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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고 소통하는 디자이너_송승용

보통 사람들은 아트와 디자인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이 디자이너일까?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관람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개성을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개성을 제품에 표현하지 않는 것이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아트와 디자인은 어떠한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경계를 정확히 잡아낼 수 는 없다. 이런 모호한 경계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송승용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송승용 디자이너는 랭스고등미술디자인학교 디자인 석사과정을 이수 하였고, 한국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지난 6월 11일 개최된 ‘2013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이 선정한 ‘W 호텔 미래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Q : 아티스트는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고자 하고,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송승용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자했는가.
A : 새로운 작품을 만들때 나의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적에 테이블 밑에 숨거나, 방석이나 이불을 높게 쌓아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이런 나의 추억을 오브제에 담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면 어떨까? “ 라는 생각을 하며 작업 했던 것 같다. 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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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송승용 디자이너의 작품은 사용자의 사용성 뿐만 아니라 그들과 이야기 하려는 시도 때문인지, 오브제가 작품인지 제품인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것 같다. 송승용 디자이너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는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그 경계는 분명히 존재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경계를 자신이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트 관련 비평가들이 생각하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을 테고, 그와 똑같이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있을 것이다. 그 경계를 나 자신이 어떻게 정의 짓느냐에 따라 그 디자이너의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Q : 디자인 전공을 하기전 조각을 전공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디자인 전공을 하게 되었는가.
A : 조각을 전공 하던 시절에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불상 조각으로써 중생들에게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불교 미술을 공부 했다. 조각 공부를 다 끝낸 뒤, 유럽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때의 유럽은 제품 생산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컨셉을 갖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은 컨셉 제품이 새롭지 않겠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컨셉 제품을 디자인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내게 있어 매우 신선했다. 컨셉 제품이 등장하기 전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까?’라는 생산중심의 생각이 주를 이뤘었지만, 내가 유학을 간 1990년대 말에는 컨셉 제품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 흐름에 맞춰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컨셉을 도출해 내기위해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까지 고민했다. 자신의 컨셉 표현하기 위해 벽화를 그리거나, 바닥에 천을 깔아 그림을 그리거나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컨셉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아트냐, 디자인이냐 하는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컨셉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들에게서 디자인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Q : 그들의 작업 모습이 디자인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게된 자극제가 가되었는데 그런 학생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가.
A : 나는 제일 처음 수강 했던 데생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은 석고상을 한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석고상 그리는데, 입시 미술을 준비할때 처럼 그리면 덩어리 감을 멋지게 표현 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펼쳐 놓았는데 구도, 투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재료를 가지고 스피드 크로키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모델의 자세가 3초마다 변하고, 학생들은 그 모델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스케치를 진행하니까 그림 그리는 것을 어색해 하던 친구들이 점점 그럴 듯하게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여러 가지 재료를 갖고 최대한 종이를 더럽히는 거였는데, 학생들은 종이를 던지고, 밟고 손으로 찍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그 더럽힌 종이 속에서 모델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칼로 긁어내고 지우개로 그림을 지워내면서 그림을 완성 시켰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연필뿐만 아니라 다른 도구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모델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니까 그 어지러운 종이 속에서 모델의 모습이 점점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방법 말고도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Q : 수업이 어떤 것을 학습 하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게끔 하는것 같은데, 그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궁극적으로 어떤것을 얻을 수 있었는가.
A : 이런 방식으로 1년 동안 데생 훈련을 하니까 학생들이 각자의 컨셉을 잡을 수 있었다. 점프하면서 스케치를 하거나, 더러워진 종이 속에서 특징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여러 방법에서 힌트를 얻는 방식 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은 모델을 거꾸로 매달고 그림을 그리는 수업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떨까?’ 라는 컨셉을 도출해 냈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컨셉으로 발전시킨다. 그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Q : 조각을 오랜시간동안 전공 하다가 다른 영역인 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는데, 디자인 전공할 때 괴리감이 들지 않았는가.
A : 내가 조각을 공부 할 때 조각은 나에게 전부였다. 내가 조각을 전공하면서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정말 장인처럼 조각을 했다. 나의 작품에 교수님들도 대단하다며 칭찬 해주었고, 성적도 만족할 만큼 받았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조각 활동은 완벽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변에서 인정 받다 보니까 예술이라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면 되고, 내가 영혼을 바쳐 작업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술이라고 생각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학을 간 첫 일 년 동안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학을 갔을 때, 선생님들이 내게 해준 말은 ‘네가 하는 조각 행위는 아트가 아니다. 너는 지금 아티스트로서의 행위가 아닌 장인으로서의 행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여태 것 해왔던 활동은 예술가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이었다. 그곳의 선생님들은 배움을 강조 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표현 하고 있고, 우수한 작품들은 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지, 그걸 통해서 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단순히 남들보다 더 열정 있게 작업 한다고 해서 내작품이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Q : 디자이너 송승용 씨가 학생 때 정말 열심히 생활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디자인전공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는가.
A : 나는 학생들에게 일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지금의 현실이 어떻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자 한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조각외의 세상을 몰랐던 내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것을 알려 주는 좋은 선배가 있었더라면 나는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 앞길이 지금보다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지금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최대한 빨리 사회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디자인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자 하면 책을 읽거나 인터넷에서 찾으면 된다. 그 방법이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진실에 대한 것은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앞으로 겪을 일의 예고편이거나 자극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깨달을 만큼의 무게는 지니고 있지 않다. 학생들이 직접 뛰어들어 사회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 중 가장 좋은 것이 인턴 이다. 인턴을 빨리 나가면 나갈수록 좋다. 내가 생각하기 에는 1학년 때부터 인턴을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디자인에 발 담근 친구들한테 돈을 주며 일을 시킬까 싶지 만, 그때는 돈을 바라고 일을 해선 안된다. 돈 보다 중요한건 경력과 경험 그리고 성실함이다. 이러 방법으로 부딪히는 친구들은 나중에 취업하고자 할 때 눈에 띈다. 학교 성적이 좋지 못할지라도, 이정도의 경력이 있고 노력을 하는 친구라면 어느 회사라도 이 친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성실한 사람인 것이 입증 된 거니까. 나는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며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들 보다는 늦었었다. 여러분들은 내가 그때 처해 있던 환경 보다 더 좋은 환경속에 있다. 좋은 학교와 선배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가 많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잡아 잘 이용한다면 여러분들도 성공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0년 굶어도 안 죽어!”_목진요 교수

지금 강남역에 가면 아름다운 불빛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거대한 육면체의 조형물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현대차와 목진요 교수가 함께한 프로젝트인’브릴리언트 큐브’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목진요는 현재 연세대학교 디자인 예술학부 디지털 아트 전공 교수직을 맡고 있다. 작가이자 교수로서,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Q: 미디어 아트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내가 아마 1세대로 영화포스터 디자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만든 포스터가 영화 벽보판에 붙어있는 것을 건너편 정류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잘 안보이더라. 버스를 타고 가면서 포스터를 보는데, 내 포스터는 안보이고 도리어 그 포스터가 붙어있는 프레임이 보였다. 근데 그 프레임이 너무 보기가 싫었다. 버스가 가면서 멀어지니까 이번엔 그 벽보판 뒤에 있는 놀이터 뒷동산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 날로 시각디자인을 안하기로 결심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내가 할 것은 뭔가 다른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컴퓨터의 체계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를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툴로만 사용했다. 동그라미나 직선을 완벽하게 그리는 정도로만 말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내가 그리는 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명령어를 넣어야 수행이 된다는 것, 그 체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구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계속 꿈을 찾아 나가다 보니 미디어 아트를 하게 되었다.

Q: 미디어 아트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같은 것에 익숙하다. 현재 우리에게 스마트폰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고, 그를 통한 문화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익숙해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외형적으로 드러낸다. 즉,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 또한 시대의 흐름이라생각한다.

Q: 디자이너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이다. 국내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마친 후, 유학을 갔다 오는 것에 있어 뒤쳐짐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A:두려움은 당연히 있었다. 근데 이상한 것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두려움’이라는 것을 유독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여기 학생들은 거의 두려움에 가득 찬 겁쟁이들이다. 오히려 여기보다 좋은 학교 학생들을 보면 배짱이 더 좋다. 이것이 어떤 구조일 것 같나? 이게 바로 빈익빈 부익부다.
예를 들어 보면, 내가 어릴 적 우리 집과 앞 집 모두 쫄면 장사를 했었다. 그런데 앞 집은 항상 우리보다 손님이 더 많았다. 한번은 그 집에 가서 쫄면을 먹어보니 단무지도 더 신선하고, 그 위에 얹어지는 오이도 신선하였다. 맛의 차이라기보다는 신선함이 달랐다. 그 후, 어머니께 “엄마, 우리도 신선한 재료를 쓰고, 참기름도 더 넣고 해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선 “이놈아 돈이 없는데 어떻게 그러냐.” 하시더라. 앞집은 그 날 산 게 그 날 다 팔리니까, 다음날 재료를 또 사오고, 때문에 저 집은 계속 신선한 재료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집은 장사가 안되니까 한 번 재료를 사면 1~2주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은 갈수록 맛이 없어지고 앞집은 갈수록 맛있어지게 된다. 이 것이 선순환과 악순환이다.
보통 우리보다 좋은 학교를 다니는 애들이 배짱이 더 좋고 도전 의식이 강하다. 그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학교’라고 하는 연고를 무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배짱까지 좋다. 내가 볼 때에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가장 겁 많은 학생들 같다. 무엇을 하던 간에 그냥 먹고 살기만을 바라보는 것은 어림도 없는 말이다. 나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중요한 개념이다. 게다가, 마흔 살에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겁은 없었다.

