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YID 2015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글을 부탁받았을 때 과연 여기에 제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많이 고민해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저의 생각과 경험들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부생 시절, 저는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 었습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전공과목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크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고 다가오는 미래가 부담스럽고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자동차 동아리”OLLATA”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아이디어 스케치에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들과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과 잘하고 못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순수하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동아리 활동 간에 아이디어 스케치에 흥미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정보가 없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졸업을 앞두고 자동차 디자인으로 졸업연구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던 제 모습이 조금씩 능동적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알아보고 미흡하지만 해결하려고 했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관심이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글의 기고를 부탁받으며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키워드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키워드가 있어 모두 다 언급하기에 이미 지루해져 버린 저의 글이 더 지루해질 것 같아 딱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Sustainability”

자동차도 제품이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판매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리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관심을 벗어나 제품으로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유지와 조화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하나의 독립된 제품이 아닌 삶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후까지 생각해야 하는 게 디자이너로서 생각해야 하는 필수 요소이며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문제에 가장 근접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제시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완성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 보다, 발전 가능성을 제안하는 제품을 디자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림을 멋지게 그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정직함,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정리하는 정화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끈기가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여러분과 같이 아직도 학생이며, 평생 학생으로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제가 감히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꿈을 좇아가는데 있어 위에서 언급한 정직함, 정화력, 열정, 그리고 끈기만 있다면 디자이너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Sustainability is the most discussed subject around me, which is also a word that would not leave my mind these days. It revolves in my mind because it is an important keyword of the ongoing project; and because it is a subject matter that has constantly been discussed ever since the starting of my master’s study.

I believe cars, just as products, should attract public attention. If a car fails to hold the attention of the public, sales will be affected and its product life will eventually come to an end regardless of the good quality. I claim that cars should aim for more than capturing the basic attention and should consider its role as product in maintaining and balancing the society and the environment. I believe the basic and essential requirement for designers is to think about the start, the end, and even after the end of a product life rather than considering products as independent objects. It is also the most difficult part, of course.

1. Green Runner
2050년, 복잡한 도심 속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소형 운송기기. 늘어나는 인구와 복잡해지는 도심의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공간으로 운송의 효과와 많은 인구를 사용하여 전력의 공급을 도모하는 컨셉. 바쁜 일상에서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신발 사이즈의 가벼운 운송기기로, 압전 기술을 사용하여 걸을수록 생산되는 전기와, 이를 신발의 표면에 저장하여 내부에 장착된 바퀴로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추가로 남은 전력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고 이는 전기세 를 줄여준다는 아이디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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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itachi Deep Tube
2030년, 런던에 새롭게 도입될 지하철의 인테리어 디자인.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런던의 지하철은 그 오랜 역사만큼 구조도 노후되어 있다. 터널의 크기는 변경이 불가하여 정해진 크기 속에서 최대한의 공간과 안전성 확보가 디자인의 중점. 어떤 식으로 최대한의 인원이 정해진 공간에 들어가며 편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지 생각하여 접이식 의자와 높낮이 조정이 가능한 프레임을 사용,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알맞게 자리에 착석할 수 있다. 지하라는 여건상,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천장엔 밖의 환경을 그래픽적으로 표기, 양옆의 스크린엔 외부의 모습을 담아 지하에서도 밖과의 연결을 도모하였다. 출입문에는 역에서 내부를 볼 수 있게 큰 유리로 디자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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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우리의 꿈 : 카페사장…?

올해 여름, 합숙 연수 중에 있었던 강사 분의 말이다.“여보세요, 젊은 사람들 꿈이 카페가 뭐야 카페가. 우리나라에 카페 충분히 많아. 꿈 좀 크게 가지자!”속으로 분개했다. 감히 소중한 내 꿈을 모욕하다니. 모든 사람이 큰 꿈을 가져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폄하하다니. 옆 사람에게 나의 불만을 얘기하려는 순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불만 어린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에 웃기면서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카페 창업이 젊은 사람들의 꿈이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디자인과 출신들의 카페에 대한 열망은 다른 전공보다 강한 듯하다. 카페 + 디자인 스튜디오,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묘한 어울림이 ‘카페를 하면서 스튜디오를 같이 하는 거지.커피값에 디자인 작업 조금만 하면 넉넉하게 살지 않을까?’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 느슨한 상상은 자금, 인력, 장소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바로 깨져버리고 만다.

당신은 무슨 ‘일’을 좋아하는가?
고인이 된 스티븐 잡스가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이 모두의 가슴에 불을 피웠나 보다. 서점에 가면[서른, 아직 늦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 같은 책들이 항상 순위권에 노출되어 있다. 책 제목만 봐도 빨리 어디라도 떠나거나,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할것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있을까? 우리는 이제껏 자라오면서 ‘좋아하는 것’ vs‘일’은 서로 반대개념으로 인식해 왔는데 그게 공존해 있다니, 일단 개념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모두 소비자의 입장이다. 나는 축구/게임을 좋아하는데, 그 둘과 관계된 직업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20대의 졸업생과 취업 준비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번도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자신의 길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선입견에 빠져있거나 부수적인 욕망을 탐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소설 [타나토노트]에서 막 사후세계로 올라온 영혼이 심판 받는 장면이 나온다. 착하게 살았음을 주장하는 영혼에게 ‘너는 역사적인 작곡가가 될 운명이었는데, 평생 동안 쓸데없는 일만 했다’라며 벌을 준다. 성실하게 살아서 벌받는 것도 서러운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니. 그 영혼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막상 눈 앞에 놓이자 싫어지는 상황을 마주친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분야가 알면 알수록 매력 있어지는 현상은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는 뭔가 결정하기엔 충분치 않다. 그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해야 한다. 일과 취미를 통해서 직접 경험하거나, 또는 책과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그 과정을 겪고 나면 우리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착각으로 드러날 확률이 높다.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사람들 중, 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장한 케이스보다 전혀 다른 분야들을 넘나들었던 사람들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이런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이 사람들은 많은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여기에 진부하지만 빠질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바로 열심히 하고, 잘하고, 완성하는 노력이다. 사실 스티븐 잡스가 얘기한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의 앞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를 움직이는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I ‘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려나.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겠어!라고 뛰쳐나가는 이의 발목을 잡을만한 내용 아닌가. 혹시 이직이나 새로운 환경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전에 한번 뒤돌아 보기 바란다.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했는가. 노력은 전환의 타이밍에서 자기 성찰을 위한 용기인가, 무책임한 도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좋아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디자인은 스스로 잘하겠다는 동기부여 없이는 결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호불호를 말하려면 적어도 맛을 봐야지. 많은 디자인과 학생들이 디자이너라는 이름이 쫓아 디자인 전공을 선택한다. 교수님 컨펌을 통과하지 못하고,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며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나 역시 내 심신이 불편한 상황이면 어김없이 이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무슨 일을 좋아하는가?’ 사실 더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분야가 있는데 엄한 데서 정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닌데.. 더 활기차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일 데가 있을듯한데… 내가 카페(겸 스튜디오)의 꿈을 꾸는 건 이때쯤이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 카페 사장의 꿈은 파도처럼 매일 부딪혀야 하는 업무와 치열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상상의 도피처임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 특정한 영역에서 빛날 사람이다-그 영역이 디자인이든 아니든. 아직 너무 쉽게 디자인을 포기하지 말고,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말자. 중요한 것은 해내려는 노력과 자기 성찰이다. 그 노력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노력한 만큼의 디자인 해결능력은 당신의 강점 중 하나가 될테니까. 이러한 성찰과 경험으로 당신이 카페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 때는 나도 박수치며 환영하겠다. 그 카페는 실패하지 않을 카페가 되리라.

