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Design Message

HCI의 역사와 야사

Software engineers resisted the advance of Human Factors Engineering into the software field because it meant an interruption of their role as user interface constructors and professional change to software coders that lie on given specifications of user interface. Software engineers work with highly efficient methods for coding, but user interface designers focus more on the user convenience than the efficiency of coding. In software engineers’ perspective, they were required to put much effort and time into functions that are not so important. For this reason, interface designers and software engineers had difficulties in maintaining amicable relationships.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은 1943년 콜로서스를 만들어 독일군의 암호를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공격함으로서 연합군이 2차 대전을 승리하는데 최고의 공을 세우게 된다. 애플컴퓨터의 로고인 한쪽을 베어먹은 사과가 앨런튜링이 자살할 때 먹은 사과를 상징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가 컴퓨터 산업에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애니악보다 2년 먼저 만들어져 실질적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콜로서스 이후 오랫동안 컴튜터는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니었다.

초창기 컴퓨터는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컴퓨터의 용량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추는 운영에 모든 관심이 기울여 졌다. 프로그램은 운영자들에 의해 스위치, 다이얼, 연결선들을 이용해 로딩되었으며, 하루에 50여개의 진공관이 교체되었고 그때마다 컴퓨터는 몇 분씩 다운되었다. 카트에 진공관을 싣고 다니며 고장난 진공관을 교체하는 일은 당시 최첨단의 전문직이었다. 초기 컴퓨터의 목표는 ‘수학자를 계산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후에 ‘사용자를 과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목표로 전환되었다. 소프트웨어는 기계어를 이용하여 용량을 최소화 하였고, 값비싼 컴퓨터를 매초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사용자(운영자)는 컴퓨터를 위한 도구처럼 인식되었다. 1960-70년대 컴퓨터의 용량이 증대되면서 더 이상 계산능력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되자 관심의 초점은 소프트웨어로 옮겨지게 된다. 프로그래머의 시대(Programer Period)라 불리는 이 시기에 효율적이고 품질 좋은 프로그래밍을 위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이 탄생하였고 프로그래머는 기획, 구조설계, 인터페이스설계, 코딩 등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GUI의 기반이 되는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Sutherland의 아이콘을 이용한 디스플레이, Engelbart의 마우스, Nelson의 하이퍼텍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후반 HCI분야의 탄생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담당하는 역할을 인간공학자 또는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이너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코딩을 직접 수행하였다. 이때까지도 컴퓨터는 펀치카드를 이용한 입력과 페이퍼 프린트의 출력방식이 이용 되었으므로 일반 사용자를 염두에 둔 유저인터페이스 개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GUI를 장착한 컴퓨터가 나오면서 유저인터페이스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부분의 역할이 그래픽디자이너에게 넘어가 현재와 같은 소프트웨어, 유저인터페이스, 그래픽 부분으로 분화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 선택의 중요성에서 유저인터페이스의 사용 편의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고, 현재 코딩되는 소프트웨어는 절반이상이 인터페이스 단계의 내용을 담당하고 있어 소프트웨어에서 유저인터페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커지게 되었다. 컴퓨터 사이언스의 발전을 통해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접하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탄생한 Human Computer Interaction(HCI)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HCI는 인간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인터랙티브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평가-구현하는 과정과 이를 둘러싼 주요 현상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ACM/SIGCHI, 1992). 컴퓨터를 위한 도구적 역할을 하는 인간에서 컴퓨터라는 기계 (SW/HW)는 인간의 입장에 맞추어져야 한다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HCI의 기본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인간공학이 지향하는 인간에게 맞춰지는 제품, 시스템의 개념과 일치한다. HCI는 학습, 사용의 용이성 등 기능적 요소 뿐만 아니라 안전성, 프라이버시 등 가치적 요소까지를 포괄하고 있으며, 제품의 인터페이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지, 인체적 특성이나 시스템의 제한점, 사회 환경 등의 심층적이고 거시적인 분야까지를 다룬다. HCI는 최종결과물인 인터페이스/인터랙션과 그 이면의 인간 및 사회 환경에 관한 이해를 포괄하고 있다.

2) 컴퓨터공학이 HCI, 인터랙션으로 발전하는 과정

컴퓨터 하드웨어 용량의 발전과 정부 사업에서 컴퓨터의 활용은 컴퓨터가 연구소에서 나와 사회에서 활용되는 시대를 맞게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접하는 시기가 됨에 따라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정부에 의해 농업 및 사회보장 목적으로 개발된 대규모 정보 처리 시스템에서 스타일가이드, 사용성 랩, 프로토타이핑, 작업분석 등의 방법론이 개발되었으며, 1980년에는 VDT스크린 디자인 및 일반 가이드라인에 대한 저 서가 발간되었고, 1981년 컴퓨터 환경에 대한 ANSI (미국 표준)기준을 만들기 위한 그룹이 구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인터페이스 환경에서 그래픽의 등장은 직접조작에 의한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제공, 심미성 및 컴퓨터가 일반 사용자들도 접근할 수 있는 도구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인간공학의 소프트웨어 분야 진출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는 유저인터페이스 구성 역할의 중단과 더불어 주어진 유저인터페이스 스펙에 의한 소프트웨어 코딩자로의 전환을 의미하므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부터 저항을 불러왔다. 한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코딩에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게 되지만 유저인터페이스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코딩의 효율성보다는 사용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시각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기능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유저인터페이스 부분이 용량이나 에너지면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원래 그 소프트웨어가 목표로 하는 기능보다 유저인터페이스에 더욱 더 많은 수고를 기울일 것을 요구받는 입장이지만 사용자들은 컴퓨터 환경에서 HCI가 지향하는 취지에 점점 더 적합한 환경을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디자인경영이 꼭 필요한 당신께

Design management resolves problems with the logic of economy that reflects the characteristics of design. For example, regulations are effective for controlling groups, but some of the regulations applied for design groups are quite loose in order not to restrict designers’ creativity. It would be absurd to demand strict dress codes for designers to wear dress shirts and ties or uniform jumpers. Majority rule is an important principle that aggregates the opinions of the whole. However, design results should not be decided hastily by the agreements of all the employees in the office without listening to the voices of the real users or a mysterious fortuneteller. The role of design management is to persuade the executives of the need for these distinguished principles, plan strategies that bring consumers into submission by the aesthetic bombardment, and develop the aesthetic sense of the CEO, who decides everything in the end.

