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디자인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그 과정을 보다 쉽게 안내할 교과서가 없다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말씀과 지도는 실천적으로 방향을 지시하여 주었지만 가속도를 내기에는 체계화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출간된 디자인 서적은 극소수였고, 1980년 출간된 정시화 선생의 ‘현대디자인연구’가 배경을 얼마간 설명해주었지만 디자이너가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디자인계에 입문한 지 1~2년에 불과한 꼬맹이로 실제 디자인프로젝트라는 것은 구경도 못한 나에게 바로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여서 전체적인 체계에 대한 목마름은 컸다. 결핍은 그것을 채우려는 욕구를 동반하기 마련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후 졸업전을 그나마 쓸만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런 결핍의 순작용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런 목마름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혼란과 갈망을 그나마 적셔주던 것은 해외 서적의 복사본이었다. 여행도 쉽지 않고 외국인을 보기도 어려웠던 시기라 모든 것을 흑백으로 만들어버리는 복사본은 우리를 바다 건너와 연결시켜 주던 거의 유일한 끈이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들어와 우리 손에 들어온 책 중에는 노랗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책이 하나 있었다. 고맙게도 그 책의 제목은 ‘Design Methods’였다. 와우!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방법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들어있다니! 당시에는 메쏘드가 아닌 메쏘즈가 그런 의미로 보였다. 과연 그 책에는 디자인과정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방법이 과정과 사용 의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방법별로 실행하는 순서까지 나와 있었으니, 그때 내 마음은 이랬다. ‘그래. 이제 이것만 따라하면 돼!’
물론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몇 가지 방법을 따라해 보았으나 당시에 내가 닥친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예컨대 스트리트 퍼니처를 디자인하는 과제로 가로변 의자를 디자인하고자 할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그중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책은 종합적인 형태의 이야기보다 보다 개념적인, 분석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후에 그 책의 저자였던 존스(J. C. Jones)가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디자인방법론운동이나 영국의 디자인 전통이 엔지니어링과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한국의 디자인 교육과 실천은 전적으로 미술 기반이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ref]미술은 여전히 중요한 디자인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도 통합된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지 미술이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각기 역할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 통합되어가는 보다 풍성한 디자인의 개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일까?[/ref]
그렇게 학창 시절 ‘방법의 시기’는 저물었고, 이어 입사한 회사의 시스템은 놀랍게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운영되었다. 회사의 디자인프로세스는 실무적 의사결정 단계 중심이었고 각 단계의 이름은 단계마다 보여주어야 하는 표현방식의 이름을 따랐다. 사전에 뭔가 조사해야 한다는 욕구와 아쉬움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잘 몰랐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였으며, 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핑계로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에게 차츰 중요해지기 시작했던 것은 과거 제도대 위에서 T자등을 사용한 도면 그리기를 대체할 컴퓨터 관련 표현 기술이었다. 1990년대 포토샵을 통한 렌더링이 갖는 가시적 효과와 이미 그린 것을 재활용할 수 있는 효율로 차츰 수작업은 대체되기 시작하였고, 각 디자인 영역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당시 디자이너의 ‘방법’이었다. 몇몇 인간공학 특히 인체공학에 기반한 방법들은 있었지만 몇 번 시도 해보면 금방 더 이상 시도해볼 필요 없이 적용 범위가 드러나 버려, 인간의 다양성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ref]사용범위, 각도 등을 확인하는 인간공학적 절차를 거친 엄밀한 연구 방법은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디자이너들이 직접 사용해서 확인하는 방법에 비해, 드는 노력 대비 효과는 그저 그랬다.[/ref]
유사한 프로젝트를 경험이 있으면 다시 해 볼 필요가 별로 없었고, 디자이너들은 상황을 새로이 점검하기 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진행하였다. 새로운 상황은 2000년을 전후해서 컴퓨터가 본격적인 일상의 일부가 되면서 일어난다. 모든 사람의 생활 전체가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으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모든 일과 놀이를 인터넷을 매개로 삼아 시작하였다. 컴퓨터는 저장의 도구, 계산의 도구, 재현의 도구를 넘어서 ‘매우 빠른 정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소통하는 정보의 형식 또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확장되었으며 그래픽디자이너들은 그 수요에 대처할 수 있도록 GUI라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 현상은 Man-Machine Interface를 넘어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으로 전환되었으며, 인터랙션은 모든 디자이너들의 화두가 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GUI를 생각할 때 산업디자이너들은 사물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공간디자이너들은 환경과 사람의 인터랙션을 상상하고 구현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원로인 에꾸안 겐지의 도구와의 대화(道具考)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일본식 사고방식이나 정령이 깃든 사물이라는 애니미즘처럼 소박한 생각을 넘어서서, 보다 실제적인 상호작용이 모색되었다.[ref]그럴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가 모든 곳에 편재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대한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물건들에 컴퓨터가 내장된다는 것은 아마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컴퓨터가 마치 레진이나 페인트 재료비 수준의 비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값싼 존재가 되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ref]
사물의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포괄한 무형적인 사용의 문제가 디자인의 중심이 되면서, 단번에 포착하기 어려운 사용의 세계, 더 나아가서 서비스의 세계[ref]사용 현장을 대상으로 하는 사용과 달리 서비스는 기반 설비와 배후 구조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ref]가 그동안 수 십 년간 실무에서 외면되었던 디자인방법의 세계를 흔들어 깨웠다.
