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雜想

Worldly Thoughts of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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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이 안 되는 그려진 ‘디자인’』, in: 서호익, 보그 병신체, 무슨 병신 같은 소리?, http://www.insight.co.kr

The problem of our time in these days is that we are living in a virtual reality that is inconsistent with the reality. ‘Design’ that follows the logic of capitalism driven by major companies creates virtual lifestyles and spreads the sense of vanity those lifestyles provoke. The public especially strives to be the first in obeying those virtual lifestyles full of vanity. The “Silly Vogue Writing Style” is a mere tip-of-an-iceberg phenomenon that portraits our time. Other than this, what could be the augmented reality that ‘Design’ of Korea speaks of? What could be creation and creativity of new ‘service’ in a virtual world that lost the reality?

보그 병신체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렉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 (무심한 듯 쉬크하게) 보그 스타일을 매치하고 싶은 워너비들이 줄곧 따라하곤 하는 클리셰 올해 초에 접한 신조어,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꼬집은 말, “보그 병신체”. 이 말은 2013년 3월 1일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의 <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해 3월 김홍기는 SBS 인터뷰에서 “보그 병신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영어로 회의하고, 상담하고. 근데 막상 또 영어로만 하라고 하면 또 잘 못해요. 뭘까요? 반쪽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영심은 있어요.

외국어를 쓰면 뭔가 모국어에 철저한 사람보다 조금 더 우월한 거 같은 환영에 잡혀있어요. 이게 뭐에요? 두 개의 언어를 각각 완벽하게 구사해야 훌륭한거지, 바보처럼 두 개를 섞어 사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 후 “보그 병신체”는 여러 언론에서 줄지어 다루고, 한글날에는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더 없이 좋은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러나 “보그 병신체”는 우리 언어생활에 국한된 것이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 전반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보그 병신체”는 우리의 언어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식탁과 식탁의자, 소파와 침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식 가구와 일상용품들은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인스턴트 치즈와 요구르트 및 빵, 특히나 햄버거와 피자, 스파케티 등과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몸을 망가트리고 있다. 결혼식 등의 예식에서뿐만 아니라, 양식 음식점이나 각종 행사장에서도 “보그 병신체”의 또 다른 모습의 극치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궁정 풍의 상징기호만을 보여주는 식기가 차려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와인 잔이 놓여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식들이 각종 외국 이름을 달고 차려지고, 사람들은 익숙하지도 않은 각가지 양식기를 사용하느라 우왕좌왕하거나 달랑 포크 하나만을 들고서 찍어먹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 그 와중에 격식을 차려 큰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2) 롯데백화점 올리브 데 올리브 (Olive des Olive) 브랜드 매장 의 한 안내판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일상의 “보그 병신체”를 이끌고 확산시켜온 첨병은 1993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디자인 전공자’ 들일 것이다. 그들은 ‘디자인’이라는 서구 최신 유행의 소비자로 교육 받고서, 『행복이 가득한 집』 등의 각종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서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모던하고 쉬크”한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데 여념이 없다. 남의 것, 외래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을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건만, 유독 우리만은 그렇지 못하다. 아니, 외래의 것을 추종하며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거기서 잊지 말고 꼭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이 그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과 시골집 그리고 아파트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자라나 살고 있고, 아파트는 갈수록 더 높은 고층빌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들에서 집이 아파트로 그려지는 경우는 접하기 힘들다.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촌에 살고 계신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어린아이들까지도 집을 그리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때의 전형 그대로의 집을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초가삼간의 시골집으로 그린다. 초가삼간은 예전 농가의 전형적 모습이었고 민속촌 등에 재현되어 있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우리주변에서 볼 수 없는 집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3) 우리가 그리는 집의 전형과 흡사한 주택: 1930년대 폭스바겐 노동자를 위해 볼프스부르크에 건설된 향토양식(Heimatstil)의 주거단지. 나치는 이 양식을 우수한 독일민족문화의 전형으로 선전하고 향토양식의 주거단지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이는 바로 우리가 현실을 보고 못하고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각종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본보기로 삼아 말과 행동과 모습을 맞출뿐 아니라 일상용품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대부분의 각종 매체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그들의 이윤만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온지 오래다. 거기서 소비대중을 현혹시켜 눈멀게 하고 “보그 병신체”와 같은 수단을 통해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소비생활양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는 대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면서 대기업의 슈퍼마켓에서 일상용품을 구입하여 먹고 생활하며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사용하여 조리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한다. 대기업이 판매하는 교통수단을 통해 출퇴근을 하고 대기업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 대기업 보험사의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여가시간에는 대기업이 만든 오락물을 소비하거나 대기업의 여가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더구나 “입시지옥”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최종 목표 또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 전체가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건만, 우리는 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그 병신체”가 우리의 일상 생활양식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제는 현실과는 괴리된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자본논리만을 따르는 ‘디자인’은 가상의 생활양식만을 꾀하면서 그 양식이 갖는 허영된 의식을 확산시키고, 대중은 그것을 누구보다 앞서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보그 병신체”는 이러한 우리 시대상이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디자인’에서 말하는 ‘증강현실’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현실이 사라진 가상의 세상에서 새로운 ‘서비스’의 창조, 창의란 것은 또 무엇일 수 있는가?

그람시(A. Gramsci)의 고민이 잊혀지지 않던 한해
2014년 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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