There is an old-fashioned story that cannot be neglected. It is about the effort to work hard, to do great, and to complete. In fact, Steve Jobs first said,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before mentioning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I was struck with his words. His word could put someone to a pause to rethink about the hasty thought of ‘Oh, I’ve got to find what I love!’. If you are thinking about changing jobs or searching for new environments, I insist you to look back upon your past before making any decision. Did you respectfully try your best? In the period of transition, effort is the yardstick for judging your decision. Are you taking the courage to have moments of introspection? Or are you irresponsibly escaping?

 

유기적 디자인관점

The architect who designed the Seoul Branch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Korea thought of two principles. The first principle was that “The building we build cannot be superior to the Gyeongbokgung Palace” and that the buildings around the cultural properties should comply with numerous regulations. The architect integrated the brick of the Defense Security Command building, terracotta tile, and the roof tile of office of the Royal Genealogy under the theme of “soil”, and installed huge windows in places of the inner part in order to bring the cultural heritage into the building. The inner wall of the Education Building was colored in simple white so that it would not be noticed much. The intention was to direct people’s attention to the outside of the Museum, not the inside. “Let the artists complete the Art Museum” was the other main thought of the architect. “Except for the Leeum Museum of Art”, says the architect, “there are not many spaces in Korea where artists can amply hold their exhibitions”. The architect continues to mention, “There was a sense of ‘morality’ reflected on the Seoul Branch as we aimed to place the importance of Art in the center even if we had to give up the architectural aspect.”

레고사의 디자인 솔루션
전통의 완구회사 레고(LEGO)는 1990년대 들어서 사양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는데 레고회사 자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때 어린이 고객들이 레고보다 비디오게임기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동들이 전원만 켜면 바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려서 비디오 게임시장에 뛰어들었고 조립하지 않고도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실패해서 2004년 레고는 사상최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러한 레고의 문제점을 ‘레드 어소시에이츠(Red Associates)’라는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가 해결해주었다. 레고가 원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였는데 컨설팅회사는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바꾸어봤고 이의 조사를 위해 LA, 뉴욕, 시카고, 뮌헨, 함부르크 등지에 사는 가정에 조사팀을 파견하여 수개월에 걸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촬영하고 심층인터뷰를 했다. 조사팀이 발견한 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즉각적인 쾌락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 외에도 큰 즐거움을 느꼈다. 결국 레고는 오히려 더 어려운 제품을 만들었고 조립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더 근사한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레고 블록 개수가 1000개가 넘는 제품을 더 많이 개발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레고제품을 유기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어린이 고객과의 Interaction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제품디자인에 적용하여 적절한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도쿄 외곽의 무사시노 미술대학교(Musashino Art University)의 대학 도서관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서관 정면에는 책장이 가장 앞에 나서고 있다. 책장이 기둥이고 보(beam)이고, 창문이고, 길이며, 담도 이루고 있다. 책장으로 지은 집 아니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이야말로 건축의 도움없이 책만으로도 그 깊이와 공간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건축이라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의 도서관은 그것을 증명하듯 서 있다.
내부 역시 보이는 전부가 책장과 책이다. 거대하게 솟아난 책장이 8.5m의 기둥이 되어 지붕을 받치고 있고, 떠있는 다리가 책장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내고 있으며, 책장으로 된 계단이 사람을 2층으로 올리고 있다.
천정마저 반투명 재질로 살짝 가린 식이어서, 마치 지붕 아래 책장이 자라고 있는 책의 숲과 같은 기분이 든다. 지하 수장고를 제외하고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상 1층 연구 층(Research Floor)과 지상 2층 공부 층(Study Floor)의 모든 내부 경관은 오로지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1)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1)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도서관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책장이 다 책꽂이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6단 위로의 책장은 책을 꽂는 용도 보다는 건축의 마감용으로 쓰였다. 외부에 쓰이는 책꽂이 역시 책의 집을 상징하는 마감 재료다. 보통 도서관의 서가는 ‘총류(0)->철학(1)->역사(2)->사회과학(3)->자연과학(4)->기술(5)->산업(6)->예술(7)->언어(8)->문학(9)’ 이렇게 0에서 9까지 분류에 따라 차례대로 나란히 배치된다.
하지만 이곳의 서가는 0번 총류에서 9번 문학까지 회오리처럼 둘려져 있다. 그 사이를 방사상으로 뚫고 지나가는 길을 두어 이 겹겹이 쌓인 미로의 서가 사이를 이용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 책장이 벽이 되고 그 아래로 난 게이트를 통해서 그 뒤의 책의 벽으로 연결되고 또 이 아래 게이트를 통해서 이 뒤의 서가로 연결되는, 책장으로 연속되는 방사상의 터널이 눈에 띈다. 4.8m의 천장 끝까지 닿는 높은 서가와 3-5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서가, 저마다 다른 위치와 크기로 난 책장 터널 때문에, 돌아가는 서가들은 차곡차곡 중첩되어 보인다. 낮고 높고 저마다 모양을 가진 서가와 다양한 표지판의 조합이 서가 사이로 난 길 모두를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방향성이 없는 서가다. 매번의 선택으로 마주하는 책의 우연들이 점차로 예술을 하는 방향을 정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무덤처럼 잠이 들어 있기 쉽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쉽게 잠들고 말아버리는 책들을 깨우기 위해서 이런 장치를 했다. 바닥과 벽에 있는 서가의 배치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여정을 고민하게 하는 지도다. 물론 길을 잃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책의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우연이 이 안에 있는 것이다.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린 붉은 벽돌의 라운지, 은은한 노란빛 테라코타 타일로 장식한 교육동이 전면에 드러날 뿐 전시실은 뒤로 물러나 있다. 건물은 하나같이 나지막하고 곳곳에 마련된 공간은 휑해 보이기까지 한다. 건물의 목적이 무엇인지, 건축가의 개성은 어떠한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완공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시청사에 비하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서울관은 ‘겸손’하다. 미술관 앞뒤로 자리한 경복궁, 종친부 등 전통 건물에 대해, 내부에 들어선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겸손하다. “내가 더 잘났다”고 소리 높이는 대신 미술관 안팎의 전통과 미래를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두 가지 원칙을 먼저 떠올렸다. 우선 “무엇을 세워도 경복궁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고 문화재 인근 건물에는 수많은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건축가는 기무사의 벽돌, 테라코타 타일, 종친부의 기와를 ‘흙’이라는 소재로 묶었고, 건물 내부 곳곳에 큰 유리창을 만들어 앞뒤의 문화유산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교육동 내부 벽은 단순한 흰색으로 칠해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게 했다. 미술관 안이 아니라 바깥을 내다보라는 계산이었다.

