디자인의 존재가 미미하던 시절 마케팅의 양적 조사 결과에 치여서 방황하던 기억은 끔찍하다. 2000년 이후 관찰을 중심으로 현장 조사 활동이 대세가 되고 공감 수준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정성적 접근이야말로 디자인의 특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정성적 접근은 디자이너가 직접 이해하는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도구인 디자이너 자신이 공감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대상과 그것을 둘러 싼 현상의 통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은 온전히 사람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도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컴퓨터가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이너는 대상을 이해하고 그것은 결국 디자이너 개인의 성찰로 연결된다. 그렇게 사람 디자이너는 디자인 행위를 통해 디자인 결과물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구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지만 동시에 디자인은 성찰의 도구이기도 하다.

지금 정량은 빅데이터로 다시금 정성을 압도하려 한다. 전체를 조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빅데이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모두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분야의 신과 같지 않겠는가? 고객에 대한 이해에 굶주린 디자이너들도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최소한 빅데이터로 가공된 자료들을 받아 보려 할 것이다. 과거 마케팅이 던져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고객의 데이터를 해석하고 디자이너들은 다시 그것을 받아서 형태를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과거 조사지 몇 장에 무응답을 두려워하며 최소화시켰던 문항 몇 개를 기초로 빈약한 데이터를 생성·해석한 결과였던 것에 비한다면 앞으로 정량 전문가들이 제공할 데이터는 다를 수 있다.7 하지만 조사 결과는 데이터 제공 서비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매우 대표성 있게’ 축약될 것이고 결국 디자이너는 날것이 아닌 정제된 인스턴트 정보를 입수해 그것을 형태로 가공할 것이다. 정량은 또 다시 디자이너를 현장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것이 계획 과정, 이해 단계의 미래 모습이라면 디자이너의 계획가로서 지위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디자이너는 다시 형태를 만드는 전문영역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엊그제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대표 공산주의 국가의 수반이 3시간 반 동안 설명한 국가 전략 속에서 ‘디지털 레닌주의’라는 키워드를 읽어냈다. 레닌은 칼 마르크스에 이어 공산주의 운동의 초기를 장식했던 이론가로서 소비에트연방소련의 기초를 만들었다. 하지만 1991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해체를 선언하고 이는 공산주의의 패배를 자인한 것으로 인정된다. 현실의 공산주의는 공산당 일당 독재의 비효율과 부패를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디지털 레닌주의는 이러한 레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권력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사회·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발상이다.8 과연 ‘효율적으로 통제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속에서 자유와 개인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개인이 죽고 집단이 정한 아름다움은 교조적인 억압의 수단이 되기 쉽다. 디자인의 미래는 사회와 정치, 인간의 삶의 변화에 달려있고, 그 배후에는 무섭게 증식하는 기술, 기계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사라진, 변화된 인간으로 대체된,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진흙탕 속에서도 디자인이 꽃을 피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따라 디자인도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인간은 나약함과 결핍, 부족함을 배려와 사랑과 꿈으로 보완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다.

  1. 도구를 계획하는 것도 디자인일 것이다. 도구에 대한 긍정성은 사용으로부터 온다. 제 일을 제대로 할 경우 아름다운 것이다. 사용자가 사용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도구의 궁극적 목표다. ↩︎
  2. http://www.businessinsider.com/ray-kurzweil-most-extreme-predictions-2015-11/#by-the-2030s-nanobots-will-plug-our-brains-straight-into-the-cloud-1 ↩︎
  3. 이를 인공지능신경과학(AI Neuroscience)라고 부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3/2017101301543.html ↩︎
  4. 캘리포니아 공대 카버 미드 교수, http://www.hani.co.kr/arti/economy/it/811406.html ↩︎
  5. 시뮬레이션이 기술 지향이 되면서 많은 비용이 필요하게 되고 실제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 예측 능력의 차이가 생긴다. 대형 회사들이 고도의 시뮬레이션을 실시할 예산을 손쉽게 동원하는 반면 반대인 경우 빈약한 정보와 허접한 모사를 상상으로 채운다. 무엇이든 고도화되면 상하위의 격차가 벌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여담. ↩︎
  6. 전체를 본다는 의미인데 보통 insight라고 부르는 유행이 생겼다. insight는 때로 고찰의 결과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를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해서 현상의 핵심을 요약하는 통찰을 분리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7. 그 전문가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
  8. http://news.joins.com/article/2203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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