내가 처음 디자인경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생 당시 미대학보에 싣고자 받았던 정경원 선생의 디자인경영 소개 원고를 보면서였다. 깔끔하게 육필로 원고지에 정리된 내용들은 지금도 내기억 속에 큰 인상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관심은 1989년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입사한 회사는 국내 시장에서 나름 고개를 들고 다녔지만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절로 꼬리를 내리게 되는 그런 정도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상황이 못내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가득하였던 곳이라 어떻게 해서든 그런 지위를 벗어나고자 다짐하고 노력하였다. 경영진은 이른바 ‘비전’을 정하고, 2000년에는 세계 5위의 가전업체가 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진 디자인종합연구소 기획팀에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그 부서의 막내로 들어가게 된다. 동기들은 제품의 도면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기업 디자인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에 껴들어간 것이다. 직접 형태를 생각하지 않는 것에 회의도 잠시 가졌지만 디자인경영은 어느새 나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학생들에게 디자인과 디자인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가졌던 관심은 확대되고 나의 연구주제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디자인경영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디자인경영은 왜 필요한가를 묻곤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도대체 디자인경영은 무엇인가,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디자인경영의 시작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야가 현실적 필요로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이후 형성된 근대적 개념의 기업은 이윤을 확보하는데 상품의 미적 특질이 중요함을 깨닫고 미술가를 고용한다. 하지만 손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술가의 개인 작업은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대량생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붓과 물감으로 그리던 그림은 인쇄라는 대량생산의 효율로 재구성되었고, 미술가는 ‘생산으로서 그리기’가 아닌 ‘계획으로서의 그리기’를 담당하는 미적 계획자, 디자이너로 그 역할이 변화된다. 대량생산을 만나면서 디자인은 계획이 되었고, 디자인의 작업은 실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결과물을 모의로 만드는 시뮬레이션(결과를 모색하기 위한 모의 실험)이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생산만 고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과물의 미적 특질을 결정짓는데 생산기술과 과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곧 드러난다. 디자인된 결과물은 기업의 산품으로 이익의 원천이다. 그래서 과연 그 특질이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기업은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은 어떤 가치를 얻게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생산을 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결국 경영 차원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디자인에 개입되어야 하고 디자인과 경영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디자인된 결과물의 중요성을 인식하면 경영은 최선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예컨대 좋은 디자이너를 뽑아 조직을 구성하고, 기자재와 공간을 마련한다. 디자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의사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내려야 할지도 고민한다. 창의성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주된 관심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이라는 장 안에서 다른 기능들 사이에서 디자인의 특성을 격려하면서도 전체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 예외의 범위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생각한다. 말하자면 경영은 자신의 장으로 디자인을 초청해서, 디자인이 기업 조직과 과정의 일부분으로 적절히 편입되고 조화되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럼 디자인은 왜 기업의 장으로 들어가 경영을 만나는가? 그것은 디자인의 주 임무인 ‘계획’이라는 활동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공상’에 그치고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지 않아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비즈니스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그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그저 헛된 바람일 뿐이다. 기업은 실현의 장이고 디자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현장이 필요하다. 헌데 그 현장의 주도자는 경영이므로, 디자인은 불가피하게 경영이 지배하는 현장의 규칙을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것 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들도 경영의 관행을 배우고, 마케팅의 용어를 익히며, 그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최종적으로 경영진의 일부로 들어가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디자이닝과 구별되는 영역으로 디자인경영이라 부를 수 있다. 앞서 말한 경영의 디자인과 디자인의 경영이 합쳐져 결국, 디자인경영이란 ‘경영 현장에서 디자인이 최고의 시너지를 내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모든 것’이다. 디자인과 경영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경영은 소비자와 소통의 매개로서, 팔 것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해서 디자인을 기업 기능의 하나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반면, 근본적으로 꿈꾸기인 디자인은 계획할 대상과 꿈을 펼칠 장소로서 현실이 필요하고 그곳에 잘 적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이 처음 디자인을 알게 되면 얼마 후 외부의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며, 차츰 디자이너를 고용하면서 내부의 기능으로 정착시켜 나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의적이며 감성적인 디자인의 특질이 기업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고 더 나아가 기업 전반에 스며들면서 디자인중심문화(design-centric culture)를 갖춘 애플과 같은 디자인기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업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발전의 단계가 있다. 디자인경영은 이러한 단계 전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경영이 만나는 모든 접점을 관리하고 세부적인 관련 활동을 운영한다. 서로 상충하는 디자인의 창의성과 조직적 효율성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고, 디자인이 기업 전반의 아젠다가 될 수 있도록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기업 구성원들을 폭넓은 의미에서 ‘교육’하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활동의 정당성은 기업 내의 신뢰와 가치 인정으로 확보되기 때문에 CEO의 지지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CEO가 관심을 갖는 것은 ‘디자인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와 ‘디자인경영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일 것이다.

디자인이 기업에 기여하는 바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① 제품과 서비스의 핵심 가치 창출, ② 고객 커뮤니케이션의 실천, ③ 기업 내부에 혁신 체질 이식이다. 디자인이 제시한 핵심 가치는 뽀로로, 옥소굿그립, BMW mini, 다이슨 청소기, 무인양품 시리즈, 애플 아이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제품과 광고를 포함한 고객과 소통하는 모든 채널에서 디자인은 기업을 표현하고 고객은 디자인을 통해 기업을 신뢰한다. ①②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기존 디자인 활동이 중심이 되는 반면 ③은 디자인의 생각하는 방법 자체가 핵심이다. 디자인이 그림을 통해 새로움을 계획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디자인을 활용하는 과정이 동시에 혁신을 내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럼에도 디자인을 외면하거나 편협하게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눈앞의 떡을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 라고 칭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자인이 위 3가지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성공적인 실행을 이끄는 것은 바로 디자인경영의 몫이다. 디자인경영자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차츰 경영진의 신뢰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이 기업 내 정규 활동으로, 정규 부서로 자리 잡아가도록 필요한 업무를 진행한다. 적절한 자원 투입과 디자인 과정 운영, 여타 기업 기능과 조화, 경영진과 소통, 목표제시와 보상체계, 디자인 전문성 유지 발전 등이 디자인경영의 핵심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경영은 디자인특성이 반영된 경영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한다. 예컨대 규정은 조직을 통제하는데 매우 유용함에 틀림없지만 디자인 조직에 적용되는 일부 규정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가급적 제한하지 않도록 좀 느슨하다. 디자이너에게 장그래나 오과장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거나 공장의 점퍼를 뒤집어쓰고 다니라고 하는 규칙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무식한 행위로 여겨진다. 다수결은 전체의 의견을 종합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지만 디자인 결과물은 급하게 불러 모은 위 아래층 여사원이 모두 동의한다고 해도 앞을 내다보는 신비로운 누군가나 실제 사용할 사람들의 진심을 들을 때까지 함부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생의 원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디자인 조직에 없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도 조직의 일부이고 사람이며 디자이너라는 특징은 일부에 불과하니까 대부분의 경영 논리들은 상당히 유용하게 적용된다. 이런 점들을 구분해서 경영진에게 이해시키고, 심미적인 폭격으로 고객을 굴복시킬 방법이 무엇일지 전략을 세우며,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결정할 CEO의 심미안을 확장시켜주는 것이 디자인경영자가 할 일[ref]여기서 심미적이라는 것은 화장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 최대의 만족을 표현한 말이다. 상대방에 대한 만족을 구하는 방법으로 화장, 성형, 교양, 사랑이 있다. 화장은 시선을 끌고, 성형은 육체적, 교양은 정신적, 사랑은 무조건적인 만족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심미의 최고봉은 사랑이다. 즉, 고객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내는 전략을 CEO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조나단 아이브가 항상 고민하고 스티브 잡스가 실행에 옮겼던 것처럼.[/ref]이다. 디자인경영팀에 소속된 말단이라면 디자인경영자가 하는 일 중에, 예를 들어 디자인 인식(design awareness) 전환의 한 꼭지를 맡아서 잘 정리해보게 될 것이므로 이제 막 졸업한 내 일은 아니라고 성급히 생각하지는 않겠지?

다시 한 번 확인하자. 디자인경영은 꼭 필요한 것인가? 아마도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면 현재 디자인이 기업의 조직, 과정에 잘 적응하여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따져보자. 디자인의 역할이 오해되고, 그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경영의 문제일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여러분의 작업이 비즈니스와 잘 연결되어 있는가? 즉, 돈벌이가 잘 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디자인경영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이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을 활용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이나 누군가라면 그것도 역시 디자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경영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디자인경영이 모든 문제에 대처할 만큼 연륜과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각각의 이슈가 갖고 있는 고유의 구조에 따라 디자인경영이 다룰 수 있는 부분도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디자인과 경영 사이의 접점에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분야가 디자인경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디자인경영은 디자인 이해관계자인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더 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의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4년의 雜想

The problem of our time in these days is that we are living in a virtual reality that is inconsistent with the reality. ‘Design’ that follows the logic of capitalism driven by major companies creates virtual lifestyles and spreads the sense of vanity those lifestyles provoke. The public especially strives to be the first in obeying those virtual lifestyles full of vanity. The “Silly Vogue Writing Style” is a mere tip-of-an-iceberg phenomenon that portraits our time. Other than this, what could be the augmented reality that ‘Design’ of Korea speaks of? What could be creation and creativity of new ‘service’ in a virtual world that lost the reality?

