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탐방: 현대디자인세미나

Nov 19, 2018 | ID Lecture, Know-理知

이다현 외 17명

이다현 외 17명

2018 현대디자인세미나 참여학생

Exploration of a class: Critical Issues in Design

What is the meaning of (industrial design, visual design, digital art) in my life?
What are my convictions and attitudes about living as a/an (industrial designer, visual designer, digital artist)?
What is the critical role of (industrial design, visual design, digital art) in society?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education provided in the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department of visual design, department of digital art) at our university?
We had to write, present about, and discuss an essay during the modern design seminar course in the first semester of the 2018 academic year addressing the four themes listed above. The following passages were taken from those presentations.


각 질문 모두 택 1: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디지털아트

  • 내 삶에 있어서 ○○○의 의미는?
  • ○○○로 살아가는 나의 신념과 자세는?
  • 사회에 대한 ○○○의 핵심적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우리대학 ○○○의 교육의 특징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이상 네 가지 주제로 18년 1학기에 진행된 현대디자인세미나에서 에세이를 써와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글들은 그 때 발표된 내용 중 일부를 뽑아본 것이다.

2018년도 1학기 현대디자인세미나 수업에서 디자인예술학부 학생들이 에세이를 작성하고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였다.


우선 ‘예쁜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사람들은 보통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합리적 소비보다 비합리적 소비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필요에 의해서 구매하기보단 단순히 예쁘거나 특이해서 혹은 호기심에 의해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외형이 눈에 띄고 예쁘지만, 기능으로는 쓸모가 없는 제품들을 통칭하여 예쁜 쓰레기라 표현한다. 과연 이런 제품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우리의 소비문화에 발맞추기 위한 것들이 아닐까? 이런 제품들을 디자인한 산업디자이너들은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인가? 디자인은 왜 예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필립 스탁의 레몬 착즙기는 불편하다. 쉽게 미끄러지는 다리 때문에, 그 다리를 잡고 레몬을 짜려고 하면 손이 다 젖는다. 차라리 레몬을 직접 손으로 짜는 것이 나은 수준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착즙기”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꾸준히 잘 팔리며, 디자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쓸모가 없다며 나쁜 평가도 상당히 받는다. 그래서 이것이 나쁜 제품일까? 그저 사용하기 불편한 제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레몬을 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편함이라는 요소와 디자인은 상반되는 위치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꼭 디자인은 유용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디자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에 내가 반대하고, 틀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불편함이라는 요소가 과연 “디자인적이다”라는 말을 부정한다는 것에선 동의하지 못하겠다.


자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싫다’라는 감정은 직선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 맥락이 달라붙어 침식된 강줄기처럼 곡선이 되어간다. ‘싫다’라는 개념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내포되어 있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자체적으로 금한다. 무엇이 싫다는 감정 혹은 발언은 대상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말로 옮기기 쉽지 않다.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하면 생각조차 금하게 된다. 그렇기에 ‘싫다’라는 감정은 직선으로 표출될 수 없다.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 혹은 도덕적으로 금지된 것에 맞서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감한 행동이다.


디자인은 왜 예쁘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필립 스탁의 레몬 착즙기는 불편하다. 쉽게 미끄러지는 다리 때문에, 그 다리를 잡고 레몬을 짜려고 하면 손이 다 젖는다. 차라리 레몬을 직접 손으로 짜는 것이 나은 수준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착즙기”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꾸준히 잘 팔리며, 디자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쓸모가 없다며 나쁜 평가도 상당히 받는다. 그래서 이것이 나쁜 제품일까? 그저 사용하기 불편한 제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레몬을 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편함이라는 요소와 디자인은 상반되는 위치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꼭 디자인은 유용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디자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에 내가 반대하고, 틀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불편함이라는 요소가 과연 “디자인적이다”라는 말을 부정한다는 것에선 동의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있어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고민하던 시점에서는 차가운 공장보다는 따뜻한 동화 같은 시각디자인이 편했다. 시각디자인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맞는 이미지를 만드는 동화를 짓는 일과 같다고 느껴졌었다. 이제 4학년이 되고 보니 말 그대로 밖에서 본 시점이다. 나는 시각디자인을 계속하면서 그저 보이는 대로의 따뜻한 동화와만 같지는 않았다. 시각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은 시작함에 있어 접근 방법이 다르고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 활용하는 툴이 다르고 결과물에 있어 형태가 다를 뿐 그 나머지의 차이는 결국 만드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큰 감정을 보이지 못하는 내가 만드는 시각 디자인적 결과물은 덧없이 차갑고, 건조하였다. 내가 바라본 따뜻한 감정의 결과물은 그 사람의 따뜻함일 뿐이었다.