Q: 보통 작업을 시작할 때,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고, 또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A: 영감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잘 맞지 않는 단어이다. 영감이 노는 사람에게 얻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영감이라는 것은 내가 온통 무언가에 몰두해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감은 예를 들면, 시인이나 소설가가 글을 쓰다 지쳐서 바람을 쏘이려 잔디밭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뚝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서 오는 것, 그게 영감이다.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때, 특정한 자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빠져 있으면, 그 어느 때던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반드시 오게 돼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과제에 열심히 매달리고 하다 보면, 자다가, 혹은 학교를 오거나 밥을 먹다가 ‘아!’ 하고 생각 날 것이다. 그저 놀다가는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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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 작업을 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A: 나는 예술가지만 미술관에 들어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미술관이라는 이상한 필터 없이 직접적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것, 그것이 일종의 미디어다. 이런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도 시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난다는 것에 가장 신경 썼고,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였다.

Q: 키네틱 아트는 역동적 움직임을 주요소로 하는 예술인걸로 알고 있다.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에서도 상하로 움직이는 LED를 사용하였던데, 그 움직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A: 브릴리언트 큐브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가변형이기 때문에 변형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다른 이미지와 구동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고 난 뒤의 판단은 시민들이 보기 나름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노릇이 아닌 것 같다.

Q: 이번 브릴리언트 큐브에 LED를 많이 사용한걸로 알고 있는데, 그 밖의 다른 작업에도 LED를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다. LED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이번 작품에는 약 25만개의 LED가 쓰였다. 조금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LED를 쓰는 이유는 LED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LED를 너무 싸게 쓴다. LED로 무지개 색을 내며 예쁘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고 느낀다. LED에는 고정적인 색이 없다. 그래서 내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가변형의 최대치까지 노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LED는 얼마든지 다른 색을 낼 수 있지만 한 색으로 굳어 있을 때 더 보기 좋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 좋은 LED 작품의 모델을 보여주고 싶고, 이것이 내가 LED를 사용하는 이유다.

Q: 교수님의 작품을 보면 Music Box나 Soni Column, Light Bead Curtain, EMAN과 같이 예전엔 개인 작업들이 많던데, 최근엔 Hyper-Matrix나 Brilliant Cube 같이 기업과 함께한 작품들이 많더라. 개인 작업과 기업과 관련된 작업의 장단점을 알고 싶다.
A: 개인작업의 장점은 ‘개인작업 이라는 것’이다. 나 혼자 거의 모든 것을 결정 할 수 있다. 기업하고 함께 작업 할 때에는 보통 내가 90퍼센트 정도 결정하고, 기업이 5~10% 정도 참여한다. 기업은 철저하게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의견을 나에게 요구하고, 기업의 메시지를 작품에 싣기를 바란다. 때로는 그것이 불만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고, 기업의 의견을 받아들였을 때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기업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Q: 작품 활동을 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A: 지금은 시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현재의 나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기업하고 큰 액수의 시장을 만들어가는 이유는,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기업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들이 이 작품에 수십억의 돈을 써도 아깝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얻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디어아트의 시장은 열리게 돼있다. 지금까지는 신세계나 현대와 작품을 같이 했지만, 이제 다른 대기업들도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처음에는 가격 때문에 놀라지만, 그들은 이미 나의 작품들을 보았다. 그렇기에 이 정도 돈에 이 정도 효과라면, 결국 TV CF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TV CF 하나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30억이 투자된다. 실제 CF를 제작하는 비용은 적게는 2~3억이면 만들지만 나머지 비 용은 중요한 시간대에 그 광고가 나가게끔 하는 데 에 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와 상관없는 곳, 즉, 미 디어 비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기업에게 이 런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그 30억을 TV CF 한 편 만들기 위해 날리지 말고, 그 돈 날 줘라. 그러 면 방송에 나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광고 효과를 내게 해주겠다.”

Q: 교수님의 다른 인터뷰를 봤었는데, “관객과 작 품은 그 날,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만난다.”라는 말 씀이 매우 인상적이더라.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중 시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직접적인, 그리고 ‘뻔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말하는’ 뻔함’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A: 난 뻔한 것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보통 디자 이너들은 뻔한 것을 피하려고 하지만 뻔한 것에는 뻔한 이유가 있다. 보통 예술가들은 뻔함을 절대적 으로 피해야하는 요소라고 배운다. 나도 그랬다. 내 가 디자이너였을 때, ‘남들 다 하는 거 하지 마라’라 는 것을 제일 먼저 배웠고, 지금도 내가 남이 하는 것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피하 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함에는 내가 아직 성취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 즉, 메인 스트림이라는 것이다. 예술가고 디자이너 로서, 내가 물을 먹었다면 나는 맑은 물만 먹었다 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정수가 된 맑은 물만 공급 하고, ‘비싸고 맑은 물만 먹을 사람만 먹으세요.’라 는 이런 자세였다. 그런데 뻔함이라고 하는 것은 메인 스트림을 얘기하는 것이다. 강물엔 주류와 지 류가 있는데, 지류는 깨끗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메인 스트림은 다 섞 이게 된다. 이렇게 청탁이 뒤섞여 있는 것이 메인 스트림이다. 이 메인 스트림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이것을 무시한 채로 지류에만 머무를 수 없다. 그 것이 내가 뻔함을 추구하는 이유다. 즉, 내 스스로 뻔해지겠다고 하는 것은 나의 포부인거다. 메인 스 트림으로 들어가서 ‘큰물을 내가 휘어잡겠다. 그 안 에서 충분히 내 메시지를 잘 전달하겠다. 그 안에 서 무엇이든 내가 남기겠다.’라고 하는 포부. 비록 아직까지도 잘 성사되진 않았다. 청탁 중에 ‘청’만 고르려고 하는 그런 오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욕심인 것이다.

Q: 기술과 예술을 모두 잘 아는 공집합형 전문가들 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더라. 하지만 현 재 대학 교육 방식은 기술과 예술을 구분 짓는 경 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현재 대학 방식을 신랄하게 얘기한다면, 융합이라는 타이틀은 맨날 단다. 근데 단 한 번도 융합한 적이 없다.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 인데요.” 라고 스스로를 칭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과거부터 붙여준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융합은 나부터 녹는 거다. 그래야 알갱이가 아닌 원소 단위가 합쳐지게 된다. 큰 용광로에 온갖 것을 다 집어넣고 녹여서 틀에 갖다 부으면, 완전히 새로운 제 3의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그 안에 어떠한 알갱이도 살아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디자인 중심의 융합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는 디자인 할 거니까, 공학아 와서 도우라.” 는 것이지, 융합이 아니다. 이건 협업과 융합을 혼용하는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융합이란 무엇이 예술일까 기술일까를 구분하지 않는, 정확히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그것을 좋다 나쁘다라고는 판단하지 못 하겠다. 왜냐하면 지금 와서 “과거의 이름과 장르는 다 가라.” 는 것 또한 틀린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나에게 디지털아트를 배우는 학생들한테는 기술과 예술을 가려서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할 때마다 많은 디자이너와 학생들이 내게 묻곤 했다. “선생님, 기술 공부를얼마나 해야 선생님처럼 할 수 있나요?”, 혹은, “꼭 그렇게 기술적인 공부를 해야 하나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 질문은 “미국에 갈 건데, 영어를 꼭 해야 하나요?” 혹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사진 찍는 기술을 꼭 익혀야 되나요?” 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카메라가 좋다고 좋은 사진이 찍히는가? 절대 아니다. 카메라가 안 좋아도 사진사가 좋으면 잘 찍을 수 있다. 과연 그 사람은 사진 찍는 기술을 몰랐는데 우연히 잘 찍었을까? 이 또한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영감’처럼, 내가 다루는 기계, 미디어와 정말 잘 소통하고 있을 때 불쑥 나오는 것이다. 좋은 사진, 좋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Q: 연세대학교 디자인과는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디지털 아트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조 과제를 하다보면, 같은 전공의 학생들끼리 과제를 할 때 보다 더 많은 논쟁이 일어난다. 이것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해 줄 말이 있는가.
A: 그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다. 이 것은 무슨 묘안이 있어 물 흐르듯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물을, 물 흐르듯이 간다고 하는데, 그 물밑으로 얼마나 많은 돌이 있는지 알지 않나. 그 물흐르는 과정 속에서도 굉장히 많은 저항과 마찰이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고요하게 흘러가 보일지언정 저항과 마찰은 반드시 어느 과정에나 있다. 너희들 사이의 수많은 마찰들도 이겨내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이 그런 과정을 겪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목표를 한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론에서 얼만한 차 이가 있든 자연적으로 해결 된다. 예를 들면, 무엇 을 만들 것인가 혹은 왜 만드는 것일까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다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분쟁 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이것을 하려고 하는 거 아 니냐. 이렇게 하기 위해 이걸 하는 것 아니냐.” 라 는 목표를 갖다 대면 분쟁의 폭이 좁아진다. 모든 분쟁은 서로 바라보는 곳이 같다면 자연적으로 해 결 될 것이다.