보그 병신체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렉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 (무심한 듯 쉬크하게) 보그 스타일을 매치하고 싶은 워너비들이 줄곧 따라하곤 하는 클리셰 올해 초에 접한 신조어,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꼬집은 말, “보그 병신체”. 이 말은 2013년 3월 1일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의 <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해 3월 김홍기는 SBS 인터뷰에서 “보그 병신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영어로 회의하고, 상담하고. 근데 막상 또 영어로만 하라고 하면 또 잘 못해요. 뭘까요? 반쪽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영심은 있어요.

외국어를 쓰면 뭔가 모국어에 철저한 사람보다 조금 더 우월한 거 같은 환영에 잡혀있어요. 이게 뭐에요? 두 개의 언어를 각각 완벽하게 구사해야 훌륭한거지, 바보처럼 두 개를 섞어 사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 후 “보그 병신체”는 여러 언론에서 줄지어 다루고, 한글날에는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더 없이 좋은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러나 “보그 병신체”는 우리 언어생활에 국한된 것이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 전반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보그 병신체”는 우리의 언어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식탁과 식탁의자, 소파와 침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식 가구와 일상용품들은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인스턴트 치즈와 요구르트 및 빵, 특히나 햄버거와 피자, 스파케티 등과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몸을 망가트리고 있다. 결혼식 등의 예식에서뿐만 아니라, 양식 음식점이나 각종 행사장에서도 “보그 병신체”의 또 다른 모습의 극치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궁정 풍의 상징기호만을 보여주는 식기가 차려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와인 잔이 놓여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식들이 각종 외국 이름을 달고 차려지고, 사람들은 익숙하지도 않은 각가지 양식기를 사용하느라 우왕좌왕하거나 달랑 포크 하나만을 들고서 찍어먹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 그 와중에 격식을 차려 큰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2) 롯데백화점 올리브 데 올리브 (Olive des Olive) 브랜드 매장 의 한 안내판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일상의 “보그 병신체”를 이끌고 확산시켜온 첨병은 1993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디자인 전공자’ 들일 것이다. 그들은 ‘디자인’이라는 서구 최신 유행의 소비자로 교육 받고서, 『행복이 가득한 집』 등의 각종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서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모던하고 쉬크”한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데 여념이 없다. 남의 것, 외래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을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건만, 유독 우리만은 그렇지 못하다. 아니, 외래의 것을 추종하며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거기서 잊지 말고 꼭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이 그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과 시골집 그리고 아파트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자라나 살고 있고, 아파트는 갈수록 더 높은 고층빌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들에서 집이 아파트로 그려지는 경우는 접하기 힘들다.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촌에 살고 계신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어린아이들까지도 집을 그리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때의 전형 그대로의 집을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초가삼간의 시골집으로 그린다. 초가삼간은 예전 농가의 전형적 모습이었고 민속촌 등에 재현되어 있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우리주변에서 볼 수 없는 집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3) 우리가 그리는 집의 전형과 흡사한 주택: 1930년대 폭스바겐 노동자를 위해 볼프스부르크에 건설된 향토양식(Heimatstil)의 주거단지. 나치는 이 양식을 우수한 독일민족문화의 전형으로 선전하고 향토양식의 주거단지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이는 바로 우리가 현실을 보고 못하고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각종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을 본보기로 삼아 말과 행동과 모습을 맞출뿐 아니라 일상용품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 대부분의 각종 매체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그들의 이윤만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온지 오래다. 거기서 소비대중을 현혹시켜 눈멀게 하고 “보그 병신체”와 같은 수단을 통해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소비생활양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는 대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면서 대기업의 슈퍼마켓에서 일상용품을 구입하여 먹고 생활하며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사용하여 조리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한다. 대기업이 판매하는 교통수단을 통해 출퇴근을 하고 대기업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 대기업 보험사의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여가시간에는 대기업이 만든 오락물을 소비하거나 대기업의 여가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더구나 “입시지옥”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최종 목표 또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 전체가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건만, 우리는 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그 병신체”가 우리의 일상 생활양식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제는 현실과는 괴리된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자본논리만을 따르는 ‘디자인’은 가상의 생활양식만을 꾀하면서 그 양식이 갖는 허영된 의식을 확산시키고, 대중은 그것을 누구보다 앞서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보그 병신체”는 이러한 우리 시대상이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디자인’에서 말하는 ‘증강현실’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현실이 사라진 가상의 세상에서 새로운 ‘서비스’의 창조, 창의란 것은 또 무엇일 수 있는가?

그람시(A. Gramsci)의 고민이 잊혀지지 않던 한해
2014년 검산에서

2001년과 2014년

In the ‘Where is Industrial Design heading?’ section, industrial design profession is called for a self-assessment of its legitimacy of existence. It is a request for a reappraisal of designers’ traditional working practice, which was to technically perform the duty that the company assigns. The consciousness of ‘Visible’ and ‘Invisible’ also reflects the trend of design profession, which not only considers the physical substances as design objects but also expands its scope into the invisible and immaterial realm, such as human psychology, welfare service, usability, and experience. Service design, one of the popular design subjects nowadays, specifically examines the factors beyond the physical substances, which is a design method that systematically considers the diverse humane, institutional, and material aspects of process and related function that design encompasses. These days, we are observing the creation and evanescence of various forms of design, events, services, and programs that are tangled with all these factors.

2001년: 13년 전
‘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은 2001년 10월 우리나라 서울에서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익시드: ICSID: International Council of Societies of Industrial Design) 총회를 맞아 작성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산업디자인 혹은 공업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국제대회였던 만큼 원어를 그대로 발음해 쓰기로 한 듯하다. 이 대회가 있기 불과 한 달 전인 9월 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미국방성 건물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미국은 그야말로 비상 걸렸고 전 세계가 뒤숭숭하고 미국, 캐나다 쪽의 연사와 발표자들이 불참하는 등 행사진행에 어려운 점도 생기고 했다. 그럼에도 2001년 대회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 대회로 산업디자인계에서도 회고와 전망에 관한 여러 가지 의식이 높아가고 있었고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있었던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한번 되새겨 보고 지나간 세월에 비교해 그 때 생각이 또 얼마나 공감이 가는가, 이질감이 드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아래)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
20세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기계생산 방식에 의해 야기된 대량 생산품에게 합리성과 민주성이라는 동시대적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근대적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제 21세기의 벽두에서 다시금 기술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및 환경의 급격한 전환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문명의 총아였던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 논리를 재정립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어울림’ 디자인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익시드 2001 서울> 대회를 계기로 지난 세기가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에게 요구했던 시대적 소명을 넘어 보고자 한다. 이에 20세기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21세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의미와 영역, 그리고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역할과 사명, 윤리 등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를 결산하는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공표 하고자 한다.
본 선언의 의의는 단언적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실천행위에 모종의 지향점을 제시해 준다는 데 있다. 지금은 미래 디자인의 종착역이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이며, 21세기 디자인을 조망하기 위한 교두보인 셈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에게 만일 공유할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21세기의 전문가 집단으로 존속되어질 이유도 없다. 왜냐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미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 선언>을 통해 전문 영역으로서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문명사적 위치를 재확인하고 공존-공생의 세기를 열어 가려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의 의지를 익시드 커뮤니티 뿐 아니라 우리가 관여해 왔으며, 연루되어 있고, 참여할 세상과 더불어 공유하고자 한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까지 왔는가?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산업생산 방식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환경을 우리와 분리된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 Industrial Design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물질적 차원에서만 구하지 않는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 Industrial Design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앞서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과 도구, 환경 사이의 능동적인 소통을 도모할 것이다.
– Industrial Design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을 추구함으로써 정신과 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 Industrial Design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이어줌으로써 좀 더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향해 문을 열어줄 것이다.

