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디자인학을 배워야 하는가?

Nov 25, 2017 | Glocal Experience

배인호_Bae, Inho

배인호_Bae, Inho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15

Why Study Design?

When I came back from the visit, I gazed at the sticker on my laptop. I regretted that I had been ignoring the fact that there were so many people working effortlessly to produce my design. Past memories came up my mind like a flash. I saw myself pushing the manufacturers for a tighter schedule and cheaper cost. I have been underestimating the effort and understanding I need for being a designer. I was making profit and I also succeeded in getting a name in the field, but I was still feeling empty inside unlike how people expected I would feel. Focused on deviation from the norm rather than people, my design was only a meaningless kitsch.


왜 디자인학을 배워야 하는가?

왜 디자인학을 배워야 할까? 이 학교에 입학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의문이다. 나는 3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궁금했다. 안 그래도 취업이 안돼서 힘들다는데, 디자인을 한다는 사람이 책을 끼고 강의실에서 이론 공부를 한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디자인은 ‘실용학문’이지 않은가? 나는 당장에 예쁜 제품들을 만들고 싶은데 학교에선 디자인의 역사, 인간공학, 디자인 방법론 등 쉬운 내용도 어렵게 쓴, ‘정의를 내릴 수 없지 않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마지않는다’ 따위의 내용을 외우며 시험을 보는 게 전부였다. 정말 힘들게 열망하면서 진학한 학교라서 그런지 실망감은 더욱 컸다. 이윽고 슬럼프에 푹 빠질 때쯤 나는 작은 일탈을 시작했다.

2014년 애플은‘Sticker’라는 제목의 획기적인 TV 광고를 낸다. 제품 자체를 홍보하던 기존 광고와 달리, 스티커를 통해 제품을 은유적으로 녹여낸 광고였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이 광고에 푹 빠졌고, 직접 스티커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첫 반항은 고등학생 때 상상해온 작업을 실제로 옮겨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을 테마로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스티커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한국적인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그래픽 소재로 항상 에펠탑, 성조기, 유니언잭만 등장하는 것에 대한 지루함이었으며, 자국 소재를 담은 디자인들을 ‘촌스러운 것’과 ‘국뽕’으로 치부해버리는 편견에 대한 항의였다.

Copyright 2015. Bae In-ho

나는 고3 시절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들을 컴퓨터로 옮겼다. 애플 로고에 물결을 그어 태극을 만들고, 하단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들을 배치하였다. 브러시와 지우개, 색상 오버레이만으로 간단하게 콘셉트 이미지를 제작하고 맥북 커뮤니티에 올려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의외의 일들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좋아요가 수백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디서 구매할 수 있냐는 댓글들이 달렸다. 심지어 스티커의 제작을 맡아주겠다는 업체도 생겼다. 그 재미없는 공부에 대한 반항이었는데 너무나 상황이 커지자, 이쯤에서 끝낼까 생각하는 한편 ‘한 번 팔아봐?’라는 장난기 어린 생각도 들었다. 고민 끝에 결국 나는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사업은 대박의 연속이었다. 우아한 형제들, 다음 카카오, 검찰청 등 다양한 곳에서 스티커를 구매해갔고,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애플샵인 ‘프리스비 명동점’에서 이벤트도 진행하였다. 심지어 해외 주문도 많아 현지 판매도 준비 중이다. 네이버 스토어 스티커 리뷰 순위 2위, 연예인들의 구매 인증, ADE2017(애플교육자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 팀이 내 스티커를 붙이고 참가하는 등 내 제품은 연일 화제가 되었다. 이젠 구글에 ‘디자이너 배인호’를 검색하면 내 제품이 나오기까지 한다. 현재는 ‘서울마니아’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일산 킨텍스 전시를 마치고 광화문 면세점, 청와대 사랑채 등에 입점 준비 중에 있다. 돈은 원한다면 너무 쉽게 벌 수 있었고, 수많은 리뷰를 보며 내심 만족스러웠다. 이걸 이루는 데에는 공부도, 비싼 등록금도 필요 없었다. 일탈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쯤에서 한 번 더 묻고자 한다. 도대체 왜 디자인학을 배워야 하는 것인가?

디자인 공부의 목적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최근 중국 절강 대학에서 진행된 ‘캠퍼스 아시아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워크숍은 중국계 조명 회사와 함께 진행되었는데, 일정 중에 있었던 공장 견학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곳에선 샤오미의 신제품 생산이 한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앉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납땜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바로 앞에서 공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치 동물을 구경하는 것만 같은 비참함과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내 노트북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다시 보았다. 내 디자인을 실체화 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일해 왔다는 것을 모른척했다는 게 후회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내가 행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단가가 비싸다며, 제품이 늦는다며 업체를 수도 없이 다그쳤던 내가 보였다. 디자인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도 많이 벌고 나름 유명해졌지만, 남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나는 여전히 허전했다. 사람이 아닌 일탈에 목적이 맞춰진 내 디자인은 결국 무의미한 키치일 뿐이었던 것이다.

흔히 거리에서 요구하는 수준에서의 디자인은 정말 쉽다. 학원에 가서 한 달만 배워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디자이너는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 컴퓨터도 그 정도는 한다. 우리가 디자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미를 추구하는 직업이 아닌,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예로는 아이폰과 갤럭시노트7이 있다. 2010년 아이폰을 생산하던 폭스콘 공장의 직원 18명이 잇달아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노트7의 연쇄 폭발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제품만 만들면 되는 것인가?’

혹자는 이 사태의 책임을 관리를 못한 경영진과, 설계 오류를 살피지 못한 엔지니어의 탓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회피하려 해도 결국 소비자들에게 쥐어지는 건 디자이너가 고안한 하우징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 말은 곧, 제품 제작 전 과정에 있어 디자이너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교수님마다 디자이너에 대한 정의가 각각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때로는 경영으로, 때로는 엔지니어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는 디자이너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디자인학은 ‘실용학문’이다. 이는 단순히 산업에 쓰이는 학문이 아니라 베푸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힘들게 디자인학을 배우는 것이다. 비록 어려운 수업과 수많은 과제의 연속이지만, 이러한 연단이 결국 우리의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데에 단단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정진했으면 좋겠다.

나는 7월 중 YSID 편집부로부터 기고를 제안받자마자 바로 원고를 써 내려갔다. 그땐 단순히 나의 스티커 판매 경험과, 뻔한 성공 사례를 나누려 하였기에 비교적 쉽게 원고를 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공장을 다녀오게 되었고,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군 입대를 하루 앞둔 지금에서야 원고를 완성할 정도로, 글을 작성하는 내내 정말 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 더 이상 나의 그릇된 견해를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정말 디자인학이 싫었다. 많은 동기들이 기억하듯 한 달 가까이 학교를 안 나간 적도 있다. 이미 학부 생활을 반 이상 마쳤지만, 지금이라도 공부의 본 목적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이 나처럼 공부에 의문을 품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깊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기에 내용 간에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쪼록 글을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하며, 입대 전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YSID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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