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학기,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한 신창범 교수를 만났다. 아직 강원도 원주에 자리 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연세대학교를 사랑하고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연세인이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10년간 UX 디자인 실무를 하다가 연세대학교와 연이 닿아 곧바로 교직에 서게 되었다. 그의 노하우와 경험이 고스란히 수업에 반영되어 학생들에게 많은 배움과 고무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에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을 맡으셨는데, 기존 수업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하셨더라. 어디에서 착안한 것인가?
현재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에 기반을 둔 것이다. 10년 전에 하던 디자인과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결과물이 다른데 그 프로세스가 같을 수 없다. 10년 사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지금 기업에서는 하드웨어적인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적인 부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들의 경험까지 디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수업에서의 최종 결과물도 제품에 대한 디자인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적 가치들도 시각적으로 함께 제안해야 한다. 즉 디바이스를 둘러싼 사용자의 경험과 그것들을 포괄하는 에코시스템까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의 커리큘럼이 현업의 디자인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기업에서 실무를 하고 온 디자이너로서 지금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와 방법론들을 이곳 학생들과 공유 하고 싶었다.
이번이 교수로서 맡는 첫 제자들이다. 혹시 다른 학교의 수업 방식이라든가 작품들을 보신 적이 있는가? 그와 비교해서 본 학교 학생의 수준은 어떤가?
우리 학교 뿐 만이 아니라 타 학교의 디자인 도록도 많이 봤다. 그런데 10년 전 도록이나 지금 도록이나 거의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1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고 2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무에 나가면 최종 결과물이 산업디자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 출신 디자이너들이 섞여 일하면서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을 내기도 하고 디자인 외 전공출신 실무자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도한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학과를 보면 아직까지 각 전공별 구분이 명확한 것 같다. 다행히 본 학교는 3학년까지 학부제로 되어 있어서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시각디자인과 디지털아트의 전공과목들을 다양하게 수강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터랙션디자인 수업에서도 여러 학과의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 수강하기 때문에 결과물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본 수업을 진행해 보면서 다행히 우리 학교 학생들은 스마트해서 주어지는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음에 힘을 얻는다. 내가 100을 요구하면 80을 따라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100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120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 때 학생들에게 특허와 논문까지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세계 경제는 특허(지적재산권) 전쟁이다. 기업이 보유한 특허의 가치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환산되어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권리는 기업 경제를 위해 아주 중요한 가치이며 재산이다. 현업 디자이너들도 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실무에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인터랙션/UI/UX 디자인에 있어서 특허를 빼고는 그 결과물의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본 수업에서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논문 또한 아주 중요하다. 특허처럼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의 권리를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의 종류에도 연구 논문 이외에 작품논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지금 수업에서 하고 있는 프로세스에서 각 단계 마다의 결과물들은 학술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매우 고단한 과정을 겪겠지만 한 학기를 마치고 난 후에는 본인들이 제안한 디자인 결과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이름으로 낸 특허와 논문 그리고 작품 전시까지 하면서 본인들을 외부에 홍보할 수 있고 남들보다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교수님께서 실무에서 일하시다 곧바로 교직에 서셔서 그런 교수님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경험에 빗되어 봤을 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될 조건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연히 디자이너로써 가져 가야할 최우선 조건은 크리에이티브이다. 현업에서 오래 동안 디자인 실무를 해 오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만나왔지만 디자이너라는 칭호를 부르기 창피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크리에이터. 자신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것은 디자이너로써 성장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한 해에도 대학에서 수많은 예비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지만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는 극히 소수이다. UX 디자인의 경우는 특히 디자인 전공자 외 다른 전공자들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는 산업디자인과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UX 디자인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각디자인, 인지심리학, 산업/인간공학, 소비자학 등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이 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컨셉을 만들어 내는데는 디자인 전공자를 능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디자인 전공자는 대학 4년 내내 이런 부분을 트레이닝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때문이다. UX 디자인 업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하는 업무도 다양하지만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창조성)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 하지 않은가? 우리 학교의 디자인 전공 수업에서도 공학적인 디자인 방법론이나 인문학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사회에선 공모전 경력이나 영어 실력이나 그런 스펙을 더 많이 보지 않는가?