또 다른 생각은 “미술관은 미술가들이 완성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건축가는 “한국에는 리움 미술관 정도를 제외하면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할 공간이 많지 않다”며 “서울관만은 건축적인 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미술을 중심으로 해야겠다는 ‘도덕’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무사는 삼청동, 소격동 등 북촌 일대를 가로막고 있어서 건축가는 “군부대가 막은 골목길을 뚫어주고 싶었다. 도시의 동맥경화를 치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관에는 정문, 담장이 없다. 주변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도 미술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곳곳에 진입로를 만들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미술관 한복판을 관통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입장권을 사야 하나, 수위 아저씨에게 혼나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누구나 드나들도록 열린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 의도였다.
관람객은 서울관 내부에서도 길을 잃기 쉽다. 작품을 중요도에 따라 배치하지 않았고, 정해진 동선도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서울관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도시”라며 “건물에서는 건축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서울관에서 자유롭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뒷사람이 다가올까 봐 관람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감상 순서도 마음대로다. 민 교수는 “미술관 속에서 헤매면서 작품을 하나씩 조우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관에 오면 미술은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술관을 날 잡아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마트처럼 쉽게 들르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관이 특화시킨 현대미술은 이러한 아이디어와 더욱 잘 어울린다. 건축가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벨기에 작가 카르슈텐 휠러의 미끄럼틀 모양 작품 ‘테스트 사이트’를 설치하면서 ‘런던의 놀이터’로 진화한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관의 관람은 미술을 몸으로 느끼며 즐거워하고, 그러는 사이 작가를 알고, 경복궁이나 북촌의 맛집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HCI의 역사와 야사

Software engineers resisted the advance of Human Factors Engineering into the software field because it meant an interruption of their role as user interface constructors and professional change to software coders that lie on given specifications of user interface. Software engineers work with highly efficient methods for coding, but user interface designers focus more on the user convenience than the efficiency of coding. In software engineers’ perspective, they were required to put much effort and time into functions that are not so important. For this reason, interface designers and software engineers had difficulties in maintaining amicable relationships.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은 1943년 콜로서스를 만들어 독일군의 암호를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공격함으로서 연합군이 2차 대전을 승리하는데 최고의 공을 세우게 된다. 애플컴퓨터의 로고인 한쪽을 베어먹은 사과가 앨런튜링이 자살할 때 먹은 사과를 상징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가 컴퓨터 산업에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애니악보다 2년 먼저 만들어져 실질적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콜로서스 이후 오랫동안 컴튜터는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니었다.