결국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디어의 원천은 결국 디자이너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1학년 수업이 누구에게 있어선 감성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충분히 생각한다. 현재 4학년인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1학년 혼합매체라는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필자도 그 수업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와인병의 곡선이 인간이 느끼는 이상적인 코라인과 유사하다고 생각되어 병목을 자르는 과정에서, 병목에 실을 칭칭 감고 불을 붙인 후 차가운 물에 던져 넣었을 때 ‘똥“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그 순간이 잊히질 않는다. 이로부터 온도와 부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몸소 경험한 결과를 얻었다. 이처럼 결국 본인이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얼마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수업의 연관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대학의 문제점을 야수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할 정도로 나는 우리 대학 교육이 과정 자체로는 문제가 없고 이론기반의 탄탄한 교육이 뒷받침되었을 때 충분히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문제점은 오히려 그런 교육과정보다는 조금 더 내적인 요소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 대학은 디자인예술학부 학생들 사이에 커뮤니티가 없다. 기껏 해봐도 서로 공지사항을 알 수 있는 공지방 정도가 학과마다 있는 정도이고, 각 수업의 대표, 조교, 학생회들만 기껏 사용할 뿐이지 모두가 원활히 얘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없다. 산업디자인에서도 선후배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는 YSID, SAY 정도의 소모임이 전부이다. 학교 내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충분히 자급할 수 있다 하긴 했지만, 서울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학년들은 경험적으로 그리고 적어도 건너 듣기라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있지만, 후배들에게 전달할 기회가 없어 그냥 아는 채로 졸업해버린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는 산업디자인 디지털아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번의 시도는 끈기이자 정성이다.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결과가 어떻든 여러 번의 시도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때도 있다. 새로운 방향은 지나온 수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실패가 없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새로운 방향인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을 표현할 때, 내가 예상하는 결과물과 항상 일치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경험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시도를 하거나 방향 자체를 틀어버릴 수 있다. 시도를 통해 계속해서 정답에 가까워지 것이다.


사람들이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기획을 해야 좋은 디자인 방향일까를 알고 디자인하는 것과 그것을 누군가가 정의해서 디자인하는 것과는 결과물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고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기업들은 기획 파트와 제작 파트가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광고하는 매개체가 다양해지면서 그 파트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기획이 완벽한 길을 제시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길을 제시했다면 광고 디자이너이건, 카피라이터이건 상관없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의 디자인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학교에 대한 좋은 인식은 다른 대학 학생들보다 디자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인 디자인 기획력이 우수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디자인 결과물은 타 대학의 학생들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다. 처음 이 학교에 와서 제품 디자인 관련 수업을 듣고, 전공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현실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뚜렷한 목표가 없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전적 대학교에서 실무진의 경험에서 나오는 교육으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미래를 보여주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주어 진로를 더욱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있어 대부분의 학생이 진로를 선택하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연세대가 타 대학과 차별화되어 우세한 위치로 가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무를 병행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취업 학교가 아니지만 최소한의 방향성은 제시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해야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타 대학과 차별화된 능력을 펼치기도 전에 현재의 실력 부족으로 취업의 기회조차도 오지 않아 펼치지 못하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적인 실무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에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에는 철저하게 지켜야 할 디자인 규칙들이 있으며 기본적인 디자인 이론과 시장 조사가 겸해지지 않는 디자인은 단순한 자기만족에 머무르고 말기 때문이다. 나는 시각디자이너는 단순히 자신의 자아를 만족시키는 예술가이기보다는 일종의 마케터의 경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자이너는 자신의 감성과 아이덴티티를 디자인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 고려해야 할 현실적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결코 자신만의 세계에 잠식되지 않고 소비자와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산업디자인에 대해서 처음에 ‘차가운 것’이라 표현했다. 대량생산되는 공산품, 플라스틱의 표면, 산업혁명, 공학이라는 이미지는 학부생으로 들어와 갓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느낀 것이었다. 세계란 거대한 기계의 집합과 같이 보이고 비유와 추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감상적 영역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는 철저히 실용적인 결과였으리라. 이런 것이 삶에서 가지는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처음 산업디자인 학부에 들어와 2학년 과정을 거치면서 가졌던 감정이었다. 기계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실용성, 그것이 산업디자인의 정의인 것 같이 느껴져 학부생 전에 가졌던 산업디자인의 이미지와 간극이 컸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외부의 편견과 같이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그저 예쁘고 깔끔하게 제품을 포장하는 것, 시각디자인은 포스터, 산업디자인은 제품. 실로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 디자인에 대해 그런 마음으로 들어왔던 나에게 오히려 그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기계적인 접근은 내 편견에 격렬히 맞서 부쉈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방황하며 강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의욕 역시 적잖이 떨어졌었다.


