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 of the carpenter, Bahk Jongsun and Concept of the beauty
On October 8, the carpenter, Park Chong Sun who made the furniture laid at the residence of President Park in movie, Parasite, made a special lecture. The discussion on the creation and beauty was main topics and Q/A was continued as the class was in line with emotion design practice. The questionnaires of the students were delivered to the lecturer a few days ago, and he did not listen lightly and agonized for answering. Here, we will introduce the explanation, discussion and Q/A mainly focused on the film, Parasite.
지난 10월 8일 영화 기생충 박사장의 저택에 놓였던 가구의 작가 목수 박종선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다. 2학기 이모션디자인실습 수업의 일환이라 창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기생충 작품을 위주로 이뤄지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미리 작성한 질문은 선생님께 며칠 전에 전달되었는데 그냥 흘려들으시지 않고 깊이 답변을 고민하셨다고 한다. 여기서는 기생충 위주의 작품 설명과 대담, 그리고 질문에 따른 답변을 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시: 2020년 10월 8일(목) 14:00~16:00
대담: 이주명
기록, 정리: 우은제
질문: 남정현, 백단목, 최재문, 배인호, 서민경, 박진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먼저 작품 소개 몇 가지 부탁드립니다.
처음 소개할 이 작품은 원래 이태리에서 만든 의사들의 왕진가방인데, 테두리 부분이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전면부나 측면부를 보시면, 같은 두께의 라인이 계속 연결됩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이. 그 가죽가방을 그대로 나무로 해석해서, 실제 페어에서는 소리를 탑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넣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문을 열어서 소리를 듣는 그런 오브제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다이어리를 숨기는 가방으로 활용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빛과 소리 중에 무엇을 탑재할까 고민하다가 소리를 탑재한 케이스죠. 소리 작업의 맥락에서 작업한 작품입니다.

이게 후기에는 조명으로 발전했죠. 전시장에 이 작업 하나만 딱 놓고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 공간이 3평 정도로 크진 않았습니다. 밖에서 보는 윈도우 갤러리였습니다. 이 작업 때문에 제가 갤러리 서미(SEOMI)에 전속이 된 케이스가 됐죠. 이 작업을 나중에 제가 다시 사왔어요. 다시 사오게 된 이유는 이 시리즈를 여러 번 작업을 하면서 어느 순간 스케일이 굉장히 커졌더라구요. 수리할 일이 생겼는데, 다시 초심 잡기로 ‘내가 가져야겠다!’ 싶어서 지금 제가 보관하고 있죠. 제가 맨 처음에 만든 라디오입니다. 이후엔 사이즈랑 조금씩 달라지면서 시리즈가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엔 굉장히 커졌어요. 재료도 호사스러워지고…. 세 점위의 중심에 어떤 무게가 누르고 있으니 균형만 있으면 잘 서있습니다. 저는 직선을 늘 존중하며 작업을 했어요. 처음 다리를 곡선으로 내리는 작업이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우연성이 있었죠. 볼트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나무였는데, 그걸 피해서 자르다 보니 이렇게 커브가 되었어요. 그 나무를 좀 재활용 해보겠다고 해서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2009년 미국 전시 때, 이 라디오를 처음으로 해외에서 전시했습니다. 그때가 되면서 벌써 형태가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목 부분을 금속 신주를 깎아서 만들었고, 위에 라디오는 네트워크로 연결시켰죠.

영화 우주 전쟁의 외계인이 연상되네요?
원래 그런 의도도 있었습니다. 실제 위에 있는 안테나는 LED가 계속 색이 바뀌면서 점멸과 발광을 반복해요. 실제 박스 측면에는 코드 텍스트(6EQUJ5)를 인쇄해놨습니다. 인간이 우주에 계속 보내는 신호를 응답했던 때가 70년대에 있었다고 해요. 그 시그널 코드를 탑재했어요.