Industrial Designer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 Industrial Designer는 사용자 개개인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인공물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성을 키워나가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기술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및 환경이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가하는 서로 다른 힘들을 조율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구현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인간의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시키기보다 하찮은 일상생활 속에 담겨진 진솔한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삶을 축복으로 이끄는 존재이어야 한다.
– Industrial Designer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인류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문명의 공존”에 기여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 무엇보다도 Industrial Designer는 내일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오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실존적 존재임을 스스로가 확신하여야 한다.

2014년: 13년 후
먼저 ‘Industrial Design은 어디까지 왔는가’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그간 고수되던 산업에 의한 디자인의 대량생산 원칙을 버리고자한 태도다. 주문자 요구에 따른 맞춤 제작, 공예 방식에 의한 소량제작 혹은 일품생산, 물리적 실체뿐만이 아니라 정보나 서비스를 디자인 대상으로 열어 놓은 것 등이 그 이후 실제 나타난 현상이다. 두 번째로 인간과 환경을 공동운명체로 분명히 의식하고자한 모습이다. 이는 이후 화두가 된 지속가능디자인, 그린디자인, 에코디자인 분야의 부상을 예고한 내용이다. 세 번째로 물질적 풍요를 넘는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으로, 자연과 환경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지않고 서로 공유하고 소통해야할 상호교감의 대상으로 정의하고자한 모습이다.
‘Industrial Design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에서는 산업디자인 직업의 존재적 정당성에 관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그 간 디자이너들이 주어진 기업의 업무를 기능적으로 수행하던 직업적 관행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의식 역시 디자인 대상이 물리적 실체뿐만이 아니라, 인간심리, 복지서비스, 사용성, 경험 등,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부분까지확대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 디자인은 물리실체 이면에 놓인 사항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인데, 디자인을 둘러싼 여러 인간적, 제도적, 물질적 측면의 과정요소와 연계기능을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디자인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다양한 모습의 디자인으로, 이벤트로, 서비스로, 프로그램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Industrial Designer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 가’ 역시 이상의 질문을 이어나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현상도 이런 생각의 연장으로 보인다: 기업이나 집단에서 개개 소비자와 개인에게 눈을 돌려 하위집단의 이해에 관심을 기울여 그들의 이익에 봉사할 것을 제안하는것, 모든 부분의 지속가능성을 의식하는 것,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 인간과 자연에 공히 영향을 미치는 직업적 책임의식 부각 등등.
2001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서울선언 이후 2014년, 13년이 흘렀다. 당시 내용을 잘 뜯어보면 오늘날의 상식이 된 중요한 여러 개념의 단초가 있었다. 과연 지금 우리는 그 때의 기대와 선언만큼 잘하고 있나? 졸업을 바로 앞둔 이 시점 우리들, 산업디자인학 전공자들,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로서 세상과 나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볼 때다.

채승진 2014년 11월

 

 

퍼스펙티브

우물에 빠진 공을 가장 확실하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답은 우물에 물을 가득 채워 넣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지만 쉬워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물에 빠진 게 공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면, 빠져 나가기 위해 하늘보고 물이 찰 때까지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내가 빠진 우물을 맨손으로 가득 채워 넘치도록 만드는 일. 물리법칙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 비유에서 한 가지 불행이자 다행인 것은, 세상살이가 단순히 우물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유년기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한결같이 공학도였다. 수능이라는 작은 폭풍에 떠밀리고 나서 정신차려보니 말라버린 거대한 우물 같던 혹한의 학교에서 입학식을 치루고 있었다. 그리고 공학도 꿈나무가 처음으로 구입했던 전공 책의 제목은 예술가와 디자이너였다. 스스로를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나보다 일찍부터 착실히 준비해왔던 동료들에 대해 열등감의 연속이었고 그들이 갖지 못한 걸로 나의 영역을 굳건히 해야 했다. 내 대학생활의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것이었다. 처음엔 오기로 시작했던 고민이 언젠가 부터는 졸업 전에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을 마스터 피스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호기로 바뀌었는데, 덕분에 졸업 직전까지도 결과물들의 면면은 참담했다. 그래도 천직이라 생각해서 사명감까지 갖고 있던 제품디자인이었건만, 학교를 벗어 난지 2년, 건축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컨퍼런스 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내 정체성은 더더욱 모호해져있었고 원래부터가 굴러들어온 돌이었던 탓인지 다행히도 다른 곳으로 구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좀 덜했다. 이왕 구르기 시작한 거 좀 더 구르자는 생각 끝에 남은 한 가지 유일한 걱정거리는 남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겐 두 개의 화두가 생겼다. 하나는 우물을 파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물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한 우물만 파라’는 것과 ‘우물안 개구리’라는 상투적인 두 격언에서 우물이라는 것은 하나는 긍정적이고 하나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덕에 언뜻 보면 둘은 모순 관계에 놓여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비유의 부작용인데. 그 행위 주체를 명확히 하면 답은 보다 명료해진다. 우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 되, 넓은 시야를 잃지 않는 것. 오히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가지를 꾸준히 열심히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내가 속한 문화의 맥락에서 치열한 고민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생활 중 가장 스스로 만족했던 결과물은 수백 장의 스케치에서가 아니라 한참을 책을 읽으며 고민하던 중에 만들어졌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야 한다는, 확신처럼 굳어진 첫 번째 화두에 대해서는, 내 짧은 경험만으로 증명 할 수 없으니 사례를 빌려와야겠다. 처음 이런 종류의 사명감을 갖게될 때쯤 가장 좋아하던 디자이너가 한 명 있었다. 이미 세계적으로 입지를 굳힌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일화를 좋아하는데, 패션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 뉴욕 등지로 유학길을 떠나, 지방시, 기라로쉬 등의 유수의 브랜드에서 일하고 돌아와 그는 이런 이야길 했다. ‘서양 복식은 완벽했습니다. 아무리 시도해도 거기에는 내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곧 동양인인 자신이 서양의 방식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었고, 이후에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그 만의 방식으로 지금의 이세이 미야케 디자인을 선보이게 된다. 표면적으로 디자인은 한 명의 탁월한 개인이 천부적인 감과 통찰력으로 빚어내는 듯 보이지만, 그 탁월한 개인과 디자인은 역사와 문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 이 외에도 일본의 건축, 그래픽, 제품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의 방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두 손에 다 꼽지 못한다. 이에 비해 아직까지 제다움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 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며, 평생의 화두로 확신을 갖고 정진해야하는 이유이다.

