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 일명 ‘토스터 프로젝트’라 불리는 한 영국 디자인 대학원생의 졸업 프로젝트가 화제가 되었다. 그는 세상의 많은 물건들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들 손에 들려지는 것일까에 의문을 갖고 직접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하는데, 그가 역설계를 진행하기 위해 선택하여 참고한 물건은 우리 돈으로 7000원도 채 안 되는 토스터였고, 결국 그는 9개월여의 시간과 200만원을 들여 약 5초 정도 사용할 수 있었던 토스터를 디자인(제작)했다.
2. 역설계를 위해 그는 먼저 구입한 토스터를 분해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토스터는 두 쪽의 빵을 굽는 기능을 위해 100여 가지의 물질(재료)로 된 400여 개의 부품들이 얼개(구조)를 이루어 조립된 제품이었고, 결국 그는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다섯 가지 재료 – 철, 구리, 니켈, 운모, 그리고 플라스틱 – 를 선정하여 원료의 획득에서부터 부품의 가공 및 구조를 완성하는 조립까지 혼자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3. 사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재료구조실습’이라는 산업디자인 전공의 한 과목을 맡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나의 물건이 디자인되고 설계되는 과정과 그것이 실제화 되는 과정에서 어떤 재료 또는 부품들이 어떤 조립방법으로 구조를 이루면서 제품의 실제적인 기능들이 달성되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안겨준 사회적 교훈과 함께 이 프로젝트의 실제 디자이너였던 토마스 트웨이츠가 하나의 물건을 직접 만들어갔던 과정들이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In this course, students run three case projects as a heuristic approach to learn about materials and structures. The first project investigates the design application feasibility of a single material. Second project aims to understand how to deal with different materials and explore their feasibility. In the last project, students develop and apply the concept of materials into the psychological dimension.
디자인과 재료 그리고 구조
4. 디자인이란 말은 하나의 (디자인된) 결과를 뜻하는 말일 수도 있고 (디자인하는) 과정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특히 과정으로서의 디자인을 말할 때 ‘디자인은 유무형의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 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의 가치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완성시켜주는 조형적 ‘구조’가 필요하며,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부품화 된 ‘재료’들이 필요하다. 이 말을 다시 하면, 디자인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들은 ‘조형’과 ‘구조’라는 가장 핵심적인 틀을 통해 실현(Realization)되며, 이 틀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 재료들(Materials)들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그렇기에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영역에서 디자인을 하든지 간에 그 영역의 컨텍스트에 맞는 다양한 성격의 재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그것들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어떻게 구조화 시킬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실제적인 도구로서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그러한 지식들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데, 결국 재료와 구조의 관계는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디자인은 그 관계성을 인간을 위하는 가치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6. ‘재료(材料)’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감’이며, ‘재료’의 순 우리말은 옷감, 땔감 등에 쓰이는 ‘감’이다. 재료는 생산된 것이거나 생산될 수 있는 어떤 성분 또는 요소이며, 구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집하거나 모은 것들은 모두 재료가 될 수 있다.
7. ‘구조(構造)’의 사전적 의미는 ‘부분이나 요소가 어떤 전체를 짜 이룸. 또는 그렇게 이루어진 얼개’이며, ‘구조’의 순 우리말은 ‘얼개’이다. ‘얼개’는 곧‘짜임새’인데, ‘짜임새’란 ‘앞뒤의 연관과 체계를 제대로 갖춘 상태’를 뜻하는 말이니, 이미 ‘구조’라는 말에는 다양한 요소나 조각/부품들이 하나의 체계/시스템으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기도 하다.
8. 결국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재료와 구조는 디자이너가 개발한 개념들이 실제화 되는데 소용되는 필수요소이며, 사용자는 이렇게 구조화 된 디자인 대상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것이 좋은 디자인이 갖는 순기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업으로서의 ‘재료구조실습’
9. 그런 의미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에 개설된 ‘재료구조실습’이란 과목은,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재료들이 어떻게 질서 있는 구조와 조형을 이루어 원래 목적된 유익한 기능들을 수행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실제적인 경험들을 다루는 과목으로서, 하나의 좋은 디자인을 이루는 개념과 기능 그리고 재료와 구조 및 조형이 각각 별개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통합된 하나의 가치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형성하는 마당이기도 하다.