Q: 교수님이 생각하는 미디어 아트란 무엇이며 앞 으로 미디어 아트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 라 생각하는가.
A: 미디어 아트가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떠한 형 태로 나아갈지는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의 형태는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엔지니어를 불러 한방에 가둬 놓고 “너희 이제부터 이거 만들어”하고 문 잠그고 나가는 식이다. 그럼 둘이 쿵짝 쿵짝 해서 뭘 만들 어 내는 건데,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이런 방식 은 뭔가를 follow up 하는 데는 최고다. 하지만 완 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현 재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나 오는 것이 아니고, 앞서 내가 얘기했던, ‘공집합형, 융합형’ 인재들로부터 나온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 여 얘기하다 보면, 앞으로 어떤 제품, 어떤 작품이 나올지 예상 할 수 없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방 향이 어떻게 틀어지고 변모 해 갈지는 쉽게 예측 하지 못한다. 나는 예술과 기술, 그리고 디자인을 구분 하지 않 는다. 다행인건, 나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늘 어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낼 미래는 지 금 내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다. 굳이 예측을 하자 면, 화학과 생물학이다. 이제는 이 분야까지 융합 될 것이다. 이게 뻔히 보이는 미래다. 또, 앞으로 는 희한한 기계가 아닌, 희한한 유기체가 나올 것 이다. 분명히 그럴 것 같다. 그쪽이 미래라고 확신 할 수 있다..

Q: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A: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금의 나와 똑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교수님께서 싫은 과제를 내 주시면 아예 안했다. 말하자면 빵꾸를 낸 셈이다. 그래서 수강 신청 때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말 이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에 대한 것도 많이 신경 썼다. 특히 나는 주제를 정해주는 과제가 정말 싫 었다.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직 어 리지만 나도 살아있는 사람인데.’하는 생각 때문이 었다. 그래서 교수님이 “이것을 표현해봐.” 라고 얘기하시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기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고, 결국 잘 안 되더라. 억지스러운 일을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맘에 들 때까지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 수업의 과제를 반복해서 스물 몇 번까지 해본 적이 있다. 다른 과제는 안하고 그 한 과제만 맘에 들 때까지.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쟨 정말 저거에만 미쳐있는,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했는데 성적은 그게 아 니었다. 근데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웃음)

Q: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자 학생들을 가 르치는 교수로서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 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혹은 그들이 갖췄으면 하 는 자세가 있는가.
A: “너 하고 싶은 것, 너 좋은 것 해라.” 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남이 좋다고 하는 것에 자신을 끼워 맞 추지 마라. 그래서는 자신의 재능이 나오지 않는다. 재능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많 이 나온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는지는 모 르겠지만 참 열심히 한다.” 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 다. 나는 그 얘기가 좀 낯설다. 열심히 한 적이 없 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다’라는 어감에는 왠지 싫 은 일을 끈기 있게 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시킨 심부름을 하루 종일 했을 때, ‘하기 싫 지만 내가 좋아하는 엄마니까 도와드려야지.’해서 했을 때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런데, 난 내가 하고 싶 어서 하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이걸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건데, 남들이 볼 때, 내가 이걸 좋아서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를 때는, ‘쟤는 정말 열심히 한다. 저것만 한다’고 본 다. 보는 포인트가 약간 다른 것 같다. 열심히 해서 는 잘 되지 않는다. 아주 잘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 주 잘하려면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한다. 언젠가 부 터 디자인이나 예술 쪽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되고, 그냥 대충해도 먹고사는 분야가 됐는데, 원래는 그렇지 않다. 이 분야는 올림픽 금메달처럼 최고가 아니면 써먹을 데가 없는 분야이다. 때문에 이 분야를 잘하기 위해선 정말 좋아해야 한다. 그 런데 우리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 정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학생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특히 오늘날의 입시 과정은 자신의 개성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된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받은 성 적으로 학교다 싶은 곳에 가게 되고 전공도 정해진 다. 자신이 이걸 하는 게 맞는 건지, 자신이 좋아하 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가고 성 실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도록 바꾸는 태도가 제일 필요하다. 붕 떠있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는 마치 연꽃잎이 물위에서 붕붕 떠다니는 것처럼, 어디에서 뭘 해야 될지 모 르는 채로 그저 떠다니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게 가장 낭비가 아닐까 싶다. 뭘 하든지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그거는 잘해 왔다. 그래서 뭐든지 내가 좋으면 참 열심히 했고, 별로 맘에 안 들어도 내가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해야 내 몸이 움직이고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됨을 아니까 무엇보다 이걸 좋아하는 게 우선이었다. 첫눈에 보고 반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되겠나. 좋아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다. 어떤 것을 좋아하면 저절로 다 해결된다. 미디어 아트를 하게된 것도 다 그렇다. ‘이런 걸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니 뭘 해야 하는지 보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15년도 넘어가서 하고 있는데, 15년이 굉장히 길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 길지 않다. 학생들한테 내가 던지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10년 굶어도 안 죽어.”라는 말을 꼭 좀 써줬으면 한다. 10년 굶어도 안 죽는다. 까딱없다. 10년 굶을 각오를 하고 꿈을 쫓아보는 놈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얘기는 대학 졸업 후 10년을 뜻하는 거다. 그때가 가장 중요한데, 다들 젊을 때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고생을 안하려 한다. “너희들의 꿈이 뭐냐?”하면 “일단 취직부터 하고 여유가 생기면 뭐를 하겠다.”고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취직을 하면 회사가 너희들이 그렇게 하게 둘 것 같은가? 천만에. 회사는 너희들의 꿈을 키워주는 곳이 아니다. 회사는 너희들의 꿈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1,2년을 못 참고 그냥 살기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접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잘될 수가 없다. 10년을 굶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 만큼을 배수진을 치고 살아야 한다. 전쟁을 할 때 내 등 뒤에 강이 있어서 여기서 밀리면 강에 빠지는 거다. 젊은 시간 10년을 그렇게 보내는 게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 10년이 지나고 나면, 배수진을 치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죽으면 딸려죽는 식구들이 생긴다. 그래서 배수진을 칠 나이 때는 정말 주저 없이 배수진을 치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향해 가야한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좋은 화려한 이름이 아닌, 너희가 좋아하는 것, 그것이 너희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주저 없이 10년을 투자해야 한다. 10년 투자안하고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 가짜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꿈보다 어떻게 살지를 고민 한다면, 상당히 제한적이게 된다. 왜냐하면 뭔가를 쫓아가는 자한테 10년은 정말 짧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장 곡선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곡선’이다. 사람이 성장할 때 보통 직선으로 성장한 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 초반기가 길다. 하지만 한 번 성장하기 시작하면 급격히 성장한다. 앞의 긴 초반기가 10년인 것이다. 이게 첫, 아주 기본적인 10년이다. 이 때 자신을 앞지르고 치고 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 만나고 앞지르게도 되어있으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UIX _ UX 인턴 경험기

‘UX, UI 쪽으로 인턴 한 번 해볼까?’
2012년 7월 2일, U2 system에서 인턴으로서의 첫 근무가 시작되었다. U2 system의 사장님이신 최재현 대표님께서 2011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인터렉션 디자인 강의를 해주셨는데, 당시 그 과목을 수강하면서 UX, UI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용자’에 대하여 조금 더 배워보고자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지식경제부 IT인재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한이음 IT 인턴쉽 프로그램’을 통해 U2 system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다. 한이음 인턴쉽 프로그램은 멘토-멘티제로 운영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인턴연수비까지 모두 정부에서 지원되었다.