블루오션은 곧 레드오션이 되고 레드오션끼리의 교차점에 또 다른 블루오션이 생겨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사건이 아니다. 넘쳐흐른 물은 어디로든 흐를 수 있다. 학문 역시 마찬가지라 그 영역과 깊이를 더하다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접점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세상은 언제나 맞닿은 우물의 연속이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단지 그 깊이가 깊어졌을 따름이다. 내 두 번째 화두는 반쯤은 흥미와 동경에 의해서, 반쯤은 필요에 의해서 구체화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류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꺼내던 날, 세상은 그의 환상적인 프레젠테이션 아이디어와 언변, 제스처를 거듭 연구했다. 심지어 프레젠테이션 전문가가 등장하는가 하면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건 서류봉투에 들어가는 맥북이 없었다면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를 간과해버린다. 이를 모르지 않았음에도 학창시절 마지막 1년은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것이라 보이는 모든 것들을 좇았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한창 막막해지던 시기에 차라리 청량했던 새로운 고민을 얻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쯤 마주했던 전공 바깥의 모든 것들은 흥미와 가능성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영감의 원천, 참조, 도구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들의 위상이 역전되어 신입생 때 주어졌던 예술가와 디자이너라는 명제를 다시 곱씹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194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예술, 디자인, UX, 미디어 아트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사례들과 연구 자료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경계의 희석은 이미 충분히 일반화가 가능해졌고, 대부분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이나 그토록 보수적이라는 건축분야도 이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추세다. 이게 서로의 밥그릇 뺏기인지 새로운 기회인지 생각해보기 이전에, TEDx 컨퍼런스 기획자로 일하면서 조금은 특이한 배경의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이 모호함 들을 정리하게 해주는데 유용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모두가 동의하진 않겠지만, 온전히 제품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과 결합한 모든 것들과 친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깊이와 차별성을 확고히 다지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의 분야에 갇히지 않는 것. 2년 전이었다면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한 바람직한 상은 T형 인간이라 정리 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앞서서 세상은 맞닿은 우물이라 이야기했으나 발전에 따라 경계를 허무는 촉매들이 무척이나 다양해졌기 때문에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 됐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 이는 분명히 새로운 기회이지만 동시에 위협이기도 하다.

학교를 나와서 했던 모든 활동 중 어떤 것도 산업 디자인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었어도 여전히 스스로를 예술가도 건축가도 아닌 산업 디자이너라 소개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구분짓기에 대한 모든 혼란은 그 판단의 기준을 하는 일과 스킬, 그에 따라 갈라놓은 분야에 따르는 것에 익숙해진데서 비롯된다. 디자이너라 하면 포토샵 기술자가 아니라 나름의 프레임으로 자신을 설명 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내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여전히 모든 현상을 산업 디자이너의 프레임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뚜렷한 태도의 확립은 예술을 해도 예술가가 아니고, 건축을 해도 건축가가 아닌 이유가 된다. 컴퓨터를 탑재했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컴퓨터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스마트폰이든 아날로그 식 전화기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이 본질을 망각한 제품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 그 이전에 문화-역사적 DNA를 바탕으로 견고히 확립된 본질에 기대어 그에 따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 그 방점으로부터 나는 내가 될 수 있고 확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퍼스펙티브인 것이다.

그대들은 지금, 가장 아련한 순간을 살고 있다.

2003년 11월 셋째 주쯤 됐을까. 적당히 날씨가 시큰시큰해져갈 무렵 나는 우리학교 교정을 처음 밟았다. 수시모집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면접시험 예정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도착한 새벽녘이라 공기는 푸르스름했고 미래동산을 잽싸게 넘어 다니던 청솔모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조심성 없이 바스르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지금 내가 밟고 섰는 이 학교가 나의 학교가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그저 표현해 낼 수 없는 여러 가지 기분들이 한데모여 연신 내 심장을 쿵쾅쿵쾅 두드리고 있었는데 설렘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이는 대학을 졸업한 지금,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온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추억을 팔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내 대학생활 성장 이야기의 프롤로그이다.

열아홉 평생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며 나를 못살게 굴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자마자 맹목적으로 갈구하던 해방감에 도달했을 때, 시험결과는 이미 관심 밖. 나는 이미 대학생이라며 유세를 떨고 있었다. 나의 머리는 봄날의 개나리보다 한참은 더 일찍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수험표로 수험생 할인을 받아서 구매한 최고급 옷가지들을 걸치고서는 거울 앞에 서서 두서없이 길러놓은 머리를 이렇게 만져 보았다가 저렇게 만져보았다가 하는 것이 하루일과 중 가장 진지하고 골똘한 일과였다. 지금도 이렇게 써내려가면서 그때를 다시금 되짚어보니 정말 고민할 것도 없었고, 두려울 것도 없었고 또, 못 할 것이 없었다. 물론, 그때에는 고민하다 놓쳤고 두려움에 도망쳤었고 지레짐작으로 못하겠다 싶어 시도조차 못 해본 것들이 많지만.

누구나 지나온 과거를 놓고 나 잘했다 박수치며 흐뭇해하진 않을 것이다. 뭐 치킨이 먹고 싶었지만 참았는데 때마침 TV에서 알려주는 조류독감 뉴스를 보며 나 잘했네 손뼉을 짝 마주친다던지 하는 소소한 선택의 결과를 제외하고서는 살아온 전반적인 맥락이나 굴곡을 되짚어보면 후회나 아쉬움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아 이렇게나마 글로 풀어 공유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아, 글을 쭈욱 읽다보니 ‘후회’가 나오고 ‘아쉬움’이 나오는 걸 보고 ‘에이, 역시나 후회하기 전에 공부나 열심히 해라’ 라는 시시콜콜하고 뻔한 잔소리겠거니 미리 추측해버리면 곤란하다. 왜냐. 난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니까. 사실 무지하게 드센 내 자존심이 후회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이겠지만. 어찌됐든.

나는 대학생활이란 인생에서 가장 격하게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몸 말고 가슴과 머리가. 경우에 따라선 몸이 성장하는 경우가 있을 순 있겠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든 의학의 힘이든 간에. 적어도 나는 가슴과 머리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던 것 같다. 특별한 어떤 크나큰 사건이 있어서도 아니고, 현대사회의 심리학수업을 주의 깊게 들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성장하려 발버둥 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나를 성장하게 했겠는가 생각해보니 이전 십대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매순간 맞닥뜨리는 새로운 이슈가 순간순간 나를 사고하게 하였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나를 보다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이런 이슈들과 어설픈 해결과정이 나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풋내가 풀풀 풍기는 대학 생활인데, 부족함이 자연스레 인정되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틈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무모함을 당당함과 패기로 봐주는 지금이야 말로 그대들이 무엇이든 힘을 내서 할만한 날들이 아닌가. 자, 가장 격하게 성장하며 그 성장통이 추억이 되어 아련한 날들로 남는 대학생활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슈들 속으로 나 자신을 과감히 던지며 커나갈 것인가에 대해선 기분 좋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해보고 싶은 것들만 추려서라도 말이다. 물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려고 나를 그 속에 내던져도 도대체 안되는 게 있긴 했지만 대게 시작을 했던 것들은 나에게 많은 추억거리들을 줬다. 단순하게 나만 놓고 간단한 예를 들면,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 좋아서 듣다가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었고, 만든 음악에 가사를 입혀 직접 녹음을 해보기도 했었고, 그러다 질리면 계절을 대표하는 레져스포츠에 미쳐서 방학동안 내내 매진하기도 했었고, 사랑을 해보려고 여기저기에 마음을 활짝 열어보기도 했었다. 세세하게 따지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고민해보고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또는 그것을 반대로 떨쳐내기 위해 사고하다보니 지금의 성장된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다만, 조금 더 겁 없이 더 무모하게 학생신분을 무기삼아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해보고 누려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조금은 남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내가 아쉽고 또 부족해서 더 아련하고 그래서 곱씹을수록 더욱 감칠맛이 나는 것 같다.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어느 누구도 그 당시 나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그대들에게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걸 일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무모하게나마 해보려할 때 우려해준 분들은 있었으나 더 무모하게 해보라고 내질러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너무많이 조심스러웠고, 두려워했고, 패기 있게 들이댔으면 지금의 나의 위치를 바꾸어 놓을만한 기회들도 더러 놓쳤었다. 이제 와보니 그때는 정말 고민할 이유도 없었고, 두려워할 것도 없었고, 잃을 것도 없었는데!