이 테이블이 기생충 영화에 나왔던 작품이죠? (앞장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맞습니다. 길이는 3m60정도. 원래 테이블 다리는 콘크리트였는데, 영화에서는 이동성 때문에 금속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의자를 보시면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죠? 처음에는 의자 등을 뒤로 기울인다는 것을 저도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저 의자와 함께 했던 테이블 탑의 한 변을 약간 사선으로 쳐봤어요. 그 사선 친 각도를 존중해서 그대로 의자에 같이 적용한 것이죠. (웃음) 의자를 테이블에 도킹했을 때 같은 각도로 딱 만나게, 테이블이 준 사인으로 의자의 등 각도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사진은 그 테이블 상판을 만들던 모습인데요. 보통의 테이블 판은 길이 방향으로 붙여 나가는데, 이거는 가로로 붙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느낌이 많이 달라지죠?
테이블의 밑면, 실제 보이지 않는 곳에는 이렇게 스트럭쳐라는 철구조들이 있어요. 목재가 가진 휨성이나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고안한 방식입니다. 테이블에 보통 다리 4개가 만나는 에이프론을 4면을 돌리고 테이블 탑이 올라가는게 일반적인데, 저는 그 에이프론을 못견디겠더군요. 그냥 테이블 탑에 다리 4개만 있으면 되지 왜 에이프론이 군더더기처럼 들어가야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이런 보완 작업을 한 것이죠.

아까 말씀드린대로 원작의 받침은 콘크리트였죠. 그렇게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요. 처음 원작을 작업하던 때 의뢰받은 작품이 놓일 공간은 유리로 4면이 들여다보이는 모 기업체 대표의 다이닝 룸이었어요. 더군다나 한옥의 일부였죠. 그런데 저는 그 4면이 투명하다는 것이 좀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그 공간에 맞는 것으로, 제가 떠올린 키워드는 ‘고정’이었습니다. 그 질량감 자체로 움직임이 없는, 무엇이 딱 자리하고 있는 것. 어떤 존재가 질량감만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안정되고 편안함을 만들고 싶었죠. 어찌보면 그 ‘고정’이 ‘고집’이기도 했고요. 내 가구를 움직이지 마라. 자존심이기도 하고, 고집을 넘어서 ‘꼬장’이기도 하고요. 아마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 작품이 그 자리에서 이미 이동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업자의 깡다구(?)라고 할까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소홀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죠. 물론 가구를 판매해서 돈으로 바뀌긴 하지만, 존중 받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주에는 이름 난 폐사지들이 많이 있죠. 선생님께서 자주 그곳에 들르신다고 들었습니다.
원주에는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등 오랜 절터가 많이 있고 모두 감흥이 다릅니다. 저는 특히 원주 부론의 거돈사지를 사랑하는데요. 그곳은 제가 작업하면서 좀 막힐 때 무언가를 느끼면서 얻으려고 가는 곳입니다. 아래 테이블도 그곳으로부터 얻은 생각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거돈사지는 작은 계곡을 끼고 만평 가까운 경사 부지에 여러 건물터가 계단식으로 높이를 달리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테이블의 높이는 왜 항상 일정할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더군요. 높이의 다양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서랍까지 해서 4단계를 부여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래 작품도 같은 집에 놓인 것인데 제 영감과 아울러 의뢰인의 트레이에 대한 선호를 반영해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닫아놓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골라주실 수 있을까요?