근무가 시작되기 한 달 전에 사전교육 차원에서 두 번 정도 회사를 방문하여 대표님과 간단한 면접을 보고, 멘토였던 변상희 실장님께 회사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진행될 예정인 프로젝트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인턴 기간 동안 참여할 프로젝트는 인턴 학생들의 전공지식, 관심 분야, 진로 등 전반적인 백그라운드을 고려하되, 최종적으로는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진행되었다. 내가 선택한 프로젝트는 서비스 개선 업무와 UX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업무였다. 학교에서 배우고 실습했던 리크루팅, 사용성 평가 및 고도화 작업 등을 실무에서 전문가 집단과 함께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UX에 대한 지식들에 좀 더 확신이 서게 되었다. 수업과 실무는 많이 다르지 않았다. 수업에서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했다면, 실무에서 하나씩 깊고 넓게 응용하면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 vs 실무 경험, 같지만 다른 면도 있구나!’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는 5명 내외로 투입되었는데, 재밌었던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방법론적인 면에서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했던 점이다. 이를 테면, IDEO Method Card를 보면서도 적용시킬 방법론이 못마땅할 경우에는 팀 내부에서 직접 방법론을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선택한 카드를 좀 더 발전시켜 사용하기도 한다. 방법론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더라도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 그렇게 새로운 방법론이 만들어지면 우리들 스스로 이름을 짓고, 향후 다른 프로젝트에도 계속 사용한다. 왠지 디자인방법론 수업 때 배웠던 것이 생각나 회의 도중 슬그머니 웃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프로젝트가 팀 프로젝트이기에 회의가 많이 진행되었는데, 실전인 만큼 모든 회의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해야했다. 학교 수업 때는 딴 생각을 하고, 졸거나, 너무 배고프면 몰래 간식을 살짝살짝 먹기도 했지만, 인턴사원으로서 회사에서 실제 근무하는 태도나 팀별 회의는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했다. 팀원 모두가 머리를 쥐어짜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또 발전시켜야하기 때문에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더 나아가 회사는 새로 들어온 인턴 학생들의 창의력이 깃든 신선한 의견을 원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합치더라도 인턴이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도 회사는 인턴을 ‘사용자’로 보았기 때문에 나 역시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회사가 원하는 인턴상에 맞추기 위해 서비스 혹은 제품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어야했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화로운 회의 속에서도 한 번씩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에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마지막에는 합의점을 찾아 더욱 발전되는 것을 보면서 의견충돌도 때론 필요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인턴을 하면서 느낀 점은 UX, UI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면, IT 제품과 서비스 등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제품 혹은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점이 많았는데, 회사 선임님께서 ‘그게 바로 개선해야할 점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편, 계속 발전하고 있는 IT산업, 그리고 IT시장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T시장에서는 계속 새로운 IT기기를 선보이고 있고, 사용자 역시 전보다 더 나은, 업그레이드 된 제품 혹은 서비스를 받기를 희망하며, 이렇게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하고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얼리어답터가 되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재 IT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 되는데 이것은 막바지에 이르는 동시에 다른 프로젝트를 같이 시작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지기도 한다. 마치 중간고사 끝남과 동시에 2차 중간고사를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인턴사원 끝 무렵엔 고된 회사생활에 대해 충격도 받았지만, 이것이 바로 사회인과 학생의 차이인 것 같았다. 나태했던 대학생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조금은 내 자신이 한 차원 높아졌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7월부터 8월의 인턴 경험은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회사생활을 할 때, 내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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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U2system에서 인턴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기업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점과, 메타트렌드 잡지들을 공짜로 볼 수 있었던 점, 다른 프로젝트의 필드리서치를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점이다. 그리고 내 졸업연구에 대해서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피드백과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에는 대표님이자 교수님이셨던 최재현 교수님의 즐거운 UX 관련 이론과 개념에 관한 수업이 이루어졌다. 교수님의 열정적인 수업과 인턴 학생들의 질의 응답 시간은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고, 학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다시 복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인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타 프로젝트의 필드리서치 경험은 정말 내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제품의 프로세스 및 그 사용 환경까지 관찰하는 필드리서치는 사실 실장님께 부탁드려 어렵게 얻은 기회였는데, 인터뷰 대상이 전문가인 만큼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회사 사원으로서 참여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장 준비 및 시간 엄수는 기본이었고,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그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인턴임에도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했고 보람찬 회사생활이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 베어든 경험

2009년 3월. 스무 살에 만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나의 많은 이야기를 시작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3년동안 능동적인 대학 생활을 했다. 교내의 광고동아리 열광에서 활동을 하면서 다수의 공모전에 참여도 해보고, 동아리 조직을 이끌며, 연고대의 네 개의 광고 동아리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동아리를 이끌면서 학교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었는데, 특히 연세대학교 종합인력개발센터(지금은 인재개발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이용하게되면서 지원을 받아 스페인도 다녀왔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독일 해외 인턴을 지원하게 된 것도 적극적으로 도전했기 때문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6월, 우연히 등록해놓은 여행사의 뉴스레터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한 눈에 들어 온 것이 ‘독일 인턴 프로그램 모집’이라는 문구였다. 이전부터 막연히 해외에서의 경험을 하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바로 지원 접수를 하고 서류 합격 후 스카이프로 음성 면접도 하면서 무슨 업무를 하는지, 어떻게 진행이 되는 프로그램인지 – 하다못해 무슨 회사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업자 등록증 까지도 받아서-확실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부터 비행기 티켓 준비 등 모든 준비를 한 달 만에 끝냈다. 드디어 3학년 1학기 종강을 하자마자 트렁크 두 개를 끌고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목적지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였다. 도착한 장소는 유럽의 삼성 본사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내가 일을 하게 된 곳은 한국 회사의 독일 지사이자 직원들의 교육장이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회사 관계자 분을 따라 교육장에 도착했고 첫 저녁 음식으로 칼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것은 사회로 나가기 전에 회사의 일부 업무 맡으면서 사회인으로써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배우는 것이었다. 일종의 직장 체험 개념이다. 처음 한달 간을 일을 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배우는 교육기간을 가졌었다. 업무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본인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는 법, 사람 사이의 예절, 돈 관리하는 법 등 갖춰야 하는 기본에 대해 배웠다. 교육기간 이후에 내가 맡은 업무는 2D 디자인 작업으로 기본 광고 디자인이나 뉴스레터 디자인, 웹 디자인 작업 등의 업무를 진행했다. 업무를 하면서도 일 처리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배운 것은 일을 하는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 일의 순서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일을 하는 방법, 일을 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자세 등에 대한 것을 배웠고 깨달은 것이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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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교육을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분께서 말하시길, 기본 교육이 굉장히 잘 되어있는 독일의 환경 속에서 본인의 가르침 외에 보고 배울점이 많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보고 배운 깨달음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루는 밖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독일인들의 행동은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는 굉장히 조용했고 차가 지나가지 않아도 횡단보도의 신호를 지키고,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신기했다. 특히 그들에게는 굉장히 절약하는 자세가 기본으로 몸에 베어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전기나 물, 자원 등을 낭비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절약하기 위한 환경이 잘 조성되어있다. 재활용을 유도하는 보증금 환급 제도가 그 예 이다. 독일인의 생활 속에서 같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절약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노력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재미있게 보았던 점은 독일의 마켓이었다. 반 년 정도 거주하면서 생활용품들은 마을의 슈퍼마켓을 가거나 XXXL Möbelhäuse 이나 Media Markt, IKEA 같은 대형 마켓에서 구매하곤 했는데, 쇼핑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시장을 구경 하는 것 같았다. 매장의 진열이나 디자인, 고품질, 다양한 용도의 제품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고 더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

2012년 10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독일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독일에 다녀오면 나의 많은 것이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표면적으로 나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다름을 경험하고 좀 더 주의 깊게 주변을 보다 보니 어느새 그 곳에서의 경험과 깨달음이 내 생각과 몸에 베어져 자연스럽게 나의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진,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운이 닿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행운이던 불운이던, 내가 먼저 움직이고 다가가고 준비해야 운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운을 누릴 수 있었던 기회에 감사한 마음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산업 디자인 인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재작년 이맘때 즈음 부푼 기대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 간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보통 많은 어학연수생들이 짧게는 4개월에서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연수를 다녀오는 것에 비하면 다소 긴 기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1년이 아닌 2년을 애초에 계획한 이유는 처음 1년은 영어공부에 집중하다가 2년차에는 향상된 영어능력과 내 전공을 맞물려 실질적인 미국 산업디자인회사에서의 실무 경험을 해보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차별화를 주고 싶었다. 남들과 똑같은 경험 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차별화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심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해외인턴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기에 디자인 인턴쉽을 선택한 것이지만, 사실 영어와 산업디자인,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인턴쉽 말고도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한다. 아트 컬리지(College)에 편입하여 학위를 따오거나, 어학원 등을 통해 대학전공과목을 청강할 수도 있다. 아트 컬리지나 타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고 또 전공지식도 넓힐 수 있다.