초창기 컴퓨터는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컴퓨터의 용량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추는 운영에 모든 관심이 기울여 졌다. 프로그램은 운영자들에 의해 스위치, 다이얼, 연결선들을 이용해 로딩되었으며, 하루에 50여개의 진공관이 교체되었고 그때마다 컴퓨터는 몇 분씩 다운되었다. 카트에 진공관을 싣고 다니며 고장난 진공관을 교체하는 일은 당시 최첨단의 전문직이었다. 초기 컴퓨터의 목표는 ‘수학자를 계산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후에 ‘사용자를 과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목표로 전환되었다. 소프트웨어는 기계어를 이용하여 용량을 최소화 하였고, 값비싼 컴퓨터를 매초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사용자(운영자)는 컴퓨터를 위한 도구처럼 인식되었다. 1960-70년대 컴퓨터의 용량이 증대되면서 더 이상 계산능력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되자 관심의 초점은 소프트웨어로 옮겨지게 된다. 프로그래머의 시대(Programer Period)라 불리는 이 시기에 효율적이고 품질 좋은 프로그래밍을 위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이 탄생하였고 프로그래머는 기획, 구조설계, 인터페이스설계, 코딩 등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GUI의 기반이 되는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Sutherland의 아이콘을 이용한 디스플레이, Engelbart의 마우스, Nelson의 하이퍼텍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후반 HCI분야의 탄생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담당하는 역할을 인간공학자 또는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이너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코딩을 직접 수행하였다. 이때까지도 컴퓨터는 펀치카드를 이용한 입력과 페이퍼 프린트의 출력방식이 이용 되었으므로 일반 사용자를 염두에 둔 유저인터페이스 개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GUI를 장착한 컴퓨터가 나오면서 유저인터페이스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부분의 역할이 그래픽디자이너에게 넘어가 현재와 같은 소프트웨어, 유저인터페이스, 그래픽 부분으로 분화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 선택의 중요성에서 유저인터페이스의 사용 편의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고, 현재 코딩되는 소프트웨어는 절반이상이 인터페이스 단계의 내용을 담당하고 있어 소프트웨어에서 유저인터페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커지게 되었다. 컴퓨터 사이언스의 발전을 통해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접하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탄생한 Human Computer Interaction(HCI)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HCI는 인간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인터랙티브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평가-구현하는 과정과 이를 둘러싼 주요 현상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ACM/SIGCHI, 1992). 컴퓨터를 위한 도구적 역할을 하는 인간에서 컴퓨터라는 기계 (SW/HW)는 인간의 입장에 맞추어져야 한다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HCI의 기본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인간공학이 지향하는 인간에게 맞춰지는 제품, 시스템의 개념과 일치한다. HCI는 학습, 사용의 용이성 등 기능적 요소 뿐만 아니라 안전성, 프라이버시 등 가치적 요소까지를 포괄하고 있으며, 제품의 인터페이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지, 인체적 특성이나 시스템의 제한점, 사회 환경 등의 심층적이고 거시적인 분야까지를 다룬다. HCI는 최종결과물인 인터페이스/인터랙션과 그 이면의 인간 및 사회 환경에 관한 이해를 포괄하고 있다.

2) 컴퓨터공학이 HCI, 인터랙션으로 발전하는 과정

컴퓨터 하드웨어 용량의 발전과 정부 사업에서 컴퓨터의 활용은 컴퓨터가 연구소에서 나와 사회에서 활용되는 시대를 맞게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접하는 시기가 됨에 따라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정부에 의해 농업 및 사회보장 목적으로 개발된 대규모 정보 처리 시스템에서 스타일가이드, 사용성 랩, 프로토타이핑, 작업분석 등의 방법론이 개발되었으며, 1980년에는 VDT스크린 디자인 및 일반 가이드라인에 대한 저 서가 발간되었고, 1981년 컴퓨터 환경에 대한 ANSI (미국 표준)기준을 만들기 위한 그룹이 구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인터페이스 환경에서 그래픽의 등장은 직접조작에 의한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제공, 심미성 및 컴퓨터가 일반 사용자들도 접근할 수 있는 도구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인간공학의 소프트웨어 분야 진출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는 유저인터페이스 구성 역할의 중단과 더불어 주어진 유저인터페이스 스펙에 의한 소프트웨어 코딩자로의 전환을 의미하므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부터 저항을 불러왔다. 한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코딩에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게 되지만 유저인터페이스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코딩의 효율성보다는 사용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시각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기능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유저인터페이스 부분이 용량이나 에너지면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원래 그 소프트웨어가 목표로 하는 기능보다 유저인터페이스에 더욱 더 많은 수고를 기울일 것을 요구받는 입장이지만 사용자들은 컴퓨터 환경에서 HCI가 지향하는 취지에 점점 더 적합한 환경을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디자인경영이 꼭 필요한 당신께

Design management resolves problems with the logic of economy that reflects the characteristics of design. For example, regulations are effective for controlling groups, but some of the regulations applied for design groups are quite loose in order not to restrict designers’ creativity. It would be absurd to demand strict dress codes for designers to wear dress shirts and ties or uniform jumpers. Majority rule is an important principle that aggregates the opinions of the whole. However, design results should not be decided hastily by the agreements of all the employees in the office without listening to the voices of the real users or a mysterious fortuneteller. The role of design management is to persuade the executives of the need for these distinguished principles, plan strategies that bring consumers into submission by the aesthetic bombardment, and develop the aesthetic sense of the CEO, who decides everything in the end.