음…. 하나만 고르라고 하신다면…. 아마도 이 작품일 것 같습니다. 2012년에 만든 컴팩트한 책상인데요…. 높이 720이고, 폭은 1200이 안됩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만 제가 고른 이유는 당시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어떻다는 말씀을 못 들었고요. 그런데 팔려나가긴 했는데 기록도 없어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사갔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피드백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사랑하는 이유가 있겠지만요.. 예컨대 뒤쪽에 옆으로 빠지는 서랍을 하나 줬죠. 그리고 건축에 관심이 많던 당시, 건축의 미감을 고민했기 때문일 수도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런 말없이 떠나간 누군가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건축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선생님께서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맨 처음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일단 과거의 스케치북을 넘겨서 하던 프로젝트던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던 무엇이든 꺼내 놓겠죠. 그 이후 굉장히 게으른 시간이 오래갑니다. 꺼내놓고 딴짓하고, 여행하고, 저절로 시동이 걸릴 때까지 안합니다. 그 시간동안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내가 꺼내놓은 아이템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죠. 그런 시간이 모두 다르지만 보통 한 달 정도 걸릴까요? 게으르지만 그 시간 동안은 아주 날이 서있는 시간입니다. 경계하고 유연해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니까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가 지나면 그냥 실마리정도가 잡힙니다. 한발 더 나아가는 모양새를 갖는 것이죠. 때론 일부 만들어 놓고 다시 게으름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게으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르게 모색하는것’이라 할 수 있죠. 계속 반복적으로 이러한 시간을 갖고 작업하다 보면 그 기간이 짧아지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 작업실의 입체 스케치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저희 수업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움’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인간을 위로하는 무엇인가가 아닐까요? 그것이 스포츠던 음악이던 어떠한 예술이든…. 위로를 주는 어떤 행위의 결과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평론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굉장히 좋은 작품은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첫째, 첫 대면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둘째, 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을 봐도 그 경험을 경박하지 않게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굉장히 시원했어요. 그 두 가지로 보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판단이 쉬워지더라고요. 그 격이 무엇인지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겠지만요. 저는 개개인이 격에 대한 소양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수님은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선생님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논할 때는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감동한다는 것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고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감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 제작자로서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번 특강으로 제목으로 선생님을 호칭할 때 목수 박종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너무 기분 좋더군요. 왠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너무 솔직함이 담겨있다고나 할까요? 목수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되게 무거운 이야기 같네요. 사실 저는 아직도 목수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설명하자면…. 목수란 어떤 사람인가? 기본적으로 나무라는 소재를 만지는 사람들인데, 나무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결국은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 아닐까요? 나무로 만드는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치를 깨닫고 말이죠….
아! 저도 디자이너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면 그 이유는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넓어지기 때문 일거라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는데, 비슷한 맥락 같네요. 처음부터 목수가 되겠다고 생각하신건가요? 어느 순간 ‘목수’가 되어 있던가요?
어느 순간 ‘목수’가 되어버렸죠. (웃음) 그냥 우연히 되어버렸어요. ‘목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맞는데,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우연히 만들어보고 흥미가 있어서 그 쪽으로 올인을 한 거죠. 당시는 액자를 만들고 있었을 때인데, 정말 뜬금없이 친구가 호텔의 로비가구를 만드는 일을 소개 시켜주었어요. 아주 엉성한 리셉션 데스크하고, 조명 등으로 인테리어 맥락에 있는 DIY가구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향했습니다. 액자는 평면이었는데, 가구를 만들다 보니 굉장히 기뻤습니다.
인테리어 가구를 만들며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가구를 제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테크닉을 마스터 하기 위해 학교를 다녔고요. 그리고 99년도부터 2005년까지는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천재들은 바로 훌륭한 것을 만들겠지만, 대부분 천재가 아니니깐 절대적인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필요한 에너지를 주변에서 모아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자기 혼자서 무엇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에너지가 모여야 하는데, 저는 그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제게 ‘눈이 반짝이는 학생’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지요. 제가 보기엔 학생들 눈은 모두 반짝이는 것 같은데요.. (웃음) 말씀하시는 ‘눈이 반짝인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말한 ‘반짝이는 눈은’ 선하고 맑은 눈이었습니다. 예전 ‘반짝이는 눈을 가진 청년’을 처음 만난 경험을 말씀드리면요…. 어느 날 저의 작업실 앞에 누군가가 서성이더라고요. 당시 그 청년은 24살이었고, 배낭여행을 하고 한국에 와서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제가 소개된 포스팅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제 전화번호나 주소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지역명만 보고 무작정 와서 동네를 다 뒤져서 저의 작업실을 찾아내었다고 하더군요. 그 청년의 눈빛을 보며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그 친구는 제 소개로 서울에서 가구를 배웠고 지금은 다시 어딘가를 여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 반짝이는 눈이라는 것은 여기저기 있겠죠. 선하고 맑게 반짝이는 것은 결국 폭넓은 시각과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협하지 않은 맑은 시각인 것 같아요.