업계가 바라보는 ‘디자인’에 쉽게 그 본질을 잃고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산업디자인의 가치를 마냥 이상적이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해서도 안된다. 사회는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더욱이 현실을 인식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와 역할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우리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믿어야 한다.


우리 학교의 장단점은 확실하다. 이론적 강점, 실무적 약점. 디자인 영역에서 실무에서의 경험이 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실무에서의 약점은 꽤 치명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실무’를 가르친다는 것 또한 모순이다. 대학에서는 학문적 지식을 채우고 사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는 모습이 사실은 맞다. 그러나 학문의 탐구가 중심이 되던 전통적인 대학의 성격은 지금은 빛바랜 상황이고 취업을 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대학이 점점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성격이 바뀜에 따라 가르침 또한 실무에 집중하는 곳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학교가 실무가 약하다는 평가도 이런 흐름 때문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여기서 우리 학교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흐름에 맞춰 실무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 아니면 지금과 같이 기초적 탄탄함을 가지고 경쟁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풀어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산업 디자인학 전공 수업에서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든 대상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라고 하지만, 사회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게 되면 디자이너의 그러한 신념과는 달리, 현실적인 부분들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이론과 현실을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졸업을 하여도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사회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이 점은 디지털아트학과는 조금 다르다. 디지털아트학은 오히려 정반대다. 가치 있는 작업을 말하지 않는다. 보기에 그럴듯한 작업을 원한다.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기획을 했던, 시작했던, 작가의 철학이 뭐든 간에, 그 작업에 적합한 좋은 기술과 비주얼이 부가되면 그럼 된 것이다. 그럼 좋은 것이다. 사실, 알고 보니 디지털아트학 전공 교수님들은 그 철학과 그 기술력을 다 겸비한 최고의 작가들이셨는데, 생각, 철학에 빠지다 보면 구현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을 강조한다. 기술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마치 처음의 기획,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 철학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기술력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좋은 작업이라고 평가받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한다. 그것이 디지털아트학 전공 교수님들의 수업 방식이다. 사상에 빠지지 않고 생각에 빠지지 않고 구현해낼 힘을 길러주는 것. 두 가지 다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에도 너무 치우치면 안되고, 기술력만 가지고서도 안되는 것이 있다.


세상의 많은 직업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 분야가 다르고, 하는 일들이 다르다. 의사는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화학자는 사람들에게 많은 화학 재료를 개발하며 석유화학 기술자는 원유나 천연가스 등의 원료를 가공하여 기초 원료를 개발하여 세상에 편리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각자가 선호하는 것들이 다르고 더 나아가 문화가 다르다. 많은 사람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분야는 몇 없다고 본다. 그중 하나가 산업디자인이라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산업디자이너의 역할을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보다는 “미적, 기능적으로 더 나은 것을 해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역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요, 뮤즈요, 안식처이다. 이런 자연이 디자이너들에게, 특히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단지 산업화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자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맨 처음 입학을 했을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다가 지쳤을 때,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을 했을 때 지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치악산의 정경이 마음을 녹일 때가 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얼마나 모순적인 말일까 싶지만, 위안이 되는 거대한 자연이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지금 지리적 위치에 대한 불만을 덜어낼 수 있을 만큼.


2018 현대디자인세미나_이다현 외 1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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