인턴을 하기 위해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산업디자인 회사를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업과의 인턴을 연결해주는 스폰서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냈지만, 소재한 디자인회사가 많지 않아 연결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굳이 인턴을 하기 원한다면 규모가 있는 LA나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1년을 서부지역에서 살았고 이왕 미국에 더 있기로 결정한 것 이라면 같은 서부권보다는 동부권에서의 인턴을 하는 것이 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시카고로 옮기게 된 것이었다. 마침 유학마스터의 김선희 원장님의 추천으로 시카고에 소재하고 있는 인트락스(INTRAX INSTITUTE) 어학원에 ‘Career Preparation’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집중 영어 프로그램 예를 들어, 회화반 혹은 시험 대비반 등 자신이 원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으며, 오후에는 회사로 가서 실무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나처럼 F1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어학연수생들이 미국 내에서 무보수로 인턴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미국법 상 F1비자로는 보수를 받고 하는 정식 인턴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식 보수직 인턴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문화교류비자인 ‘J1비자’를 발급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디자인 회사에 인턴쉽을 지원하는 과정과 실무경험을 통해 얻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1. 회사선택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처음부터 비교적 잘 알려진, 남들이 어디에서 일했다고 하면 놀랄만한 큰 규모의 기업에서 인턴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나는 처음으로 하는 해외 인턴이었고, 또 보수를 받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회사를 선택함에 있어 규모나 인지도보다는 작은 규모의 기업이더라도 보람되고 알찬 실무경험을 쌓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생각하기에 회사를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회사를 선정하는 기준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를 선택한다든지, 네임밸류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 스펙을 끌어올린다든지 하는 것 등 말이다. 그리고 정말 자신이 일해보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사전조사가 철저히 필요하다. 그래야 회사와 관련된 인터뷰 질문을 받을 시 능수능란하게 답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영문 이력서 및 포트폴리오 회사에 넣기
회사를 선정했다면 이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낼 차례이다. 이때 보내는 이력서는 남들과 차별화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선택되려면 똑같은 포맷과 내용으로 승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을 잘 부각시키되, 읽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또한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몇몇 회사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마침 나는 번역작업을 같이 도와주는 선생님께서 마침 미국 내 유명 디자인학교인 SAIC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졸업생이셨고, 같이 번역 작업을 하는 동안 디자인 전문 용어 등을 배우고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3. 인터뷰
만약 회사가 보낸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관심이 있으면 회사로부터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이 오게 되는데, 이때 통상적으로 인터뷰 날짜를 잡게 된다. 그런 후 면접요령 및 인터뷰 질문 유형분석 등 인터뷰를 위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인터뷰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 회사에 왜 가장 적합한 인물인지 설득하는 것’ 과 ‘ 긍정적인 태도’인데 모든 질문의 대한 답의 핵심은 어떤 내용을 답하느냐가 아닌 ‘답을 풀어나가는 과정’(How can you solve the problem?’) 있는 것이다. 아래는 내가 실제 인터뷰 중 받았던 질문이자 준비해놓았던 예시이고 이것을 답하는 과정이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자신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서도 단점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 이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What is your greatest weakness?
“ I would say my greatest weakness is my lack of flexibility and seriousness. At first, I might seem like a stubborn and serious person to some people. However, when I spend sometime talking to someone and find out more about him or her, such hid or her interests, I can speak fluently with anybody and can share ideas. I usually try to use my sense of humour and small talks to break the ice with people I have newly met.”

4. 실무생활
첫 출근을 했던 긴장되는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무엇보다 과연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 방법론이나 스케치 및 모델링 능력이 얼마만큼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근무했던 산업디자인 회사는 시카고 다운타운 근처에 소재한 ‘Product Council’이라는 컨설팅 회사였다. 창립된 지 15년이 넘는 이 회사는 ‘Panasonic’, ‘Onkyo’와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소규모 기업까지 80개가 넘는 기업과 연계하여 의료, 헬스케어, 전자, 주방기구, 패키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업무를 하면서 좋다고 느꼈던 점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겨난 궁금증에 대한 것들을 친절히 알려주었던 점이다. 가령, 전에는 몰랐던 제품이 양산되는 과정이나 디자인을 놓고 벌인 고객과의 마찰에 대한 에피소드 들려주는 등 실무경험과 더불어 배우는 과정 또한 겸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각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는 기본적으로 상사가 지시한 프로젝트의 아이디어 스케치나 2D / 3D 렌더링 구현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기본적인 디자인 프로그램들을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했다. 모든 능력을 겸비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자신이 3D모델링이나 스케치 중 어느 것 하나가 약하다고 생각할 시에는 잘 할 수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3D모델링 보다는 스케치에 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장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보여주면서 다양한 컨셉을 제시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잘함과 못함이 아닌 바로 성실성과 열정에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 곧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자신감이다. 인턴을 하면서 절대로 함부로 언급하지 말아야 할 소리가 하나가 있는데 바로 “I am sorry” 이다. 이 말은 국내 회사에서는 상황마다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고 때론 좋은 말로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미국사회에서는 대부분 자신감이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하는 것이 좋지 않다. 상사의 말을 잘못 이해했거나 컨셉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 하더라도 미안하다고 하기 보다는 다시 한 번 설명해줄 수 있느냐, 내가 잘 못 알아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실 유학 온지 얼마나 되지 않았는데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모르는 용어를 물어보거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절대로 짜증을 내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배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당당해져라.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반적인 미국 내 산업디자인 컨설팅회사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안목을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후배들이나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유용한 과정이다. 끝으로 많은 자료를 주고 이러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유학마스터의 김신희 원장님과 이경미 대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Spark Design Awards

김성훈
산업디자인학전공 09학번

노형래
산업디자인학전공 06학번

정소연
산업디자인학전공 09학번

SPARK:CONCEPT AWARDS 2012

– Winner(Gold) 수상

2012 스파크 컨셉 디자인 공모전에서 산업디자인학과 노형래(06), 김성훈(09), 정소연(09)이 한 팀을 이루어 출품한 “EAT’EM”이 금상(Gold Award)을 수상을 하는 영예를 안았다. “EAT ‘EM”은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바다 속 쓰레기를 수거하며 청소하는 쓰레기 수거 잠수함이다. 현재 기술로는 아직 구현이 불가능하지만 컨셉 디자인 공모전인 만큼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2030년을 겨냥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작품을 감상해보자.


작품 설명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쓰레기는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한 늘어나기만 할뿐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쓰레기는 대부분 해수면 3미터 아래까지 머물러있는다. 이러한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무인 쓰레기 잠수함 “Eat’em” 이 필요하다. ‘엄마’ 잠수함 안에서 조종사가 카메라를 통해 관찰하고 있을 때에 ‘아기’ 잠수함들은 바다에서 쓰레기를 수거한다. 다 수거된 쓰레기는 다시 임시 저장하기 위해 ‘엄마’잠수함에게 가져온다. 이 잠수함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태양열 판을 사용하여 “Eat’em” 은 환경을 보호하는 태양에너지를 사용한다.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바다를 자유롭게 수영하는 쓰레기 수거 잠수함. 초음파를 이용하여 해양생물들을 쫓아내고 깨끗한 바다 환경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를 수거한다. 수거한 쓰레기를 큐브 형태로 찌그러트려서 운반에 효율과 저장 공간에 효율성을 높여준다.

2030년, 대서양에 존재하는 쓰레기 섬에 크기는 2012년 보다 훨씬 커졌다. 이제 그 크기는 미국 대륙의 크기와 흡사하다. 대부분의 쓰레기가 해수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직접적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 근처에 사는 동물들과 해양 생물들은 쓰레기 조각들을 먹게 되고, 죽은 체 떠내려 온다. 인간은 오염물질로 가득한 생선들을 먹게 되면서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를 줄일 수가 있다. 하지만 이미 바다에 있는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잠수함 “Eat’em”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무인 쓰레기 수거 잠수함 “Eat’em”. 태양열로 작동 되는 친환경 기계가 모든 문제에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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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파크 공모전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본래 우리가 참가하려고 했던 공모전은 ‘AUTODESK:PANORAMA 2012 Asia Pacific Design Challenge’였다. 그런데 참가했던 작품이 아쉽게 탈락하는 바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파크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운좋게 당선 되었던 것 같다.