이름은 디자인리서치로 재포장하였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디자인메쏘드였다. 존스가 이야기했던 확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의 개념은 더블다이아몬드[ref]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영국 디자인카운슬의 모델로 확산-수렴 쌍이 두 번 연결되어서 더블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ref]로 확장되었고 다른 점이라면 1970년 디자인메쏘드가 35개의 방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최근의 방법들은 가뿐히 100개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출판된 책의 숫자로만 보면 2012년은 디자인방법의 세계가 깨어난 정도가 아니라 활짝 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ref]Universal Methods of Design: 100 Ways to Research Complex Problems, Develop Innovative Ideas, and Design Effective Solutions (B. Hanington, 2012), 101 Design Methods (V. Kumar, 2012), Design Methods 1 : 200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 Design Methods 1 : 200 More Ways to Apply Design Thinking (R. Curedale, 2012),[/ref] 더 나아가 수없는 워크숍의 열풍과 디자이너들이 소비하는 포스트잇의 숫자에 대한 우스갯소리들을 보면 그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바야흐로 방법 과잉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너무 먹을 것이 많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속에서 마구 먹어대던 치히로의 부모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언제부턴가 위장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고 뷔페가 비정상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 나의 식탐은 차츰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또 배불리 먹을지 몰라서, 차려진 잔치 상은 마다하지 않고 입안으로 쓸어 넣는 우리의 사회적 결핍이 디자인 영역에서도 반복되는 듯 해 씁쓸하다.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을 익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일단 배우고 보자, 일단 행하고 보자는 심리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배탈이 나지 않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방법은 왜 필요한 것일까, 나는 디자인 과정을 떠올리면 크게 다른 두 가지 행위가 교차되는 모습을 연상한다. 전반부는 ‘이해’이고 후반부는 ‘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낯선 맥락 속의 타인을 위해 +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맥락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뭔가를 만질 수 있도록[ref]실제 손으로는 만질 수 없어도 우리가 느끼고 조작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ref]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전적으로 다르다. 후자 ‘창출’의 방법은 포괄적 의미의 모형을 통해서 최종 결과가 가져야 할 특징이 적합한지 모의로 시험하여 차츰 개선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오랜 기간 이 방법을 상당 부분 미술적 능력에 기반 해서 발전시켜왔으며 표현 방법의 경제성에 근거를 둔 단계별 이름을 사용해서 과정을 설명한다.[ref]물론 최근에 확장된 디자인의 무형성,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모형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의 시험을 하기 위한 모형화, 이해를 위한 모형화는 대상의 확장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방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자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ref]반면 전자 ‘이해’의 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며 새로이 등장한 방법들은 대부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일부는 1960년대 디자인방법론자들이 제기한 개념적인 디자인과정과 닮았지만[ref]가장 다른 점은 이해해야 할 대상인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거론하지 않고 그 속의 ‘문제’와 ‘해결’만 부각시키는 지나친 개념화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면 전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제라는 용어가 갖는 제한적 의미로 볼 때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 문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옳을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사용자가 문제 덩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ref] 디자인의 문제가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용에 대한 것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맥락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면서, 인류학적, 교육학적, 철학적 특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분석적이지만 총체적이고 동시에 깨달음처럼 그 과정의 종착지는 ‘사람과 사용, 맥락’에 대한 통찰이다.
마치 누군가를 기쁘게 할 선물을 고르려,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쾌재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려면 관심 가득한 마음으로 (호기심),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면접) 주변을 돌아보고(관찰) 총체적인 상황을 통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살피거나 어쩌면 ‘선물에 대한 모든 것’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문헌) 만약 그들이 어떤 집단을 이루고 있다면 의견을 모으는 과정(설문, 집단 면접)도 필요하다. 그런 여러 가지 사항들은 하나로 모이고(범주화) 정리되면서 결국 통찰(분석, 해석과 방향제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다른 많은 방법이 있어도 이 기본 줄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행위는 결국 ‘이해’에 도달하는 것, 결국 요구에 대한 통찰이 목적지다. 모든 방법 시행의 결과는 통찰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러한 ‘이해’는 아마도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일 수 있다. 매일 매일 여러 가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도 없다. 때로 ‘그래 이제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반전은 거듭 된다. 하지만 지금 묘사처럼 디자인의 전반전 ‘이해’ 과정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지(知)의 획득 과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자. 우리는 디자인과정을 통해 현상에 대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즉 피교육자라고나 할까. 아니면 셜록 홈스처럼 탐정이 되거나 태평양의 한 가운데에서 향유고래를 뒤쫓는 생태학자처럼 대상을 알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은 누구이며 향유고래가 즐기는 먹이가 무엇인지 통찰한다. 매우 자연스럽게. 이것이 방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이를 통해 디자인의 미래가 새롭게 열릴 그 날이 기대된다. 마지막 한 마디. 디자이너들은 사람과 사용과 맥락을 ‘통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도구 삼아 새로운 인공물을 ‘출산’한다.[ref]앞으로는 창출 대신 출산을 쓸까? 기특하게도 수년 전 우리 산업디자인 4학년 학생들이 졸업연구를 진행하던 방의 이름은 ‘분만실’이었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