내가 처음 디자인경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생 당시 미대학보에 싣고자 받았던 정경원 선생의 디자인경영 소개 원고를 보면서였다. 깔끔하게 육필로 원고지에 정리된 내용들은 지금도 내기억 속에 큰 인상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관심은 1989년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입사한 회사는 국내 시장에서 나름 고개를 들고 다녔지만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절로 꼬리를 내리게 되는 그런 정도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상황이 못내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가득하였던 곳이라 어떻게 해서든 그런 지위를 벗어나고자 다짐하고 노력하였다. 경영진은 이른바 ‘비전’을 정하고, 2000년에는 세계 5위의 가전업체가 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진 디자인종합연구소 기획팀에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그 부서의 막내로 들어가게 된다. 동기들은 제품의 도면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기업 디자인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에 껴들어간 것이다. 직접 형태를 생각하지 않는 것에 회의도 잠시 가졌지만 디자인경영은 어느새 나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학생들에게 디자인과 디자인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가졌던 관심은 확대되고 나의 연구주제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디자인경영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디자인경영은 왜 필요한가를 묻곤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도대체 디자인경영은 무엇인가,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디자인경영의 시작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야가 현실적 필요로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이후 형성된 근대적 개념의 기업은 이윤을 확보하는데 상품의 미적 특질이 중요함을 깨닫고 미술가를 고용한다. 하지만 손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술가의 개인 작업은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대량생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붓과 물감으로 그리던 그림은 인쇄라는 대량생산의 효율로 재구성되었고, 미술가는 ‘생산으로서 그리기’가 아닌 ‘계획으로서의 그리기’를 담당하는 미적 계획자, 디자이너로 그 역할이 변화된다. 대량생산을 만나면서 디자인은 계획이 되었고, 디자인의 작업은 실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결과물을 모의로 만드는 시뮬레이션(결과를 모색하기 위한 모의 실험)이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생산만 고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과물의 미적 특질을 결정짓는데 생산기술과 과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곧 드러난다. 디자인된 결과물은 기업의 산품으로 이익의 원천이다. 그래서 과연 그 특질이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기업은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은 어떤 가치를 얻게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생산을 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결국 경영 차원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디자인에 개입되어야 하고 디자인과 경영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디자인된 결과물의 중요성을 인식하면 경영은 최선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예컨대 좋은 디자이너를 뽑아 조직을 구성하고, 기자재와 공간을 마련한다. 디자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의사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내려야 할지도 고민한다. 창의성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주된 관심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이라는 장 안에서 다른 기능들 사이에서 디자인의 특성을 격려하면서도 전체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 예외의 범위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생각한다. 말하자면 경영은 자신의 장으로 디자인을 초청해서, 디자인이 기업 조직과 과정의 일부분으로 적절히 편입되고 조화되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럼 디자인은 왜 기업의 장으로 들어가 경영을 만나는가? 그것은 디자인의 주 임무인 ‘계획’이라는 활동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공상’에 그치고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지 않아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비즈니스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그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그저 헛된 바람일 뿐이다. 기업은 실현의 장이고 디자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현장이 필요하다. 헌데 그 현장의 주도자는 경영이므로, 디자인은 불가피하게 경영이 지배하는 현장의 규칙을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것 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들도 경영의 관행을 배우고, 마케팅의 용어를 익히며, 그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최종적으로 경영진의 일부로 들어가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디자이닝과 구별되는 영역으로 디자인경영이라 부를 수 있다. 앞서 말한 경영의 디자인과 디자인의 경영이 합쳐져 결국, 디자인경영이란 ‘경영 현장에서 디자인이 최고의 시너지를 내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모든 것’이다. 디자인과 경영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경영은 소비자와 소통의 매개로서, 팔 것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해서 디자인을 기업 기능의 하나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반면, 근본적으로 꿈꾸기인 디자인은 계획할 대상과 꿈을 펼칠 장소로서 현실이 필요하고 그곳에 잘 적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이 처음 디자인을 알게 되면 얼마 후 외부의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며, 차츰 디자이너를 고용하면서 내부의 기능으로 정착시켜 나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의적이며 감성적인 디자인의 특질이 기업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고 더 나아가 기업 전반에 스며들면서 디자인중심문화(design-centric culture)를 갖춘 애플과 같은 디자인기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업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발전의 단계가 있다. 디자인경영은 이러한 단계 전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경영이 만나는 모든 접점을 관리하고 세부적인 관련 활동을 운영한다. 서로 상충하는 디자인의 창의성과 조직적 효율성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고, 디자인이 기업 전반의 아젠다가 될 수 있도록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기업 구성원들을 폭넓은 의미에서 ‘교육’하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활동의 정당성은 기업 내의 신뢰와 가치 인정으로 확보되기 때문에 CEO의 지지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CEO가 관심을 갖는 것은 ‘디자인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와 ‘디자인경영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일 것이다.

디자인이 기업에 기여하는 바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① 제품과 서비스의 핵심 가치 창출, ② 고객 커뮤니케이션의 실천, ③ 기업 내부에 혁신 체질 이식이다. 디자인이 제시한 핵심 가치는 뽀로로, 옥소굿그립, BMW mini, 다이슨 청소기, 무인양품 시리즈, 애플 아이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제품과 광고를 포함한 고객과 소통하는 모든 채널에서 디자인은 기업을 표현하고 고객은 디자인을 통해 기업을 신뢰한다. ①②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기존 디자인 활동이 중심이 되는 반면 ③은 디자인의 생각하는 방법 자체가 핵심이다. 디자인이 그림을 통해 새로움을 계획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디자인을 활용하는 과정이 동시에 혁신을 내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럼에도 디자인을 외면하거나 편협하게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눈앞의 떡을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 라고 칭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자인이 위 3가지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성공적인 실행을 이끄는 것은 바로 디자인경영의 몫이다. 디자인경영자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차츰 경영진의 신뢰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이 기업 내 정규 활동으로, 정규 부서로 자리 잡아가도록 필요한 업무를 진행한다. 적절한 자원 투입과 디자인 과정 운영, 여타 기업 기능과 조화, 경영진과 소통, 목표제시와 보상체계, 디자인 전문성 유지 발전 등이 디자인경영의 핵심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경영은 디자인특성이 반영된 경영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한다. 예컨대 규정은 조직을 통제하는데 매우 유용함에 틀림없지만 디자인 조직에 적용되는 일부 규정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가급적 제한하지 않도록 좀 느슨하다. 디자이너에게 장그래나 오과장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거나 공장의 점퍼를 뒤집어쓰고 다니라고 하는 규칙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무식한 행위로 여겨진다. 다수결은 전체의 의견을 종합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지만 디자인 결과물은 급하게 불러 모은 위 아래층 여사원이 모두 동의한다고 해도 앞을 내다보는 신비로운 누군가나 실제 사용할 사람들의 진심을 들을 때까지 함부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생의 원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디자인 조직에 없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도 조직의 일부이고 사람이며 디자이너라는 특징은 일부에 불과하니까 대부분의 경영 논리들은 상당히 유용하게 적용된다. 이런 점들을 구분해서 경영진에게 이해시키고, 심미적인 폭격으로 고객을 굴복시킬 방법이 무엇일지 전략을 세우며,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결정할 CEO의 심미안을 확장시켜주는 것이 디자인경영자가 할 일[ref]여기서 심미적이라는 것은 화장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 최대의 만족을 표현한 말이다. 상대방에 대한 만족을 구하는 방법으로 화장, 성형, 교양, 사랑이 있다. 화장은 시선을 끌고, 성형은 육체적, 교양은 정신적, 사랑은 무조건적인 만족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심미의 최고봉은 사랑이다. 즉, 고객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내는 전략을 CEO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조나단 아이브가 항상 고민하고 스티브 잡스가 실행에 옮겼던 것처럼.[/ref]이다. 디자인경영팀에 소속된 말단이라면 디자인경영자가 하는 일 중에, 예를 들어 디자인 인식(design awareness) 전환의 한 꼭지를 맡아서 잘 정리해보게 될 것이므로 이제 막 졸업한 내 일은 아니라고 성급히 생각하지는 않겠지?