Tips
– 과제와 수업에 치이지 말고 즐기며 사는 법을 체득하자.
– 내가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가 무엇인지 진중하게 찾아보자.
– 사랑은 꼭 용감무쌍하게 쟁취하자.
– 술, 당구, 게임같은 비생산적인 여가보다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여가를 찾아보자 기왕이면.
– 뭐든지 혼자하지 말자 함께 나누며하자. 그래야 용기도 더 생기는 법이다.
– 건강은 필수다.
– 선배에게서 얻을게 생각 외로 많다. 후배들이 비비는 것을 싫어하는 선배는 어지간해선 없다. 두려워하지 말자.
– 아, 선배에게 비비기전에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멋져지고 예뻐지는 것이 우선이다.

코즈마케팅과 디자이너의 역할

제품을 디자인 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기능과 형태이다. 기능과 형태는 사용자에 대한 분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사용자는 아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으로 디자이너는 제품을 디자인 할 때 소비자의 성향, 의식수준,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소비자들의 의식수준과 관심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키워드는 ‘착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라고도 하며, 사전적 의미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소비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 및 공정무역 상품 등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뜻한다. 즉, 물건을 구매할 때 경제적인 측면에 다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의 의지를 파악할 수있다. 착한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매운동, 불매운동, 녹색소비, 로컬소비, 공정무역, 기부 및 나눔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 경험했던 소비형태들이 바로 착한 소비이다. 다양한 착한 소비 형태 중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 기부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을 통해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를 유도하여 제품 판매와 동시에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해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시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코즈마케팅이라고 한다. 코즈마케팅 사례를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Toms
탐스슈즈는 가장 대표적인 코즈마케팅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설립된 탐스슈즈의 탄생 배경은 탐스슈즈의 CEO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신발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가 난 부위를 통해 병에 감염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돕고자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인 탐스슈즈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탐스슈즈는 아르헨티나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의 편안한 착화감에서 영감을 얻어 플랫한 고무바닥과 가죽안창 그리고 심플한 캔버스 어퍼로된 신발을 만들었으며,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One for One’이라는 기업이념 아래 경영되고 있다.

탐스슈즈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코즈마케팅 활동과 다르게 독특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쉽게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해 온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의 제품 구매로 발생한 기업의 수익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거나 자사의 제품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증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탐스슈즈의 기부활동은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하는, 과감하면서 동시에 전략적이고, 동기를 부여하게 만드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판매하면서 1:1로 다른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하는 방식은 기업의 과감한 투자

이다. 물론 신발 한 켤레의 가격에 소비자 몫의 기부금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품 가격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도록 만든 것은 탐스슈즈의 코즈마케팅 전략이 적절했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신발을 구매할 만큼 사회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의식수준이 높아져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소비자에게 한 켤레 판매 시 한 켤레를 기부한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통해 제3세계 어린이 1명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기부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탐스슈즈의 신발이 일반 운동화 또는 구두와 같았다면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많이 구매했을까? 탐스슈즈가 처음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신발 디자인에 우선 놀랐다. 어릴 적 신었던 하얀 베이비실내화와 기본 구조는 동일한데 다채로운 컬러, 신선한 바닥 소재 그리고 심플한 디자인이 세련되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스슈즈는 캔버스에 고무바닥, 가죽안창이 전부이다. 어린이도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가볍고, 편하며 빨리 마른다는 장점이 있다. 밭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런 여름 폭우를 맞기 일쑤였던 아르헨티나 농부들의 생활상이 기능에 반영된 것이다.

디자인을 할 때에는 미적인 부분이나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제품이 만들어진 목적과도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탐스슈즈는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되는 제품이다. 그런데 척박한 땅에서 신을 수 없는 신발이거나 너무 장식이 많아 어린이가 신기에 부담스럽거나 신고 벗기 불편한 신발이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판매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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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워터 바코드롭 캠페인
미네워터(MINEWATER)는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생수 브랜드 이름이다. CJ제일제당은 기존 미네워터의 실패로 제품을 새롭게 리뉴얼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출시된 제품이 2012년 3월부터 판매된 새로운 미네워터 제품이다. 새로운 미네워터는 바코드롭(BARCODROP)이라는 캠페인과 함께 시장에 런칭되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제품에 바코드를 두 개 표시하여 생수 1병을 구매하면 아프리카에서 물 부족 문제로 고생하는 300명의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기부금이 사용되는 코즈마케팅 제품이다.

미네워터의 코즈마케팅 전략 또한 독특하고 신선했다. 국내 브랜드 생수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 생수까지 들어와 포화시장이 되어버린 생수시장에서 코즈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국내 브랜드 생수는 디자인적 요소에 신경쓰기 보다는 가격 경쟁을 우선으로 해왔기 때문에 귀여운 생수병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을 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바코드롭 캠페인은 미네워터를 구매한 소비자가 기부의사를 밝히면 100원을 기부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제조사인 CJ제일제당과 유통사인 훼미리마트가 각각 100원씩을 함께 기부해 생수 하나당 300원이 기부되는 나눔 캠페인이다. 소비자는 100원이라는 부담없는 금액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복지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지 않아도 인근의 편의점에서 미네워터 생수를 구매하여 쉽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바코드롭은 강요하거나 의무적인 기부활동이 아닌 소비자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이고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다. 기부 의사가 없다면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롭 스티커를 벗기면 된다. 기부된 300원은 아프리카 어린이 300명이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으로, 2012년 미네워터 판매로 발생한 기부금 1억 3200여만원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에 기부되었다. 물 부족 문제는 전세계가 고민해야 할 주목하는 환경 이슈이므로 생수에 물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캠페인을 적용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네워터 바코드롭 또한 디자인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다. 미네워터는 병 디자인을 심플하고 깔끔한 형태로 변경하여 심플함 덕분에 캐릭터 및 바코드가 눈에 쉽게 띄도록 디자인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남녀 어린이를 캐릭터로 사용하여 소비자가 기부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하늘색 물방울 모양의 바코드를 머리 위에 그려 바코드를 통해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코드가 물방울 모양이라는 것이 흥미를 유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코즈마케팅으로 성공한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소비자의 의식수준을 고려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소비자가 쉽게 착한 소비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든 사례였다. 그러나 두 사례에서 보았듯이 마케팅력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구매욕을 끄는 디자인이 존재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원하고 구매할 때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디자인 트렌드나 사용자에 국한하여 집중하는 것 보다는 이와 더불어 소비자의 성향, 시장경제 흐름, 기업의 경영이념 및 목표, 다양한 사회적 이슈 등 외적인 요소에도 폭넓은 시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형태, 색, 고유기능, 배열, 이미지 등 디자인의 기호적 요소가 소비자와 어떻게 의사소통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관찰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시간에 사랑받고 사라지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디자인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우리나라의 장인과 전통공예기술

우리나라의 ‘장인’
초고속, LTE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한땀, 한땀 바늘을 놓아 1년에 거쳐 활옷[ref]조선왕조 때 공주 ·옹주의 대례복으로 입던 소매가 넓은 옷.[/ref]을 만들거나, 문고리의 금속에서부터 몸체의 나무까지 손수 공수해온 재료를 몇날 며칠 동안 다듬고, 깎아 반닫이[ref]전면(前面) 상반부를 상하로 열고 닫는 문판(門板: 잦혀 열게 된 문짝의 널)을 가진 장방형의 단층의류 궤[/ref]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은 조금은 낯선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장인’ 이라고 부른다.

