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순기능

Dec 12, 2019 | Design Message

조현이_Cho, Hyunie

조현이_Cho, Hyunie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학 전공교수

The Pure Function of Design and Art in Contemporary Society

Sun-be library, located at the small park within a housing estate, does not have any fence. Thus, it almost feels as if it is part of the park. In the front, with a slight gap between the wall, thin-wooden structures are elaborated like casting the curtain. Like Yong-Ju’s traditional architectures like Busuksa and Sosuseowon, it homage to Hanok’s eaves as a metaphor. Besides showing off the superiority of the architecture, this is a virtuous example of an environmental-changing design: experiencing the full potential of the library with a ‘breathing’ environment.


이우환의 Open Dimension

돌은 침묵으로 이뤄져 있고 그 침묵은 미지의 소리다.
“돌은 끝내 규정되지 않은 그 무엇이고 긴 시간의 덩어리이고 만물의 어머니이다.
산업을 가능케 한 철 역시 돌에서 추출한 것이고 돌과 철 이 둘을 아우를 때 자연과 문명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워싱턴 D.C. 국립 허시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은 완벽한 형태로 건축된 공간에 균열을 전혀 다른 공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미술관 측은 기존 설치작을 치우고 야외 공간 전체를 이우환의 조각 ‘관계항’ 연작 10점으로 채웠는데 작가 개인에게 공간을 헌납한 경우는 개관 4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미술관 측은 ‘관계항’은 현대의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독특한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하며 “성찰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작품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와 철로 만든 봉, 틀, 벽을 나란히 하거나 엇갈리거나 맞닿도록 놓아둔 단출한 형태인데 야외공간 한가운데 분수대를 철판으로 하는 두르고 물에 검은 염료를 타는 첫 실험 ‘관계항-분수광장’을 만들었다. 물이 흑요암처럼 변모하자 건물과 하늘이 담기기 시작했다. ‘관계항’은 소재와 공간과 행위가 관계 맺는 열린 장을 뜻한다고 하며 작가 본인의 예술이 만든 것과 만들지 않은 것의 대화를 지향한다고 하며 전시 명을 “Open Dimension”(열린 차원)이라 했다.

열린 차원의 핵심은 여백인데 “여백은 그리다 남은 공간이 아니고 소재와 소재, 나와 남이 발생하는 파장이다”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우환의 여백은 공허가 아니라 다이나믹한 풍요라고 평가받고 있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작품을 다 모른다고 얘기하며 “만들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을 곁들인다. 우리는 세계의 미지에 싸여 있으면서도 명명백백 다 아는 듯 살고 있는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애매함과 미지성을 일깨우는 게 예술의 책무이며 할 수 없는 것과 만남을 주선하는 데 예술의 큰 몫이 있다”고 한다.

주거단지 놀이터의 변신

H 건설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새롭게 완공한 아파트 단지 내에 기하학적인 패턴과 따뜻한 느낌의 색채로 유명한 영국인 아티스트 ‘신타 판트라’와 협업한 작품을 선보이는데 협업 대상은 다름 아닌 어린이 놀이터이다. 아이들이 집 앞 놀이터만 가도 마치 현대 미술관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 어릴 적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한다.

경기 양주시 한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는 흔히 보이는 미끄럼틀이나 시소가 없고 대신에 철봉 같은 형태의 주황색 봉이 놀이터 곳곳에 다양한 높이로 교차하고 그중 일부에는 아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그물을 설치해 놓았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아파트 단지 내에는 측면이 뻥 뚫린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양의 놀이터가 있는데 이는 ‘어른들이 놀아도 어색하지 않은 놀이터’로 그 자체로 조각공원 같은 놀이터로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원색 미끄럼틀, 그네, 시소 3종 세트로 대표되던 아파트 놀이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외부와 위의 협업으로 ‘이야기가 있는 놀이터’가 생겨나고 틀에 박힌 기성품 놀이기구를 밀어내고 단순하게 만든 비움의 놀이터, 2년마다 놀이기구가 바뀌는 변신 놀이터 등 신개념 놀이터가 등장하고 있어서 단순히 구색만 갖추던 기존의 놀이터에서 커뮤니티의 활력을 주며 긍정적인 측면에서 디자인의 순기능 역할을 일상의 환경에서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의 순기능

선비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도서관을 “도시의 거실”이라고 표현했다. 각자 방에 틀어박혔던 가족이 거실에서 만나듯 도시인들이 서로 마주치는 장소가 도서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생활이 변하면 거실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도서관도 변한다.
인터넷 시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선비도서관은 ‘책을 느끼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책과 책 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힌,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知的) 네트워크를 느끼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건축가는 이 네트워크를 설명하면서 소설가 김영하의 글을 인용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 후로는 다른 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산문집 ‘읽다’) 단편의 정보는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지만, 책을 통해 이어져 온 지식과 사상의 흐름을 느끼고 지적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주려면 도서관의 핵심인 자료실 공간을 칸칸이 층층이 나누기보다 트는 게 좋다고 봤다. 선비도서관 2~4층에 자리 잡은 자료실은 내부의 계단으로 연결된다. 계단도 책꽂이로 둘러싸여 있어 ‘책과 함께한다’는 느낌이 어디서든 이어진다. 4층은 바닥 가운데가 뻥 뚫린 ㅁ자 형태를 하고 있어 3층과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한 교수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하는 전통적 분류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 분야의 책을 자유롭게 탐색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주택단지의 작은 공원에 들어선 선비도서관은 울타리나 담을 둘러치지 않고 공원을 도서관의 마당처럼 끌어안았다. 전면(前面)에는 벽체와 살짝 간격을 두고 커튼을 드리우듯 목재 구조물을 촘촘하게 설치했다. 부석사·소수서원 같은 영주의 전통 건축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경의)로서 한옥의 처마를 은유적으로 차용했다. 건축의 우월함만 뽐내는 건물이 아닌 유기체처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도서관의 순기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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