마음에 크게 와 닿는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학생들도 그랬겠지만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어서 학생들과 직접 대화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Q&A
질문 : 산업디자인 3학년 남정현, 백단목, 최재문, 배인호, 서민경, 박진수(4학년)
사소한 곳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자기 작업에 반영하고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새는 자극적인 미디어를 많이 경험하다 보니 이러한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놓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남)
사소한 것을 깊이 보는 것이겠죠. 우리는 늘 여행한다고 생각해요. 배낭을 메고 멀리 가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요. 일상에서도 사소한 시간들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계획 없이 나를 놓아버리면, 맑은 자아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영역이 굉장히 넓어질 것 같아요. 우리가 머리로 습득한 지식들을 좀 내려놔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누구나 자신의 시각으로 개개인의 아름다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선’이라는 것을 자세히 보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다운 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남)
사람들에게 원을 그리라고 하면 일본사람들은 컴퍼스로 완벽한 원을 그리려고 합니다. 컴퍼스가 없어도 완벽한 원을 지향합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원은 원인데, 굉장히 서툰 원이긴 하지만 굉장히 너그럽고 풍만한 원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그게 도자기에서도 보이고 조선시대의 가구를 보아도 자세히 보면 삐뚤빼뚤 합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굉장히 너그럽고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종교나 철학이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저는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한국의 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특히 작가라는 직업이 영향력이 적고, 작품이나 작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드는데요. (남)
저렴한 가구를 만드는 것은 어떤 디자이너든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생산 임프라가 굉장히 커야합니다. 다만, 제가 맡은 역할은 하이앤드라고 할 수 있죠. 열 개 만들 때 하나 만들자는 것이 이번 생의 저의 배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생충 영화에 제품이 나가기 이전에 카탈로그를 만드신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러한 작품의 홍보활동이 작가로 알려지는 데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남)
그때 중요성을 깨닫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책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라이센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홍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진 않았어요. 목수일의 결과가 모아지면 책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디자인한 가구들의 외형과 구성은 단조로운데도 흥미롭습니다. 그 위에 앉거나 어떤 물건들을 올려놓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보는 이가 느끼게 될 감정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도하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가구들의 외형에서 선생님에게 어떠한 의도가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사물의 외형이라는 물리적 특성은 사람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상관관계에도 모종의 작용원리가 있겠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백)
“집안에 좋은 문갑이 하나 있다고 해요. 아이는 그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지만 옆에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문갑을 계속 보면서 그것이 주는 간결함과 아름다움, 안정감을 좋아하게 되지요. 그리고는 다른 것도 볼 수 있는 안목이 자연스럽게 키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과 문화를 전공으로만 키우고 생활로는 키우지 못해요. 그게 예술계의 큰 숙제지요” 라는 강준혁 선생님2 글로 답변을 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앞에 이야기 했던 ‘게으른 시간’ 동안 저는 나의 작품이 누군가에 의해 쓰일 때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온갖 사람들을 다 연상하여 그 의자 혹은 그 가구를 사용했을 때 품위가 걸맞는지, 보편적인 품격은 무엇인가, 이 의자는 꼭 아이만 앉아야 하는가, 대통령이 앉아도 경박스럽지 않은가에 대해 고민해보곤 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본인의 가구디자인은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성의한 대답은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나오는 대답인데, 어쩌면 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향하는 스타일이 없어서 더 할 것도 많고 고정되지 않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생각대로 잘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계획대로 일이 안 풀릴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시나요? (최)
생각에 대한 고민, 계획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지,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으로 가야 할 것 같고, 계획에 대해서도 한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참고로 계획하는 것인가? 우리는 계획을 타이트하게 완벽히 세워야 우아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타인의 계획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계획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계획하지 않는 거죠. 순간순간 다가오는 것을 가지고 실마리를 풀어나가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의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가치를 담아서 한국적 미니멀리즘이 담긴 제품을 만드셨는데, 한국의 미니멀리즘과 일본의 미니멀리즘, 더 나아가 서양(북유럽, 미국)의 미니멀리즘이 각각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배)