현재 이러한 장인은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에 의해 지정된다. ‘중요무형문화재’ 란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또는 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이른다. 이 중공예기술분야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흔히 말하는 ‘장인’ 이며, 사기장, 자수장, 매듭장, 유기장, 나전장 등 총 50종으로 이루어지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그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이다.[ref]문화재청[/ref] 이 ‘장인’ 이라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국가의 지정이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조선 시대 왕실에 공예품을 납품하던 장인들이 있었고, 양반집 가구를 만들어주던 장인들도 있었다. 이 장인들의 기술은 온전히는 아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형체가 없고, 기계적 매뉴얼을 갖는 것이 아니기에 특정한 기록을 통해서 전해지기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옻칠을 하고 나전을 켜 다음대의 나전칠기 장인이 되기도 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시어머니의 매듭짓는 솜씨를 물려받아 오늘날 매듭 장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유명한 장인의 제자로 들어가 오랜 기간 동안 수련하고 기술을 닦아 후세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

‘전통공예기술’ 다르게 바라보기
‘전통공예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장인정신’, ‘전통문화’와 같은 상징적 의미에 더욱 집중되어있다. 때문에 다가가기 어렵고, 만질 수 없는 마치 예술품을 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곤 한다. 하지만 ‘전통공예품’은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용품이며 용도마다의 쓰임과 사용자의 취향이 밀접히 반영된 친근한 물건이다. 다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생활방식과 기술의 변화로 어느새 사라져 버린 물건들 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쉬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전통공예기술는 당대의 일상생 활용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적화된 기술이었다. 공예품 하나를 만들어 내기위해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물건을 사용할 사람과 환경, 물건 간의 관계, 재료의 채취와 가공,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연구하고, 기술을 숙련해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 상품을 개발해 내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다르게 보아야 할 점은 이 과정 속에 발현된 당대인들의 지혜일 것이다. 몇 가지 사례로 견고성을 자랑하는 목가구의 짜맞춤기법[ref]짜맞춤은 의장성(意匠性)과 목조건축물과 가구 자체의 기본구조인 역학성(力學性), 견고성, 하중성 등을 겸한 결구방법이다. 견고성은 나사못을 사용한 맞춤보다 3배 이상이다.[/ref], 보존성이 뛰어난 단청, 내염성, 내열성, 방수, 방부, 방충, 절연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도료인 옻칠[ref]옻은 옻산(우루시올 Urushiol), 고무질(다당류), 함질소물(당단백), 수분 등으로 구성되는데, 고무질 속의 산화효소(락카아제 Lacase)가 산화하면서 옻산의 결합을 유도하여 도막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때 생성된 도막은 산酸에도 부식되지 않으며 내염성, 내열성, 방수, 방부, 방충, 절연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도료이다.[/ref] 등 과학적 효과가 현대에도 인정된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효과 뿐만 아니라, 좀 더 세세히 들여다본다면 전통공예품이 갖는 쓰임과 제작기술,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공예’의 활용 사례
‘전통공예’의 ‘옛사람들의 지혜’를 활용을 위해 현대의 물건에 장인들의 기술을 빌려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손대현(시도무형문화재 제 1호 칠장)장인은 BMW와의 협업을 통해 플래그십 모델 ‘7시리즈’의 나전과 옻칠을 활용한 실내장식을 만들어 BMW 세계 아트콜렉션으로 등록하였다.

2007년 진행되었던 ‘천년전주온’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이너와 장인들의 협업을 통해 가구,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였다. 장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한 사방탁자, 콘솔, 반상기, 합 등 전통 기술을 활용한 일상용품이 제작, 판매되었다.

경험 경제

가치 경쟁 시대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에 의미를 두는가? 그 의미있는 것들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는가? 기업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어떤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가? 지금 우리는 물 한 병을 마시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그것도 500원에서 10000원까지. 무엇이 이런 차이를 주는가? 최근 기업의 경쟁 패턴은 가격, 품질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우량 기업들은 기업 경영의 필수 조건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적인 마케팅 분야의 대가 필립 코틀러 박사는 그의 저서 마켓 3.0에서 시장 주도를 위한 핵심 컨셉을 정의하였다. 산업 혁명 이후 마켓 1.0 시대에는 사람들의 수요보다 물질의 공급이 부족하였던 시대로 제품의 생산성, 효율 그리고 품질이 중요하였던 규모의 경제였다. 마켓 2.0 시대에는 물질의 풍요가 시작된 시점으로 제품의 생산보다 고객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을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타켓 시장을 설정하는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맞춘 다품종 소량 생산의 경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마켓 3.0시대에는 소셜네트워크의 확산 등 고객들의 참여가 더 활발해 졌고 물질의 양과 질을 넘어 사람들의 감성과 영혼에 까지 설득할 수 있는 ‘가치’가 핵심 컨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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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가치

500배의 경제적 가치
전 세계적으로 커피 산업은 불황을 모르고 계속 성장하고 있고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커피 농장에서 원두를 수확하고 카페에서 우리가 커피 한잔을 마시기 까지 수 많은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경제적 가치는 향상된다. 커피 원두를 볶아 원자재(commodity) 상태로 팔면 한 컵당 평균 1~2센트를 받는다. 이를 분쇄하고 포장하여 상품(good)으로 팔면 한 컵당 5~25센트를 받을 수 있으며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서비스(service)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한 컵당 75~100센트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2~5달러를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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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1센트짜리 가치를 5불로 만들었는가? 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단순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만의 경험을 마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 가치를 사는데 500배의 돈을 지불하고 있다.

통합된 솔루션의 가치
현재 세계의 거대 기업들 중 기업 가치 1등은 단연 애플이다. 인터브랜드, 브랜드디렉토리 등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 평가 회사에서 한 목소리로 애플을 세계 1등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애플의 시가 총액은 5,000억 달러로 2,000억 달러의 삼성전자보다 월등이 높은 수치이다. 두 기업을 견인하고 있는 대표 제품인 스마트폰만 비교하더라도 기술적 스펙은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애플의 아이폰보다 우수하다라고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두 기업 가치의 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거대 기업들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세계 전자제품 제조 회사들의 롤모델이었던 소니는 수익보다 손실이 더 큰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고 아이비엠은 컴퓨터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서비스업으로 기업의 비즈니스를 변경한지 오래다. 모토로라는 기존 사업이 더 이상의 경쟁력이 없어 분할 매각하여 휴대폰 사업부가 구글에 인수된 상태이며 한 때 세계 60% 휴대폰 시장을 잠식하였던 노키아조차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여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리는 등 인수된 회사나 인수한 회사나 기업의 비즈니스를 다각화 하여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사업 변화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플랫폼/서비스/유통에 이르기까지 통합되고 일관된 경험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세계 1등 기업이 된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성/일관성/새로움/차별화라는 경험의 총체로 기업의 진정성을 고객에게 느끼게 해주었던 애플의 비즈니스 전략을 타 경쟁기업들이 모방하여 생존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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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경제
농업경제 시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빵을 굽는데 필요한 밀이나 가족이 입을 옷을 짜기 위한 양모 등 원재료를 주로 이용하여 생활하였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들에서 공장으로 이동했으며, 결국 공장에서는 철강, 기계 외에도 옷과 빵까지 생산하였고 사람들은 이런 상품을 구매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임금인상과 근로시간이 단축되자 사람들은 늘어난 여가생활에 직접 빵을 굽고 옷을 만드는 대신 레스토랑에 가서 서비스 받는 음식을 먹었으며 백화점에서 패션에 대한 서비스를 받으며 옷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는 차별화를 위해 많은 기업이 서비스 경제를 벗어나 경험 경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피자헛은 단순한 식사 서비스만을 제공하지는 않고 자녀를 위해 촛불을 켠 케이크와 풍선, 광대 등 오락거리를 모두 갖춘 생일파티를 열어 주기도 하며 월트디즈니는 디즈니파크를 통해 이미 경험경제의 전문가로 인정 받고 있다. 디즈니파크의 직원은 배우이며 방문객은 관객, 테마공원은 무대로 자리하여 고객들에게 무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앨빈토플러(Alvin Toffler)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경험 경제(The experience economy) 개념은 조셉 파인(Joseph Pine),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re), 롤프 옌센(Rolf Jensen)에 의해 이론으로 정립되었고 이는 고객이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담긴 스토리와 경험을 사는 경제 활동으로 정의된다. 경제 구조는 거래 대상의 고객 맞춤화(customization)를 통해 일상적인 재화로써 역할을 극복하여 새로운 재화가 탄생하며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가 진보하여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발전한다. 반면에 거래 대상이 경제 구조 심화에 따라 일상적인 재화(commoditization)로 느껴지면 경쟁력은 하락된다. 서비스 경제는 ‘경험재’를 제공하는 경험 경제 시대로 진화 중인데 경험재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서비스나 재화를 보조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인가’를 제공할 때 탄생한다. 즉 하드웨어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제품간 성능 차이가 좁혀지고 스펙 경쟁 의미가 쇠퇴되면 고객에게 제공되는 경험의 가치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경험경제는 상품에 녹아 있는 무형의 가치인 스토리나 주관적 경험, 감성, 창의적 아이디어 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다. 좋은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고 사람들은 마음속에 것들을 나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관계는 향상된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런 사회 현상에 주목하고 있고, 그들은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가치 경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경험 경제에 살고 있다.