Q. 팀은 어떻게 결성되었는가?
팀원은 4학년인 노형래(06), 김성훈(09)과 3학년인 정소연(09)으로 구성되었는데, 평소에 우리 세명이서 마음이 잘 맞아 같이 밤새며 작업을 할 때가 많았다. 이번엔 좋은 기회가 되어 함께 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특히 팀원 중에 영어를 잘 하는 소연이가 있어 국제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Q. 컨셉 공모전이라 학생들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할 텐데, 아이디어 구현 과정은 어떻게 하였는가?
먼저 세 사람이 각자 아이템을 찾는 과정을 갖고 그 후에 한명씩 PPT로 발표를 하였다. 그렇게 서로 의견을 조율한 뒤, 적절한 주제를 정해서 진행하였다. 주제는 앞서 오토데스크 파노라마에서 제시 되었던 키워드가 shape the future와 지속가능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주제를 선정하였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다가 우연히 태평양에 위치한 쓰레기 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Q. 공모전 마감 전까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제일 먼저 국제 공모전이다 보니 영어로 작품을 소개하고 영어로 된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분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애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다행히 소연이가 영어를 잘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다른 팀원들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던 적이 있다. 그리고 모든 디자인 과정이 그렇듯이 창작물이 나오기 전까지의 고뇌와 고통은 너무나 힘든 부분이다. 특히나 팀 작업으로 진행되었을 때는 각자가 잘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채워주면서 조율해 나가는 것 또한 어려운 문제였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이 서로 워낙 친하다보니 다툼 없이 좋은 팀웍을 발휘한 것 같다.

Q. 출품비는 얼마나 들었는가?
출품비가 학생들이 부담하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비용이라 걱정이 많았다. 모두가 사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지만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출품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후반기 출품으로 150달러가 들었고 그다음에는 파이널리스트에 올라가 50달러,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이널리스트프라이즈로 150달러가 들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총 40만원 가까이든 셈이다.

Q. 하지만 그런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이 좋은 결과를 이끈 것 같다. 공모전 참여하고 나서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공모전은 수업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수업에서는 교수님의 지도하에 과제가 진행되지만 공모전은 수업과 달리 우리가 원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모전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자유롭게 아이디에이션할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공모전 수상작들을 보면 오히려 수업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지 않고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독창적인 발상을 한 작품이 수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Q. 공모전 수상에 관해 후배들에게 팁을 준다면?
학교에서 배운 것에만 목메이지 말고 자유롭게 공상하고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모전에서는 오히려 이런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학생다운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한다. 수업에서 진행되는 과제도 잘해야 하지만 학생 때에 이런저런 공모전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는 것도 정말 좋은 것 같다.

SAY_ Red Dot 시상식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에 싱가포르 레드닷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에 권용민, 황신희, 김란이 디자인 소모임 SAY!를 대표로 다녀왔다. 디자인 소모임 SAY!는 Summon All Your !magination의 약자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산업디자인에 재학 중인 학우들이 모여서 공모전과 디자인 멤버십을 준비하는 소모임이다. 수상작은 SAV+0, IceQ였는데 SAV+0는 Life Science분야에서 Best of the best를, iceQ는 Productivity분야에서 Winner를 각각 입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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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Red dot design award) 국제적인 디자인 공모전의 하나인데, 응모 분야는 크게 제품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컨셉 디자인 세 분야로 나뉜다. 이 중 제품디자인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응모 분야로, 가구, 생활용품, 기계, 자동차, 도구, 기계 등을 포함한 모든 제품군을 응모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중 SAV+0(권용민, 황신희, 김민지)는 Life Science분야에서 Best of Best 수상을 하였다. 이 제품은 의족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기본 운동인 달리기, 걷기, 수영을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모듈형 의족이다. 일반 의족은 의족 사용자가 외출 하는데 불편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은 집 밖의 외출을 거의 하지 않게 되어 일반인 보다 비만율이 높다. 그렇다고 여러 의족을 구매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SAV+0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모듈 형식으로 디자인 하였고 형태를 곡선과 다이아몬드 꽃잎으로 승화하였다. 문제가 해결 된다면 의족 사용자는 보다 더 당당하게 외출을 할 수 있고 손쉽게 운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 다른 수상작인 Ice_Q(엄형우, 김대건, 김용선, 김란)는 Productivity분야에서 Winner수상을 하였다. 이 제품은 더욱더 효과적인 노트북 방열을 위해 디자인된 부착형 노트북 쿨러이다. 노트북은 성능이 다소 낮지만 휴대성이 뛰어나 사용자의 작업 효율을 높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하지만 방열이 취약하여 심한 경우 사용자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방열을 위해 기존의 노트북 쿨러를 사용하면 노트북의 휴대성을 떨어트리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트북 방열 그릴에 곧 바로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을 적용하였고, 노트북 방열 그릴에 끼우는 형태이기 때문에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로 디자인 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은 어디를 가든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고 바로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노트북 내부에 있는 열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거 할 수 있다. 비행기로 장장 6시간을 날아 도착한 싱가포르는 한국의 여름처럼 더운 기후지만, 실내 어느 곳을 가나 냉방이 잘 되어있어 제법 선선했다. 레드닷 뮤지엄도 선선해서 상쾌하게 시상식을 할 수 있었다. 레드닷 뮤지엄 입구에서는 수상자 촬영을 위한 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많은 수상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에 이를 생략하고 바로 시상식장으로 들어갔다. 늦은 7시 레드닷 뮤지엄 시상식장에 하얀 정장을 입은 Red Dot Design Awards회장인 Peter Zec(피터 첵)이 LMFAO의 sexy and I know it과 함께 등장을 했고, 곧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시상식의 시작을 알렸다.

수상작을 부를 때 마다 제품마다 제각각 다른 노래가 나왔고, 시상자들은 런웨이를 걸으며 자리를 빛냈다. 런웨이 위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져졌다. 담담하게 걸어 올라가는 팀도 있는 반면, 어떤 팀은 춤을 추며 올라갔고, 어떤 수상자는 자신의 카메라로 런웨이 위에 있는 모습을 스스로 찍기도 했다. 박수를 유도하거나, 심지어는 포옹이나 패션쇼장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수상자들은 대부분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시상을 맞이하였지만, 독특한 의상을 입은 수상자들도 간간히 보였다.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온 팀도 몇몇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팀은 어떤 한국 팀이었는데, 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퓨전 한복을 입고 왔었다. 시상식 내내 여기저기서 셔터소리와 웃음소리, 호응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시작한 시상식은 쉬는 시간 중간에도 공연을 선보이며 마지막까지 즐겁게 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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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이후는 각 팀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레드닷에서 준비한 싱가포르 슬링 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며 칵테일파티를 시작했고, 올해의 수상작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빔프로젝터가 설치된 부스가 개방되어 훌륭한 디자인 제품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제품들도 볼 수 있었다.

이번 2012년 레드닷 콘셉 어워드에는 57개국에서 262개의 회사와 스튜디오, 113개의 대학교, 906명의 디자이너 1245개의 팀에서 총 3736개 작품이 지원 되었다. 14개국의 21명의 배심원들이 217개 작품을 레드닷 위너로 선정하고 그중 45점을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또 그중에서 1점을 루미너리로 뽑았다. 작품 이미지는 레드닷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고,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부분은 디자인 포탈인 얀코 디자인에도 소개가 되었다.

여러 개국의 21명의 배심원들 중 3명이 한국 배심원들이 있었는데, 현재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 대학원 IDAS 교수와 국제디자인트렌드센터(IDTC) 센터장을 겸임 중이신 나건 교수님과 계원 디자인예술대학에 재직 중이신 김철호 박사님, 아이디어팜과 한양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이신 채이식 박사님이셨다. 레드닷 공모전을 통하여 해외 배심원뿐만 아니라 국내의 배심원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수많은 지원자들과 경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그곳에 많은 수상자들을 보며 세상이 참 넓고 앞으로 배워가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느꼈다. 싱가포르가 서양국들과 거리가 멀어서 서양국들이 방문하기 힘든 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시상식에는 유독 아시아 팀이 많았고, 그중 중국과 한국팀이 가장 많이 호명 되었다. 한국의 유능한 학생들이 앞으로도 디자인에 열정을 쏟는다면 한국의 디자인 미래는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1. SAY 소모임을 설립하게 된 동기가 있었는가?
디자인과를 졸업 했다고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 우린 앞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수 많은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 이것은 전쟁이다. 전쟁에서는 혼자 승리할 수 없다. 친구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나도 잘되어야 하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친구도 잘되어야 한다. 서로 도우며 힘을 키우면 우리 모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 하며 자신의 모든 상상을 소환 하자는 것을 모토로 국제 공모전과 디자인 멥버십을 준비하는 SAY!(Summon All Your Imagination)를 만들었다.