검이블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화두이기도 하죠. 지향하는 것이니.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한자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검이불루의 검. 검소하다의 뜻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가 아닌 뭉클할 정도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찾아서 깊게 파는 것이 중요하지, 검소함을 제품에 담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검소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제품에 담길까요? 그리고 미니멀리즘이 유행이 되었는데, 저도 이론가가 아니라서 명쾌한 답변을 못하겠지만, 제가 나름대로 은유적으로 표현해보겠습니다. 어떤 그릇이 있는데 한 그릇은 무언가를 오랫동안 담아두고 채웠다가 또 넘쳤다가 마지막엔 털어냈어요. 한 그릇은 처음부터 비어있어요. 마지막 한 그릇은 ‘이것은 빈 그릇이야.’라고 만든 그릇이에요. 이 세 가지 그릇의 형태인 것 같아요. 어떤 것이 우리의 그릇인지는 학생도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남양주 목공방들을 방문했을 때, 일본 목가구는 안보이는 곳에 들어가는 나사 색까지 신경 쓴다며, 한국 목가구는 그런 디테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많은 아쉬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 목가구 시장에서 아쉬운 점들(클라이언트의 가구에 대한 이해도, 시장 분위기)이 있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배)
일본의 경우는 보이지 않은 곳 까지 신경을 쓴다. 맞습니다. 이게 장점이겠지만 단점으로 보면 참 숨 막히는 이야기 같습니다. 무심할 땐 무심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무심하지만 격을 훼손시키지 않는 무심함.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할 것과 제대로 할 것을 구분하고 거기에 위트까지 더하죠. 우리의 것은 숨을 확 트이게하는 위트와 해학이 더불어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조선시대 가구들을 보면 실제 주인이 저렇게 주문을 했을까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저런 장난을 해놓았을까 싶은 게 있습니다. 만든 사람의 위트가 숨어있다는 것이죠. 그걸 맡긴 사람이 몰랐을까요? 그것은 서로 이해가 된 것이죠. 너무 멋있지 않나요? 이탈리아에는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라고 있잖아요. 무심하지만 세심하고 유유자적하지만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것. 우리가 TED를 보거나 잡스의 강연을 보면서 그렇게 느끼죠. 저는 그래서 일본의 문제는 그것 같아요. 무심에 대한 사유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저 예쁘고 너무 잘해놓으니 숨이 막힌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한국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전통적이다’와 ‘한국스럽다’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엔 분명 차이가 있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전통적인 것’, ‘ 한국스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배)
오염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이미 한국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통적이다’와 ‘한국스럽다’에 대한 답변은 르 꼬르뷔지에3의 말을 인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는 ‘전통은 미래로 가는 화살’이라고 했습니다. 그 화살에 우리가 무엇을 담아 날릴 것이냐. 과거를 향해 날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새 역사를 쓸 필요가 있으니, 우린 이미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 화살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말씀 중에 타이트하게 계획을 짜는 것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고 일을 처낸다라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를 멈추고 좀 천천히 지낼 수 있을까요? 천천히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서)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물론 꼭 해야 할 일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우린 계획하는 습관이 너무 몸에 밴거죠. 그러다보면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일상화 시킬 수 없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하루의 일부분이든 일주일 중 하루든 그냥 어디든 떠나 보는거에요. 그 후 벌어지는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헤프닝이 나에게 오는 사인에 따라 나를 시험해 보는 거죠 그게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게 가장 나답게 사는 것 아닐까요? 대부분 우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의 평균을 사는 것이잖아요. 저는 가끔 감동을 느끼는 것이.. 숲에 있는 나무들, 해변에 있는 모래들 중에 서로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아마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 거에요. 그리고 그 숫자는 엄청 많죠. 저 숲에 있는 나무들만 봐도 경쟁하지 않고 제멋대로 인 듯 보이지만 완벽한 균형을 갖고 있어요. 하나라도 유독 엄청 큰 나무는 없죠. 그러한 질서 안에서 각각 아름답게 전체 산이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 식대로 프로세스를 만들고 가끔은 계획하지 않고 해프닝이 나에게 던지는 사인을 따라서 원래 내 순수한 자아가, 감각의 더듬이를 쫙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생충 같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쪽에서 생각한 것과 목수님이 원래 생각하시던 작품의 의도가 달리 해석되고 달리 사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
결과에 대해서 서운한 것은 없습니다. 결정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처음에 영화에서 제안이 왔을 땐 안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제안이 왔을 때 투자사가 함께 미팅을 하면서 저에게 왜 그러시냐고 하더라고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대부분은 땡큐하고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걸 통해서 건강한 선례를 만들어야 나와 함께 하는 스텝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고, 프로젝트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우리는 눈길에서 내가 먼저가고 있는데 그 발자욱이 어수선 하면 뒤따라오는 이도 허둥대니 가급적 진지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조금 더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