다시 한 번 확인하자. 디자인경영은 꼭 필요한 것인가? 아마도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현재 디자인이 기업의 조직, 과정에 잘 적응하여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따져보자. 디자인의 역할이 오해되고, 그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경영의 문제일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여러분의 작업이 비즈니스와 잘 연결되어 있는가? 즉, 돈벌이가 잘 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디자인경영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이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을 활용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이나 누군가라면 그것도 역시 디자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경영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디자인경영이 모든 문제에 대처할 만큼 연륜과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각각의 이슈가 갖고 있는 고유의 구조에 따라 디자인경영이 다룰 수 있는 부분도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디자인과 경영 사이의 접점에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분야가 디자인경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디자인경영은 디자인 이해관계자인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더 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의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4년의 雜想

The problem of our time in these days is that we are living in a virtual reality that is inconsistent with the reality. ‘Design’ that follows the logic of capitalism driven by major companies creates virtual lifestyles and spreads the sense of vanity those lifestyles provoke. The public especially strives to be the first in obeying those virtual lifestyles full of vanity. The “Silly Vogue Writing Style” is a mere tip-of-an-iceberg phenomenon that portraits our time. Other than this, what could be the augmented reality that ‘Design’ of Korea speaks of? What could be creation and creativity of new ‘service’ in a virtual world that lost the reality?

보그 병신체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렉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 (무심한 듯 쉬크하게) 보그 스타일을 매치하고 싶은 워너비들이 줄곧 따라하곤 하는 클리셰 올해 초에 접한 신조어,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꼬집은 말, “보그 병신체”. 이 말은 2013년 3월 1일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의 <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해 3월 김홍기는 SBS 인터뷰에서 “보그 병신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영어로 회의하고, 상담하고. 근데 막상 또 영어로만 하라고 하면 또 잘 못해요. 뭘까요? 반쪽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영심은 있어요.

외국어를 쓰면 뭔가 모국어에 철저한 사람보다 조금 더 우월한 거 같은 환영에 잡혀있어요. 이게 뭐에요? 두 개의 언어를 각각 완벽하게 구사해야 훌륭한거지, 바보처럼 두 개를 섞어 사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 후 “보그 병신체”는 여러 언론에서 줄지어 다루고, 한글날에는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더 없이 좋은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러나 “보그 병신체”는 우리 언어생활에 국한된 것이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 전반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보그 병신체”는 우리의 언어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식탁과 식탁의자, 소파와 침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식 가구와 일상용품들은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인스턴트 치즈와 요구르트 및 빵, 특히나 햄버거와 피자, 스파케티 등과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몸을 망가트리고 있다. 결혼식 등의 예식에서뿐만 아니라, 양식 음식점이나 각종 행사장에서도 “보그 병신체”의 또 다른 모습의 극치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궁정 풍의 상징기호만을 보여주는 식기가 차려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와인 잔이 놓여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식들이 각종 외국 이름을 달고 차려지고, 사람들은 익숙하지도 않은 각가지 양식기를 사용하느라 우왕좌왕하거나 달랑 포크 하나만을 들고서 찍어먹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 그 와중에 격식을 차려 큰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2) 롯데백화점 올리브 데 올리브 (Olive des Olive) 브랜드 매장 의 한 안내판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일상의 “보그 병신체”를 이끌고 확산시켜온 첨병은 1993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디자인 전공자’ 들일 것이다. 그들은 ‘디자인’이라는 서구 최신 유행의 소비자로 교육 받고서, 『행복이 가득한 집』 등의 각종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서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모던하고 쉬크”한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데 여념이 없다. 남의 것, 외래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을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건만, 유독 우리만은 그렇지 못하다. 아니, 외래의 것을 추종하며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거기서 잊지 말고 꼭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이 그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과 시골집 그리고 아파트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자라나 살고 있고, 아파트는 갈수록 더 높은 고층빌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들에서 집이 아파트로 그려지는 경우는 접하기 힘들다.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촌에 살고 계신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어린아이들까지도 집을 그리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때의 전형 그대로의 집을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초가삼간의 시골집으로 그린다. 초가삼간은 예전 농가의 전형적 모습이었고 민속촌 등에 재현되어 있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우리주변에서 볼 수 없는 집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3) 우리가 그리는 집의 전형과 흡사한 주택: 1930년대 폭스바겐 노동자를 위해 볼프스부르크에 건설된 향토양식(Heimatstil)의 주거단지. 나치는 이 양식을 우수한 독일민족문화의 전형으로 선전하고 향토양식의 주거단지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이는 바로 우리가 현실을 보고 못하고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각종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본보기로 삼아 말과 행동과 모습을 맞출뿐 아니라 일상용품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대부분의 각종 매체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그들의 이윤만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온지 오래다. 거기서 소비대중을 현혹시켜 눈멀게 하고 “보그 병신체”와 같은 수단을 통해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소비생활양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는 대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면서 대기업의 슈퍼마켓에서 일상용품을 구입하여 먹고 생활하며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사용하여 조리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한다. 대기업이 판매하는 교통수단을 통해 출퇴근을 하고 대기업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 대기업 보험사의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여가시간에는 대기업이 만든 오락물을 소비하거나 대기업의 여가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더구나 “입시지옥”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최종 목표 또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 전체가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건만, 우리는 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그 병신체”가 우리의 일상 생활양식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제는 현실과는 괴리된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자본논리만을 따르는 ‘디자인’은 가상의 생활양식만을 꾀하면서 그 양식이 갖는 허영된 의식을 확산시키고, 대중은 그것을 누구보다 앞서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보그 병신체”는 이러한 우리 시대상이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디자인’에서 말하는 ‘증강현실’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현실이 사라진 가상의 세상에서 새로운 ‘서비스’의 창조, 창의란 것은 또 무엇일 수 있는가?

