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at Captures the Values of Someone
Here are a few thoughts that came to mind when I asked designers to talk about values this year at YSID. When I was learning design, I thought the most about who would be the beneficiaries. When problematizing a certain experience or phenomenon and solving it through design, I think about who would benefit from it. In fact, I think that the problem of choice is not taught at universities, but is greatly influenced by where my awareness is placed. So, inevitably, I run into the limits of my own experience. As such, what I should be wary of is that it is the narrow area of my life where I usually stay in a familiar place, and what I have to be suspicious of is that my awareness will not incorporate everything and will stay within a limited range. I saw the topics of this year’s graduates on Instagram, and it seems that they already capture the values of various people well. The problems will have been those discovered within the limits of each individual’s awareness, and I think that they each must have given much thought as to who the beneficiaries will be.
올해 YSID에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하여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제가 디자인을 배울 때 가장 심사숙고했던 건 어떤 사람을 수혜자로 정할까였습니다. 어떤 경험, 현상을 문제화해서 그걸 디자인으로 풀었을 때 누가 그 혜택을 누리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런 선택의 문제는 사실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 평소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경험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경계해야 할 건 평소 익숙한 곳에 머문 협소한 내 삶의 영역이고, 의심해야 할 건 나의 시선도 모든 걸 보지 못하고 한정적인 범위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이번 졸업생들 주제를 봤는데 이미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발견한 문제이겠고 누구를 수혜자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가구를 만들면서도 수혜자를 생각합니다. 신혼집에 놓을 tv다이를 만들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을 추구하는 아내를 위해 나뭇결을 바꿀 수 있도록 프레임을 따라 상판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나중에 이삿짐을 옮길 저에게도 좋았습니다. 프레임 따로, 상판 따로 분리해서 가벼워졌기 때문입니다. 평소 아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무시하지 않은 결과이고 이삿날에 힘쓸 저를 측은하게 여긴 결과입니다.


목가구 만드는 일을 뒷순위로 미루고 미술관 학예 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전시 기획도 하고 전시연계 교육도 기획합니다. 전시를 올리는데 수혜자는 작가와 관람객이고 교육의 수혜자도 작가와 참여자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게 전시를 기획하는 것, 그 의도가 교육에도 잘 녹아서 참여자들에게 특별한 인사이트가 남게 하는 것이 이 일을 기획(design)하면서 계속 가지고 가는 목표입니다. 전시나 교육을 기획하면서 수혜자를 생각하지 않고 작가를 미술관 들러리로 세우면 그 자체로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와 시선은 전공과목을 들으면서 긴 호흡으로 디자인 프로젝트 할 때 연마된다고 생각합니다. 목가구를 만들 때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3D 툴로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 미술관에서 그리기 툴로 현수막, 리플렛, 엽서 등을 디자인하는 것도 전공을 살리는 일이지만 학교에선 학생을 기능인으로만 만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전체 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기획, 설계, 계획의 일이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전체를 보는 시선과 그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현장에서 더 빛이 납니다.
그렇게 전체를 고민하며 서비스의 청사진을 그릴 때 위에서 계속 언급한 수혜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잘 짜인 시스템, 환경 안에서 계획대로 잘 작동하는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청사진에 빠진 사람들은 자주 나중에서야 발견됩니다.
‘타다’ 서비스에 대한 제재, 일명 ‘타다금지법’이 이슈가 될 때 왜 그 서비스는 택시기사를 빼먹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 준비 단계에서 ‘이해관계자’(stackeholder)를 따져 봤을 텐데 말입니다. 자동차와 운전자, 승객을 연결하면서 어떤 좋은 가치를 담고자 했을 그 서비스는 왜 기존 택시기사의 가치는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타다를 만들 때부터 기존 택시는 이 서비스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야 할지를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에어비앤비’도 그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이해관계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으로 공유경제의 모델로써 여행객에겐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사는 이웃은 반갑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에어비앤비가 담고자 했을 어떤 가치 중에 옆집이 숙박업소가 되는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이웃의 가치도 생각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학교 다니면서 서비스에 대한 디자인을 고민할 때 이해관계자 지도를 그렸던 게 생각납니다. 원형의 다이어그램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서비스와 크게 상관없는 사람들로 분류되어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타다서비스에서 핵심 이해관계자는 운전자와 승객이겠고 에어비앤비에서는 집주인과 여행객이겠죠. 동종 업계의 택시기사와 이웃은 원형 다이어그램에서 가장 바깥에 위치하거나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면 해당 서비스가 작동하는데 특별히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지점은 바로 그 고려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디자인에서 담고자 했던 가치와는 별 상관없거나 오히려 방해되니까 없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과제를 하면서 어떤 좋은 가치를 담고 실현하는 과정은 참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은 그때 신나지 않은 사람, 오히려 그 서비스로 인해 불편해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가치가 담기지 않은 디자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야 할 고민은 누구의 가치를 담을 것인가가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담을 가치가 정말 좋은가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고 그건 서비스 중심이 아닌 오히려 서비스 바깥,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야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