본인이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있는 기업에 입사를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1차적으로 스펙만 보고 당락을 결정하는 비디자이너인 인사과 직원의 잣대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수 천, 수 만 명의 지원자들 중에 소수를 선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량적 툴에 의한 것이기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기술 시험과 면접 등 본인을 표현할 정성적 평가의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이 방법도 자신을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디자인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에서 디자인인턴 프로그램 제공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건 입사를 하는 것 자체보다 입사를 한 이후이다. 그 곳에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며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디자인 업무를 하다보면 다른 부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설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CEO를 설득시켜야 할 때도 있다. 오히려 디자인을 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 디자인을 위한 스펙만 쌓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 힘들 수밖에 없다.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화 시키느냐가 현업에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
만약에 교수님께서 회사에 입사시킬 수 있는 면접관의 위치가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을 것인가?
첫 번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성이다. 인간으로써의 됨됨이이다. 이것은 자신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직장인을 넘어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인데,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학생들이 많이 있다. 디자인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역량이나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그 다음이다. 나 또한 삼성전자에서 재직 중에 면접을 많이 봐왔지만 그 사람의 인성을 보고 마음이 쏠릴 때가 더 많고 주변 면접관들도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작품성이 조금 부족하거나 언변술이 부족한 것들은 당락을 결정하는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보이지만 불성실한 것도 바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면접 시간에 지각을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다. 면접 시간에 1분 늦는 사람은 입사 후에 1시간이 늦는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기본적인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개념이 없는 지원자를 항상 봐 왔다. 물론 이것은 인성의 덕목 중 한 가지 예 일 뿐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며 긍정적은 표정을 짓는 것, 같이 일을 할 때 팀원이 아프면 자신이 대신 그 일을 수행하는 것 등 간단한 것이지만 이런 부분이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갖추어야 할 필요 요소 들이다.
인터랙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바라고 계신 점이 있다면? 혹은 이런 것을 꼭 염두해 두고 작업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이전 수업들을 어떻게 진행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과 다른 수업방식이라며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자신 속에 있는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려움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그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싶다. 완성도는 떨어지고 투박하더라도 본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하고 싶다. 그래서 처음에 학생들에게 ‘리서치를 하라, 전략을 세워라, 논문도 쓰고 특허도 내라, 전시도 하자’라고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1년 동안 하는 일을 한 학기에 하라고 요구를 하는 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간일 지라도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분명히 본 수업을 다 마친 다음에는 큰 보람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시다보면 가끔 교수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대학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나 아쉬웠던 것이 있었는가?
아쉬웠던 것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해외에서의 경험이다. 그 당시 나는 해외 한 번 나가보지 못 했었고 세상을 좁게 보았었다. 다행히 입사 후에는 업무 출장이나 전시, 학회를 통해 해외로 나갈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제한적이었다. 내가 10년을 다닌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 중에 큰 것이 몇 년간 외국에서 지낼 맘이었다. 지금 못해보면 평생 못 해볼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계획도 충분히 세웠고 준비도 철저히 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준비해 왔던 플랜도 퇴사와 동시에 바로 변경되었다. 순간 허탈했었다. 그리고 느꼈다. 내 길 이니까 내 맘 데로 걸어갈 것 같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닌가보다. 이렇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도 어떤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조건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취업도 굳이 국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지금은 한국 안이 매우 좁고 기회도 매우 적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온 태풍이 미국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가 나비효과처럼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그 영향이 희미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뚜렷해지고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국내에만 머무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의 디자인 인력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내 자신이 눈만 돌리고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좀 더 학생들이 밖을 내다봤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운 건 우리 학교에는 UX 디자인학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식적으로 희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시장에서는 UX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나 또한 UX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를 해왔기 때문에 많은 인맥이 있어서 주변에서 UX 디자이너에 대한 의뢰가 계속적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신입보다는 경력사원을 많이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은 UX 분야의 어느 곳이라도 실무 경험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내에서는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인턴이나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졌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UX 분야의 경험과 인맥들이 형성되어 향후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큰 재산이 된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경험재산을 모아 놓아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