그람시(A. Gramsci)의 고민이 잊혀지지 않던 한해
2014년 검산에서

2001년과 2014년

In the ‘Where is Industrial Design heading?’ section, industrial design profession is called for a self-assessment of its legitimacy of existence. It is a request for a reappraisal of designers’ traditional working practice, which was to technically perform the duty that the company assigns. The consciousness of ‘Visible’ and ‘Invisible’ also reflects the trend of design profession, which not only considers the physical substances as design objects but also expands its scope into the invisible and immaterial realm, such as human psychology, welfare service, usability, and experience. Service design, one of the popular design subjects nowadays, specifically examines the factors beyond the physical substances, which is a design method that systematically considers the diverse humane, institutional, and material aspects of process and related function that design encompasses. These days, we are observing the creation and evanescence of various forms of design, events, services, and programs that are tangled with all these factors.

2001년: 13년 전
‘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은 2001년 10월 우리나라 서울에서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익시드: ICSID: International Council of Societies of Industrial Design) 총회를 맞아 작성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산업디자인 혹은 공업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국제대회였던 만큼 원어를 그대로 발음해 쓰기로 한 듯하다. 이 대회가 있기 불과 한 달 전인 9월 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미국방성 건물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미국은 그야말로 비상 걸렸고 전 세계가 뒤숭숭하고 미국, 캐나다 쪽의 연사와 발표자들이 불참하는 등 행사진행에 어려운 점도 생기고 했다. 그럼에도 2001년 대회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 대회로 산업디자인계에서도 회고와 전망에 관한 여러 가지 의식이 높아가고 있었고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있었던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한번 되새겨 보고 지나간 세월에 비교해 그 때 생각이 또 얼마나 공감이 가는가, 이질감이 드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아래)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
20세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기계생산 방식에 의해 야기된 대량 생산품에게 합리성과 민주성이라는 동시대적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근대적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제 21세기의 벽두에서 다시금 기술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및 환경의 급격한 전환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문명의 총아였던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 논리를 재정립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어울림’ 디자인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익시드 2001 서울> 대회를 계기로 지난 세기가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에게 요구했던 시대적 소명을 넘어 보고자 한다. 이에 20세기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21세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의미와 영역, 그리고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역할과 사명, 윤리 등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를 결산하는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공표 하고자 한다.
본 선언의 의의는 단언적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실천행위에 모종의 지향점을 제시해 준다는 데 있다. 지금은 미래 디자인의 종착역이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이며, 21세기 디자인을 조망하기 위한 교두보인 셈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에게 만일 공유할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21세기의 전문가 집단으로 존속되어질 이유도 없다. 왜냐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미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통해 전문 영역으로서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문명사적 위치를 재확인하고 공존-공생의 세기를 열어 가려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의지를 익시드 커뮤니티 뿐 아니라 우리가 관여해 왔으며, 연루되어 있고, 참여할 세상과 더불어 공유하고자 한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까지 왔는가?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산업생산 방식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환경을 우리와 분리된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물질적 차원에서만 구하지 않는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 Industrial Design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앞서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과 도구, 환경 사이의 능동적인 소통을 도모할 것이다.
– Industrial Design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을 추구함으로써 정신과 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 Industrial Design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이어줌으로써 좀 더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향해 문을 열어줄 것이다.

Industrial Designer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 Industrial Designer는 사용자 개개인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인공물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성을 키워나가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기술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및 환경이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가하는 서로 다른 힘들을 조율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구현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인간의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시키기보다 하찮은 일상생활 속에 담겨진 진솔한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삶을 축복으로 이끄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인류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문명의 공존”에 기여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 무엇보다도 Industrial Designer는 내일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오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실존적 존재임을 스스로가 확신하여야 한다.

2014년: 13년 후
먼저 ‘Industrial Design은 어디까지 왔는가’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그간 고수되던 산업에 의한 디자인의 대량생산 원칙을 버리고자한 태도다. 주문자 요구에 따른 맞춤 제작, 공예 방식에 의한 소량제작 혹은 일품생산, 물리적 실체뿐만이 아니라 정보나 서비스를 디자인 대상으로 열어 놓은 것 등이 그 이후 실제 나타난 현상이다. 두 번째로 인간과 환경을 공동운명체로 분명히 의식하고자한 모습이다. 이는 이후 화두가 된 지속가능디자인, 그린디자인, 에코디자인 분야의 부상을 예고한 내용이다. 세 번째로 물질적 풍요를 넘는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으로, 자연과 환경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지않고 서로 공유하고 소통해야할 상호교감의 대상으로 정의하고자한 모습이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에서는 산업디자인 직업의 존재적 정당성에 관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그 간 디자이너들이 주어진 기업의 업무를 기능적으로 수행하던 직업적 관행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의식 역시 디자인 대상이 물리적 실체뿐만이 아니라, 인간심리, 복지서비스, 사용성, 경험 등,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부분까지확대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 디자인은 물리실체 이면에 놓인 사항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인데, 디자인을 둘러싼 여러 인간적, 제도적, 물질적 측면의 과정요소와 연계기능을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디자인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다양한 모습의 디자인으로, 이벤트로, 서비스로, 프로그램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Industrial Designer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 가’ 역시 이상의 질문을 이어나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현상도 이런 생각의 연장으로 보인다: 기업이나 집단에서 개개 소비자와 개인에게 눈을 돌려 하위집단의 이해에 관심을 기울여 그들의 이익에 봉사할 것을 제안하는것, 모든 부분의 지속가능성을 의식하는 것,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 인간과 자연에 공히 영향을 미치는 직업적 책임의식 부각 등등.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선언 이후 2014년, 13년이 흘렀다. 당시 내용을 잘 뜯어보면 오늘날의 상식이 된 중요한 여러 개념의 단초가 있었다. 과연 지금 우리는 그 때의 기대와 선언만큼 잘하고 있나? 졸업을 바로 앞둔 이 시점 우리들, 산업디자인학 전공자들,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로서 세상과 나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볼 때다.