2. 이번에 소모임 설립 후 첫 수상인데, 소모임을 이끄는 회장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느낀 바가 있다면?
첫 회라서 수상은 기대 하지 않고 무사히 작업 완료하고 제출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뜻밖의 수상이라 만감이 교차했다. 여러 국제공모전 수상자들처럼 특별하지는 않지만 이번상은 첫 번째 수상인 만큼 더 기쁘다. 2학년일 때만 해도 해외 공모전이 두려웠었다. 외국어의 어려움과 적지 않은 출품비,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학생들과 겨루어야 하기 때문에 탈락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해 미리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도전하면 된다. 실패는 졌을 때가 아니라 포기 했을 때다. 수상을 했건 못했건 우린 도전을 했고 해냈다. 이번에 함께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집 냉장고에 있던 대통주를 모두 마셔버렸다.

3. 함께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혹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이름을 가지고 각자 생긴 모습도 다르다. 하물며 꿈이라고 같을까. 자신의 꿈을 현실화 하자고 모였지만 작업의 방향을 하나로 맞추려다 보니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도 있고 작업의 피곤함때문에 서로 날카롭기도 했다. 그 중 더욱 큰 문제는 내가 회장으로서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리더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큰 어려움도 잘 견딜 수 있었다. 앞으로도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4. SAY만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가 있는가?
이제 시작한 SAY!에서 노하우는 아직 없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번 공모전에 함께 고민한 방법의 시작은 생활의 니즈를 충족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컨셉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후 소비자 타겟을 정하고 형태를 컨셉에 맞추어 잡아 나갔다. 그 중 계속 친구들과 각 팀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발전 시켰다.

5. 본인이 생각하기에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디자인은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할 때 빛이 나는 것 같다. 개인 작업 일지라도 주의 사람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본인의 주관대로 혼자 하는 것은 예술이지 디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사용자와 가까이에서 사용자의 니즈를 해결 해주어야 하기때문에 작업을 하기 전에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내 작업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 주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자신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6. 마지막으로 공모전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질문의 답은 각 질문마다 한마디씩 한 것 같다. 그 것들을 모으면 이유(명분), 도전, 함께, 심혈이다.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하여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 있어야 하고 포기하기 전에 도전하고 친구들과 함께하며 자신이 만족 할 수 있고 남들도 만족 시킬 만큼 자신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째 이유는 자신의 방향을 확실하게 잡아 줄 것이다. 둘째, 도전하면 주눅들지 않고 도전하면 지더라도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셋째, 함께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심혈을 기울이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아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실 수 있다. 이것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의 일을 하더라고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가 잘 됨은 내가 잘 됨이란 것을 알고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Project : Palette

만든 사람
노형래, 김용선, 박현우, 김병수

도와준 사람
김민호, 이지한, 강민구, 김재홍, 전민숙, 김세희, 이진원, 최판규, 김효민

지도교수
이병종


‘PaLeTTe’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청송관 뒷편에 위치한 대학생들을 위한 자율 아트스페이스로, 2012년 여름, 본 대학 산업디자인학전공 학생 네 명이 사용하지 않는 부지를 활용해서 신축한 목조 건물이다. 산업디자인학전공 이병종 교수의 지도 아래 건물면적 21m©˜의 단층 반 개방형 형식을 하고 있다.

‘PaLeTTe’는 모든 사람이 한 작품 한 번 전시를 목표로 삼고 2주에 한 번씩 전시 작품이 바뀐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학생은 자율적으로 전시계획을 기획하고 홍보, 설치까지 도맡아 한다. 작품은 건물의 중심부에 설치되며 태양열 전지판에서 발생한 전기를 사용하는 조명을 전시 광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전시기간 중에는 ‘PaLeTTe’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하고 있는 작품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전시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 저녁 진행되는 작가와의 토크섹션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토크섹션은 관람자에게는 작가를 직접만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작가에게는 관람자를 작품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남으로써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작가와 관람자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서로 자유롭게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오길 바란다.

‘PaLeTTe’가 앞으로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예술 교류의 장이 되어서 인문예술대학 학생을 넘어서 많은 학생들이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 지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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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2012년 여름이 찾아올 무렵 평소에 건축관련 이야기를 즐겨하던 우리들은 여름기간을 이용해서 우리들의 힘으로 작은 목조건물을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하기로 했다. 평소에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한정적인 디자인에 치중해 있었던 우리였기에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건축이라는 매체를 통해 단순히 새로운 컨셉 제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공까지 마무리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흥분해 있었다.

이러한 흥분 뒤엔 각자 건축에 대한 다른 이상향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우리는 최종결과물을 위해 수많은 이미지 교환과 생각을 나누었다. 결국 기존에 각자 갖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그에 따른 표현 욕구를 조금 억누르고 우리 네 명은 한 팀이 되어 이 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학생 네 명이 목조건물을 세울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인력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여전히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부지가 마땅치 않다는 것과 금전적인 문제였다. 그러던 찰나에 다행이 이병종 교수님께서 학교 부지를 활용해도 좋다고 하셨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금전적인 지원까지 약속하셨다. 이 프로젝트는 박차를 가했다.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많은 시간 이미지를 공유하고 생각을 공유하였는데 그 중 청송관 뒷편 공사 후 버려져 있던 파렛트를 이용하자는 생각에 의견을 모았다. 이 스물 남짓한 파렛트가 우리가 그릴 그림의 파렛트가 되었다.

학교부지를 이용함에 있어서 몇 군데 후보지를 선정했다. 그 중 사람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고 충분한 부지가 확보된 청송관 뒷 뜰을 최종부지로 정했다. 접근성이 좋지 않아 기존에 사용하지 않는 버려진 부지를 살리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 부지는 배수로를 경계로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 부지인데 이 경사를 이용하면 재미있는 건축물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건축물의 기능을 생각하여야 했다. 학교에 지어지는 건축물인 만큼 그 대상을 학생으로 정하였다. 학교 내에서도 디자인예술학부가 자리잡은 청송관 뒷 뜰에 자리를 잡은 만큼 디자인전공생의 필요를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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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선 인터뷰

학생들이 계획해서 진행했다고 하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 먼저 이야기가 나온 시작점은 박현우 학우(07학번)가 1학기 말에 여름방학 중 팀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 하자고 한 것이다. 박현우 학우는 예전에 재료구조실습 수업 때 팀 프로젝트로 목조건물 경험을 해봤었는데 그 때 느꼈던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서 새로운 목조건물을 세우고 싶어 했었다. 나는 군대를 제대 후 건설현장에서 1년 한옥 대목수 밑에서 반년가량 일을 배운 경험이 있다. 평소에 막연하게 내가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건물을 책임지고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지라 우리는 마음을 합칠 수 있었다. 마침내 기술적인 면은 건축쪽 경험이 있는 나와 설계를 맡아 할 수 있는 노형래 학우(06학번), 체력적인 부분을 책임질 김병수 학우(09학번)가 이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몇 번의 대화 후 최종적으로 구성원이 정해졌고 이병종 교수님의 지도하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PaLeTTe의 의미는 무엇인가?
– ‘PaLeTTe’란 건물을 세울 당시 사용된 재사용 재료인 목조판인 palette를 사용한 건물이라는 의미와 평면구성시 여러 안료가 혼합되고 보관되는 판인 palett를 동시에 의미한다. ‘PaLeTTe’가 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 학생들에게 성장 할 수 있는 palette가 되었으면 한다.

PaLeTTe는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인가?
– ‘PaLeTTe’는 모든사 람이 한 작품 한 번 전시를 목표로 삼고 2주에 한 번씩 전시 작품이 바뀐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학생은 자율적으로 전시계획을 기획하고 홍보, 설치까지 도맡아 한다. 전시기간 중에는 ‘PaLeTTe’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하고 있는 작품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전시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 저녁 진행되는 작가와의 토크섹션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토크섹션은 관람자에게는 작가를 직접만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작가에게는 관람자를 작품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남으로써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작가와 관람자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서로 자유롭게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오길 바란다.

학교 지원이나 도움이 많이 있었는가? 이병종 교수님은 어떤 코멘트를 많이 해주셨는가?
– 금전적인 부분은 전부 학과지원금으로 충당하였다. 재료비가 태양열전지판 포함 대략 400만원 정도 들었다. 이병종 교수님은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부분, 구조상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셨다.

제작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나?
– 무더운 여름임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최판규(07학번), 김민호(08학번), 이지한(08학번), 강민구(08학번), 김재홍(08학번), 전민숙(08학번), 이진원(08학번), 김세희(09학번), 김효민(09학번) 학우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에 제작을 해서 장마나 태풍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가?
– 사실 학기 시작 전 끝낼 프로젝트였으나 장마가 작업기간과 겹쳐서 작업기간이 상당히 늦춰졌다. 학기가 시작해 버린 지금 학과 과제와 개인작업 때문에 다들 바빠서 아직(2012.11.13)까지 오픈을 못한 상태이다. 빨리 준비를 마쳐서 많은 학생들이 즐기는 공간이 되도록 할 것이다.