10. 이러한 학습을 위해서는 먼저 산업디자인 관점에서의 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재료는 이론과 지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과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재료공학적 관점에서 물질이나 재료들이 갖는 일반적 특성과 개론을 다루는 것이 이론과 지식에 대한 학습이라면, 체험적 측면의 학습은 실재하는 다양한 재료들을 디자인 작업에 직접 사용해보면서 그 가능성과 한계 등을 직접 학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1. 본 과목에서는 재료와 구조의 체험적 학습에 있어 세 가지 경우를 프로젝트로 만들어 진행하였는데, 먼저는 단일 재료가 갖는 디자인 적용 가능성에 대한 탐구와 두 번째로는 ‘복합재’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실습, 마지막으로 재료의 개념을 정신적인 것으로 확장시켜 적용해보는 탐구에 대한 것이었다.
12. 단일 재료가 갖는 디자인 적용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는,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하여 하나의 오브젝트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선택된 재료는 EVA(Ehtylene-Vinyl Acetate Copolymer) Foam으로써, 화방이나 문방구 등에서 다양한 규격으로 쉽게 구입이 가능한 디자인 재료였다. 그리고 다른 부수적인 접착제의 사용 없이 이 재료만을 가지고 동물이나 식물 또는 건축 등을 모티브로 한 모자를 디자인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었다.
13. 단일 재료이기 때문에 그 재료가 갖는 특성이나 한계성이 최대한 실험되어질 필요가 있었고, 모자라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식의 조립 방법을 실험해보는 것 역시 디자이너인 학생들에게 요구된 부분이었다. 과정은 ① 디자인 모티브 선정 ② 디자인 아이디어 개발 ③ 스케치 및 종이모형을 통한 실험 ④ 도면제작 ⑤ 제품 생산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실제 모자를 착용하여 발표회를 갖는 것으로 종료되었으며, 사례는 다음과 같다.
Project 02_ Stool Design
14. 다음으로 진행한 재료 체험은 ‘복합재’에 대한 것 이었다. ‘복합재’는 두 개 이상의 재료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마치 하나의 재료인 것처럼 사용되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재료 해석과 적용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이런 복합재의 성격을 이해하고 체험하고자 진행한 주제는 정형외과에서 깁스를 할 때 사용하는 캐스팅테이프와 스티로폼을 사용하여 스툴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재료를 최소한도로 사용하면서도 사람의 하중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스툴의 디자인을 목표로 하여 아이디어 개발과 스터디 모형 제작 그리고 실제 제품의 제작 등의 순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Project 03_ Designer Design
15. 마지막 재료 체험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는 ‘재료’의 범위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나아가 한 디자이너가 갖는 디자인 언어나 철학 등의 정신적 요소들도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디자이너나 건축가 또는 예술가를 선택하여 그들에 대해 스터디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그 들의 디자인/조형 언어나 철학적인 요소들을 추출하여 이를 재해석한 디자인 오브젝트를 제작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었다.
16. 이 프로젝트에서는 단순히 그 ‘디자이너스러운’ 무언가를 디자인하기보다는, 디자이너에 대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아 디자인을 개발하되 오브젝트를 제작하는 물질적 재료 역시도 제한을 두지 않고 진행함으로서 더 많은 재료의 탐구와 실험이 가능하도 록 한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시대에 디자이너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스터디를 통해 좀 더 폭 넓은 안목으로 디자인을 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최종 디자인 아이템은 탁상 또는 벽시계였다.
17. 학기 중에 진행한 세 번의 재료 체험이나 지식적인 학습을 통해 디자인 재료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그리고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은 늘 우리 주위에 펼쳐져 있는 재료와 물질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실험해보면서 디자인 적용 가능성을 다양하게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가 인간을 위해 개발하고 구상하는 모든 아이디어와 개념 그리고 가치들은 결국 그것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재료’와 ‘구조’를 통해서 1차적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18.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매 2학기마다 본 수업 ‘재료구조실습’을 귀한 학생들과 같이 진행하였다. 매학기마다 즐거운 열심을 가지고 목요일 오전의 4시간을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언젠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반갑게 만나 인사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수업의 기회를 주신 산업디자인 전공 교수님들께도 지면을 빌어 늦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