채승진 2014년 11월

 

 

중국 극동지역에 가면 ‘모소’라는 이름의 대나무를 볼 수 있다.
이 대나무는 심은 지 4년 동안은 아무리 물을 주고 가꿔도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면 5년째 되는 해,
매일 30cm 이상 자라 6주 만에 15미터를 훌쩍 넘긴다.
첫 4년 동안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누구보다 높은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부편집장 황보원

In the far eastern region of China, there is a bamboo plant called ‘Moso’. Moso does not grow for 4 years after planted regardlesshow carefully you water it. However, if you put endless effort with your faith in growing Moso, it will grow more than 30cm per day and its height will reach over 15 meters within 6 weeks. The fact is that Mosowas spreading down its roots for the first 4 years. Same logic applies to us as well. Invisibility does not mean no growth. Do not give up, make constant effort, and you will someday reach the sky that you aimed for.

泰山을 오르기 위해

올해, 2014년 새로운 졸업학기 학생들이 모여 한해동안 노력하였던 작품을 신촌과 원주 캠퍼스에서 전시하였다. 특히 10회를 맞이한 졸업전시 뿐만 아니라 전공지를 위해 한 해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였으며, 모두가 힘차게 달려온 1년이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다.

작년에 이어 다시 전공지의 제작을 맡게 되어 올해도 YID 에디터스 멤버들과 같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작년에도 했던 작업이라 다시 하게되는 올해에는 조금 더 쉽게, 그리고 목표로 하였던 더 나은 전공지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전공지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은 쉽지않고, 욕심이 늘어서인지 제작을 해나가는 과정이 작년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

泰山歌(태산가)

泰山雖高是亦山 (태산수고시역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 (등등불이유하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世人不肯勞身力 (세인불긍노신력)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 (지도산고불가반)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楊士彦)

양사언의 태산가처럼 어쩌면 더욱 더 열심히 하지 않고 머리로 욕심만 부렸기 때문에 작년에 하였던 것과 같은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않고, 어렵기만 하였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려면 그만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그러한 노력이 있어야만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리고 발전하려면, 泰山을 오르려면 행동하여야 한다.

한해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책을 낸다.

편집장 안성우

I have been staying up all night with our members of YID editing team just as we did last year. I thought it would be easier this year and thought we would do much better, but publishing YID is never easy. The process got even harder as we are aiming higher. I believe a greater effort should be made in order to achieve better results and so to make progress. We need to act in order to proceed. This year, we are holding and publishing the 10th degree show and YID. This publication represents the consummation of 2014, and a new beginning at the same time.

Oliver Boat

글쓴사람 안성우
만든사람 안성우 / 산업디자인 09학번
최소영 / 산업디자인 11학번
장 소 올리버선박학교
기 간 약 2개월 반


지금은 그야말로 수상레저의 전성기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주중에는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누워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등 매우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최근들어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에 시간을 투자하고, 여가를 즐기는 등 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즐길 수 있는 수많은 레포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상레포츠는 최근 그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지만 수상레포츠 중 하나인 카누와 카약 그리고 요트, 들어는 보았지만 실제로 해 본 적도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어 왠지 알 것 같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게 많은 비용이 들 것 같고 낯설어 마냥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다.

그런 수상 레포츠 중 카누,
이렇게 가까운듯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낯선 카누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았다.

How to make : Canoe

*What is Canoe?
카누란? 노로 젓는 작은 배. 나무껍질이나 동물의 가죽, 갈대 또는 통나무 따위로 만드는 것이며 최초의 선박으로 세계의 여러 민족이 만들어 이용하였다. 캐나다 서북태평양 연안의 인디언과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지역에서 특히 발달하였고 유럽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하였다고 한다.

7) 아웃웨일 : 갑판이 없는 보트 외부의 프레임 위끝을 따라 접합하는 수평재로 인웨일과 마주보고 있다
8) 데크 : 배의 갑판
9) 씰링 : 표면의 틈을 에폭시를 이용해 메우는 것
10) 클램프 : 죔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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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는 올해 10월 4일 카누클럽을 런칭해서 이제 학교 옆의 매지호에서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내년도 1학기엔 ‘카누 교양 강좌’를 개설해 보트패들링(Boat Paddling)과 카누 교육을 중심으로 다양한 패들링 교육과 연구를 시행 및 캐나디언 카누 지도자 및 레프팅 가이드 자격증을 소지한 강사를 초빙해 30~40명 정도의 재학생이 체험 가능할 예정이다.

디자인과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를 디자인하고, 목업을 해보고 있지만 이번처럼 카누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기존에 만들던 것에 비해 훨씬 큰 크기뿐 만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목재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목업을 해왔지만, 주로 깎거나 사포질 하는 작업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카누제작의 경우 깎거나 사포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철사를 이용해 목재를 연결하는 스티칭, 에폭시를 이용한 틈을 메우는 코밍이나 코팅 등 자주 접하지 못했던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달랐다. 또한 좋은 여러가지 도구들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배워, 다양한 방식으로 목재를 다루어 볼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약 2달 반의 기간 동안 매주 금, 토요일에 7시간씩을 투자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체력적으로 그리고 집중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분야의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을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하기까지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하며, 그것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사회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현실적으로 힘들거나 전망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카누제작을 가르쳐주시던 선박학교 최준영 교장선생님 또한 오랜 기간 디자인 업무를 하다 지금은 어린시절 자신의 꿈이었던 배를 만들고 있다. 이번 카누제작을 통해 얻은 것은 기술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경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험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거나 내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도 아닌데 이것을 왜 해야 하나와 같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었다. 미래의 나 라는 자신은 과거의 내가 했던 경험들과 선택들의 결과이다. 따라서 경험과 선택에는 어느 것 하나 가치가 덜하거나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시기인 학생 때는 때로는 당장 눈앞에 그 결과 가보이지 않는 검증되지 않은 길이다 하더라도 충분히 가 볼 만 하지 않을까.

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 산업디자인전공 전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