공간의 재생은 삶의 재생

2013년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대전에서 올해의 대상은 기존의 폐공장을 복합 문화시설로 리노베이션 한 학생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위치는 폐공장들이 모여있는 서울의 성수동지역으로 아직 활발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폐공장들에 관심을 보이며 패션쇼 등의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 지역이다. 근처에 매끈하게 신축된 서울 숲 공원 주변지역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개발이 안 된 곳으로 미래에 서울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흥미롭게 리노베이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잠재적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올해 공간디자인 전공학생 졸업작품 주제 중 하나도 도시주거지역의 재생프로젝트이다. 과거 그리고 사실 지금도 도시 재개발사업 하면 일단 철거를 깨끗하게(?)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마인드로 과거와 상관없는 새로운 계획을 하는 과정을 거쳐 진행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존 할 가치가 있는 도시가 갖고 있었던 역사적 맥락들을 놓치고 속도만 내면서 개발에 박차를 가했었다. 그래서 이번 졸업작품의 도시 재생프로젝트의 관점을 보존 가능한 요소들은 그대로 두고 재해석 해야 하는 부분들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잡고 시작하였다. 거시적으로는 이 지역의 길의 기원부터 분석하고 그 골목길을 살리면서 지역주민의 구성원과 생활패턴 등을 고려하여 이를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디자인을 진행하였다. 사실 현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비용면에서나 집중도면에서 신축을 선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도시도 하나의 유기체로서 건강하게 재생이 잘 이루어졌을 때 결국 궁극적으로 그곳에 살고있는 인간들의 삶도 건강하고 만족하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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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하이라인 파크
뉴욕시에 있는 하이라인 파크는 어쩌면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어떤 길인지를 겸허하게 암시하는 한 건축물의 사례로 볼 수가 있다.
하이라인(Highline)은 뉴욕시 미트패킹에서 맨해튼 허드슨강 철도 화물 하적지에 이르는 1.5마일 길이의 공원이다. 원래 하이라인은 1930년대 완공된 20km에 달하는 고가철도였다. 뉴욕 주위를 순환하며 화물수송을 담당하던 하이라인은 자동차의 출현으로 완공 20년도 안되어 점차 사용가치를 잃어갔다.
그리고 급기야 1980년 이후 완전히 방치되어 녹물로 삭아 들어가는 흉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던 90년대의 뉴욕시는 당시 시장 쥴리아니의 지휘아래 이 폐철로를 완전히 철거하고 당시의 트렌드를 추종하는 포스트 모던적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방치된 그곳에서 야생의 풀이 돋아 오르고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미하지만 근대와 현대의 뉴욕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풍경이 형성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철골과 아스팔트 그리고 콘크리트덩어리로 압사할 것 같은 이 지역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없는 야생의 꽃과 풀이 무성히 자라는 식생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철거계획에 저항한 일단의 시민들은 바로 여기서 숨통이 열린 감동을 받으며 어떤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들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철거계획을 무산시킨 다음 이러한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말해줄 수 있는 건축물을 공모하였다. 여기에 조경가와 건축가인 Diller Scofido & Renfro는 어그리텍처(Agritecture)란 새로운 개념의 건축으로 응답해왔다.

이 공원의 조형적 특징은 기존 철로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길고 좁은 공원의 형태와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의 장소특성 때문에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눈높이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이 특성을 최대한 살린 디자인과 그 공간을 다시 해석하고 만들어 내기위해 공간과 시설물의 통합을 모던하고 세련되게 표현해서 뉴욕을 더 뉴욕다운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하이라인을 다시 건축한 기술은 그 것을 그저 야생으로 방치하지 않고 다시 보듬으며 이러한 사건이 갖는 의미를 가다듬어 내었다. 이는 바로 어그리텍처란 건축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철로 이용 중단 후 그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그 고유의 미적 가치가 높다는 판단으로 씨앗 수확 과정을 거쳐 다시 심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하이라인은 무를 향해 삭아 들어가는 철도의 산화과정을 풍경이 창조되는 기다림의 과정으로 반전시킨다. 그리하여 풍경을 그곳에 사는 인간들에게 안겨주고 동시에 그들을 그곳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거주의 의미를 풍경에 귀환시킨다.
하이라인은 풍경에 그 풍경을 파괴했던 근대의 거대기계를 땅의 한층 더 두터워진 나이테로 새겨 넣으며 풍경의 고유한 요소들이 그 요소로서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이곳에서 뉴욕의 시민들은 그들의 도시를 포기하고 전원으로 귀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수송체계의 부속된 철도에서 풍경 속의 길로서 존재를 회복한 그 길을 거닐며 명상하고 담소하고 이제 문턱을 넘어 집으로 들어 온 사람처럼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향상실의 시대를 지탱하는 기반시설이었던 하이라인은 이제 거주를 선사하는 고향을 향한 길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이라인은 미래를 향한 길을 어슴푸레 열어주는데 그 미래는 근대나 탈근대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근대나 탈근대를 부수고 원시의 숲으로 퇴행할 필요가 없고 또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제작된 변신로봇 같은 건물들이 우글대는 도시도 아니다. 하이라인은 근대의 공간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건축을 통해 어떻게 자연, 폐기되는 근대문명, 시민공동체, 그리고 첨단기술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미래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이라인 파크 계획의 주요 시사점은 수명이 다한 공간의 개발은 새로운 인프라 방식에만 있지는 않다. 그 공간이 쓸모없다고 해서 그 공간 속에서 일하며 같이 살아 왔던 도시민들, 노동자들의 삶까지 지워지고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유지되듯 산업사회의 유산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보여줄 수있는 새로운 형식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 공원계획이 그 점을 잘 보여 주는 산업도시의 역사성을 담은 새로운 경관을 창출해냈다고 볼 수 있다.