이번이 자신의 첫 건축이 아닌가?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결과는 만족하는가?
– 박현우, 노형래 학우 같은 경우는 전에 청송정을 지은 경험이 있다. 나와 김병수 학우는 첫 건물인데 내 손으로 지은 건물이라 역시 감회가 새롭다. 결과는 100%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동안 과정을 하나하나 손꼽아 보니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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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PaLeTTe가 후배들에게 어떤 곳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는가?
– 자유로운 전시 공간, 나도 꼭 한번은 개인 전시를 이곳에서 하고 싶다.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다면?
– 자유로운 전시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보름마다 포스터를 제작, 게재 할 생각이다.

UX Designer를 꿈꾸는 학생들에게_신창범 교수

2012년 가을학기,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한 신창범 교수를 만났다. 아직 강원도 원주에 자리 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연세대학교를 사랑하고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연세인이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10년간 UX 디자인 실무를 하다가 연세대학교와 연이 닿아 곧바로 교직에 서게 되었다. 그의 노하우와 경험이 고스란히 수업에 반영되어 학생들에게 많은 배움과 고무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에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을 맡으셨는데, 기존 수업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하셨더라. 어디에서 착안한 것인가?
현재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에 기반을 둔 것이다. 10년 전에 하던 디자인과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결과물이 다른데 그 프로세스가 같을 수 없다. 10년 사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지금 기업에서는 하드웨어적인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적인 부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들의 경험까지 디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수업에서의 최종 결과물도 제품에 대한 디자인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적 가치들도 시각적으로 함께 제안해야 한다. 즉 디바이스를 둘러싼 사용자의 경험과 그것들을 포괄하는 에코시스템까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의 커리큘럼이 현업의 디자인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기업에서 실무를 하고 온 디자이너로서 지금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와 방법론들을 이곳 학생들과 공유 하고 싶었다.

이번이 교수로서 맡는 첫 제자들이다. 혹시 다른 학교의 수업 방식이라든가 작품들을 보신 적이 있는가? 그와 비교해서 본 학교 학생의 수준은 어떤가? 
우리 학교 뿐 만이 아니라 타 학교의 디자인 도록도 많이 봤다. 그런데 10년 전 도록이나 지금 도록이나 거의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1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고 20년 전에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무에 나가면 최종 결과물이 산업디자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 출신 디자이너들이 섞여 일하면서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을 내기도 하고 디자인 외 전공출신 실무자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도한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학과를 보면 아직까지 각 전공별 구분이 명확한 것 같다. 다행히 본 학교는 3학년까지 학부제로 되어 있어서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시각디자인과 디지털아트의 전공과목들을 다양하게 수강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터랙션디자인 수업에서도 여러 학과의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 수강하기 때문에 결과물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본 수업을 진행해 보면서 다행히 우리 학교 학생들은 스마트해서 주어지는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음에 힘을 얻는다. 내가 100을 요구하면 80을 따라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100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120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 때 학생들에게 특허와 논문까지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세계 경제는 특허(지적재산권) 전쟁이다. 기업이 보유한 특허의 가치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환산되어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권리는 기업 경제를 위해 아주 중요한 가치이며 재산이다. 현업 디자이너들도 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실무에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인터랙션/UI/UX 디자인에 있어서 특허를 빼고는 그 결과물의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본 수업에서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논문 또한 아주 중요하다. 특허처럼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의 권리를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의 종류에도 연구 논문 이외에 작품논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지금 수업에서 하고 있는 프로세스에서 각 단계 마다의 결과물들은 학술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매우 고단한 과정을 겪겠지만 한 학기를 마치고 난 후에는 본인들이 제안한 디자인 결과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이름으로 낸 특허와 논문 그리고 작품 전시까지 하면서 본인들을 외부에 홍보할 수 있고 남들보다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교수님께서 실무에서 일하시다 곧바로 교직에 서셔서 그런 교수님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경험에 빗되어 봤을 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될 조건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연히 디자이너로써 가져 가야할 최우선 조건은 크리에이티브이다. 현업에서 오래 동안 디자인 실무를 해 오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만나왔지만 디자이너라는 칭호를 부르기 창피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크리에이터. 자신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것은 디자이너로써 성장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한 해에도 대학에서 수많은 예비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지만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는 극히 소수이다. UX 디자인의 경우는 특히 디자인 전공자 외 다른 전공자들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는 산업디자인과 인터랙션디자인을 전공하고 UX 디자인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각디자인, 인지심리학, 산업/인간공학, 소비자학 등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이 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컨셉을 만들어 내는데는 디자인 전공자를 능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디자인 전공자는 대학 4년 내내 이런 부분을 트레이닝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때문이다. UX 디자인 업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하는 업무도 다양하지만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창조성)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 하지 않은가? 우리 학교의 디자인 전공 수업에서도 공학적인 디자인 방법론이나 인문학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사회에선 공모전 경력이나 영어 실력이나 그런 스펙을 더 많이 보지 않는가?
본인이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있는 기업에 입사를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1차적으로 스펙만 보고 당락을 결정하는 비디자이너인 인사과 직원의 잣대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수 천, 수 만 명의 지원자들 중에 소수를 선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량적 툴에 의한 것이기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기술 시험과 면접 등 본인을 표현할 정성적 평가의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이 방법도 자신을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디자인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에서 디자인인턴 프로그램 제공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건 입사를 하는 것 자체보다 입사를 한 이후이다. 그 곳에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며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디자인 업무를 하다보면 다른 부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설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CEO를 설득시켜야 할 때도 있다. 오히려 디자인을 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 디자인을 위한 스펙만 쌓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 힘들 수밖에 없다.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화 시키느냐가 현업에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

만약에 교수님께서 회사에 입사시킬 수 있는 면접관의 위치가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을 것인가?
첫 번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성이다. 인간으로써의 됨됨이이다. 이것은 자신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직장인을 넘어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인데,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학생들이 많이 있다. 디자인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역량이나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그 다음이다. 나 또한 삼성전자에서 재직 중에 면접을 많이 봐왔지만 그 사람의 인성을 보고 마음이 쏠릴 때가 더 많고 주변 면접관들도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작품성이 조금 부족하거나 언변술이 부족한 것들은 당락을 결정하는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보이지만 불성실한 것도 바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면접 시간에 지각을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다. 면접 시간에 1분 늦는 사람은 입사 후에 1시간이 늦는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기본적인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개념이 없는 지원자를 항상 봐 왔다. 물론 이것은 인성의 덕목 중 한 가지 예 일 뿐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며 긍정적은 표정을 짓는 것, 같이 일을 할 때 팀원이 아프면 자신이 대신 그 일을 수행하는 것 등 간단한 것이지만 이런 부분이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갖추어야 할 필요 요소 들이다.

인터랙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바라고 계신 점이 있다면? 혹은 이런 것을 꼭 염두해 두고 작업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이전 수업들을 어떻게 진행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과 다른 수업방식이라며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자신 속에 있는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려움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그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싶다. 완성도는 떨어지고 투박하더라도 본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하고 싶다. 그래서 처음에 학생들에게 ‘리서치를 하라, 전략을 세워라, 논문도 쓰고 특허도 내라, 전시도 하자’라고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1년 동안 하는 일을 한 학기에 하라고 요구를 하는 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간일 지라도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분명히 본 수업을 다 마친 다음에는 큰 보람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시다보면 가끔 교수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대학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나 아쉬웠던 것이 있었는가?
아쉬웠던 것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해외에서의 경험이다. 그 당시 나는 해외 한 번 나가보지 못 했었고 세상을 좁게 보았었다. 다행히 입사 후에는 업무 출장이나 전시, 학회를 통해 해외로 나갈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제한적이었다. 내가 10년을 다닌 삼성전자를 나온 이유 중에 큰 것이 몇 년간 외국에서 지낼 맘이었다. 지금 못해보면 평생 못 해볼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계획도 충분히 세웠고 준비도 철저히 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준비해 왔던 플랜도 퇴사와 동시에 바로 변경되었다. 순간 허탈했었다. 그리고 느꼈다. 내 길 이니까 내 맘 데로 걸어갈 것 같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닌가보다. 이렇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도 어떤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조건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취업도 굳이 국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지금은 한국 안이 매우 좁고 기회도 매우 적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온 태풍이 미국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가 나비효과처럼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그 영향이 희미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뚜렷해지고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국내에만 머무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의 디자인 인력에 대해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내 자신이 눈만 돌리고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좀 더 학생들이 밖을 내다봤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운 건 우리 학교에는 UX 디자인학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식적으로 희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시장에서는 UX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나 또한 UX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를 해왔기 때문에 많은 인맥이 있어서 주변에서 UX 디자이너에 대한 의뢰가 계속적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신입보다는 경력사원을 많이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은 UX 분야의 어느 곳이라도 실무 경험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내에서는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인턴이나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졌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UX 분야의 경험과 인맥들이 형성되어 향후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큰 재산이 된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경험재산을 모아 놓아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